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좀비 요양원

  • 장르: 호러 | 태그: #좀비
  • 평점×105 | 분량: 89매
  • 소개: 좀비가 나타났다고 해서 현대사회가 영화에서처럼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 좀비들은 말 그대로 죽지 않은 정도로만 살아있었고 타격을 입은 건 주로 장례전문 업체였다. (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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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좀비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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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나타났다고 해서 현대사회가 영화에서처럼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좀비들은 말 그대로 죽지 않은 정도로만 살아있었고 타격을 입은 건 주로 장례전문 업체였다. 각종 비누와 영양제는 뜬금없이 판매량이 폭증했다. 변화의 바람은 학원가에도 불어서 요양 관련 자격시험에 대한 수요가 나날이 높아지기만 했다. 사태가 일어나고 딱 일 년이 지나서 나는 요양원에 보안 요원으로 취직했다.

“혜원 씨, 점심 어떻게 할 거예요?”

접수창구에서 수진이 한가로이 사탕 봉지를 접으며 말했다. 그녀는 이십 대 중반이나 될까 싶은 얼굴이었는데 듣기로는 요양원에서 제일 오래 근무를 한 사람이었다. 내게는 절대 나이를 알려주지 않으면서 존댓말을 했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도저히 또래로 느껴지지 않았다.

“글쎄요. 자장면 시킬까요?”

수진은 내 제안을 듣자마자 입을 비죽이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이 참 밉상이었으나 나로서는 거기 대고 불쾌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와 그녀는 서로 부서도 다르고 업무도 달랐으나 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탓이었다. 거기에다 원장도 그녀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 점이 나는 못내 신경 쓰였다.

자장면 이후로 나는 여러 의견을 냈으나 그때마다 수진은 퇴짜만 놓았다. 결국 나는 조끼 주머니를 열었다. 원래 탄창을 넣어두던 곳이었는데 반 년 전부터는 광고 책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거기 적힌 메뉴를 하나씩 차례대로 읊었다. 오전부터 줄곧 책상에 엎드려 의욕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던 수진은 김밥이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달 주문은 내 몫이었다. 영수증을 챙겨오라는 당부를 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는 시계를 흘끔 봤다. 농땡이를 피우느라 아직 오전 순찰을 다녀오지 않은 게 생각이 났다. 난 기지개를 켜면서 수진에게 위층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요양원은 총 4개 층이었는데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대부분 1층에 있었고 위층은 전부 격리 병실로 썼다. 나는 낡은 승강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한 개 층을 오르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건물에 계단이 없는 탓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까닭 없이 권총집을 만지작거렸다. 언젠가부터 손에 붙은 습관이었다.

4층에서 내리니 승강기 앞에 있던 보안 요원 종건이 날 맞았다. 그는 휴대용 망막 스캐너를 내 눈에 들이밀면서 말했다.

“혜원 씨, 이번 달에 휴가 간다고 했죠?”

“예, 종건 씨. 고향에 좀 다녀오려고요.”

망막 검사를 끝낸 나는 체온 검사기를 지났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종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어서 나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일한 여성 보안 요원인 점이나 순찰 외에 별 업무가 없는 것이 처음에야 눈치가 보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럴 것도 없었다.

격리 복도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일 년을 맡아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서 나는 매번 손으로 코를 가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부터 문까지 특수 유리로 만든 병실은 안이 훤히 보였다. 볼이 푹 파인 환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펜을 꺼냈다. 병실에는 문마다 일지가 붙어있어 순찰마다 이상 유무를 적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일지에 적힌 환자들의 이름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그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열댓 명의 환자들은 날 보자마자 복도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유리에 찰싹 붙어 겨울철 잉어가 얼음 너머 먹이를 노리듯이 입을 뻐끔댔다. 처음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땐, 그 광경에 놀라 순찰을 한 번 도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나는 장난스럽게 유리를 두드리면서 그들의 반응을 구경했다. 왜 환자들도 바깥을 볼 수 있는 유리를 설치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으나 그들이 날 해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일 년 전, 인천에서 좀비 사태가 발발했다. 그날엔 하루 종일 전화가 먹통이었다. 각종 방송에서는 공항을 통해 들어온 미심쩍은 화물을 이유로 지목하거나 중국에서 날아든 황사를 원인으로 삼기도 했다. 한 케이블 방송에 등장한 대학 교수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의견에 동의해 한동안 채식주의자처럼 지내기도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좀비는 좀비였고 고기는 고기였다.

사태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좀비들은 현대 군대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예비군이 소집되기도 전에 좀비들은(당시 뉴스에서는 폭도라는 말을 썼다.) 소탕됐고 그 장면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다. 당시 휴대폰으로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두 가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국군이 생각보다 무력하지 않았단 점이었고 두 번째는 좀비가 사람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무력했단 점이었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좀비 무리를 응원하는 글마저 돌았으니 말 다했다.

한 달여간 계속된 진압이 마무리될 즈음 한국 사회는 새로운 문제를 직면했다. 바로 살아남은 좀비의 처리문제였다. 독감 걸린 오리를 처분하듯이 좀비들을 구덩이에 쏟아붓는 장면이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처리를 지시했던 군 관계자들은 법정에 섰다. 의회에서는 연일 고성이 오가며 과연 누구에게 좀비를 죽일 자격이 있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싸움이 오갔다.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겠으나 나는 국회의원이 그렇게나 일을 열심히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셀 수 없이 많은 법안이 제정됐고 발병 원인과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좀비가 된 수만 명의 사람들은 모두 격리됐다.

당시 나는 9급 공무원 시험에 계속 낙방하던 차였다. 여성 보안 요원은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았고 결국 나는 하루 종일 좀비를 구경하며 지내는 신세가 됐다.

나는 마지막 동그라미를 치고 시시 티브이를 봤다. 내 모습을 보고 있을 종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군대에 있었다고 했다. 얼굴만 보자면 간부로 전역했나 싶은 정도이나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한껏 풀린 말년병장이었다고 했다. 가끔 진압 작전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무용담을 늘어놓듯 당당한 얼굴이 됐다. 그는 아지랑이가 피듯 총구가 아른거리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승강기로 돌아온 나는 분무기에 담긴 소독약을 몸 구석구석에 뿌렸다. 겉에 소독약이라고 이름표를 붙여놨지만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게 그냥 수돗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나날이 주는 탓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원장의 입장이었다. 요양원에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고 가끔 들르는 구청 직원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 역시 아니었다.

“휴가 언제부터에요?”

종건이 추근거리는 투로 말았다. 나는 그의 겉늙은 얼굴이 불편해서 괜히 분무기질만 몇 번 더 한 후에 승강기 버튼까지 누른 후에 대답했다.

“오늘부터요. 오후에 출발이에요.”

나는 더 말을 붙이려는 종건을 무시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점심 배달이 도착하기 전에 2층까지 순찰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다. 휴가를 떠나기 직전에 원장에게 붙들려 한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어지는 순찰에서도 별다른 점은 없었다. 사실 좀비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업무가 몇 년째 이어졌기에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1층으로 내려갔다. 수진은 이미 도착한 점심을 혼자 먹고 있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을 내비칠 새도 없이 앉아 소매를 걷어붙였다. 정오를 조금 넘은 때였다. 휴가는 오후 두 시부터였으니 식사를 마치고 조금 여유를 즐기다 원장실에 들르면 될 것이었다.

원장은 평소 환자나 직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유독 휴가를 떠나기 전에는 직원들을 불러다 면담을 했다.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난 그 시간이 불편하기만 했다.

“혜원 씨, 종건 씨가 막 끼 부리고 그러지 않아?”

식사하다 말고 수진이 뜬금없이 말했다. 평소에는 방송 프로그램 얘기 아니면 화장품 얘기만 하던 그녀가 갑작스레 꺼낸 화제에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어린 걸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정확한 나이야 모르지만, 얼추 듣기로 종건이 나보다 서너 살은 어린 것 같았다. 딱히 연상이나 연하를 따져 남자를 고르는 취향이나 없으나 여러모로 종건은 내게 연애대상으로 보이질 않았다. 같은 직장을 다니기에 불편한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흐음, 그럼 혜원 씨는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없어요.”

딱 잘라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아차 하고 수진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정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진은 별 반응 없이 식사를 했다. 이런 식으로 그 속을 알 수 없어 나는 항상 수진이 불편했다. 어쩌면 좀비에 둘러싸인 생활이 너무 평온한 탓에 이런 엉뚱한 곳에 긴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쟁반에 그릇을 정리했다. 주문도 내 몫인데 뒤처리도 내 몫이었다. 그래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쟁반을 들고 수진에게 말했다.

“수진 씨, 그릇 내놓고 한 대 피우고 올게요.”

그러면 나는 그녀가 뭐라고 말할지 알고 있었다.

“혜원 씨, 피부 상해요. 피부.”

나는 기쁘지도 않고 부끄럽지도 않으면서 괜히 미소를 짓고 밖으로 나왔다. 현판 아래 쟁반을 놓고 나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요양원을 둘러싼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온통 논밭뿐인 땅에 덜렁 솟은 요양원은 이질적이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좀비 사태로 개발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격리 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도로를 다니는 차도 없었다. 격주로 들르던 신부나 수녀들도 요즘은 나타나지 않아 배달부 전용 도로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 담배 끝자락에 불을 붙였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담배 연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일단 의료시설이라는 이유로 요양원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니 시간이 조금 남아서 나는 연달아 몇 대를 더 피웠다. 나는 때 이른 추위에 손을 비비며 안으로 들어갔다. 수진은 날 보자마자 원장실에서 전화가 왔다고 알려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탄약고로 향했다. 종일 탄창 없이 근무를 하는 보안 요원들도 출퇴근 때에는 탄약고에 들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탄약고 내부에 있는 시시 티브이를 등지고 탄약고에 탄창을 집어넣는 몸동작만 취한 후에 밖으로 나와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원장님, 김혜원입니다.”

대답이 없어 몇 번 더 두드렸으나 여전해서 결국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아래에서 부산하게 팔을 움직이던 그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가 뭘 하던 중이었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갯짓으로 제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거기 앉았다.

“어, 흠. 혜원 씨, 그래. 어… 고향이 칠곡이었나?”

증평이다. 그걸 지적하거나 바로잡아봐야 어차피 다음 면담에서 똑같이 엉뚱한 곳을 얘기할 게 분명하기에 난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뒤지면서 얘기를 이었는데 난 그가 무얼 보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난데없이 정치 얘기를 하다가 운전 조심하란 얘기를 하더니 일순간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요즘 불법으로 조, 좀비를 다루는 일이 많던데 그런 데 연루되지 않게 조심하시고.”

표정이야 한없이 진지했으나 좀비라는 말에서만 말을 더듬는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그런 단어를 쓰는 것이 의사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사실, 공식적으로 좀비라는 말이 쓰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의학계도 아닌 정부에서 발표한 좀비는 여러 단어를 섞은 합성어였는데 나는 그게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좀비라는 말로 관광 특수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했다.

“걱정 마세요. 그냥 집에서 죽은 듯이 있다가 올 테니까요.”

나는 시계를 흘끔흘끔 보면서 얼른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원장은 두 시까지 말을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고문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고 견뎌 그의 방을 나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나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다. 수진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는 요양원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반경 몇 킬로미터가 격리 구역인 탓에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요양원 근처에는 남는 것이 공간이어서 나는 마음 가는대로 차를 주차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가져온 권총과 탄창을 뒷좌석에 놓고 시동을 걸었다.

차를 몰아 검문소까지 가는 길이 나는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병사들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 떨림이 그저 차를 산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나는 뒷좌석에 있는 담요로 대충 권총과 탄창을 가리고 바리케이드 앞에 차를 세웠다. 내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니 코가 빨개진 병사가 경례하며 말했다.

“필승, 수고 많으십니다. 신분증과 출입증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글러브 박스에서 지갑을 꺼내 병사에게 내밀었다. 출퇴근 때마다 마주치는 사이였지만 검문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내 신분증을 확인한 병사는 뒤이어 내가 내민 출입증을 받아 초소에 전했다. 그가 곁눈질로 차 안을 살피고 다시 경례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바리케이드를 피해 검문소를 지났다. 속도를 높이면서 나는 라디오를 켰다. 집도 들르지 않고 나는 충주까지 차를 몰았다. 라디오에서는 격리 구역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나는 왠지 그 내용이 흥미로워 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에 야당 대표가 정부의 격리 구역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거의 비난에 가까웠는데요. 북한에 핵이 있으니 이제 우리는 좀비로 싸우겠다는 거 아니냐… 는 말이 큰 파장을 빚고 있습니다. 실제로 격리 요양원 대부분인 강원도에 집중되어있고 특히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인근에 밀집되어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임차 비용과 경비 인력에 어려움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 이유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좀비와 핵으로 대변되는 남북대결은 직원들끼리도 몇 번 얘기했던 주제였다. 토론자는 두 명의 대학교수였는데 그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낯이 익어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로서는 그가 무엇에 화가 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죽는지 모른단 것입니다. 처음 사태가 났을 때, 군대에서 이 국민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쏘고 때리고 차로 밀어버리고 말이에요. 학살이고 생체 실험을 하듯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말이에요. 그 때, 그 자료들 다 어디 있습니까? 다 어디에 숨겨 놓고…”

“이봐요, 지금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왜 자꾸 옛날 얘기를 해서 주제를 그렇게 막 요리조리 피해가지고 말이야…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면은 안 된단 말이에요.”

토론은 결국 서로 말을 끊고 끊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토론자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거, 옛날에도 구제역이 문제였느니 뭐니 하면서 집회나 가고! 시위하고! 교수라는 사람이 말이야!”

“야, 이…”

뒤이어 알아들을 수 없이 소리가 커지고 사이사이 욕설이 섞여 들렸다. 방송이 갑작스레 중단돼서 나는 채널을 돌려 음악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좀비와 구제역의 상관관계 얘기에 나는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괜히 오늘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성을 지나 증평에 들어서자 해가 뉘엿뉘엿한 때였다. 나는 곧장 본가로 가지 않고 보강천에 맞닿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언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고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닛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내 차를 사면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기고 나는 권총과 탄창을 챙겼다. 가방이 있었으나 나는 허리춤에 권총을 쑤셔 넣었다. 이것 역시 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꾸던 일 중 하나였다.

군청 가까이 위치한 주공 아파트 맨 위층에 언니가 살았다. 아버지는 사태가 났을 때 죽었고 그날 이후로 안방은 엄마 혼자 썼다. 현관문을 열자 언니는 맥주 캔을 들고 나를 맞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이미 제법 마신 듯이 보였다.

“하여튼 너는 전화를 하면 받는 법이 없어요.”

“운전하면서 통화를 어떻게 해.”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부엌에서는 국이 끓었고 이어진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언니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엄마는?”

“벌써 자,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더라고. 야, 무슨 가방이 이렇게 무거워?”

“숙소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좀 챙겨왔어.”

나는 투덜대는 언니를 뒤로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형광등이 껌뻑이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방에는 언니가 쓰던 걸 물려받은 책상 하나에 천으로 된 옷장이 하나 있었고 스프링이 삐걱대는 소리가 시끄러운 침대도 있었다. 옷장 안에는 교복부터 해서 지금은 입지 않는 옷이 가득했다. 나는 권총과 탄창을 옷장 속에 숨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언니는 손수 끓인 국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맥주 캔만 비웠다. 빈 캔을 쌓으면 천장에도 닿을 것만 같았다. 나도 입맛이 별로 돌지 않아서 술이나 마시려고 했지만, 언니는 전부 자기 것이라며 내게 뺏기지 않으려고 들었다.

“아, 엄마 깼나보다.”

새가 알이라도 품는 듯이 맥주를 지키던 언니가 갑자기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언니를 바라봤다.

“엄마 소리는 내가 알아, 이 년아.”

언니가 한 손에는 맥주 캔을 들고 일어서 당당하게 걸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그 뒤를 따라 안방으로 갔다. 언니가 안방 불을 켜니 정말로 엄마가 깨어 있었다. 누인 장롱에 묶여 버둥대던 엄마는 나와 언니를 보자마자 입에서 침을 흘렸다.

“내 말 맞지?”

언니는 기세등등해져서 맥주를 단숨에 마시고는 밥을 가져오겠다며 부엌으로 갔다. 나는 안방에 덩그러니 서서 엄마를 내려다봤다. 비쩍 마른 몸에 입에는 재갈을 물린 것이 볼 때마다 소름 끼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언니는 내 팔을 툭 치면서 말했다.

“야, 너는 엄마 좀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

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봉지의 귀퉁이를 뜯었다. 처음 보는 것이었으나 언니가 거기 든 것을 그릇에 담으니 약간 비릿하고 짠 냄새가 났다. 포장을 자세히 보니 애견사료였다. 내가 묻기도 전에 언니가 방문을 닫고 엄마의 재갈을 풀면서 말했다.

“요즘에는 사람 밥보다 이게 더 좋아. 맛이 없다뿐이지 몸에는 좋아야, 나도 혀만 마비됐으면 평생 이거 먹고 살겠다.”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표정에는 한 점 거짓도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때로 엄마보다 언니가 더 무서웠다. 엄마는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를 하면서 사료를 먹어치웠다. 입에 넣는 게 반이고 흘리는 게 반이었다. 그나마 입에 넣은 것도 씹다가 반은 흘렸다. 엄마가 그릇을 비우면 언니는 몇 번이고 사료를 부었다. 나는 벽에 기대 그 모습을 지켜봤다. 흡음재를 덕지덕지 붙인 벽은 문만 닫으면 거의 완벽한 방음실이었다.

봉지를 전부 비운 후에 언니는 활짝 웃으면서 엄마에게 다시 재갈을 물렸다. 나는 매번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그런 일을 해내는 언니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언니는 모든 일을 마친 후에 뿌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부엌으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언니, 그러다가 위에 구멍 나겠다.”

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결국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었다. 나는 언니를 부축해서 겨우 침대에 누이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허기가 졌으나 그렇다고 입맛이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잠들기 전에 권총과 탄창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잠이 쉬이 오지 않아 밤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소리를 죽이고 나른한 기분으로 심야 뉴스를 보는데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국회의원 중 한 명이 환자 격려 차 요양원에 들렀다가 좀비에게 목을 물렸단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모험을 했는지 이해가 됐지만, 그를 문 좀비의 생각 역시 이해가 됐다. 내일 일어나면 언니에게 이 얘기를 꼭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소파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일어나니 언니가 집에 없었다. 내 이마에는 ‘근무교대’란 네 글자가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는 어제와 동일하게 묶여 버둥대고 있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나는 부엌 찬장을 뒤져 사료 봉지를 찾았다. 과연 무슨 맛일까 싶어 한 번 먹어볼까 했으나 왠지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어 그만뒀다.

냉장고에는 언니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내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같은 내용이어서 이제는 외울 지경이었다. 거기에는 안방에 방향제를 뿌리는 횟수부터 쓰레기를 버리는 날까지 애완견을 키우는 것처럼 엄마 관리법이 적혀있었다.

좀비 사태 이후로 평생 엄마와 살아온 언니는 내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마디로 언니가 휴가를 얻는 셈이었는데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는 아무리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주말을 끼어 월요일까지 나흘짜리 휴가를 냈으니 언니는 내일 늦은 시간에나 집에 돌아올 터였다.

요양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휴가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좀비에게 물린 국회의원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왔다. 보도를 들어보니 물린 건 오전이었는데 소식이 뒤늦게 풀린 모양이었다. 나는 어제 차에서 들었던 것보다도 흥미로운 내용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해당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속한 당 대표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기자들 앞에 선 것을 보고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가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장면을 감상했다. 당 대표가 해당 의원의 쾌차를 기원한다는 부분에서 나는 맥주 한 캔을 비웠다. 내 방에서 담배를 가져오니 당 대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로써 한국은 좀비 국회의원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니 사상 초유의 인권 보장 국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사건을 제법 비중 있게 다뤘다. 초반부는 좀비 요양원(공식 명칭은 좀비 현상 피해국민 요양원이다.)의 관리 실태에 대한 고발이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고위 공직자와 사업가의 비리가 주를 이루었다. 그 부분은 재미가 없어 나는 채널을 돌렸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유독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를 자주 하기에 세 편을 연달아 봤다.

저녁때가 돼서 나는 냄비 가득한 국을 끓였다. 언니가 끓인 것 중에 먹을 만한 것은 이 콩나물국뿐이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나보다 잘난 게 별로 없었으나 그나마 나보다 나은 것이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이 콩나물국이었고 두 번째가 엄마랑 친하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나보다 가슴이 조금 큰 점이었는데 그야말로 미세한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나는 사료 봉지를 꺼내 들었다. 옆구리에는 방향제를 끼고 나는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는 어제보다 더욱 격하게 몸을 비틀었다. 그런 걸 보면 엄마도 나보다는 언니를 좋아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밥을 먹는 분홍색 그릇에 사료를 채웠으나 엄마의 재갈을 맨손으로 풀 자신이 들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 시도하다가 손톱에 할퀼 뻔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고무장갑과 오븐용 장갑을 끼고 엄마의 재갈을 풀었다.

엄마는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빨을 번뜩이며 날 노려봤다. 엄마는 흡사 굶주린 개처럼 식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날 보면서 컹컹댔다. 사료를 부을 때면 고개를 쭉 내밀고 내 손을 물려고 했다. 결국 식사를 끝내고 다시 재갈을 물릴 때 나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야만 했다. 입에서는 침인지 피인지 모를 것이 계속 흘렀다.

“미안해, 엄마. 미안.”

나는 안방 문을 열어둔 채로 내 방에 가서 옷장을 열었다. 나는 권총에 탄창을 끼우고 슬라이드를 당겨 한 발을 장전했다. 그대로 안방에 간 나는 안전장치를 풀고 엄마를 겨눴다. 팔이 바들바들 떨려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나는 방아쇠울에 검지를 넣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머리카락이 빠져 볼품없는 엄마의 머리에 구멍이 날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몇 번이고 상상했던 일이었으나 그 다음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비장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내 머리에도 한 발을 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세상일이라는 게 닥쳐봐야 안다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머리에 총을 쏘는 미친년만큼은 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나는 결국 총구를 떨구고 탄창을 뺐다. 약실에 들어갔던 총알도 빼서 다시 탄창에 끼웠다.

그렇게 나는 또 엄마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떨어져 앉아서 나는 엄마를 바라봤다. 지치지도 않고 버둥대는 엄마는 눈물도 흘렸고 콧물도 흘렸다. 최소한의 식사만 제공하는 요양원과 달리 사료를 먹고 지내는 엄마는 좀 더 활기찬 듯이 보였다.

여기저기 멍들고 상처 난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분명 언니보다 날 더욱 미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 주변에 방향제를 잔뜩 뿌리고 안방 문을 닫았다. 그 날도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나는 해가 뜰 즈음에야 눈을 감았다.

일요일 아침에 나는 양 손에 제각기 권총과 탄창을 쥔 채로 잠에서 깼다. 그 꼴이 우스워서 나는 사진이라도 찍을까 싶었으나 나중에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엄마가 잘 있는지 한 번 확인하고 나는 베란다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멀리 보천강 말고는 딱히 보이는 게 없었다.

문득 하루에 담배를 얼마나 피우면 엄마나 언니보다 먼저 죽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분명 처음 담배를 피운 날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해체한 것이 분해 아버지의 담배를 훔쳤다. 라이터가 없단 건 나중에야 알았으나, 다행스럽게도 편의점에서 라이터를 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날도 아마 엄마 얼굴은 멍들었을 것이고 언니만 엄마를 챙겼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날 때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후 열 시가 넘도록 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열한 시가 넘어서 전화를 걸었으나 언니는 받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나는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계속 걸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자정 가까이 돼서 나는 언니의 휴대 전화 전원이 꺼져있단 메시지를 들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거실 구석에 던지고 언니 방을 뒤졌다. 텅 빈 옷장을 보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나는 소파에 앉아 밤을 샜다. 날이 밝기까지 권총을 쥐고 몇 번이나 안방에 들락거렸으나 결국 나는 엄마와 함께 휴가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다. 짜증이 나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언니에게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으나 이미 내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찬 뒤였다. 지금 당장 언니가 나타나면 총으로 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난 버둥대는 엄마를 두고 시계만 보다 결국 내 방으로 들어가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과연 엄마의 몸을 잘 접으면 가방에 들어갈까 가늠하던 나는 생각을 멈췄다. 크기야 둘째 치고서라도 나는 엄마를 힘으로 누를 자신이 없었다. 여성 보안 요원이라고 해서 맨몸으로 모든 좀비를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상대가 엄마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나는 엄마를 비롯한 모두가 잠든 틈을 노리기로 했다.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머릿속으로 계획을 점검했다. 우선 이불로 엄마를 돌돌 만다. 그 다음엔 엄마를 장롱에 묶은 밧줄을 풀고 그걸 써서 이불을 동여맨다. 여기까지 성공하면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나는 그대로 엄마를 끌고 승강기에 탄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자가용 트렁크를 열어서 거기 엄마를 싣는다. 그대로 요양원까지 곧장 간다. 그 다음부터는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 아무런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 말고는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계획은 세 번째 단계에서 실패했다. 엄마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까지는 성공했다. 내 예상을 벗어난 건 그 사이 입에 물려있던 재갈이 풀려 엄마가 괴상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놀란 나는 안방 문을 닫았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