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의 덫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프랜시스스티븐스
  • 평점×5 | 분량: 134매
  • 소개: 「요정의 덫」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북쪽의 애팰래치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동부 지맥인 블루 리지에 위치한 방갈로로 휴양을 갔던 과학자 겸 교수 타데무스가 실종된 동안 겪었던 신... 더보기

요정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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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불러오는 폭탄들, 생명을 불러오는 혈청들, 과학과 기계로 점철되고 정보가 난무하는 현대 세계에서, ‘아낙들이 전하는 실없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남자는 얼빠진 인간으로 취급된다. 그런 말들을 믿는 그는 미신에 사로잡힌 얼간이이다. 그런데도 여러 언어권과 여러 나라에서 이상하게도 되풀이되는 전설들이 몇 가지 있다.

물론 내가 전하려는 이야기도 그런 전설과 관련이 있다.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저명한 신경병 전문의였다. 우화의 뒤편에 담겨 있음직한 진실을 말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병든 뇌의 환영이 또 다른 정상적인 정신을 통해 나타난’ 기이한 사례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의 소견은 확실히 옳은 것이었다. 더욱이 결말에 이르렀을 때, 순간적으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언제 어딘가에서, 와튼 청년처럼 내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엘바…… 하늘빛 스카프와 노란 인동덩굴들의 엘바를 바라보며 서 있었던 듯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역할은 내 느낌이 어떠니, 어떻게 생각한다느니 떠드는 게 아니리라. 실제 인물을 대신할 가상의 이름들을 제외하고, 난 들은 그대로 이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인용 부분은 빨간 노트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

테론 타데무스. 그는 미국 학술 협회 회원이자 교육자 연맹 회원이었으며 과학 분야 박사로 활동하던 인물로, 꽤 이름 있는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교과서로 널리 이용되었던 세포학 논문 한 편과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적충류에 관한 중요한 소책자 몇 권의 저자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에도 소설에나 나올 듯한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고 서른일곱이 되어서도 여전히 차갑고 깎아낸 듯한 수려함을 지녔지만, 연구 외의 다른 것에는 거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초연했다.

그러다가 과학자로서 절정기에 올랐을 때 그는 사망했다. 가을 학기 첫 강의를 하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갔고, 교탁 앞으로 걸어가 작은 빨간 노트를 내려놓고는 돌아서서 입을 열다가 유령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푹 고꾸라졌던 것이다. 제일 먼저 그에게 달려와서 그 충격적인 실체를 목격했던 것은 조교인 와튼이었다.

타데무스는 독신이었고, 그의 유언에 따르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대학에 증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작고 빨간 노트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강의할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여겨 어느 구석에 처박아둔 것이었다. 어쨌든 나중에 그의 조교가 과제를 준비하다가 그 노트를 읽게 되었고, 그것이 강의 내용이 아니라 지난 여름 동안 교수가 썼던 일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가지 사건의 배경을 제외하고, 와튼은 이미 그 여름에 일어났던 대개의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타데무스는 내과의사 — 앞에서 말한 그 전문의 — 의 끈질긴 권유로, 7월과 8월을 유명한 여름 휴양지인 애슈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캐롤라이나 북쪽의 한 지역에서 보냈다. 그의 건강을 살펴주는 조언자일 뿐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던 로크 박사가 소유하고 있던 방갈로를 빌려주었던 것이다.

방갈로는 아름답긴 하지만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고,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카르카손이었다. 골짜기 아래로는 작은 철도역이 있었는데, 카르카손은 철도역 주변에 들어선 촌락도 아니었고 보통의 마을도 아니었다.

한때 어떤 풍경화 화가가 산허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장중한 풍경 때문에 그곳에 집을 지었다. 그리곤 그곳의 여름 풍경을 그려보라고 친한 친구들을 초청하게 됐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친구들의 수를 늘려갔다. 그래서 그의 산중 스튜디오 근처에는 친구들이 거할 숙소가 새로이 지어졌고, 회원들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블루 리지(애팔래치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동부 지맥)의 여름 모임’이라는 명칭으로 집단이 하나 생겼던 것이다.

계곡에서 그곳까지는 길이 두 갈래로 뻗어 있었다. 하나는 화가 집단이 주로 이용했던 길로, 여느 캐롤라이나 산길이 그렇듯 꽤 평탄하고 넓었다. 또 하나는 좁고 구불구불한 황토길이었는데, 이 길은 로크 박사의 고적한 방갈로를 지난 다음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산 위 더 높은 곳으로, 다른 한쪽은 카르카손으로 이어졌다.

이 예술가 촌과 방갈로 사이의 거리는 상당했고 서로 볼 수 없었다. 타데무스는 예술에 흥미가 없었고, 그 빨간 노트에도 적혀 있듯 방갈로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날 때까지 카르카손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고독, 오랜 산책, 심호흡, 그리고 일 또는 일관된 생각으로부터의 해방이 로크 박사의 처방이었고, 타데무스는 겉보기에는 이를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와튼은 현미경과 해부용 스탠드를 포함한 실험 기구들을 포장해 열차 편에 보내달라는 그의 전보를 받았다. 조교는 그의 명을 따랐다.

2주가 더 지나고, 이번에는 로크 박사가 긴급한 전보를 받았다. 그것은 방갈로와 함께 그가 타데무스에게 ‘빌려주었던’ 흑인 관리인 제이크 히깅스가 보낸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진료 업무를 부탁하고, 로크는 급히 캐롤라이나의 블루 리지로 달려갔다.

그 흑인도 있었고 방갈로도 그대로였지만, 타데무스만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크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교수는 어느 오후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질 않았다고 했다. 로크에게 전보를 치는 한편, 이 흑인은 지역 보안관에게 교수의 실종 사실을 알렸다. 이내 수색대가 산을 뒤지게 되었다. 또한 관리인의 부탁에, 전체 카르카손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타데무스를 추적하는 데 열성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여럿이 이젤과 화구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흑인은 그들의 실종자 수색 작업이 중간에 맞닥뜨린 황홀한 ‘풍경’과 함께 끝나버리게 될까 봐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예술촌 사람들의 노력은 보안관이나 다른 누구 못지않게 훌륭했다.

타데무스가 사라지기 얼마 전에, 한 무리의 집시들이 거의 무너져내린 낡고 텅 빈 통나무 오두막 촌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 흑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로크의 방갈로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들에게 의혹이 쏠렸다. 수색대는 그들의 야영지를 찾아가 뒤졌고, 떠돌이 무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을 쏟아댔다. 모두 불결하고 사악해 보이는 유난히 꺼림칙한 무리였다. 어쨌든 그곳에선 실종된 교수도, 그의 소지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대는 실제 싸움으로 번질 뻔한 말다툼을 뒤로하고 그들을 떠났다. 초라하고 굶주린 누런 똥개가 부관들 가운데 하나를 공격해 부츠를 물고 늘어졌던 것이다. 그는 즉시 개를 총으로 쏘았고, 분개한 개 주인들은 칼을 꺼내들었다.

수색대의 무장이 훨씬 우세했고 소총과 권총의 위협 때문에 집시들은 섣불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짐을 싸서 떠나라는 명을 받았고, 이후 며칠을 미루다가 결국엔 그 명에 따랐다.

그들이 떠나던 날 아침, 그러니까 타데무스가 실종되고 8일째 되던 날, 로크 박사는 침울하게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색 범위를 더 확대시켜야만 한다고, 필요하다면 블루 리지 전체를 수색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산골 어딘가에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친구이자 환자가 있으니 말이다.

아침 식사를 하던 방 한쪽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안쪽의 침실과 연결되는 문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기껏 ‘휴식’을 취하라고 보냈던 환자가 비어 있던 그곳을 실험실로 바꾸어놓아 분통을 터트렸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문이 열리더니 테론 타데무스가 걸어 나왔다. 그는 로크가 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듯했고, 자신은 자정 직후에 돌아왔으며 그 이후부터 내내 실험실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 전엔 어디 있었는지 묻자, 그는 기가 막히게도 일주일 동안 카르카손의 친구들을 방문했다고 대답했다.

로크 박사는 그의 대답을 의심했다. 당연했다.

예술가들이 죄다 거짓말쟁이는 아닐 터였다. 카르카손의 화가들이고 견습생이고 하나같이 그 교수를 모른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색 작업을 돕는 데 일주일을 꼬박 바쳤다.

나중에 로크가 카르카손에 같이 가서 그곳의 ‘친구들’을 만나보자고 고집하자, 타데무스는 그곳이라면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어쨌든 그는 처음의 거짓말을 해명하지도 않았고, 기이한 부재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 타데무스는 하얀색 플란넬 양복에 파나마 모자를 쓰고 캔버스화를 신은 채, 가벼운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방갈로를 나섰다. 그것이 산책을 나설 때의 복장이었다. 그는 같은 옷, 같은 신발, 같은 모자를 쓰고 돌아왔다.

게다가 하얀색이었는데도 그의 복장은 그때와 다름없이 말끔해 보였다. 다른 게 있다면 몇 군데 풀물이 들었다는 점과 신발끈에 황색 진흙이 묻어 있었다는 점뿐이었다.

만일 그가 떠돌이 한량으로 일주일을 보냈다면, 옷을 깨끗이 보존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셈이었다.

“애슈빌이야. 그는 기차로 애슈빌로 가서 호텔에서 묵었고,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돌아온 거야. 경직되었거나 혹사된 신경은 인간의 뇌에 그런 종류의 장난을 칠 수 있지.”

하지만 의사는 그 의견을 혼자만 간직했다. 무엇보다도 타데무스가 사실을 감추려고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훌륭한 의사답게 그는 곧 이 문제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오래도록 미루기만 했던 휴가를 이 기회에 즐길 작정으로 로크는 한동안 방갈로에 머물면서 함께 이 잡듯이 산을 뒤졌던 사람들의 호기심으로부터 친구를 지켜주었고, 타데무스가 건강과 함께 맑은 정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다.

그때까진 의사의 노력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로크 박사의 허락과 함께 타데무스는 가을 학기에 강의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은 죽음.

와튼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타데무스 교수의 일주일 동안의 그 불가해한 행적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빨간 노트에는 그 여름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일주일을 포함해서 말이다.

와튼에게 그 일기 내용은 기이해 보였기에, 그는 이제 대학 소유가된 노트를 도서관에서 빼냈다. 그리고 로크 박사를 찾아갔다.

때는 저녁이었고, 로크 박사는 새벽부터 시작했던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했나?”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로크가 노트를 건네받았다.

“개인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박사님께서 그걸 다 읽고 나시면, 추가로 말씀드려야 할 꽤 기이한 일이 있어요. 그걸 다 읽으시지 않으면 이해하실 수 없을 거예요. 전 거기에 묘사되어 있는 것이 타데무스 교수님의 죽음을 설명해 줄 열쇠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심장쇠약이었어. 과로 때문이었지. 거기에는 아무런 수수께끼도 없단다.”

“아닐 거예요, 박사님. 그래도 꼭 한 번 읽으실 거죠?”

“나에게 쭉 읽어주겠나? 난 지금 내가 쓴 처방전 하나 읽을 기력이 없네. 그리고 자네가 깨알 같은 그의 필체에 더 익숙하지 않나.”

그의 부탁에 와튼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