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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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은 갑자기 눈을 떴다.

 

짧지만 괴로운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꿈에서 망량은 왕의 아이로 태어났더랬다. 서너 해 살다 죽긴 했지만.

 

풀숲에서 그르르르륵 여치가 울었다. 나무에선 미암미암 매미가 울었다.

 

‘아이, 시끄러워. 왜들 저렇게 울지?’

 

목이 말랐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내가 굽이굽이 흘러 내려오다 고인 물이 보였다.

 

망량은 몸을 굽혀 그 물에 입을 대고 달게 마셨다. 물 위로 숲 그늘에 감싸인 푸른 하늘이 일렁였다. 폭신해 뵈는 구름 몇 점이 흘러갔다.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았다.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얼굴이 검붉고 머리카락이 긴 아이였다. 빨간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망량이 손을 뻗자 물이 출렁이더니 아이가 사라졌다.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아악 웃었다.

 

낮도, 밤도 금세 지나갔다. 시끄럽던 벌레 소리가 사라졌다. 나뭇잎들은 누렇게, 빨갛게 색을 바꾸고 떨어져 내렸다. 하늘이 넓어졌다.

 

어느 날, 희고 차가운 것들이 내려왔다. 눈송이 었다. 꿀벌만 한 눈송이들은 나뭇가지 위에 쌓이더니 암탉만큼 커졌다. 눈보라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때, 저 높은 곳에서 흰 마차가 달려갔다. 눈의 왕이 길고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위엄에 찬 모습으로 두 마리 눈의 말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낯이 익었다. 눈알이 붉은 그 아이와 어딘지 닮아 보였다.

 

망량은 힘껏 손을 흔들었다. 나무 우듬지를 타고 그를 쫓아 달렸다.

 

하지만 눈의 왕은 돌아보지 않았다. 저기 멀리로 사라져 가는 왕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망량의 눈에 저도 모를 눈물이 맺혔다.

 

겨울은 길었다. 우는 소리도, 웃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냇가로 갔다.

 

하얗고 딱딱한 얼음이 우산처럼 시내를 뒤덮었다. 얼음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아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아, 심심해.’

 

하릴없이 망량은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내려갔다.

 

어른 서너 명이 시냇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자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피부는 희고 다리는 길었다. 머리엔 털모자를 써서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망량을 보더니 외쳤다.

 

“도깨비다!”

 

어른들의 눈이 동시에 망량을 향했다. 망량은 쑥스러워 히죽 웃었다. 어른들은 곡괭이를 버리고 달려 나갔다.

 

‘왜 저러지?’

 

궁금해진 망량은 어른들을 따라 달렸다. 어른 하나가 뒤돌아보더니, 더욱 크게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망량도 으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함께 소리를 지르며 달리다 보니 어쩐지 신이 났다.

 

어른들을 따라가니 마을이 나왔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처마를 붙이고 이어져 있었다. 어른들은 집안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서둘러 뛰어갔다. 어떤 어른은 문 닫는 것도 잊고 나갔다.

 

열린 문 안에서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킁킁 대던 망량이 집 앞으로 들어갔다.

 

꿈속에서였던가. 망량은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부엌에 놓인 그릇에서 흰 밥을 한 주먹 쥐고 입안에 넣었다. 밥알은 부드럽고 달큰했다.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를 깎아 반들반들 윤을 낸 가구들마다 옷가지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바닥에 둥그렇고 납작한 것이 놓여 있었다.

 

망량이 그것을 잡아들자 눈알이 붉은 아이가 그 안에서 보였다. 아이는 흰 밥알을 잔뜩 쥐고 있었다. 망량은 자기 손을 봤다. 흰 밥알을 움켜쥔 손. 똑같이 생긴 손.

 

자신을 비추는 이것. 어슴푸레 말 하나가 떠올랐다.

 

‘거울.’

 

집집마다 거울이 있었다. 어느 집 광에서 찾은 망태에 거울 수십 개를 담아 등에 메고, 망량은 왔던 길로 갔다. 바위를 타고 숲을 넘어오던 때보다 서둘러 돌아갔다. 덜그럭, 잘그락 망태 속에서 거울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뒤따라왔다.

 

시냇가로 돌아와 망태를 열었을 때, 망량은 크게 실망했다. 거울들이 죄다 깨져 있었다. 망량은 깨진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췄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들이 자신이 본 세상과 같아질 때까지.

 

그러나 조각 난 거울에 비치는 건 조각 난 세상과 뒤섞여 조각 난 자기 얼굴뿐이었다.

 

낮과 밤이 지나갔다. 하늘은 맑아졌다 흐려졌다. 나무들은 이파리들과 꽃들을 뿜어냈다. 모든 걸 떨궜다가 다시 피워 올렸다.

 

죽어 사라졌던 벌레들은 다시 생겼다.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았다. 새끼 새들은 해마다 태어나 훌쩍 컸다. 제 어미처럼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날도 망량은 땅바닥에 배를 붙이고 거울 조각들을 맞추고 있었다. 거울 조각 속 얼굴은 늘 그렇듯 검붉었다. 눈알은 빨갰다. 변한 게 없었다.

 

산을 넘던 사람들은 망량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보기만 하면 비명을 질렀다. 망량도 함께 소리 질렀다. 변하는 게 없었다.

 

‘아아, 지루해.’

 

망량은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어쩐 일인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무언가 그리운 게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비도, 눈도 없이 바람만 몹시 불던 어느 저녁. 남쪽 하늘이 검게 그을렸다. 불이었다. 마을 쪽이었다. 망량은 망태에 깨진 거울 조각들을 담아 어깨에 둘러멨다. 날 듯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