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동좀하초 재배실에서

  • 장르: SF, 호러 | 태그: #좀비
  • 평점×50 | 분량: 120매 | 성향:
  • 소개: 이야, 정말 허투루 쓰는 게 하나도 없네. 더보기

그날, 동좀하초 재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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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1. 광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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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이 벗겨져 손질된 새하얀 실뭉치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온다.

이건 A등급, 이건 B등급…

실뭉치의 끝에는 제각기 품질 등급이 적힌 꼬리표가 하나씩 붙는다. 실타래는 150cm에서 180cm까지 길이가 다양한데 그중 길이가 50cm 이하인 것은 실이 부드러우면서도 잘 끊어지지 않아 특등품으로 취급된다. 신뢰감을 주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저희가 생산하는 비단은 100% 진품입니다. 당일 탈피를 마친 재료만을 사용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입힐 수 있어요!

뒤이어 아이 둘을 가진 부모의 밝은 목소리가 따라 나온다. 활짝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장인들이 실뭉치를 풀어 옷감을 짜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부드러움을 선물해 주세요.

화면의 암전과 더불어 음향 페이드 아웃.

▨ 영상 2.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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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바닥에 놓인 플라스틱 소주 박스로 화면을 옮긴다. 소주 박스에는 소주 대신 녹색 피부 가죽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앵글을 조금 올리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유리 상자가 나타난다. 카메라의 초점이 유리 상자 내부에 있는 것을 포착하고 실루엣이 점차 명확해진다.

충분히 먹이를 먹인 동좀하초에게 고통을 주면, 좀비에 기생하던 균사체는 숙주를 쓸모없어졌다고 여기고 탈피합니다.

유리 상자 내에서 좀비가 한 차례 경련한다. 곧 부들부들 떨던 좀비의 얼굴 가죽이 찢어지며 새하얀 실뭉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컨베이어 벨트를 지키고 서 있던 직원들이 유리 상자에 달린 문을 열고 바닥에 떨어진 좀비 가죽을 떼어 소주 상자에 던져 넣는다.

가끔 탈피가 일어나다 만 동좀하초의 경우 살가죽이 하반신이나 상반신에서 걸려버리기 때문에 떼어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일단 해당 유리 상자를 다른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시킨다. 탈피가 끝까지 잘 일어난 상품은 A코스 컨베이어 벨트로, 그렇지 않은 건 B코스 컨베이어 벨트로. 두 가지 갈림길에서 동좀하초의 품질이 처음 결정되는 것이다.

불량품이 들어온 B코스에서는 사람들이 날이 잘 벼려진 칼로 가죽을 긁어낸다. 노련한 솜씨로 가운데의 실을 건들지 않고 가죽만 벗겨낸 것들 중 품질이 괜찮은 건 다시 A코스에 합류하고 나머지는 폐기 처분된다.

카메라가 바삐 움직인다. A코스로 간 실뭉치들은 커다란 솥에서 한 번 삶아진다. 직원들이 삶아진 실의 한쪽 끝을 자동화된 물레에 걸면 실이 둘둘 말리며 뽑힌다. 실은 약 48시간 동안 쉼 없이 뽑히게 된다. 실이 전부 뽑힌 후에는 사람의 뼈가 남는다. 내장은 동충하초들이 전부 빨아먹었기에 없으므로, 깔끔하게 분리된 유골들은 따로 모아 빈 부지의 구덩이에 우르르 쏟아져 매장된다.

직원들은 물레에 걸린 실을 빼내어 서로 엉겨 붙은 실들을 떼어내는 작업을 한다. 이후 실 감기, 베날기, 베 짜기, 화학적 처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걸치고 다니는 옷의 원단이 만들어진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정직, 그 자체입니다. 전체 공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품질 보장과 신뢰성을 얻어갈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이 나오고 또다시 화면 페이드 아웃.

영상이 끝나자마자 함성이 들려온다. 단상 위에 내리쬐는 노란 불빛이 시리도록 밝다. 나는 숨을 참았다. 손에 들린 상패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반짝인다. 속이 메스껍다. 품에 안은 꽃다발의 향이 내 손에서 나는 악취와 뒤섞여 역했다. 입고 있던 옷이 나를 어루만지고 나는 몸이 쥐어뜯기는 기분을 느낀다. 따가운 조명 때문에 자꾸만 눈물이 고였다.

MC는 내가 감격해서 눈물을 머금은 줄 알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관중들은 그에 답한다. 맨 앞줄 오른쪽 구석에 수애 씨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친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자가 내게 무언가를 건넨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까무러친다.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리고 분주한 발자국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흐려지는 의식 가운데 수애 씨의 얼굴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인간 가죽이 지퍼를 내리듯 매끄럽게 아래로 벗겨지고 그 안에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밀웜 같은 하얀 실타래. 그것은 한 차례 꿈틀대다가, 나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상 받은 거 축하해요. 은진 씨. 여기 캔커피.

***

‘우웩. 그냥 아아나 사 올걸.’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를 따 한 모금 마셨다. 맹숭맹숭한 목 넘김에 되려 텁텁함이 느껴진다. 혀 끝에 남아 맴도는 꿉꿉한 맛에 괜히 마셔 입맛만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마실 거면 제가 마실래요.”

서서히 찌푸려지는 내 미간을 포착한 민수애가 내 손에서 캔을 빼냈다. 그는 단번에 캔을 비워내고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수애 씨 거 따로 사 왔는데요.”

“그럼 그것도 마시죠, 뭐.”

‘취향하곤.’

저 맛대가리 없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웃기는 인간이다. 가끔 해맑게 웃어보이는 수애 씨를 보면 저게 정말 ‘나랑 정반대의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나 수애 씨나 둘 다 귀찮은 일에는 엮이기 싫어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시민이긴 하지만 수애 씨는 뭔가… 해맑다. 그리고 감정적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고 설령 그게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수도꼭지는 마를 새가 없다. 반면 난 로봇 깡통 소리 듣는 인간이고. 그러니 나는 정말 민수애가 어떻게 이런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액션 영화에서 조금만 폭력적인 장면만 나와도 지레 눈을 감는 사람이 이런 그로테스크한 곳에선 어떻게?

“할 말 있어요?”

“아뇨.”

수애 씨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영양가 없는 잡담을 끝내고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사내 전력은 최소한으로만 유지되었고 우리가 있는 CCTV 방에만 노랗고 침침한 전등이 하나 달려 일시적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CCTV는 층마다 있는 넓은 스마트팜의 내부를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다. 생장을 촉진하는 분홍색 조명 아래에는 썩어 문드러진 녹색 가죽을 입은 마네킹들이 영안실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안치되어 있고 그들은 전부 벨트에 묶여 있다. 마네킹의 팔다리와 얼굴, 몸통에는 제각기 다양한 모양의 가지 같은 게 자라고 있다. 간혹 마네킹들은 가지의 뿌리가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묶인 신체를 한차례 움찔댔다.

나는 하품을 한다. 수애 씨도 졸린지 따라서 하품을 한다. 마네킹의 움직임에도 우린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사실, 애초에 그것들은 마네킹이 아니다. 마네킹에 자라는 것도 식물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동좀하초라고 부른다.

좀비들의 몸에 의도적으로 동충하초 균을 집어넣으면 그들은 좀비의 부패한 내장들을 파먹고 영양분을 얻는다. 그들은 좀비의 뇌를 조종하지 않는다. 대신 좀비의 팔다리를 직접 움직인다. 좀비는 저항하지 않는다. 애초에 좀비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윤리적인 문제를 따졌다면 애초부터 좀비를 비료로 삼아 작물을 재배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게다가 동충하초 균은 숙주의 몸에 화학 물질을 주입하므로 설령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 이상한 게 자란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을 터였다.

‘저거 하나에 도대체 얼마야… 저 층에 있는 거 다 팔면 강남 한복판에 집도 살 수 있겠다.’

나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적막 속의 꿈틀대는 시체들을 보는 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에게나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어느 정도 짬이 찬 회사 직원들에겐 그저 지루하고 귀찮은 일일 뿐이다. 나와 민수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좀비란 그저 돈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사실 이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여전히 도심에는 가난한 집의 가장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스스로 동좀하초 균을 주입받고 살아있는 비료가 되었다느니, 좀비 말고 인간을 비료로 삼으면 영양분이 10배가 된다느니 하는 괴담이 돌지만 R사의 연구부서에서 개발한 동좀하초 균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동좀하초가 산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귀한 보약 취급 당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좀비가 거리를 배회하고, 사람들은 좀비를 기피하며 멀찍이 떨어져 걷거나 아니면 빙 돌아서 가버린다든지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거리에선 좀비를 볼 수 없다. 나타나더라도 사람들이 잡아다가 자기 보약 해 먹으려 하지. 길바닥에 금덩어리가 나타났는데 못 본척 하고 지나갈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스르르 눈이 풀려가는데, 수애 씨가 팔을 쿡쿡 찔렀다.

“은진 씨, 이것 좀 봐봐요.”

“어디요?”

“6층 맨 끝 방이요. 여기. 불 깜빡이는 곳.”

민수애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육점처럼 불그스름한 불빛이 나오는 조명이 자꾸만 깜빡깜빡,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헤드셋을 썼다. 그도 헤드셋을 끼고 해당 방에서 실시간으로 녹음되는 소리를 켰다. 그때였다.

퉁.

“어우 깜짝이야!”

“으악!”

헤드셋에서 금속판에 부딪혀 울리는 진동 같은 게 새어 나왔다. 조명이 픽 꺼지며 CCTV가 야간모드로 녹화를 시작했다. 흑백 사진 같은 화면 속 구석진 테이블 뒤에서 무언가 구부정한 실루엣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처음에는 퇴근을 안 한 직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시간에 직원이 저기서 기어나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업무 시간에 저기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뒤늦게 이제 일어난 거라고? 아무리 좀비에 진절머리 나도록 익숙해졌다지만 상식적으로 저곳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 차라리 도둑이라면 몰라도.

… 잠깐, 도둑?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회사에서 좀비가 탈출하는 것보다 사내에 도둑이 들어 난장판을 만드는 게 더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좀비 탈출에 관한 매뉴얼 정도는 달달 외우고 사니까 차라리 좀비가 탈출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사람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전등을 챙기고 CCTV실을 나가려 했다. 수애 씨가 내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거기 가시게요? 손전등 하나 들고?”

“도둑이면 어떡해요. 가서 잡아야죠. 안 그럼 당직 선 우리가 깨질 텐데.”

“그럼 경찰 부르고 저도 같이 가요.”

나는 녹화 중인 화면을 힐끗 보았다. 민수애는 스마트폰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영상 속 의문의 사람은 30구가 넘는 동좀하초의 거름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굴, 팔, 다리, 키, 체형…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일일이 체크하며 그는 걸음을 옮긴다. 전부 다 훔쳐가긴 힘드니 그중 상태가 가장 양호한 한 구만 가져가려는 건가.

‘왜 하필 내가 당직일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귀찮게.’

속으로 불평을 터트리는데 갑자기 CCTV실의 전등과 모니터가 모조리 꺼지고 사방이 어두컴컴해졌다. 일대가 완전히 어둠 속에 휩싸인다. 정전인가? 수애 씨가 팔을 높이 뻗어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휘젓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급기야 창문까지 열어 팔을 내민 그는 한참 있다가 도로 팔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갑자기 통신이 안 잡혀요. 112도 전화 신호음이 연결되다가 받기도 전에 뚝 끊기는데요?”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대가 정전되면서 통신도 마비됐나 봐요. 그렇다고 이대로 도둑을 둘 수도 없는 거고 일단 6층에 가 봐요. 그 방에 가둬두든 뭘 하든 둘이서 가면 하나쯤은 제압할 수 있겠죠.”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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