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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오늘도 질문으로 시작해봅시다.
소녀가 운명에 수긍하지 않은건 불행이었을까요, 다행이었을까요.
글을 읽을 때에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대체로 저는 글의 단서가 머리에서 짜맞춰지는 즐거움을 위해 글을 읽는데요, 이번 글은 조금 달랐습니다. 동형구조라고 할까요. 글을 관통하는 질문이 각 집단과 인물관계에 대응할때 느껴지는 깨달음과 짜릿함이 무척이나 즐거웠어요. 한 문장과 하나의 질문을 극점에 꽂고, 지도를 들고 미로를 헤치는 기분이에요.
그러므로 이번 리뷰는 길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글을 한 바퀴 돌았던 제 자취를 기록하는 의미에서 적어보려 합니다. 조금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과 희생, 운명에 대하여
오늘은 서두의 질문에 더해 한가지를 더해볼까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희생할 수 있나요.
운명이란 무엇입니까? 운명을 믿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마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사실 저는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운명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소녀도요.
평생을 따라온 세계관을 내려둘 수 있는 이야기란 무엇일까요. 억눌러왔던 욕구가 드러난걸까요? 마을 사람들의 숭배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심은 때로 진심이기에 유해하지요. 원망도 할 수 없고 거부할 권한도 없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의 맹목을 거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녀가 자기 자신만큼은 지켜왔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의 관계는 소녀와 마을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죠. 마을사람과 마을사람의 관계도 있을겁니다. 그걸 은연중에 동경해오거나, 자신은 왜 다른지에 대해 고민해봤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조난자의 말은 그 어긋난 틈을 단번에 메우는 마지막 퍼즐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조난자의 경우는 조금 이상합니다. 소녀의 고백처럼 신이 보낸 사람은 실제로는 조난자인것처럼 보여지지요. 돌을 맞아가면서까지 소녀를 구하려는건 무엇때문이었을까요. 단순한 연민, 조난에서부터 구해진 부채감, 또는… 여러가지가 겹쳐진 이유때문일수도 있고, 그저 그게 옳기 때문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난자의 작은 행동은 소녀에게는 계시같았을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소녀의 수난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무시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믿거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세가지 모두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태도라는거죠. 저는 조난자의 이야기가 소녀에게는 예언, 운명 또는 믿음에 준하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마을을 나가면 너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예언이요. 또는, “이 마을에서 얻지 못했을 것을 얻게 되리라”는 예언이 될 수도 있었겠네요. 소녀가 필사적으로 나가려고 했던 이유는 그걸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제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믿음은 마을사람들의 믿음과 다르지요. 마을 사람들은 오지 않은 미래를, 소녀는 ‘현재’를 봅니다. 현재를 보기에 바꾸고자 하고 바꾸고자 하기에 다른 미래를 믿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힙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소녀는 미래의 부품이기 때문이지요. 소녀가 그 자리에, 죽은듯이, 성스럽고도 정결하게 있어야만 그들의 미래가 성립합니다.
그래서 글 초반의 그 문장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 불행히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소녀는 그렇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분명 비극이지만 (또는 비극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소녀의 변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만큼은 글을 여러번 읽을 때까지 정하기 어려웠어요. 그걸 매듭짓지 않는게 이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제가 리뷰를 작성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글의 매력적인 점은 서술과 감정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을 느꼈어요. 압판으로 힘주어 누르는듯한 먹먹한 한이요. 그걸 견디는 압판 밑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몇번이고 소녀를 가로막는 마을 사람들은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대비할 수 없는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 역시 묻고싶어졌어요. 왜 벗어날 수 없는가. 왜 여기에 있는가. 왜 나를 놔주지 않는가. 방향 없는 부르짖음과 돌아오지 않는 답, 그럼에도 조여오는 포위망같은 글의 마지막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불행 혹은 다행
소녀가 조난자를 만난 일이, 소녀가 선택한 삶의 태도가 꼭 다행이나 불행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소녀와 마을사람 모두 현재 또는 미래에서 조난당한 사람은 아닐까요. 믿음, 예언, 운명 그게 무엇이라 불리든 그건 그들에게 이정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쪽에 가까웠습니다. 소녀의 발버둥이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발버둥이라면요. 그걸 꼭 재야만 하는걸까요.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을 갈망하는건 소녀도, 마을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겪어보지 않은걸 위해 자신이든, 남이든 희생시키는건 모두 마찬가지지요.
다만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해 희생하는것이, 미래를 위해 지불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라면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불하는게 아니라면요. 그건 다행도 불행도 아닌 의지일거라고, 글의 끝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소녀 대신 울어주고 싶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리뷰보다는 감상, 감상보다는 단상에 가까운 글이지만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한계까지 버틴 끝에 오는 좌절과 먹먹한 허망함, 그런 여운이 오래 남는 글이었습니다.
아직도 먹먹하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