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이 나타났다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초능력 #스무살 #동료 #로봇 #근미래
  • 평점×15 | 분량: 100매
  • 소개: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청년에게 초능력이 생긴다. 이제껏 없었던 놀라운 힘. 청년은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힘을 노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더보기

초능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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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딱 내가 스무 살이 되는 날이다. 지방이지만 나름 이름 있는 대학에도 붙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폭넓은 인간관계도 맺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 무엇보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로 했다. 드디어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건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자유였다. 물론 자취방에 들어가려면 아직 한달이나 남았지만 말이다.
 

저녁에는 내 생일 파티도 할겸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미용실로 향하다 약속이 된 한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확히 몇 시인지 어디인지를 물었다. 녀석은 6시까지 시내 삼거리 포차로 오라고 말했다. 옆에 다른 녀석들도 있는지 낄낄거리는 소리가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길을 건너야 하는데 건널목 있는 곳까지 가려면 꽤 걸어야 한다. 차가 오는지 양옆을 살피며 도로에 뛰어들었다. 자동 운전 시스템이 상용화 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단 횡단을 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직접 운전할 때보다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차가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효율성을 중시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까?

 

왼편을 살폈다. 멀리서 차가 오는 걸 확인하고 이때다 싶었다.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댄 채 후다닥 뛰었다. 언제쯤 올 거냐고 묻던 녀석이 자기가 아는 여자애들도 데리고 온다고 외모에 신경 좀 쓰라고 당부했다. 혹시 이러다 한 여자애와 썸타는 건 아닐까? 왠지 예감이 좋았다. 씨익 웃으며 누구냐고, 이쁜 애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녀석이 어차피 너는 퇴짜 맞을 거라며 비웃었다. 새끼,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똑같이 응수하며 중앙선을 건너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사람 비슷한 게 나를 향해 뛰어왔다. 양손을 휘저으며 오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췄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시대가 지날수록 다른 건 지지부진한데 반해 인공지능과 기계 공학은 크게 발전했다. 경찰청 산하 단체인 도로 교통 공단 측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정 구간마다 최신 인공 지능을 탑재한 교통 도우미 로봇을 배치했다. 쓸데없이 하는 일이 다양하다. 길 안내 및 교통정리, 교통사고 발생 시에는 2차 사고가 나지 않도록 사고 차량을 치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한다.

 

사실 자동 운전 시스템 덕분에 교통 사고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직접 운전하기를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자동 운전을 이용했다. 즉, 저런 로봇들은 다 세금 낭비라는 이야기였다. 교통 도우미 로봇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세요!”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조심하라는 게 왠지 기분 나빴다. 정말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럴리가. 그저 내부에 입력된 알고리즘 뭐 이런 거겠지.

 

교통 도우미 로봇이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멈췄다. 왜 이상한 소리를 낼까? 그러고보니 여기는 도로 한가운데였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양옆을 살폈다. 맞은편 차선에서 승용차 한 대가 나를 덮쳤다. 전화 통화를 하느라 오른편의 차선을 보지 못했다. 놀란 운전자가 차 내부에 띄워 놓은 동영상을 보다가 눈을 꼭 감는 게 선명히 보였다. 아무리 자동 운전 기술이 발달해도 차가 완전히 정지하려면 그만큼의 제동거리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짧은 거리에서 갑자기 멈출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는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됐는데,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피해야 하는데 바보같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차의 보닛이 복부로 휘청거리며 들어온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 멈추라고!

 

몸이 가볍다.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진 상태인데도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바닥을 딛고 선 몸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칼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슬쩍 눈을 떴다. 발밑으로 작아진 도로가 보인다. 고개를 드니 장애물이 사라진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어떻게 된 걸까? 몸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반대편 차선으로 내려갔다. 내가 하늘을 난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동차를 피한 거다. 믿을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도로에 무사히 착지했다. 건너편에서 나를 칠 뻔한 자동차가 멈춰 섰다.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귀를 찢는 브레이크 소음이 나를 덮쳤다. 순간 반대편에도 자동차가 다닌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이번에는 하늘을 날아서 피할 여유가 없다. SUV 차량이 시야에 큼지막하게 들어온다. 뭐라도 해야 한다. 두 팔을 들어 온몸을 막았다. 주변으로 연한 녹색의 막이 퍼졌다. 순식간에 펼쳐진 보호막이 내 몸을 둘러쌌다. 방향을 틀지 못한 SUV 차량이 나를 둥그렇게 감싼 보호막을 들이받는다. 쾅 소리를 내며 차량 앞부분이 압축되듯 찌그러졌다. 양옆의 헤드라이트가 박살이 나고 보닛이 엿가락처럼 휜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보호막 너머에 찌그러진 채로 멈춘 차를 바라봤다. SUV는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운전자는 운전석을 뒹굴다 일어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자동차와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처졌다. 믿을 수 없지만 내가 만들어냈다. 천천히 손을 들어서 주위를 뒤덮은 보호막을 만져봤다.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을 갖다 댄 것처럼 뜨겁고 딱딱했다. 얼른 손가락을 뗐다. 연한 녹색의 막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손을 휘저어도 더는 만져지지 않았다.

 

운전자가 허둥거리며 차량 내부를 이리저리 더듬었다. 내가 멍하니 앞부분이 박살난 SUV를 살피자 운전자가 다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휴대 전화를 가지고 내렸다. 당연히 나한테 뛰어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차 문을 닫자마자 그 자리에 선 채로 휴대 전화를 열심히 만졌다. 지금은 저 사람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얼떨떨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을 날고, 방어 자세를 취하니 보호막이 생겼다. 내가 무슨 일을 한 걸까. 혹시나 해서 손을 들어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메시지다. 휴대 전화를 꺼내 확인해보니 여동생이 남긴 메시지였다. 지금은 조금 서먹해진 상태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는 꽤 사이가 좋았던 남매다. 아주 가끔 연락을 하던 애가 어쩐 일일까?

 

내용을 확인해봤다. 인터넷에 오빠가 찍힌 동영상이 나돌고 있다는 거였다. 블랙박스 동영상인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여동생의 메시지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얼른 휴대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포털 오른쪽에 검색어 1위가 된 동영상이 보였다. 게시물 제목은 ‘초능력이 나타났다’였다. 얼른 클릭했다. 휴대 전화 앞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공중에 커다란 화면을 만든다.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든 대형 화면을 즐길 수 있는 기술이었다. 동영상에는 내가 저 멀리서 하늘을 날아 지금 운전하는 차 앞에 착지하고, 이어서 두 손을 들어 보호막을 펼치는 게 담겼다. 곧 화면이 보호막에 충돌해 흔들렸고, 난 멀쩡히 선 채 차를 바라봤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운전자가 블랙박스 동영상을 올린 게 틀림없었다. 운전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아직도 휴대 전화를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살폈다. 이건 분명히 트릭이 있다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기꾼이 올린 영상이라는 말부터 아마 페이크 다큐 같은 광고 동영상이지 않겠느냐는 분석, 실제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초능력이 나타났으니 이제 극장에 갈 일이 없을 거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고, 오늘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쓸데없이 등수 놀이를 하는가 하면, 유명인이 돼서 좋겠다며 관심에 목말라하는 댓글도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괜히 창피하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초능력을 쓴 것이 그대로 찍혔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남의 얼굴이 찍힌 영상을 함부로 올린단 말인가? 항의하려고 운전자에게 다가가는데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크게 울렸다. 사고가 난 SUV 차량이 도로를 막았다. 정체된 차량들이 내 뒤에 길게 줄을 섰다. 저 멀리서 견인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접근한다.

 

도로 가로 자리를 피하자 교통 도우미 로봇이 다시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원래 저 로봇은 교통사고를 처리하고 차량 흐름이 원활하도록 정리하는 게 원칙이었다. 내가 멀쩡한데도 다 무시하고 뛰어오는 걸 보면 내가 쓴 초능력에 무척 놀란 것 같았다. 아마 인공지능 특성상 자신이 가진 정보를 수정, 보완하려는 프로그램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로봇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현상일 것이다. 상상 속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교통 도우미 로봇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내 모습과 주변을 살폈다. 순서가 잘못 됐다. 먼저 다쳤는지 확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로봇의 물음에 기가 찼지만, 한편으로는 요새 인공지능은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마치 실제로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은가? 어쨌든 혼란스럽고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이거 아무래도 초능력 같은데. 현실을 벗어난 능력 뭐, 그런 거 말이야. 내가 썼다고. 믿어져? 너도 봤지? 대체 어찌 된 거지?”

 

다시 한 번 초능력을 쓰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뻗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를 악물고 인상을 썼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아까 내가 초능력을 쓴 건 확실했다. 지금은 안 되는 걸 보니 아마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위험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것처럼.

 

이제껏 실제로 초능력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예수의 기적이라는 건 아주 오래전 일이라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성경이라는 건 어쨌든 종교 서적이었다. 신빙성이 확 떨어진다. 예수 이후에도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증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이 득실대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초능력을 내가 쓴 거였다. 그걸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봤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좀 진정되자 새삼 두려움이 앞섰다. 어렸을 때 이런 비슷한 상상을 한 적이 많았다. 얼마나 원했는지 꿈도 줄기차게 꿨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벌어지니 설레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러웠다.

 

한숨을 내쉬며 휴대 전화를 봤다. 진동으로 해놔서 이제껏 몰랐다. 수십 통의 전화와 몇 백 건의 메시지가 왔다. 전화는 엄마 아빠한테 걸려 왔고 메시지는 여동생과 친구들, 지인이 보낸 거다. 메시지 대부분은 날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덩달아 나까지 불안해졌다. 괜히 엄마 아빠한테 전화하기가 망설여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내 앞으로 온다. 그 옆에 검은색 승합차가 딱 붙었다. 앞유리와 뒷유리, 창문에 짙은 선팅을 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경찰차가 나를 지나쳐 도로 가에 멈추고, 검은색 승합차도 경찰차 앞에 차를 세운다. 경찰 두 명이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검은색 승합차는 시동을 끄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경찰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혹시 나에게 오는 게 아닐까? 교통사고 유발이나 교통준수 위반으로 잡아가지 않겠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연히 말도 안 된다. 나도 아는데 지금은 너무 이상한 일을 겪은 후라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경찰은 나에게 오지 않고 내 보호막을 들이받은 운전자에게 향했다. 바로 옆인데도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찌그러진 SUV를 살피던 경찰들이 운전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경위를 듣는 것 같았다. 계속 보고 있으니 좀 이상하다. 운전자는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는데 정작 경찰들은 그가 아무리 나와 자신의 차를 가리키며 이것저것 말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차 사진을 찍고 수첩에 뭔가를 적은 후 다시 운전자와 이야기를 하고 무전기로 상황실과 연락만 취할 뿐 끝까지 나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목이 뻣뻣하고 시선이 자꾸 주변을 헤맨다. 마치 나를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았다.

 

검은색 승합차의 문이 열렸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건장한 남자들이 내렸다. 설마 했는데 그들은 곧장 나에게 걸어왔다. 경찰 쪽을 돌아봤다. 나와 사고가 난 SUV 차량을 견인차가 실어가고 운전자와 경찰들은 같이 경찰차를 탄 후 어딘가로 향했다. 끝까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긴장하며 정체 모를 사람들을 주시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이다. 정체가 뭘까? 왜 경찰들은 그냥 가버린 걸까? 그들이 위협적으로 날 빙 둘러쌌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중에 리더인 듯한 사람이 나서서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 아십니까? 정부의 비밀요원입니다. 사람 순식간에 해치우는 거 우리한테는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이야기하죠. 괜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주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들이 일제히 윗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총이라도 꺼내는 걸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건 협박이었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사물들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나와 요원들 사이를 빙글빙글 돌았다. 과자 봉지나 담배꽁초가 섞인 흙먼지 사이로 유리병이나 녹슨 못 같은 날카로운 흉기들이 날아들었다.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물러서요! 나도 제어 못 해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요!”

 

요원들이 겁을 먹고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실제로 눈앞에서 이런 광경을 보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요원들이 멀찌감치 떨어지자 떠다니는 사물들이 다시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정신을 가다듬은 리더가 심호흡을 하며 내 앞으로 왔다. 윗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러자 다른 요원들도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리더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화내지 마세요. 한 번 시험해 본 거니까. 그냥 이 자리에서 말하는게 낫겠네요.”

 

리더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인다.

 

“그 힘, 국가를 위해 쓰시죠? 군사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해요. 충분한 정도가 아니지. 다른 어느 나라도 이런 힘은 엄두도 못 낼 겁니다. 당신은 그냥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만 하면 돼요. 그렇게만 된다면 부국강병이 결코 꿈이 아니게 될 겁니다.”

 

군사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건 나를 실험대상으로 쓰겠다는 말이다. 온몸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겁도 났다. 무엇보다 부국강병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더를 다그쳤다.

 

“힘을 가지면요? 그걸로 다른 나라를 짓누르려고요? 독일이나 일본처럼 전쟁이라도 일으키자는 거예요?”

 

이런 능력을 그런 곳에 쓰는 건 옳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다. 리더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냈다.

 

“당신, 우리나라 사람 아닙니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인데 왜 망설이죠?”

 

붉게 물든 리더의 얼굴이 금세 가라앉았다. 감정을 제어하는 게 소름끼치도록 능숙했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해에요. 그 힘으로 다른 나라를 치겠다는 게 아닙니다. 잘 들어보세요. 핵이나 무기, 군사력을 증강하는 게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일까요? 전쟁 억제력 때문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저자가 하는 말이 맞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내 힘이 국가 하나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우선은 이 능력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이 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건 맞는데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아프다. 요원들에게 짜증을 내며 날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쳤다. 리더가 말했다.

 

“후세에 나라를 구한 위인으로 추앙받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이완용처럼 매국노로 남는 게 좋을까요?”

 

리더는 무엇이 현명한 행동일지 잘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요원들과 함께 검은색 승합차를 탄 후 사라졌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갑자기 인생이 뒤바뀌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옆에 있던 교통 도우미 로봇이 고민에 빠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착각이나 환각이 아닙니다. 제 인공지능에 프로그램된 운영체제를 통해 방금 일어난 일의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정보를 수집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실존하는 힘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답했다. 제일 당황스러운 건 나 자신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떠드냐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휴대 전화로 다시 동영상을 공중에 띄운 후 로봇에게 들이밀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것 좀 보라고. 내가 초능력을 쓰는 게 전 세계로 퍼졌어! 얼굴이 팔렸다고. 조작이나 합성이 아니겠냐?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처음이야. 아, 나보고 어쩌라고! 말 좀 해보라니까? 초능력이라는 건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는 능력이야. 근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애초에 말이 안 되는데. 그래서 더 답답한 거고. 아마 내가 역사상 유일한 사람일걸? 그게 공식적이든 뭐든. ”

 

흥분하다보니 로봇에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두렵단 말이야. 저들과 다른 미지의 존재가 되어 버린 거니까.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는 무조건 배제해. 이제껏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고. 세상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를 능력을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누군가에겐 구원자로 보일 수 있고, 혹은 악마로 비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뭘 해야 하지?”

 

어쨌든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나를 구경하는 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로 섞여들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날 모르는 것 같았다. 다들 아무 관심 없이 제 갈 길을 가기에 바빴다. 그런 무관심이 지금의 나에겐 오히려 고마웠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걸으며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아까만 하더라도 저녁 술자리에 여자애들도 온다고 해서 설렜는데. 지금은 갈 데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맞은편에서 유난히도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오는 게 보였다. 정부 비밀 요원들을 만난 터라 괜히 신경 쓰였다. 나와 같은 방향에서 걸어온다. 바로 앞까지 왔는데도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부딪친다. 어깨를 틀어 피하려는데 그가 일부러 자기 몸을 내 어깨에 갖다 댔다. 몸과 몸이 맞붙었다. 충돌이다. 내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밀려났다. 둘 다 멈칫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남자의 몸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난 미안하단 의미로 고개를 까딱 숙이고 다시 지나간다. 그가 돌아서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네가 누군지 알아. 어떤 힘을 가졌는지도.”

 

남자를 돌아본다. 거친 피부에 모자로도 가리지 못한 흉터가 여기저기 졌다.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로 봐서 좋은 사람이 아닌 게 확실했다. 어깨를 잡은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요.”

 

그자가 두 손바닥을 맞부딪쳐 탁탁 털며 말했다.

 

“그 힘, 우리를 위해 쓸 생각 없어? 돈은 얼마든지 줄게. 원한다면 계약금 형식으로 미리 줄 거고. 평생 구경도 못 할 금액이야. 출처는 몰라도 돼. 알려주지도 않을 거고. 제일 중요한 건 돈이라는 거 그 자체 아냐?”

 

그가 내 반응을 살폈다. 분명히 깨끗한 돈이 아닐 거다. 우리라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아마 범죄자들일 것이다. 마피아나 삼합회 같은 범죄 조직.

 

“싫은데?”

 

그런 더러운 일에 이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그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족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는 건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자들에게 휘둘릴 수는 없었다. 남자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해볼 테면 해 봐.”

 

남자가 씩 웃으며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칼날의 뾰쪽한 끝을 내 얼굴에 갖다 댔다. 날카로운 소음이 내 귓가를 때린다. 나를 겨누던 칼날 끝이 양옆으로 고무처럼 휘더니 통조림 캔 뚜껑 따듯 안쪽으로 돌돌 말렸다. 그자가 놀라 칼을 떨어뜨렸다. 실제로 이런 힘을 보게 되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