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이사금, 20년 6월, 조회 83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다른 번역본으로 접한 적이 있는 소설입니다. 아마 제가 접한 다른 번역본은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제목 번역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쪽이 소설의 주제와 내용을 제대로 암시하는 오싹한 느낌이라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소설의 제목을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 진실과 엮어서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번역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초대자(숨은 진범)와 희생자들을 초대한 곳이 다른 지역과 연락이 끊긴 폐쇄적인 장소라는 점, 그리고 외부 혹은 초대자들 밖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진범이 실은 초대자들 내부에 있다는 반전은 다른 추리물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같은 작품에서 많이 반복되는데 아무래도 이런 작품들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굉장히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추측되며, 이런 추리소설의 특징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원조라는 자료도 찾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조 작품답게 시기적으로 매우 오래된 작품임에도 읽을 때마다 상당히 긴장감 있는 진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고립된 장소에서 무력하게 살해당하는 인물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범인이 분명 인간임에도 뭔가 초자연적인 것을 대하는 것 같은 으스스함을 느꼈다면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에는 작품 속에 그려진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에 더 시선이 가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범인 오웬(초대자지만 눈속임을 위한 가짜)이 초반 부분에서 초대자들의 숨겨진 죄를 언급하며, 그들을 법적으로 처벌을 피할 수 있을 뿐 떳떳하지 못한 인간들이란 사실을 폭로합니다. 초대자들 역시 살인사건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떠올리거나 또 다른 초대자들에게 그 사실을 고해성사하듯 고백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자기 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양상이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탓하다가 죽기도 하며, 반대로 죽기 직전에 자기 과오를 후회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이란 걸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죄의식을 누르거나 합리화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죄를 떠올리고 정신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매우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희생자들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악’은 각기 다른 모습이긴 해도 결국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소설 속의 희생자들을 징벌하는 주체가 희생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자신의 욕구를 위해 적합한 이들을 골라냈고 살인을 실행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정의구현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에는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는 소시오패스가 숨어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을 평범함 속에 숨은 악이라고 보았을 때, 진범은 천성 악이지만 나름의 정의(법적으로 처벌하기 힘든 가해자들을 처벌)를 행했다는 점에서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