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목격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 며칠 새 숨이 좀 갑갑했어요. 물고기가 물 속에 산다고 말 그대로 물 속에 산소호흡기만 넣고 살고 있는 듯한 느낌. 사람은 공기중에 살 줄 알아서 4평 남짓한 곳에 몸을 집어넣었습니다. 몸을 뉘고나니 자리가 없더군요. 조금은 무기력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렇게 잠만 자고 일어날 곳인데 더욱 큰 평수를 바라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했었죠. 사실 어제였는지 오늘이었는지도 모를 생각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변하는 것은 없으니깐요. 조금 무기력하거나 우울한 것은 현대인의 미학같은 것이라는 말들로 자신을 달래며 현대미술처럼 치부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이 조금 특이하게 받아들여 힘들지 않은 것을 힘들게 받아들인다는 것처럼요. 제 속으로 감정들을 키워갔습니다. 그 감정을 받아들이자 덤덤해지더군요. 점차 감정이라는 괴물에 밥을 주듯이 나는 아무 일 없이 키워나갔어요. 그 에게 밥과 공기를 최소한의 살아갈만한 숨은 틔워줬다고 생각했어요.
제 속에서 남 모를 괴물을 키워갔습니다.
괴물이 커다래지자 더욱 허기져하더랬죠. 더욱 격한 감정을 갖고 싶어했죠. 제 보다 더욱 큰 감정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먹으려 달려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 회사생활에서도 삐죽 삐죽 튀어나오려하는 것을 애써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남받고 있는 신입을 모른 척 할때도 많았습니다. 일 조금 더 알려주면 되는데 쉬운 거라고 조금 더 미뤄두고 타박했습니다. 간단한거 하나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때 그 손가락질을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괴물은 그런 것을 좋아했어요. 자신과 다른 감정과 부딪쳐야하는 일을 극히 조심히 다루기를 원했했어요.
어느날 그 신입의 새하얀 와이셔츠를 뚫고 시꺼먼 날개가 돋혔을 때, 온 소름을 제 피부로 느꼈습니다. 까딱하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되려 조금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런 멋진 날개가 달려있지만 저는 펭귄같은 날개였다면 그저 더한 괴물로 낙인되어 뛰어내려했을지도 몰라요. 그 신입, 날아가 살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속 곪아가며 만든 괴물이 제 스스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그것을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날개라는 어마어마한 착각처럼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날개가 달렸을 때 무릇 천사라 부르지 않나요? 나는 천사같은 마음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제게 심어둔 용기니, 칭찬같은 것이라 부르는 거름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날개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들은 지독하게 낙오되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