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주인공과 매력적이고 털털한 단짝 친구. 두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상사(내지는 주변인물)에
숨 쉴 틈없이 몰아치는 사건, 사고들까지.
제가 좋아하는 버디 액션물에 자주 등장하는 광고 문구인데 이 작품에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Z코스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는 요즘같이 후덥지근한 날 땀 좀 흘리다 집에 와서 샤워 개운하게 해 준 뒤,
살얼음 살짝 생기게 얼려 둔 맥주나 사이다를 마시면서 읽기 좋은 청량감 넘치는 좀비물입니다.
좀비물이라고는 해도 호러의 분위기보다는 좀 더 밝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작가님도 시작부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느날 예고도 없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시스템은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갑니다.
유일한 애로사항은 바로 교통. 그것도 대한민국에만 해당된다는 게 킬포입니다.
먹지는 못 해도 뒤쳐지는 건 못 참는다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좀비들이 시속 70km로 차와 함께 질주하니 대중 교통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하게 되고, 어릴 적 교통 사고의 트라우마로 운전이 두려운 주인공 태린에게 지옥과도 같은 운전면허 시험 응시를 강요하게 됩니다.
작품의 전반에 운전 면허 시험의 짜증나는 부분만 귀신같이 캐치해서 너무나 잘 묘사되어있는 탓에 최근에 실직한 면허 학원 강사나 열 번 이상 주행에서 떨어진 장수생이 아니신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실감나게 주행시험을 묘사해놓은 작가님은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미리 심어놓은 떡밥을 먹기좋게 풀어놓으며 좀비들과의 신나는 카체이스를 펼쳐 놓으셨는데 이게 또 아주 꿀맛입니다.
캐릭터 또한 재미있습니다. 까칠하지만 상처많은 여린 심성의 주인공 곁에는 마초 스타일의 초 긍정 친구가 있어줘야 하는 것이 국제 룰이긴 하지만 그걸 식상하지 않게 잘 버무리는 게 감칠맛 나는 주변인들입니다.
특히 강사 엄 재식 옹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데, 저도 비슷한 인성과 언행을 가진 분께 도로 연수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좀비물은 대체로 암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갑갑하고 우울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아주 좋은 소재인 것도 맞습니다만 하지만 죽이 잘 맞는 콤비가 도로에서 좀비와 내구 레이스를 펼치는 이야기도 참 좋군요.
이 작품은 신선하고 착착 감기는 문장과 인물들의 적절한 배치와 퇴장(?)이 읽는 내내 피식 피식 잔미소를 짓게 만들어주는, 교훈은 없지만 매우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아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남겨주었군요.
만약 주행 코스에 대충 하다 만 것 같은 공사현장과 이유도 없이 몰려다니는 경찰들이 있다면 그 코스는 피해야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