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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푸른 그림자, 작가: 은이은

나쁘지 않은 시작 비평 브릿G추천

리뷰어: stelo, 17년 2월, 조회 294

푸른 그림자의 1회를 다 읽은 독자는 아마 혼란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만 그랬나요?) 작품이 불친절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작가님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랬나요?) 혼란스러운 건 주인공도 마찬가지에요.

이 리뷰의 목적은 1화를 읽고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분들에게 설명을 해드리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간단하거든요. 고로 이 리뷰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이 1화는 작품 소개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첨단 범죄에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춘 김형사. 그러나 이번 사건은 좀 달랐다. 발을 디디면 디딜수록 더 깊이 빠져들기만 하는 늪과 같았다. 결국 김형사는 범인을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강조는 리뷰어)

이야기는 언뜻 상투적일 수도 있는 취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요 인물이 모두 등장하죠. 김형사, 범인, 그리고 죽은 피해자 배현아요. 그리고 배경 묘사는 극도로 배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형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나오지 않으니까요. 독자는 무심코 ‘취조실’이 배경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서는 나와 있죠.

모니터 너머의 피의자는…

이 착각이 계속되면 좋습니다. 독자는 읽을 수록 의문에 빠지게 됩니다. 남자 친구가 죽은 뒤 게임에 몰두하던 배현아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중략)

“자리를 좀 비켜주시죠.” 김 형사는 그 여인에게 격식을 갖추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스스로에게 혼란스러웠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취조 중인데 여자를 데려오다니요. 이게 피의자의 올바른 태도일까요. 그리고 형사는 왜 혼란스러워 하는 걸까요? 또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합니다.

여인은 몸을 돌려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경계, 괜한 주문을 했다. 경계를 지을 수 없는 공간, 그 속에 거하는 자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니. 모니터 위에 유령처럼 김형사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심지어 와인까지 있습니다. 피의자가 사색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건 요즘 이야기들의 범죄자 클리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생존이 어쩌구, 스스로를 과대평가 한다 어쩌구 하는 것이죠. 작가가 이상한 철학을 늘어놓는 걸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독자의 착각이 해소되면 “아하!”하는 반전을 느끼게 됩니다.

“김형사의 앞, 피의자가 자리하고 있던 모니터 속 공간은…”

아마 그 피의자는 인간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첨단 기술’에 정통한 형사가 필요했습니다. 정말 SF의 닳고 닳은 클리셰인 지성을 가진 인공지능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사의 이상한 말들은 이제 이해가 갑니다. 모니터 속에 사는 유령들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을테니까요.

어쨌든 형사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독자도 마찬가지니까요. 그 범죄자의 정체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이 혼란스럽고 무력한 감정과 어둠에 잠기는 방은 그럴듯하게 연결되는 비유입니다.

저는 이 1화가 어떻게 독자를-엄밀하게는 저를- 가지고 놀았는지 길게 설명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주요 인물과 갈등을 모두 깔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작품 소개에서 말한 그대로요. 더 부연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신 분들도 이 리뷰를 통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죠. 김형사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