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테스터(?)는 처음이라

‘브릿G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을 뜨자 나를 반긴 건 우선은 보라색 계열의 고딕체 안내 문구였다.

 

‘베타 테스트에 참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희 브릿G에서는…’

텍스트 너머의 세상이 궁금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안내 문구를 파리 쫓듯 쳐냈다. 놀랍게도 안내 문구가 사라졌다. 이런 게 되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어떤 모습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극강의 자유도를 자랑하는 오픈월드 게임을 할 때처럼 막막함을 느낀 나는 안내 문구를 찾고는 깨달았다.

 

내가 한 것은 스킵이었다.

 

서둘러 인터페이스를 불러와 이것저것 눌러봤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나는 하릴없이 무의 공간을 걸어다녔다. 아니, 아무리 가상 최대의 자유도를 강점으로 어필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무언가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NPC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부수고 쌓을 만한 복셀 블록을 얘기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거닐었을까. 눈앞에 보라색 문구가 떠올라서 나는 소리를 꽥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업적 달성! 무 위를 걷기(500/500)’

“무 위를 걷기?”

 

나는 얼얼해진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보라색 문구를 보았다. 걷기만 해도 업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 숨만 쉬어도 업적을 달성할 수 있겠군 그래.

 

‘업적 달성! 무 속을 숨쉬기(1000/1000)’

그냥 농담삼아 한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보라색 문구가 한 장 더 겹쳐졌다.

 

‘무 속의 업적을 2개 이상 달성한 보상으로 [배경 제작권]이 주어집니다. 원하는 대로 손가락을 놀려 하나의 배경을 만들어 보세요!(0/1)’

손가락을 놀려 배경을 만들으라니 무슨 뜻인가 싶어 팝업 문구를 눌렀더니 색상 패널과 파레트 창이 떴다.

 

“…….”

 

별도로 여러가지 필기구로 보이는 툴 창도 떴다.

 

역시 직접 그려서 만들어야 하는 건가. 나 그림 엄청 못 그리는데…….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유치원 때 그림 그리던 기억까지 되살려 최선을 다했지만 완성된 것은 형이상학적 색과 여러 종류 선의 기괴한 조합. 무언가 열심히 표현하려고 했지만 의지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했던 형태들이 불쌍하게 공개 전시되어 있는 전경은 오래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정신에 심한 부담을 주는 것이었다.

 

“새하얗게 불태웠어…….”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지던 타이밍에 뜨던 보라색 문구 팝업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깨어났을 땐 브릿G 로비였다. 침까지 흘려가며 자던 나는 ‘츄르릅’하는 민망한 소리를 내며 입을 훔쳤다. 그런 나를 복도 끝에 서서 다소 집요하리만큼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그러자 그 사람이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면접 안 볼 거예요?”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오늘은 브릿G 편집자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호스트 코멘트

너무 참여가 난해한 설정으로 시작한 것 같아 급 마무리했어요.
참여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