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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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과 직업들 중에서

 

특별하고, 성취감 있고, 보람 있는,

 

어렵고, 힘들며, 전문적인,

 

중요하며, 필요하고, 남들에게 인정도 받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돈을 잘 버는.

 

그런, 직업과 노동을 가치있게 만드는 수식어가 단 하나도 붙지 않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난 그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철학적인 얘기도 아니고, 뭔가 심오한 얘기를 꺼낸다던가 가르친다던가 하는 그 모든 게 아니다. 진짜로 내 직업은 중학생, 아니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조금만 배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그런 일이다. 아예 팔이나 다리 한 짝 없는 장애인이 아닌 이상……. 실언이군. 설령 팔다리가 한 짝 없는 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건 지성이 아니라 근력이나 지구력이고, 그 근력조차도 높게 요구하지 않아 여성이나 학생이라도 무리 없이 내가 하는 만큼 할 수 있다. 하루 8시간 노동. 사이 한 시간 휴식을 버틸 수 있는 끈기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위에서 청소를 시키면 청소부가 되는 거고, 짐을 옮기라면 짐꾼이 되는 거다. 딱, 최저시급 받는 수준의 잡일꾼. 난 그나마 계약직이라 최저시급보다 좀 더 받고, 농땡이 피울 생각만 가득한 알바생들을 교육하고 감독하는 일도 추가로 하지만 이것조차도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내가 갑자기 사표를 제출한다던가, 아니면 사고를 당해서 죽어버린다고 할지라도 내 직장은 하나도 안 아쉬워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새로운 사람을 뽑을 것이다.

 

내 일은 정말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저보고 로봇 연구에 협력하라고요?”

 

내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정말 황당하다. 도대체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한 사람에게 뭘 시키는 걸까. 어디 대학에서 나왔다는 연구자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나’ 내지는 ‘이 사람 이해력이 정말 떨어지네’의 중간 정도의 태도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죠. 정확히 말하면 로봇이 아니라 AI, 그러니까 인공지능 입니다.”

 

“……그, 알파고 같은?”

 

연구자는 하하. 하고 웃었다. 비웃는 건가. 아니면 그냥 이런 일 많으니까 웃는 것 같기도.

 

“그거랑 비슷하긴 한데, 좀 달라요.”

 

복잡한 설명 다 떼고 정리하자면 대충 이런 얘기였다.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기계는 단순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공장에서 일꾼을 대신해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기계의 계산력은 갈수록 발달하여 단순 게임에서 인간 지능을 초월한 것은 이미 한참 전. 더 나아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게임에서 이기는 수준까지 발달했다.

 

비교적 최근엔 사람의 말을 거의 이해할 수도 있게 되어서 창작 비슷한 것도 하고, 단어를 문맥을 따라서 의역하는 프로그램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만큼, 혹은 어떤 부분에선 인간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특정 동작, 특정 종목에 한정된 얘기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건 적응하고 행동하는 범용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이 연구자들은 그런 걸 만들고 있다는 거다.

 

“근데 왜 하필 이런 일이죠? 그런 최신 기계면 더 쓸모 있고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음. 저희는 이게 일상적인 수준에서 활동할 수 있길 바라거든요. 시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집사 로봇. 혹은 예외적인 상황에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면 그 연구가 완성되면 전 직장을 잃게 되는 것 아닙니까?”

 

심각하다기보단, 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말에 연구자는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설마요. 이게 지금 시점에서 사람을 대체할 정도로 가성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럴 날은 짧아도 몇 십 년 뒤에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뭐 그럼 정년까진 문제없겠군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사람이 기계보다 나은 게 가성비밖에 없다는 식으로 들을 수 있는 점도, 내가 스스로를 이런 일을 늙어서 은퇴할 때까지 할 거라고 여겨버리는 것도 말이다.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으면 이런 직업을 갖지도, 갖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난 선택지가 없었다. 난 시키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연구 협력이고 자시고, 내가 하는 일은 간단……. 아니 다를 것도 없다. 여기서 가져온 기계를 인간 알바생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가르치라는 거다. 언어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서 업무 지시 정도는 99% 정도 알아듣는다고 하니 말로만 해도 된다고 한다.

 

어쨌든 나름 관리자인 사람이 기계를 보느라 떨어질 능률은 연구소에서 사람을 보내는 걸로 충당한다고 한다. 역시 돈 많고 아는 거 많은 사람들은 스케일이 다르다. 사람 한둘을 그냥 고용한다니. 우리는 그걸로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데.

 

“저기, 그래서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정말 의외인 건……, 나한테 설명한 그 연구원과, 따라온 다른 연구원들이 알바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다음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다.

 

“여러분들도 일하세요?”

 

“네. 아, 아까 말한 연구소에서 일 도우라고 보낸 사람들이 저희들입니다.”

 

“전 여러분들이 옆에서 기계 관리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 그것도 할 거예요.”

 

“신기하네요……. 연구자들이 보통 이런 잡일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전 다른 알바를 고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저흰 대학원생이거든요.”

 

대학원생……. 알고는 있었지만 애초에 대학교에 가지도 않은 내 입장에선 낯선 말이다. 대학생보다 높은 학생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그게 맞나? 다만 이 시점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게 연구소에서 연구비로 알바를 고용하는 게 아니라 연구원들을 알바로 보내서 일 시키는 상황의 뭘 설명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대학원생들은 전부 착하고 열정도 넘치고 배도 부른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뭐 그 정도는 되어야 배움의 길을 걷는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일이 시작됐다. 나. 그리고 알바생+기계 체크를 하는 대학원생들. 그리고 로봇. 아니 AI? 뭐든간에 일반적인 사람보다 조금 커다란 크기에, 네 발로 다니고, 팔 두개 달린 그것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이거 얼마나 할까……. 몇 억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시리 조심스러워졌지만, 이 생각 자체가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그냥 평소대로 일 시키라고 해서 난 평소대로 말했다.

 

“그럼 저기 창고 가서 장화부터 갈아신죠. 뭐 로봇은 발 모양 보니까 못 신을 것 같지만.”

 

내 말에 대학원생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었다.

 

“네?”

 

뭐야. 장화 신는 게 그렇게나 충격인가.

 

“저기……. 우리 어디서 일하기에 장화를 신죠?”

 

“주방이요.”

 

“젖어요?”

 

“네.”

 

“저흰 짐만 옮기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하죠. 하지만 오늘은 주방. 뭐예요. 혹시 얘 방수 아닙니까?”

 

그게 정답이라는 듯 대학원생들은 우물쭈물거렸다. 한숨이 나온다.

 

“그러면 안 젖는 것만 일시키죠.”

 

“예…….”

 

대학원생들이 침울하게, 몇몇은 짜증을 내면서 따라왔다.

 

그리고 로봇도 내 말을 이해한 듯 기계 관절 소리를 내면서 성큼성큼 따라왔다.

 

“……이 로봇은 왜 따라옵니까? 얜 오면 안 되잖아요.”

 

“아. 그……. 어…….”

 

“실장.”

 

날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모르는 것 같아 일단 직책을 말했다. 아 뭐 진짜 실장이라기보단,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기 뭐하니 실장이라고 불러주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네. 실장님. 저, 근데 잠시만요. 명령을 취소할게요.”

 

“아 그걸 명령으로 알아들었구나. 그러세요.”

 

“네. 잠시만요.”

 

그냥 하지 말아라. 또는 따라오지 말아라. 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들은 한참을 기계랑 거기 수동으로 프로그램 입력하는 컴퓨터 가지고 씨름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늘 내로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로 인해 몹시 초조해졌다. 10분 째 된 시점에 이미 재촉했지만 그들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남는 사람이라도 데려가서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이들 중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 빼거나 로봇 두고 일시키는 건 완전 본말전도였다.

 

사실, 여기서부터 뭔가 이게 대차게 꼬였다는 조짐을 느끼긴 했다.

 

그들 연구 때문에 오늘 하루 일을 망칠 수는 없는 관계로 로봇을 방치하고 일단 오늘 일부터 시키기로 했다. 연구원들은 울상을 지었지만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일을 돕기로 했다. 그들은 나와 신나게 9시간 근무를 마쳤고 범생이들답게 땀 뻘뻘 흘리면서 일했다. 일은 딱 멍청한 알바 수준으로 했다. 저 자식들은, 그. 뭐지. 박사 이전 단계. 석사? 하면서 논문 쓰는 게 일인 녀석들인데 어떻게 말을 저렇게 못 알아먹는지 모르겠다.

 

“저기 그런데 이거 일하면 돈 언제 줘요?”

 

“다음 날 바로 나와요.”

 

“……얼마나요?”

 

“지금 최저 시급……. 그러니까 10만원 정도?”

 

“와 정말요? 하루 일하고 10만원?”

 

대학원생은 정말로 놀랍고 기쁘다는 듯이 반문했다. 대체 왜지……? 반어법인가? 아니면 힘든 노동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어서 뇌가 녹아버렸나. 대학원생이면 애초에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하는 부자들, 아니지……. 학교에서 연구비 받고 일하는 엘리트들 아닌가? 최저시급 노동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 텐데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음 날. 그러니까 4월 3일. 그들은 기계를 고쳐 와 이제 명령 취소가 쉬워졌으니 앞으로 이럴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명령 취소하는 걸 미리 간략화하지 않은 건가 싶었지만 그냥 이 대학원생들이 무능한 거겠거니 했다. 진짜 배부른 학생들이구만. 저렇게 대충대충하고도 연구비 받아먹으며 학교 다닌다는 거지? 그리고 좋은 학위 따서 뭐 좋은 기업이나 연구실 들어가는 거고.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치른 내 자신이 무지막지하게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 일은 시작해야한다. 로봇은 장화 대신 다리에 방수 및 마찰력 처리를 해서 괜찮다고 그들은 자랑했다. 의미불명이다.

 

“그럼 지금부터 식기도구를 구분합니다. 여기 포크, 나이프, 스푼과 그외 것들이 섞여 있습니다. 이걸 종류별로 모아서 박스에 담아둡니다. 보면 알겠지만 각각 크기가 다른 것들이 두 종류씩 있습니다. 세심하게 구분해서 버리세요.”

 

어제 하지 않은 일이지만, 애초에 이 직업은 일주일쯤 나와도 다음날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과 달리 로봇의 일처리는 굉장히 느렸다. 숙지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봤던 가장 멍청하고 띨띨한 알바보다도 말을 알아듣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진짜로 일을 했다. 한 땀 한 땀. 그게 포크인지 아니면 나이프인지 사람은 딱 보면 알 걸 반드시 들어서 눈(카메라)에 가져다 대고 모양을 확인한 다음 내려놓긴 했는데 아무튼 시키는 걸 했다.

 

그런데, 역시 로봇은 로봇인가. 실수가 한 번 있었다. 큰 나이프를 넣는 곳에 작은 나이프를 넣었던 것이다. 난 음성 인식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은 로봇에게 또박또박, 천천히 지시 사항을 말했다.

 

“이거 보면 알겠지만 스푼이랑 포크처럼 나이프가 두 종류가 있어. 작은 것과 큰 것…….”

 

“어? 그것도 두 종류에요? 구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대학원생들이 답했다. 난 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에 황당해서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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