스레드소설

나는 결국 뛰어들었다. (베타테스트)

호스트

나는 결국 뛰어들었다.

정확히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6년을 사귀었고 결혼을 석 달 앞둔 약혼자와 어젯밤 갑자기 헤어지게 돼서도, 내 작품을 표절한 놈이 도리어 괘씸하게도 나를 표절로 고소해온 것 때문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귀찮게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냥 여기 오는 길에 개똥을 밟은 것 때문쯤으로 해두자. 다들 거창한 이유를 들며 죽지만, 한 명쯤은 이렇게 되지도 않는 이유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나는 그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퍼뜩 눈을 떴을 때는 하얀 천장이 보였다. 규칙적인 기계소리와 누군가가 걸어가는 발소리, 간헐적인 기침 사이로 뭔지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들이 섞여들었다. 나는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근육이 움찔대며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죽지 않았다. 살아 있었다. 애석하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현실이었다. 가습기의 축축한 연기가 희게 머리맡으로 뿜어졌다.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매달린 무색의 액체가 거꾸로 담긴 유리병. 또옥, 또옥, 느리고 규칙적인 링거액의 추락을 잠자코 두고 봤다. 별안간 양쪽 관자놀이를 가로지르는 눈물길이 났다.

“정신이 드세요?”

묻는 목소리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고개를 올리니 평범하게 보이는 양복 차림의 여성이 차트로 보이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의사로도 간호사로도 보이지 않는, 전혀 면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지?

겸언스런 기분에 “여기는 어디지요?” 라고 물으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겨우 나온 소리로 만들어진 물음으로 들은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후세계입니다.”

“예?!”

“피실험자의 반응이 일반적이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그녀는 차분하게 차트에 정상이라고 체크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여기는 사후세계이다> 라는 정보가 맞는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디… 라구요?”

“어찌 실험 참가자 모두가 한결 같은지 모르겠네요. 네 맞아요. 당신이 의심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에요. 인생 시뮬레이션의 끝, 사후세계입니다.”

그녀는 유리 밖의 동료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여긴 평범한 병실 같은데..

사후세계라면 내가 죽었다는거 아냐.

지금 분명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지.

죽었다면 지금 이 아픔은 뭔데.

난 내가 누군지 알아.

….

..

인생 시뮬레이션?

 

그렇지않아도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신호에 맞춰 들어온 사람들로 더욱 뒤섞여버렸다.

여자와 같이 양복을 입은 남녀가 둘, 의료인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었다.

양복들은 눈 인사를 한 뒤 타블렛을 보며 서류와 필기구를 꺼내고 있었고 의료인들은 건강을 체크하려는 의료기계 같은 것을 밀고 들어왔다.

이럴때 가족이나 친구라도 곁에 있었다면 진정될텐데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이상한 소리를 하니 당황스런 마음 뿐이었다.

인생 시뮬레이션이라면 심즈 같은 게임이 아닌가.

무슨 사기를 치려고 하는거야? 당하면 안돼.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의료인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나를 바라보았다.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운에 손을 집어넣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이제 이해하실 거예요.”

나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보여준 손거울 속에는 아무런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베개와 침대, 헝클어진 이불, 그리고 공기뿐이었다.

 

 

(중략)

 

 

그렇게 나의 여정은 끝이 났다. 몇 번을 반복해 플레이하고 또 플레이했지만, 여전히 인생은 알 수가 없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이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가고, 아둥바둥 지키려 노력했던 재화들이 오랜 기간 방치되어 부패해 쓰레기가 되는 모습들을 봐야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마저 들었다.

 

한없이 이어지는 권태감에 괴로워도 해보고, 매번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는 하루들에 오열도 했었다.

 

그러다 정작 내가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달려들 때면, 그건 또 한없이 짧기만 했다. 다다르려 하면 삶은 끝으로 향했고,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세상은 또 바뀌곤 했다.

 

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처음엔 관심이 없었던 말. 그러거니 말거니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지겨우면서도 슬픈 가운데 복잡한 심경이 드는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내 머릿속에선 이 질문이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 대답을 혹여나 찾을 수 있을까 다시 또 셀 수 없는 시뮬레이션을 되풀이했었지만, 여전히 그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주어진 삶을, 유한한 삶을. 어느 다른 세계의 나는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을 그 삶을, 일 분 일 초 오감을 전부 완전히 열어두고 최대한 체험하는 것. 그게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애잔한 비극이란 것은 아니었다.

 

인생은 그저 현상이었다. 단, 유한한 현상. 의식 없이 흘러가면 살랑이는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인생이었고, 의식을 가지고 대하면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게 인생이었다.

 

그리고 흔히,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서면 어떠한 삶을 살아왔든 그간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는 강렬한 욕구가 들곤 했다. 그때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관점에서 보면,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축복으로만 여겨졌다.

 

그게 얼마나 비참한 순간이었든, 얼마나 눈물에 얼룩진 세월이었든 간에. 어쨌든 나는 살아있었고, 내 인생은 내 손에 의해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자신이 앙망하는 삶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든 간에, 그래도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바라보면, 여전히 그 모든 시간들은 한창이었다.

 

어느덧 891번째의 삶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창문 너머로 참새 소리만 들리는 어느 조용한 공간이었다. 원래 내가 누워있던 곳은 여기가 아니었는데. 놀라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전생체험실이라는 실내현판이 눈에 보였다.

 

“어떠셨나요?”

 

상담사라는 명찰이 붙어있는 사람이 옆에서 물었다. 그걸 보니 기억들이 하나둘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난 이 곳에 상담을 받으러 왔었지. 그러다 최면시간에 잠이 든 거고.’

 

손가락을 펴보고 그 주위로 미세하게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에 집중해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 마쉬어보기도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도 반복해보았다. 나는 분명 이 삶에 살아있었다.

 

‘이 모든 게 결국 나의 전생들이었구나. 그 많은 전생들을 에두르고 에둘러 이 현생에 겨우 도착한 거로구나.’

 

왠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났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나를 감싸고 있는, 나와 상관없는, 삶의 모든 것이 고마웠다. 다 늘 그렇게 반복해오며 지겨워하던 것들인데, 이상하게 반가웠다.

 

무수히 존재하는 시뮬레이션 속의 어느 한 데이터로써가 아니라, 내가 나일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로써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직 나만이 즐길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호스트 코멘트

마감날이 된 까닭에 아쉽지만 급마무리하게 되었네요 ㅠㅠ Mik 님, 챠민 님, 무조건건강하게 님, 마술정원 님, 로시 님. 그간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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