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의 윤리, 응징의 쾌락 너머에 남겨진 질문들에 대해….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 의뢰(감상)

대상작품: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 (작가: 이엘,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8시간 전, 조회 5

 

 

목차

1.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하기 마련이죠.

2.건드릴 수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는 이야기?

3.피해자들을 위한 대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4.그럼에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랍니다.

 

 

<본 리뷰는 이엘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작성한 리뷰이며, 리뷰가 올라가는 시점까지 연재된 회차 분을 전부 감상한 후 작성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1.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하기 마련이죠.

 

간혹 창작자들은 현실의 사건과 주제를 투영하는 것을 넘어, 현실의 사건 그 자체를 작품으로 가져오기 위한 각색을 시도하곤 합니다. 그것은 실화가 가진 날 것의 힘을 그대로 가져오는 무기가 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실화에 담긴 핵심이 상상으로 재현할 뿐인 이야기와 비교해서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많은 지점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현실이 더 잔혹하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사용하지만, 사실 이 수사는 역설적으로 대중이 그 잔혹함의 실체로부터 얼마나 안전하게 격리되어 있는지를 폭로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실제로도 창작자가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가져오려 분투할수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감각은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마모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단순히 활자와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현실이 더 잔혹하다’는 말의 의미가 발골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창작자의 손길은 더 세심하고 영리한 지점을 요구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 또한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 또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을 법한 사건을 각색하여 고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n번방’이라고 명명되었던 성착취물 제작 사건을 비롯하여, 어쩌면 텔레그램을 비롯한 SNS라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음지의 사건들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형태화하여 전하고 있죠. 이 작품에서 그런 현실의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장르적인 변주를 시도함에도 다소 우직하여 기술적으로 한계를 보인다는 인상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단호한 서술 안에서 의미를 깨우치려는 목소리가 분명하여 사뭇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호평도 혹평도 독자에게는 ‘실화’라고 불리는 지점을 건드리는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뜻입니다.

 

이 감평문에서는 이 작품에서 ‘실화’를 투영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그 방식에서 보이는 아쉬운 공백들을 다듬어보고, 더 나아가 이 작품이 단순히 기술적으로 무시받기에는 아까운 매력들을 톺아보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다음 내용들은 일개 독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며, 앞으로 작가님께서 받게 될 수많은 피드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며 시작하겠습니다.

 


 

2.건드릴 수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는 이야기?

 

앞서 현실의 사건을 각색하는 방식이 가진 힘을 강조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윤리적인 문제들은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처럼 창작자들을 괴롭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세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 사건일수록 그 기준은 더 엄격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물에 대한 묘사, 사건에 대한 해석 등 각종 요소들이 현실적인 잣대로 재단되기 시작하며, 단순히 작품의 구상을 넘어 전체적인 완성도 그 자체가 대중들의 시선에 못 미칠 경우 비판을 받을 여지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여느 작품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덧붙이며 소재에 대한 해석 자체에 거리를 두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창작의 영역에서 윤리적인 기준을 피하기 위한 수작으로 비춰지며 지탄을 받을 빌미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 소재는 함부로 건드리는 것 자체를 경계시키겠다는 특유의 목소리가 선명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는 까다롭다는 세간의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해도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분명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 해석은 현실 대중들의 시선에 큰 무리 없이 부합하며, 그 과정에서도 이 작품을 써야만했던 의도를 웅변처럼 주장하는 것이 아닌 설득하는 듯한 뉘앙스를 띄는 것으로 작가 개인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여지를 남겼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작품의 의도는 좋았다’는 냉소적인 표현으로 압축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작품에서는 그 의도마저 평가받아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출발을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n번방’ 혹은 ‘박사방’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성착취물 제작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은 그것에 대해서 허구라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명확히 ‘텔레그램’ ‘성착취물’ 같은 단어들을 언급하며 해당 사건을 대표격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성범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앞서 제시한 ‘피해자’ ‘가해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례를 창작의 영역으로 각색할 때, 윤리적 기준에 맞추기 위한 방식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강조

둘째,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처벌을 강조

 

이 두 가지 방식을 염두에 두자면,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는 가해자에 대한 비난을 넘어 그 자체를 악마화 하는 것을 넘어서, 최대한 ‘추악화(醜惡化)’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초반에 화자의 입으로 언급되는 제 자신에 대한 평가가 그것을 대변합니다.

 

(P27). 수업시간에 잠만 자고 커뮤니티에 뻘글만 쓰며 공부 능력은 별볼일 없었다(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등급 모두 7등급이었다) 부모한테 얹혀 살고 있으며 알바는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었다. 살은 쪘고 야동을 보면서 자위나 하는 신세였다. 열등감만 많아서.

 

화자(가해자)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회의 낙오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추락한 제 모습을 꾸밈없이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생활면에서도 자립능력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인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에 멈추지 않고 ‘살이 쪘다’ 그리고 ‘야동만 보며 자위나 한다’ 같은 불편한 묘사를 서슴지 않고 덧붙이는 것만 봐도,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화자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P31). “이세계로 가면 당신은 특별해질 수 있어요.” (중간생략)비현실적인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난 믿고 싶었다. 현실에서 루저였던 내가 다른 세계에서는 최강인 것을.

(P141). “마왕은 마왕이기에 마왕이다. 마왕이기에 악하고 마왕이기에 피해를 준다. 그러니 퇴치해야 한다.”

(P247). 아니, 노출이 저렇게 많으면 어떻게 싸우지? (중간생략)노출이 많아 흥분이 되었기 때문에 이 생각은 곧 사라졌다.

 

화자를 향한 추악화는 단순히 외형과 생활 묘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품은 의도적으로 화자의 일그러진 내면과 평균 이하의 지능을 묘사하며,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넘어 이 상황에 놓여 있는 화자 본인이 정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말 그대로, 화자는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부족한 자존감은 ‘이세계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걸려드는 미끼가 되며, ‘마왕은 마왕이기 때문에 처치해야한다’는 식의 인과가 없는 목적만을 쉽게 이해하는 성질을 보여줍니다. 이성의 노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면서도 그 반응은 성욕에 쉽게 무뎌집니다. 그의 세상에 의구심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욕망과 자극에만 반응하는 ‘짐승’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P197). “안녕하세요. 저는 모르핀이라고 합니다 (중간생략)나는 하프엘프 헤로인이라고 해!!”

(P465). “왜 웃음이 없는 거야?” 그녀들은 그때 입가에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되나요?”

 

작중에서 화자의 일행으로 참가하는 두 연인은 ‘모르핀’ ‘헤로인’이라는 이름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합니다. 노골적으로 마약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이름은, 현재 화자가 처한 상황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실제로도 화자는 두 여인과 수시로 잠자리를 가지며 쾌락에 빠지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불평 없이 재현해주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안심을 느끼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것이 익숙합니다. 화자는 기본적으로 이성을 다루는 방식에서 비뚤어진 인물이기 때문이죠.

 

(P535). 블랑드르라는 성착취 대화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간생략)여자가 굴복하는 모습은 천상 행복이었고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P583). 라노벨에서도 강간 순애가 나오는데 나도 못할게 뭐람? 라노벨에서도 주인공에게 정복당한 여성이 주인공의 우월성에 취하지 않던가?

(P696).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중간생략)내가 백수로 살 동안 사회가 날 도와준 적 있었나? 내가 엄마에게 잔소리 듣는 걸 막아준 적이 있었나? 나한테 친구 하나 만들어 준 적이 있었나?

 

본격적으로 이 화자의 내막이 드러나면, 불편한 진실들을 더욱 가중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불편함에 가깝습니다. 화자는 젊은 자매에게 성적인 행위를 강요했던 범죄자였으며, 그 행위를 소설 속 이야기에 빗대며 정당화하고, 이런 자신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만든 원인을 세상의 관심으로 돌리는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 목소리는 거의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은 우악스럽고 단순한 언어들로 치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마치 독자들에게 이 인물에게 연민과 공감을 갖지 말라는 경고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흔히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범죄자는 그 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함으로서 범법의 지대에 놓인 속성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범죄자 자체를 추화하고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P820). 징역 16개월 집행유예 3년의 형밖에 선고받지 않았다. (중간생략)내가 이 형량을 받은 건 법원도 너와 나와의 관계를 인정해서야.”

 

법원의 판결을 받고 피해자를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전달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 극도로 부정적인 감정이 이 화자를 같은 인간으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의도적인 거부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 나오는 화자는 소설 속의 인물로 공감대를 만들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 작가는 처음부터 이런 인물에 대해 독자들과 똑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부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인물이 서사를 만들어가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작품 내 화자가 즐겼던 말초적인 포르노(Porno)로서의 성격을 띠기도 합니다. 범죄자를 욕하고, 벌주고, 언어와 행위로 고문하는 것을 감상시키며 박수를 유도하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쾌감을 대리만족시켜주기 위한 작은 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P772). “선택하게. 가상현실로 갈 건지, 현실로 갈 건지. 현실은 너가 범죄자라는 서사가 널리 퍼져있네. 결코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야. 결코 말이야. 물론 네가 피해자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면 티끌이지만.”

(P852). 공학자였던 아버지는 방안에서 무언가를 만드셨다. (중간생략)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를 잡아와 그 기계에 쳐 넣었다. (중간생략)스스로의 자기 기만속에서 썩어갈 것이라고 한다.

 

결국 화자가 갇힌 ‘이세계’라는 공간이 피해자의 복수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이런 응징의 성격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이 구간은 작가 개인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화자를 비난하고, 모욕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울분을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그에 대해 독자들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작중의 화자는 여지가 없는 범죄자이며, 사회적으로도 갱생이 힘든 인간입니다. 그에 더해 독자들은 현실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을 화자에게 겹쳐보며 의도된 분노를 유도합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에서 가해자를 공격하게 만드는 분노란 작품 외적인 면에서 끌고 온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물론 작품의 화자는 동정이 가지 않는 인간입니다. 추하고, 악하며, 어쩌면 사회적으로 처리되어야하는 오물일지도 모르죠. 그것은 독자들의 해석보다는 해당 인물을 가장 끔찍하게 일그러뜨려야한다는 작가 개인의 신념에서 나온 결과처럼 보입니다. 설령 이 화자에게 아동 성범죄자라는 배경이 없었더라도, 그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게 설계된 인물입니다. 이토록 극도의 추악함만으로 강조하는 화자를 제시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로 독자들의 호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지만, 동시에 캐릭터의 입체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결국 이 인물에게 내려진 응징에 대한 정당성이란 소설 내부의 설계보다는, 현실의 분노를 빌려와 화자에게 대입한 것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윤리적인 딜레마의 한 갈래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현실의 사건을 투영하고 있는 이상, 가해자를 인물로서 구체화한다는 것은 자칫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공감대와 동정의 여지를 준다는 불안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표면적인 부와 성공을 누리고 있는 인간일지라도 어느 한 가지 결점으로 응징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가해자란 어느 결점과 죄악이 아닌, 그 인물 자체가 그릇되었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화를 투영하는 데서 오는 윤리적인 기준은 합격선으로 노렸지만, 그에 대해 소설적인 설계에서는 하자를 보였다는 의미로도 읽히겠습니다.

 


 

3.피해자들을 위한 대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 이야기는 ‘성범죄’라는 틀에서는 윤리적인 기준을 만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 기준이 어긋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당장 화자는 피해자의 복수로 기계에 갇혀 ‘이세계’라는 망상에 빠져버리는 결말을 맡고 있습니다. 비록 화자가 법적으로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고, 반성도 없이 2차적인 가해를 가하고 있단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피해자가 행하고 있는 복수 또한 명확히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사적 제재에 가깝습니다. 즉, 이 작품은 화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 또한 범죄자로 묘사하는 셈입니다.

 

(P976). 그와 나의 선택은 여기서 갈렸다. (중간생략)성착취물을 공유한 사람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겠노라고.

(P978). 가해자들은 처벌되었지만, 그들은 처벌되지 않았다. 진짜 거악은 처벌되지 않은 것이다. 토양이 있는 한 악의 싹은 자랄 수밖에 없다. 난 결심했다. 그를 만든 세상과 싸우기로.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듯한 특유의 목소리입니다. 이 작품을 정독하다보면 가해자의 추악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과, 반면 피해자에 대한 묘사는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는 피해자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름과 같은 아주 표면적인 껍질에 불과합니다. SNS를 통한 성범죄 피해자였다는 정보를 가정하더라도, 어떤 과정으로 이런 피해에 미쳤는지, 어떤 식으로 피해를 당했는지, 그 후유증으로 어떤 고통을 입었는지까지, 그 무엇도 묘사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상 피해자 또한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그 서사 면에서 소설적인 구상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에서 인용되고 있는 사건이 현실의 그것을 그대로 빌려왔기 때문이며, 그런 연유로 소설 자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간이 거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떠올려보면 이 또한 실화를 투영할 때 따라오는 윤리적 문제와 직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관련 사건들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이때, 그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을 향한 화살이 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도 이 작품에서 공백이나 다름없게 남겨놓은 서사들은 현실로 향하는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는 시도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공백들은 피해자가 특정한 누군가보다는 보편적인 누군가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겠지만, 그런 보편적인 누군가를 가정하며 내놓은 대답이 가해자를 향한 사적 보복이라는 것은 그 묘사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은 허구입니다. 기계를 이용해 가해자를 망상 속에 가둔다는 소재 또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가상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상의 소재로 나오는 태도는 마치, 사회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혹은 처벌이 미약한 대상에게 피해자 개인이 마땅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오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창작물은 가상의 피해자라할지라도 그 서사를 완성시켜 그 행위에 대한 설득을 바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서사가 비어 있기에, 독자들은 행위와 결과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나오는 그림이 무엇인가요?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미약한 처벌을 보충하기 위해 직접 가해자를 처벌했다는 일련의 보복이 아니던가요?

 

우리 사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법이라는 시스템이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사적인 보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반사회적인 행위를 피해자의 손으로 재현한다는 이 소설의 태도는 무척 불편한 지점을 건드리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런 지적에 대해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는 보복을 허구의 이야기로 꾸몄을 뿐이다’라는 해명이 가능하겠으나, 인물들의 공백을 현실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채워 공감을 유도해놓고 그 결과만큼은 허구니까 괜찮다며 허락을 구하는 것은 다소 재고의 여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결국, 소설이 피해자 입장에서 마땅한 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가해자에게 내려져야 할 마땅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를 지적하고, 그에 따른 피해자들의 고통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와 인터뷰로도 충분히 논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창작은 그 이상에서 답을 내놓아야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문제들을 지적하고, 가해자를 비난했다면, 그 이후에 피해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답을 작가의 입장에서 내놓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단 작품의 주요 소재로 내놓은 보복적 행위는 대중들의 더부룩한 속을 가라앉힐 수 있는 해장품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것이 피해자 개인의 일그러진 묘사로 이어진다면, 윤리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4.그럼에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는 음지로 불완전한 사회와 인간들을 논합니다. 그 주제는 마땅하고 현실적인 지적입니다. 실제로도 각종 범죄자들이 다양한 사유를 들어 그들의 죄를 회피하는 일이 벌어지며, 그 사연을 접한 대중들은 진심어린 울분을 토하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향한 목소리는 사뭇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는 목소리는,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라는 난폭한 목소리에 묻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 또한 그런 목소리의 일부를 재현한 무언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맞춰, 악인에 대한 통쾌한 처벌과 가감 없는 비난은 대중들에게 필요한 모범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또한 끔찍이도 짐승처럼 묘사되는 화자에 대해 ‘이런 인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만큼은 일관적이고 분명하다는 것은, 이런 가치에 대해 앞장서고 싶다는 작가 개인의 바람이 움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실화를 투영하는 작품은 그 ‘사실’을 전달하는 고발물의 성격을 넘어 관련인들을 향한 비판물의 성격을 띠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간혹 그런 과정에서 진실은 왜곡되고 의미는 모호해지는 경우도 발견되곤 합니다. <그곳에는 질문이 없었다>는 어쩌면 서사 쪽으로 약점으로 보이는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그 해석이 누를 끼쳤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작품을 쓸 때 ‘재현’을 넘어 ‘의미’를 전달해야한다는 작가의 태도는 많은 창작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과 비난의 날을 세워 가해자를 응징하는 통쾌함 너머, 그 거친 목소리에 가려질지도 모르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회복에 한 번 더 시선을 두어 주신다면, 작가님이 지향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가진 뜨거운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번 감평문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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