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위나 이야기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오스틴라이트
  • 분량: 134매
  • 소개: 역사, 문화, 지리, 관습, 법, 언어 등 방대한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성한 가상의 나라 ‘아이슬란디아’를 배경으로 한 「알위나 이야기」는 전통과 인습을 부수고 자유와 통합을 이룩한... 더보기

알위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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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디아 최초의 프랑스 영사 장 페리에가 쓴

「아이슬란디아: 그 연대기 및 서사」에서 발췌

—최초의 미국인 영사 존 랭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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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으로, 스무 살의 처녀 알위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이슬란디아 역사상 여자가 왕관을 물려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왕좌에의 포부를 품었던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계승 순서로 봤을 때 그녀 뒤에는 게으름뱅이 알윈 더 레이지의 손자인 그녀의 사촌이 있었다.

하지만 이 서른 살의 남자는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불운하게도 와인더 지방과 협력 관계가 깨질 위기였던 것이다.

바다를 주름잡던 카라인 함대가 최근 세력이 커지면서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와인더 지방과의 절연은 이 시점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침략을 일삼는 데미지 족도 소탕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궤멸되지 않을 킬리카시 군의 위협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이미 그녀의 왕위 계승 문제는 논란이 되었다. 도른 11세와 대부분의 의회 의원들이 그녀의 나이와 성별을 문제 삼아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것이다. 비록 그녀가 모라 10세와 커다란 권세를 쥐고 있던 카빙처럼 막강한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모라와 카빙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의회는 그 어떤 여성도 왕위를 계승할 수는 없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알윈 왕이 세상을 떴을 때, 의회는 회기 중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알위나의 처지는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그녀가 처음으로 취한 행동 역시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카빙으로 하여금 의회의 정세를 바꾸기에 충분할 만큼 상당수의 군사령관들을 임명하게 했던 것이다.

카빙의 명령권은 그를 임명했던 왕의 죽음과 함께 끝나야 했지만, 그는 왕위 계승자가 임명될 때까지 공직을 지킬 권리를 단호히 주장했다. 알위나는 ‘명백한 법’에 의해 그를 재임명했다.

황급히 의회가 소집되었고, 당장에 야단법석이 일어났다. 격렬한 회의 끝에 투표가 이어졌고, 결국 알위나의 계승권이 선포되었다.

도른 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카빙과 군사령관들에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군은 지휘자와 여왕을 지원했고, 군대는 당분간 도른 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알위나는 위풍당당하게 여왕으로 선포되었다.

다음 단계로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지혜를 입증하려 했다. 그녀는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한 의회의 결정에 크게 낙담했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를 아이슬란디아 백성들에게 직접 묻겠다고 공언한 뒤 바로 국민 의회를 소집했다.

의회는 초여름에 리브에서 열렸다. 그곳은 알위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지만, 소문이 자자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지 1만 2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완고하고 권위적인 남자들에게 여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그 자체가 무척 생소했다는 점, 그리고 회색 턱수염이 난 대개의 남자들에게 그녀는 부모의 엄한 지도 아래에서 더 커야 할 스무 살의 처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분명 그들의 딸자식과 다를 바 없이 보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알위나는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그들 앞에 아름다운 외모와 사랑하는 아버지가 물려준 아이기스(제우스가 딸 아테나에게 주었다는 방패. 벼락에 맞아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만 가지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자신을 부각시킬 연설을 준비했다.

그녀는 카빙의 업적을 상기시키고 재임명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도른 파의 방해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후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데미지 족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카라인 함대와 맞설 준비를 하며 와인더 지방과 재결합할 것을 명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마지막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여, 이를 기반으로 카라인의 함대와 대적할 함선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들이 그녀를 여왕으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당장에 와인더로 갈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즉 전왕은 무엇이든 미루는 버릇이 있었기에,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태도와 적극적인 활동성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고 그녀는 다시금 여왕으로 선포되었다. 도른 파는 여전히 항의했지만, 그녀의 지위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고한 것이 되었고, 그녀가 이룩한 화려한 업적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곧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

카라인의 수도 모보노에서 함선을 건조한다는 소식은 그들이 밀타인을 약탈하기 전에 아이슬란디아에 전해졌다. 카라인 함대는 1308년에 해안에 나타났지만, 아직 바다를 조심스럽게 대했던 그들은 상륙해서 포로만 몇 명 끌고 곧 떠났다. 다시 1312년, 1316년, 그리고 1319년에 적의 함선이 나타났고, 이때는 더욱 대담해졌다.

그러는 동안, 더 시티(아이슬란디아의 수도)를 점령하기 위해 적이 거대한 함선을 건조한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국경을 넘어 들렸다. 미래를 내다보는 아이슬란디아의 현자들이 이런 상황의 전개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와인더가 변절할 경우 커다란 재앙이 닥치리라고 점쳤던 것은 당연했다.

알위나는 무엇보다 이런 정황을 마음에 새겼고 자신이 한 약속을 충실히 지킬 작정이었기 때문에, 국민 의회에서 통치권을 인정받자마자 와인더를 향해 떠났다.

스무 살의 어린 소녀였으나 행동력과 결단력이 있었고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기에, 그녀는 카빙과 모라를 동력 삼아 보스티아의 비옥한 봄 평야를, 로리아와 이네리아를 거쳐 거침없이 말달렸고, 카난 강 상류에 있는 여행자 숙소에 이르러 이제 곧 도달할 와인더의 군주 토르에게 말을 전했다.

대답은 오지 않았다. 여왕의 보좌관들은 그녀에게 이 모욕을 응징할 병사들을 소집하자고 조언했지만, 그녀는 그녀다운 메시지를 보냈을 뿐이다. “알위나는 그대의 무례함에 화가 나노라. 하지만 아이슬란디아의 여왕은 그대의 백성들과 내 백성들의 위태로움을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아프도다.”

그녀는 메시지를 전하고 와인더로 들어갔으며 토르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그녀를 맞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녀는 블리스와 토르 사이의 큰 도로를 달려 정오 무렵에 그곳에 도착했다. 이것이 빈번히 그림들에 등장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부루퉁하고 화가 난 얼굴로, 토르는 몇몇 신하들과 함께 놀랄 만큼 아름다운 여왕을 맞이했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가까이 오더니, 그를 안고 키스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시대일수록 아이슬란디아 사람들은 그들의 형제를 사랑해야만 하오.”

그리하여 국제적 외교의 일환으로 입맞춤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역시 젊은 남자인 토르와 아름다운 여왕 간의 입맞춤이었다. 알위나는 와인더에 단 며칠만 머물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마지못해 그녀를 맞이했던 그들은 나중엔 열정적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는 화끈한 성격과 솔직담백함,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로 와인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떠날 때, 그녀는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와인더의 함선을 지원해 줄 것과 적이 자주 출몰하는 시기에는 동쪽 해안에 함선들을 파견해 줄 것을 합의했고, 그 대가로 선박세를 부활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슬란디아로 돌아와서, 그녀는 이런 조치를 취할 필요성에 대해 의회를 설득했다. 연대기 편자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아이의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것은 지혜의 말들이었다고 한다.

이 활동적인 젊은 여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둘러 밀타인과 카란으로 길을 재촉했고, 그곳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함선의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알렸다.

와인더를 향한 적대감은 동쪽 지역에서 가장 강했지만, 그녀는 그곳 군주들과 백성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가라앉혀 결국엔 진심으로 이를 수용하고 협조하겠다는 결의를 끌어내어 기병의 지원을 보장받았다.

이 과업을 이룬 후 카빙과 모라를 뒤로한 채, 그녀는 남쪽으로 데안, 만리, 그리고 시어즈를 거쳐 스톤으로 발빠르게 움직였다. 스톤에서 토르와 그의 함대를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때는 8월이었고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여왕은 소규모의 수행원과 함께 함대의 지체에 초조해 하며 족히 한 달은 기다렸다.

남쪽에서는 카라인 해적선들이 해안을 떠났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결국 토르는 약속했던 함대 가운데 절반만 이끌고 나타났다.

알위나와 그는 다툼을 벌였고, 토르는 화가 나서 그녀를 포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고, 그녀의 지위는 안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는 자신을 놓아주고 계속 길을 가라고 토르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자존심보다 대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9월 중순에 토르는 함대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음을 돌려, 알위나가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아르단 산맥을 넘는 동안 스톤 해를 돌아 오래지 않아 아르단에서 여왕을 따라잡았다.

다툼이 불거졌고, 그녀는 직접 함선에 올라 티레 항구로 역풍을 거스르며 몇 주 동안의 항해에 동참했다. 이 여행은 토르와 알위나에 관한 아이슬란디아의 서사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일화이다.

어떤 사람은 시의 내용대로, 토르와 알위나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사랑의 힘으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상식과 역사적인 증거를 토대로 하여 판단해 본다면, 종국엔 여왕에게 완전히 위압당하게 될 이 남자와 여왕의 관계는 오로지 정치적 측면만을 고려한, 냉철하고 빈틈없는 줄다리기였을 것이다.

정보에 따르면 카라인의 함대는 벨돈 강에 있을 것이었다. 여왕을 티레 항구에 내려준 후 토르는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적은 교묘히 그의 손아귀를 피해 갔다. 특수하게 고안된 노 덕분에 카라인 함대는 해안에서 수월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토르는 그들을 뒤쫓아, 발리안의 숲 바로 북쪽에서 농장을 약탈하고 있던 카라인 함선 네 척을 급습했다. 이것이 아이슬란디아 사람들을 위해 흘린 최초의 피였다.

손쉽게 승리를 거둔 후 토르는 카란으로 배를 몰았고, 매들리 만으로 가서 카빙이 발송한 군수품과 보급품을 받았다. 그 계절에 카라인 해적들은 더 이상 출몰하지 않았고, 겨울엔 적의 침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았다.

토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칠 줄 모르는 여왕은 저 멀리 서쪽으로 떠나, 정세를 고찰하는 한편 자신의 왕위 계승에 반대했던 사촌인 도른 일가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국경 부근에서 활동하던 여왕의 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다음 해에 킬리카시가 움직임을 보일 조짐이 있다고 했다. ‘휴가철’이라고 불렸던 그 계절 동안, 킬리카시는 카란과 밀타인 북쪽의 영토를 할양하라는 내용으로 협상을 개시하려 애썼지만, 알위나는 킬리카시의 외교 대사들을 말도 듣지 않은 채 돌려보냈다.

* * *

전쟁이 두 번째 해로 접어든 후에도 전투의 양상은 비슷했다. 킬리카시는 산맥의 남쪽에 기지를 두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발리안을 따라 형성된 전선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토르의 태도는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함선들을 보냈고, 그나마도 몸소 이끌고 오지 않았다.

겨울에 알위나는 다시 그를 방문해 몇 달을 머물렀다. 여왕이라 해서 비판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많은 이들이 알위나가 그의 연인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알위나는 여왕의 의무를 지켜 반드시 결혼해야 했지만, 토르와의 결혼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백성들을 보살피지 않는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여왕의 입장에서 불가능했다. 토르가 그녀를 지원하는 데 온 힘을 쏟지 않는다면 그와 결합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었다. 비난의 여지가 있는 최악의 행동이라면 그녀가 스스로를 미끼로 내놓았다는 것이었으리라.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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