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 장르: SF | 태그: #루나시티 #SF
  • 평점×23 | 분량: 243매
  • 소개: 중대한 협의를 앞두고 감염자들이 들이닥쳤다. 하연과 리히터는 탈출 포트를 타고 미리내 정거장으로 피신한다. 더보기
작가

평행선 사이의 작은 선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리뷰어: 기다리는 종이, 23년 12월, 조회 34

보통 서로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서로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을 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라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수학적인 평행선처럼, 서로의 의견이 만나지 않으며 일직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 소설의 지구와 달도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달은 자신의 자치권(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 ) 을 얻고자 하며, 지구는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지요. 그렇기에 결국은 화성을 개발해서 달을 대체하고자 하며,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달이 범-우주적 전염병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합니다.

혹시 이 부분에서 ‘전염병?’ 이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그렇습니다. 이것도 좀비 소설입니다. 태그로 ZA를 달고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좀비 아포칼립스에 어울리는 소설이느냐? 라고 묻는다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좀비가 나오기는 하지만,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거든요.

단순히 세상이 아직 좀비 때문에 망하지 않았으니 좀비 소설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것은 좀비가 아니라 달과 지구의 대립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말하자면 뿌리와 열매의 반목, 혹은 부모와 자식의 다툼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현실 역사에 대립하자면 모국과 식민지의 대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목인 ‘테이블’ 처럼, 이 소설은 시종일관 달과 지구 사이의 협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7번의 지구-달 관계 협의가 있었으며 이제 8번째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죠. 그러던 와중에 ‘감염자’들이 협의장에 들이닥쳤고, 협의는 마무리되지 못한 채 땅거북 한 명, 그리고 달토끼 한 명의 탈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구인들이 달에 살고 있는 이들을 ‘달토끼’라는 멸칭으로 부르고, 달에서는 지구인들을 ‘땅거북’ 이라고 부르는 것은 퍽 재미있는 포인트였습니다.)

그들은 각기 지구 측 협의 대표, 달 측 협의 대표로 참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처한 상황에 대한 정리가 된 다음에는 곧바로 협의를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더 많이 이야기하기도 하고, 상대의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결국 이들은 일종의 ‘합의’에 도달하고, 제 8차 지구-달 관계 협의는 완료됩니다. 하지만 두 대표가 탈출해서 머무르고 있던 정거장에 감염자들로 가득 찬 화물선이 도착하고, 둘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달의 대통령은, 다음에 이어질 지구-달 관계 협의를 더욱 달 측에 유리하게 설정하기 위해서, 둘이 남긴 모든 기록을 삭제하고 제 8차 지구-달 관계 협의를 없던 것으로 만듭니다.

지구와 달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 주인공 둘이 평행선 사이의 작은 선을 그은 기분이었습니다. 서로 절대 닿을 일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손을 뻗어나가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은 너무 짧았고, 평행선은 너무 굵어서 제대로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이 짧았던 것은 아까 말한 ‘감염자’ 와도 연관되는데요, 위에 제가 적은 내용에서 감염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많은 내용이 소설에는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다지 소설에 잘 섞이지 않는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테이블’ 과 ‘감염자’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이 소설은 그 평행선 사이에 작은 선을 그으려 노력한 것이죠. 하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선은 너무 짧았고 평행선은 너무 굵었습니다.

마침 미리내 정거장에 최초 감염자가 있었다거나, 감염자로 가득 찬 화물선이 도착했다는 전개상의 편리함을 제쳐두고서라도, 두 이야기가 섞여야 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충분히 펼쳐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비를 일종의 수단으로만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비중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좀비로 인해 펼쳐지는 여러 모습이 드러나 있냐고 한다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결국 이야기의 두 평행선, 테이블과 감염자가 섞이지 않았으며 둘의 모습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 자체는 꽤 재미있었고 두 개의 평행선 모두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그 둘이 만나지 않는다는 느낌에 몇 자 적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