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부츠

  • 장르: 추리/스릴러
  • 평점×5 | 분량: 178매
  • 소개: 연쇄 살인범을 쫓는 스릴러.. 더보기

분홍 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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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된 곳은 D 시의 외곽, 도심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야산의 어느 한적한 숲 속이었다. 후에 인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외진 곳이라 했다.

사체는 우연히 전원주택 용지를 물색하러 그곳을 찾은 부동산 개발 업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가 경찰에 신고한 시간이 오전 9시, 담당 지구대의 순경이 현장에 도착한 것이 9시 반이었다. 그 후 오전 10시 반경 감식반이 도착하고, 거의 동시에 담당인 중부 경찰서 강력반 조세호 형사가 파트너인 후배 강동식 형사와 현장에 도착했다.

강 형사는 산 중턱까지 난 좁은 흙길을 따라 구식 쏘나타 차량을 기듯이 몰고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중순의 산길은 얼마 전 내린 눈이 얼어붙어 군데군데 빙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조 형사는 이제 형사 생활 20년 차의 베테랑이었다. 젊었을 때는 힘깨나 쓴다고 자부했지만, 이제는 몸으로 부딪히는 일은 강 형사와 같은 후배들에게 넘길 중년의 나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강력계에서 쌓아온 경험과 연륜은 다른 젊은 형사들을 가끔 놀라게 할 만큼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두 형사는 지구대 순찰차와 감식반의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바로 뒤쪽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는 메마른 채 얼어붙은 땅의 숲길을 따라, 20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멀찍이에서 지구대 순경과 감식 반원들이 사체를 둘러싼 채 뭔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벌써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고목들이 산정을 흐르는 싸늘한 대기와 어울려 주변은 적막하기만 했다.

두 형사는 딱딱하고 메마른 숲길을 따라 현장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평소 안면이 있던 지구대 순경과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사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춥고 메마른 땅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여자의 시체는 퍼렇게 동결되어 있었다. 그런 탓에 부패의 진행도 꽤 더뎌졌는지, 버려져 방치된 사체치고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얼굴 여기저기 폭행에 의한 듯한 멍 자국과 들짐승들의 짓으로 보이는 생채기들이 몸 곳곳에 얼룩져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언뜻 보아 30대 초중반의 젊은 모습이었다. 비록 지금은 생기를 잃은 채 상처들로 훼손되고, 흙먼지를 뒤집어써 검붉은 낯빛을 띠고 있었지만 살아 있을 땐 꽤 예뻤을 듯싶었다.

한데 현장을 바라보는 일동의 눈을 미심쩍게 만드는 묘한 점은 사체 외에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아마 범인의 행동이 낳은 결과물이 틀림없을 테지만, 여자를 둘러싼 현장의 모습이 묘하게 잘 정돈된 점이었다. 여자의 사체는 알몸인 채였지만, 그 위로 여자의 외투로 보이는 긴 코트가 오롯이 덮여 있었다. 게다가 사체 밑바닥에는 여자가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털 스웨터까지 깔려 있었다. 그렇게 보면, 모양만으로 봐서는 피해자에 대한 어떤 따뜻한 배려까지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조 형사는 이 특이한 현장 모습에 불현듯 뇌리를 스치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거의 10개월 전쯤, 그러니까 올해 2월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아직 미제로 남아 있었는데, 현장의 모습이 지금 사건과 거의 흡사하다는 걸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사체 위에 덮인 피해자의 외투, 더군다나 당시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도 이 근처에서 멀지 않은 야산의 외진 곳이었다.

이렇게 두 사건의 외견상 유사점을 떠올리고 보니 동일범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것은 점차 조 형사의 마음속에서 확신의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긴장된 표정으로 사체의 이곳저곳을 살핀 감식반원이 일어나 조 형사를 향해 말했다.

“ 사인은 교살인 듯합니다. 후두부에 눌린 자국이 선명하군요. 교살 직전에 상당한 폭행을 당한 흔적도 있습니다. 성적 폭행 여부는 좀 더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만.”

조 형사는 잠시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던졌다.

“ 사망한 지는 얼마나 된 것 같습니까?”

“ 글쎄요……. 정확한 건 부검을 해봐야 하겠지만, 이런 추운 날씨에 이 정도의 부패 상태라면 제 생각으로는 한 2,3일쯤 된 것 같군요. 뭐, 전적으로 제 판단입니다만…….”

일행은 잠시 무거운 표정으로 사체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감식반원이 말을 덧붙였다. “ 아직 많이 젊어 보이는데 어떤 놈이 이런 짓을….. 쯧쯧.”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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