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현이랑 작가의 장편 연재소설 출간 단행본 『레모네이드 할머니』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용된 내용은 모두 출간 도서를 따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탐정’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탐정 소설’이라고 부른다. ‘탐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 속 인물은 ‘셜록 홈스’일 것이다. 셜록 홈스는 아서 코난 도일을 한 시대의 추리작가로 만든 탐정이자 그가 쓴 소설 속 대표 캐릭터다. 광적으로 셜록을 좋아하는 팬을 일컫는 용어인 ‘셜로키언’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탐정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추리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탐정’이라는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어떤 사건이든 단서와 정황을 조합해 해결하기 때문이다. 추리를 전문으로 하며 때로는 공권력이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일까지 풀어내 독자들을 통쾌하게 한다. 오직 개인의 능력으로, 때로는 조수의 도움을 받아 실마리를 찾아가는 탐정의 뒤를 밟으며 독자들은 환호하거나 감탄한다.
탐정 캐릭터의 흥행이 작가를 유명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등 탐정의 이름 앞에 작가가 오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다. 등장 초기, 범인의 흔적을 좇고 예민하며, 차가운 인상이 강했던 탐정 캐릭터는 주로 성인 남성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대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다양화된 탐정은 여성, 어린이, 청소년 등으로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탐정으로는 일본의 유명 만화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이 있다. 본래 10대의 쿠도 신이치가 어려진 것이긴 해도 코난은 7세(또는 8세)의 매우 어린 나이다. 직업으로서의 탐정은 아니지만 일본 소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소설 시리즈 『빙과』에서 주인공이자 주된 추리를 맡는 인물 오레키 호타로 역시 고등학생이다.
여성 탐정으로는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 P.D.제임스의 대표작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과 후속작 『피부 밑 두개골』에 등장하는 코델리아 그레이가 있다. 시리즈 첫 권의 제목 그대로 코델리아 그레이는 탐정으로서의 여성이 당면하는 편견과 어려움 속에서도 유능함과 기지를 발휘해 다양한 범죄를 해결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탐정을 한 명만 꼽으라면 역시 미스 마플이 아닐까. (국내 번역으로는 마플 양이지만 미스 마플이 노인이라는 점에서 번역 호칭에 다소의 의견 대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 글에서는 호칭을 미스 마플로 통일한다.) 주로 미스 마플이라 불리는 제인 마플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노인 탐정으로 늘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초기 탐정들의 날카롭고 이성적인 인상과 전혀 다른 미스 마플은 푸근한 할머니처럼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인간의 내면을 속속들이 파악한다.
미스 마플은 추리 소설의 대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대표적인 여성 탐정으로서 다수의 소설에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장희빈을 연기한 여성 배우’처럼 ‘미스 마플을 연기한 여성 배우’ 명단을 줄 세울 수 있을 정도니 단순히 탐정으로서뿐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독자들이 쏟는 사랑이 여전히 대단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럴듯하게 여러 탐정 캐릭터를 소개했지만, 사실 목적지는 미스 마플이었다. 현이랑 작가의 장편 소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서두에 반드시 미스 마플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할머니’ 탐정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미스 마플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노인은 뜨개실 대신 레모네이드를 들고 다닌다. 추리의 영감이 실에서 오는 것처럼 영국의 미스 마플이 쉼 없이 실과 바늘을 움직였다면, 치매 노인들의 요양 시설 도란마을의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그 청량한 레몬 향 음료가 쥐여 있다.
“할머니가 점심 식사 후 선베드에 앉아 있을 때 주로 먹는 건 레모네이드예요. 레모네이드의 신맛이 입안에서 침샘을 폭발시키고 시원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정수리까지 닿으면 머리가 훨씬 잘 굴러가는 게 느껴지거든요.”
어쩐지 정감 있는 이름의 ‘완벽한’ 도란마을에서 평화롭게 말년을 보내기 위해 입소한 레모네이드 할머니. 하지만 그 마을은 어딘지 뒤틀려 있다. 노인들을 놀래지 않기 위해 쉬쉬하지만, 젊은 직원의 악쓰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기도 하고, ‘도란’이라는 이름이 ‘돌았다’를 연상시킨다는 이들도 있다. 이곳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들의 마지막 거처가 아닌가. 그러나 진정 ‘돌아’ 있는 것은 노인들이 아니다. 그 시설의 직원과 사장, 그리고 어딘지 불쾌한 편안함까지. 환경과 사람들이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세상에 ‘완벽’한 마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다 결국, 사건이 발생한다. 쓰레기장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 레모네이드보다 저릿하게 할머니의 머리를 깨운 그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살인,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영아 살인이다. 누가 아기를 죽여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은 걸까. 말끔히 숨겨져 있던 증오와 의심, 거짓과 반목의 악취가 노란 비닐봉지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이 마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현이랑 작가의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인물과 사건, 배경에 충실한 소설이다. 먼저 인물로서 레모네이드 할머니와 꼬마는 최고의 탐정과 조수 콤비다. 서두에 언급했듯, 캐릭터의 다양화 이전에는 냉정한 성인 남성 캐릭터가 탐정의 주를 이뤘다. 그의 조수 역시 박학한 의사나 형사가 대부분이었다. 사건의 분석과 해결을 위해서는 총명함이 있어야 하건만, 우리의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탐정으로서의 자격부터가 의심스러운 치매 초기 환자다.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노인에게 누가 사건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스스로 사건을 ‘발견’한다. 요양을 위해 찾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할머니를 흥분시킨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조수가 필요하다. 비상하게 돌아가는 머리가 있다고 해도 이미 둔하게 굳은 몸과 깜빡하는 기억력으로는 추리에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붙은 조수는 ‘꼬마’다. 아니, 치매 환자 할머니에게 꼬마는 방해꾼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꼬마는 어딘가 다르다. 아직 유치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이지만 눈치와 지혜의 수준이 평범하지 않다. 둔해진 할머니의 감각을 날카롭게 보완하는 이 꼬마는 할머니에게 최고의 짝꿍이다.
할머니와 꼬마는 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너 유치원에서는 왜 쫓겨났냐?”
할머니가 알콜 솜으로 팔뚝을 꾹 누른다.
“유치원 친구한테 ‘너도 언젠간 죽어.’라고 해서요,”
물론 이 꼬마는 악의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꼬마의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다. 꼬마와 어머니를 폭행한 그 때문에 꼬마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아빠가 없는 꼬마에게 친구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 아빠 이제 없다 그랬어”라고 하자 꼬마는 “난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아빠가 너희들보다 조금 일찍 없게 된 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 죽고 너도 언젠가 죽어”라고 답한다. 이렇게 귀엽고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당돌한 꼬마라니. 유쾌한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눈에 들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 탐정과 꼬마 조수의 조합은 추리 소설, 특히 탐정 소설에서 흔하지 않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다. 할머니와 꼬마는 탐정으로서의 자격을 논하자면 가장 말단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과 어린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보자. 노인과 어린이는 ‘생산력’과 신체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취급을 받는다. ‘생산’이 한 집단의 중요한 평가 척도가 된 이상 힘없는 노인, 특히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과 아버지 없이 자란 어린아이는 어떤 집단에서도 주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처럼 ‘No’가 판치는 지금, 현이랑 작가는 어디에도 발 디딜 수 없게 된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호명한다. 사건의 중심에서 치밀하게 전후 상황을 판단하고 범인을 찾는 일. 할머니와 일곱 살 꼬마가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살인 사건이 그들의 눈앞에 놓여 있다.
작가는 탐정과 조수뿐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전사에도 공을 들인다. 꼬마의 엄마가 도란마을의 의사라는 것, 아기를 죽인 범인과 마을의 원장이 가족 관계라는 것, 꼬마가 겪은 가정폭력과 아기를 죽인 학생의 삶에 드리워진 폭력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소설 속 공간이 하나의 마을이고 그들이 이웃인 것처럼 서로의 생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음을 보인다. 이야기가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살인이 하나의 삶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여러 사람의 시선이 엉킨다. 단지 범인 한 명을 잡는 게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닐 수 있다.
아기의 끔찍한 죽음 뒤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이 예상하고 있었을 진실이 숨어 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와 조수 꼬마는 그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도란마을은 소문처럼 돌아버린 마을일까. 그렇다면 돌아버린 것은 누구인가. 가해자를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 추리의 끝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누구도 돌아봐 주지 않는, 자신조차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아주 어린 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짙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 도란마을이다.
도란 도란 도른 마을
공간으로서의 도란마을은 이렇다. 이름에서 반어법이 느껴진다면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는 이곳. 단란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애써 진실을 감추려는 이곳. 도란마을은 치매 노인들을 위해 지어진 마을이다. 하지만 마치 잔뜩 썩은 쓰레기를 콘크리트로 대충 덮은 것처럼, 그곳 전체에는 아슬아슬한 불길함만이 감돌고 있다. 부패한 물질은 가스를 내뿜는다. 밀폐된 공간의 가스는 기압을 높이고 언젠가는 폭발한다. 가득 팽창한 채 바늘구멍 하나라도 뚫리면 굉음을 낼 것 같은 풍선처럼.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 ….”
똘똘한 꼬마는 이미 마을의 파악이 끝났다. 이 음침한 마을에 진짜라고는 없다. 멋지고 다정하게 보이고자 하는 가짜 장식밖에 없다. 마을의 구조뿐 아니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노인을 대하는 직원들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뒤에는 “늙으면 뒈질 것이지”라는 생각이 있다. 도란마을은 노인들의 ‘요양’이 아니라 ‘격리’를 위한 시설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 죽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 가족에게 닿는 통보는 사무적이고도 무감각하다. 사람이 아닌 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하지만 이름만은 정겨운 곳.
이런 도란마을의 아슬아슬함을 터뜨리듯 발생한 사건은 갓 태어난 아기의 죽음이다. 조금은 이상하고 불균형하다. 치매로 기억마저 잃을 정도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의 마을에서 아기가 있을 이유는 무엇인가. 게다가 아기라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증오감이라고는 없이 사는 노인들이 이제 세상에 막 발을 디딘 생명을 죽일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도란마을의 중심을 건드린다. 겉보기에는 살인이 일어날 이유 자체가 없는 이곳에서 범인은 엉뚱하게도 청소년이다. 이것은 가벼운 반전에 불과하다. 이 아이는 원장의 딸이라는 것이 진짜 반전이다.
인물과 배경이 탁월하고도 조화로우며 신선하게 짜인 이 소설에서 톡, 봉오리가 터지듯 아기가 죽었다. 아기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인물의 면모를 살펴보자. 먼저 주요 인물이자 탐정인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녀의 과거가 밝혀진다. 사채, 거액의 돈 등 평범한 사람을 수식하기에는 어려운 단어들이 할머니의 기억에 붙어 있다. 구병모의 『파과』에 등장하는 여성 킬러가 떠오르기도 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한편 그녀의 조수 꼬마는 가정폭력 피해자다. 꼬마는 아버지와 분리되어 살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할머니와 꼬마가 만나 협력하는 과정에서 둘의 인생에는 ‘유대감’이 형성된다.
하지만 치유 받지 못한 피해자도 있다. 사건의 원인이자 원장의 딸인 익명의 학생이다. 부모의 영향으로 마약을 잘못 접하고 중학교 2학년의 나이에 성관계를 해 임신하게 되었다. ‘낙태’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집안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사실을 숨겼다. 모든 비밀은 숨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비밀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든다. 학생은 사회적 평판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아기를 죽여 양로원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 아무도 내가 괜찮은지 안 물어봐?”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아이에게 어떤 따듯한 말도 닿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버지와 양로원의 비밀을 밝힐 기회가 찾아온다. 양로원에 아기를 버린 것이 레모네이드 할머니에게 밝혀져 사실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한다. 마약과 숨겨진 장부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린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나름대로의 위로였다. 그 모든 숨 막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비록 아이가 진실을 말하는 자리에는 없었지만,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원한 결말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범인이 잡히고 감옥에 가서 죗값을 받는 마지막도 꽤나 만족스럽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 삶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탐정으로서 보람 있는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레모네이드처럼 소설의 끝은 상큼하고 톡 쏘며 약간은 달달하다. 누군가는 일상을 회복하고, 누군가는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누군가는 내일을 기약하는 결말. 한 줄의 뉴스와 기사로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양로원의 영아살해 사건의 전모는 이러하다. 개성 있는 인물과 위태로운 공간, 잔혹한 사건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한 잔의 레모네이드만 있으면 된다. 이른바 한국형 여성 노인 탐정 캐릭터로서 든든히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던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뜻하지 않게 소설 안에서 죽음을 맞이해 몹시 아쉽지만, 현이랑 작가의 상상력이 또 어떤 탐정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누가 사건을 일으켰는지 이유를 파헤치기보다는 ‘왜 그 일이 발생했는지’를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던 탐정. 약간은 깜빡하고 조금은 새콤한 매력의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목소리를 내는 서술자처럼. 다음을 기약해 본다.
그럼 모두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