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브릿G 플랫폼에서 소설 읽으며 참 많은 반성을 한다.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놓고 너무도 대충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건데 이번에 읽은 소설 <오온의 범위>를 읽으면서는 대사와 구조, 캐릭터 부분에 있어서 오랜만에 필사까지하면서 글을 읽었다. 취향의 범주를 넘어서 ‘재밌다’. 어렵게 느껴지는 과학적 지식을 쉽게 풀어서 수포자이자 문과로만 두뇌를 100%로 써왔던 찐문과생도 마지막까지 흥겹게 내달린 SF소설이어서 2월의 마지막 리뷰로 소개한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좋으면 욕한다. 잘 썼다는 순수한 감탄과 ‘나는 뭐 하고 있냐’는 자조적 한탄이 섞였다고 하겠다. 너무 감정이 앞서면 3류 리뷰밖에 되질 못하니 간단하게 소설 ‘오온의 범위’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시대적 배경은 35세기로 21세기 2023년도 버거운 내게는 아주 먼 시간적 배경이지만, 탄탄하게 설정을 짜둔 덕분에 상황과 시대상, 사람들의 생활이 명확하게 그려져서 따라가기 좋았다.
머나먼 미래, 인간의 기억을 ‘형상화’하여 만든 환상공간이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인간의 기억을 형상화하여 블랙홀 내부(블랭크)에 공간으로 구축된 환상공간을 관리하는 이는 2인 1조로, 경찰과 환상공간 수리공이 파트너를 이룬다. 동료의 부탁으로 자신의 구역이 아닌 공간을 순찰하다가 갑작스러운 노이즈와 함께 경찰 김수현이 비정상적인 환상공간에 강제로 접속되는 데서 소설은 시작된다. 외부와의 통신이 두절된 상태로 탈출할 길을 찾던 중 ‘호스트인 척’하던 환상공간 탐험가 한지영과 만나는 게 두번째 사건으로, 티격태격하며 ‘덤앤더머’ 캐미를 뽐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소설을 끝까지 지켜보게끔 했다. 혐관으로 시작해서 ‘우정’으로 진화하는 버디물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이 두 사람이 ‘비정상적인 공간’을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독자로 하여금 숨죽여 지켜보게 하는 것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텐데, 이 소설은 ‘여유롭게’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1부와 2부를 합하여 총 30화 분량의 이 소설을 매 회차마다 ‘미션’이 주어지고, 결말부에는 ‘미션’을 이뤄내거나, 실마리를 찾는 방식으로 현재의 ‘사건’이 계속 이어진다. 사건과 갈등, 딜레마라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나가기에 쉼없이 따라가기 좋았다. 한 회가 짧게는 약 20매, 길게는 70매 정도로 모바일로 읽기에 부담 없다는 점도 내가 출퇴근 길에, 심심할 때 책상 앞에 앉아서 수루룩 읽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좋았던 건 캐릭터 연구가 꼼꼼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독자이자 작가를 지망하는 내가 크게 반성했던 지점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건 단지 소설 형태로 연재되는 이야기 외에 인물 프로필이나 세계관, 이야기에서 파생된 또 다른 이야기, 줄거리 요약과 등장인물 일러스트, mbti와 같은 소설의 세계관을 이루는 정보들이 함께 업로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작가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인물 하나하나를 연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법을 공부해본 입장에서 가장 귀 따갑게 듣는 이야기가 바로, 본 게임에 들어가기 앞서 세계관과 인물 캐릭터 사전, 줄거리(트리트먼트 형식으로라도 완결성 있게)와 전반적인 구조 정도는 짜고 들어가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는 거지만 사실 지키기 쉽지 않다. 최초 설정과 아이디어는 분명 재미 있어서 단숨에 키보드를 와다다닥 두드려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데 설정을 짜고, 세계관을 구축하며, 캐릭터를 디벨롭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재미가 시들시들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소설 완결은 어렵고, 마지막까지 캐붕이나 설정붕괴가 이뤄지지 않게끔 소설을 다듬는 게 어렵다. 특히 과학적 지식(궤변이라도 소설 안에서는 말이 되어야 하며, 지식 기반이면 더 좋다)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sf 소설에 장편을 쓴다면 말해 무엇 하랴.
반복해서 말하는 거 같은데, 이 소설 <오온의 범위>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앞서 거론한 수현과 지영 이 외에도 이 소설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4명이 더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35세기지만, 수현이 ‘비정상적인 공간’에 갇히게 만든 ‘세계의 비밀’은 23세기에 있고, 23세기와 35세기가 ‘연결’되어 있는 만큼 35세기에서 2명, 23세기에서 2명을 배정했다.
먼저 35세기부터 말하자면 수현의 파트너로 환상공간 수리를 담당하는 예은과 한때 다른 환상공간을 부수고 다녔던 범법자(본래 자신의 환상공간을 갖고 있는 호스트였으나, 스스로 붕괴되면서 해서는 안 되는 짓들을 자행했다)였으며 현재는 예은의 ‘애완동물, 키링남’을 자처하는 이안이다. 두 사람은 비정상적인 환상공간에서 쉽게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실종자(수현과 지영)를 찾고자 갖은 애를 쓰고, 그들을 구출한 뒤에도 물신양면으로 돕는다. 물론, ‘착하게’ 돕기만 하는 건 아니고 ‘문제’를 여럿 일으키는 덕에 소설이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도 한다.
23세기 출신으로, 23세기와 35세기를 오가며 이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를 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두 인 물 유온과 유영에 대해서는 이 리뷰 안에서 함구하겠다. 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결론적으로 ‘어떠한 결말’에 도달하게 되는지 쫓아가는 것 역시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 중 하나니 말이다. 사실상 세계관이 넓고, 인물도 다양하며, 시공간이 얽힌 사건들이라 풀어서 몇 마디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재미있게도 이 소설 30회를 다 읽고 나면 수수께끼와 같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다 풀렸다’라는 기분에 ‘신기해하게 되지만’ 읽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테다. 복선을 까는 것을 소위 ‘씨뿌리기’라고 하고, 복선으로 깔아두었던 힌트들으로 사건을 키워 재미와 깨달음을 선사하는 게 ‘거두기’라면 이 소설은 씨뿌리기와 거두기를 아주 잘해냈다.
신나서 칭찬만 하는 거 같은데, 사실 빈 구멍도 있다. 짧은 분량 안에 여러 명의 인물이 나오다 보니 조금 더 나왔으면 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짧다거나, 캐릭터 붕괴가 살짝씩 일어나거나, 스토리가 뭔가 비틀린 거 같은 기분이 드는 회차도 있었다. 허나, 마지막 결말과 외전까지 보고 난 뒤에 내게 남은 감상이란 ‘이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되도 볼 것 같은데’였고, ‘여기서 끝내기 아쉬운데 다음 시즌을 기대해도 될까’ 였기에 이곳에서 ‘딥’하게 들어가서 이 소설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할 생각은 없다. 좋다, 그 말 하나면 충분한데 그 좋다, 라는 말에 근거를 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이 소설을 읽게끔 유도하려고 꽤나 많은 활자들이 이곳에 사용되었다.
SF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고, 이제 읽고 있는 중이면서, 과학은 잘 모르는 내게도 “와, 이런 SF라면 재밌다!’는 감상을 남긴 이 작품. 실상 SF는 배경으로 매력적으로 기능했을 뿐, 핵심은 인물과 인물 사이에 이뤄지는 갈등과 화해, 우정과 끈적끈적한 감정에 있었다. 인물에 감정에 취하게끔 독자를 홀리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이 소설 속 여러 인물들에 홀렸고, 누구 하나 고를 것 없이 애정하며 결말까지 단숨에 달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나와 같은 감상을 갖게 될까, 아니면 또 다를까 궁금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주절주절대며 읽어라 부르짖는지 궁금하다면 가볍게 1화와 2화만 봐보도록. 2개 회차를 합쳐도 50매가 살짝 넘는 편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읽은 독자로서 안다. 2회차까지 보고 나면 결말까지 달리게 될 테다.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