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가득, 최고의 선물

가슴 가득, 최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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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응애! 아들 녀석이다. 시계를 보니 열시. 재운 지 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그새 깼나 보다. 아빠 젖을 물어야 잠드는 녀석이라 어쩔 수 없이 젖을 물린다. 녀석은 꼬물거리며 몇 초 빨더니 슬슬 잠이 들었다. 그래, 역시 넌 배고픈 게 아니었어. 나는 녀석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눕혀놓고 침대를 파고들었다. 아아, 졸려. 제발 잠 좀 자자고. 내가 네 공갈젖꼭지냐고.

 

응애응애! 한 놈이 운다. 1초 뒤, 또 응애응애! 다른 놈이 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그보다 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자정에서 7분이 지난 시각. 어쩌면 어제와 1분도 안 틀리고 똑같을 수가. 하지만 잠 잘 자는 딸이 깬 건 배고프다는 뜻이다. 수유쿠션을 허리에 두른 다음 딸에게 왼젖을, 아들에게는 오른젖을 물린다. 그러는 사이, 옆집,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뒤에 잦아든다. 아빠들이 쌍둥이들을 안고 젖을 먹이는 것이다. 100일째 반복되는 나의 일상.

 

졸린 눈을 부릅뜨며, 아들이 젖을 잘 빠는지 확인한다. 왼젖에 옴팡지게 달라붙어 젖을 빠는 딸과 달리, 이 녀석은 평소처럼 먹는 둥 마는 둥이다.  10분 만에 젖을 클리어하는 딸과 달리 아들은 40분이나 걸리기 때문에 계속 안고 있으면 팔에 경련이 일어난다.

 

그런 내 옆에서 아내가 쿨쿨 자는 모습이 얄미우면서도 부럽다. 하지만 애 낳느라 피곤했을 테니 내버려두기로 했다. 백일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피곤하다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아니, 무슨 이런 불만을! 산후조리를 잘 해야 둘째들도 잘 낳을 테니 하늘같은 아내를 얄미워하면 안 된다.

 

나는 괜히 아들을 탓해본다. 빨리 먹어라, 이놈아. 먹는 거냐, 노는 거냐. 내가 네 공갈젖꼭지냐. 아빠도 좀 자자고. 그리고 왼쪽에서 또 젖이 나온단 말이다. 아들이 오른젖을 빠는 사이, 딸이 수유를 마친 왼젖에서 사출반응이 다시 일어나 젖이 흐르는 중이었다. 그래서 수유쿠션이 젖고 있지만 닦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니까.

 

아들 녀석은 한 시가 다 돼서야 젖을 뱉고 잠들었다. 나도 곧바로 잠들고, 또 곧바로 깨어났다. 새벽 두 시. 아들이 또 깬 것이다. 공갈젖꼭지를, 아니 내 젖꼭지를 물린다. 아들도 잠들고 나도 잠든다. 이젠 딸도 깨고 아들도 깬다. 새벽 네 시. 어디로 갔느냐, 내 두 시간. 머리를 흔들며 잠을 털어낸 뒤 딸아이에게 왼젖을, 아들 녀석에게 오른젖을 물렸다. 수유가 끝나면 잠깐 잔 뒤 아침 수유를 하고 육아도우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출근해서 회사에서 유축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걸 낮 동안 먹일 테니까.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아니, 이미 죽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닌가 싶다. 으악! 아냐, 아냐! 애 아빠가 돼가지고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무튼,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되나 싶다. 집에 오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똥도 제대로 못 싸고 세수도 제대로 못 한다. 하지만 내 새끼들이 이뻐 죽을 것 같다. 오물오물 젖 빠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너무너무 귀엽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내 젖이 이 예쁜 아이들을 키우는 양분이 된다는 사실이 매번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래, 너희들만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면 이 아빠가 뭔들 못 하겠니.

 

다만 유선염만 안 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치밀 유방인데다 젖양이 많다 보니 수유를 마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이 줄줄 새고 툭하면 젖이 뭉쳐(말하자면 유선이 막혀서) 아프다. 이미 유선염을 몇 번 겪었기에 그 무서움을 잘 안다. 39도가 넘는 고열에, 가슴은 가만있어도 바늘로 찌르는 통증. 까딱 잘못해서 옷에 스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신경이 곤두설 정도. 해결책은 무조건 수유하거나 유축을 하는 거다. 고인 젖을 빨리 배출시켜야 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한테 분유를 먹이는 짓은 꿈도 꾸지 않는다. 부유(父乳)는 아기에게 완벽한 음식이고 아빠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니까!

 

물론 나도 뭣 모를 철부지 시절에는 분유 먹이면서 편하게 키우자고 생각했다. 내 동생들에게 젖을 물리며 초췌한 몰골로 앉아 있는 아빠를 보며 왜 저렇게까지 애를 쓰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소젖을 먹인단 말인가? 사람은 사람 젖을 먹어야지!

 

그런 생각은 부유수유진흥원에서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강연회를 다녀온 뒤 더 강해졌다. 막연히 부유가 좋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장점이 그렇게나 많은지 미처 몰랐다. 부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보다 건강하고 머리가 좋고 성격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부유수유진흥원 강사가 알려주는 가슴 기저부 마사지도 열심히 보고 따라했다.

 

마사지는 효과가 좋았다. 왜냐면 아내가 출산하기도 전부터 내 젖에서는 젖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가 출산하자, 오렌지만 하던 내 가슴은 멜론만큼 부풀어 오르며 본격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그냥 물린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방향과 각도와 타이밍이 중요했고, 초짜인 내가 혼자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 동안 나는 부유수유진흥원에서 아기들과 먹고 자며 젖 먹이는 법을 배웠다.

 

‘부유는 아기에게 가장 완벽한 음식’, ‘아빠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부유!’, ‘아빠와 아기의 유대감, 부유수유로 쌓아가세요.’ 등등의 캐치프레이즈가 사방을 가득 채운 그곳은 마치 부유수유를 훈련하는 사관학교 같은 분위기였는데, 다행히도 나는 젖도 일찍 돌았던 데다 초반부터 초유가 펑펑 나와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유축하다 보면 부유저장팩이 금방 차 버려서 얼른 새로 끼워야 할 정도였으니까. 나중엔 우리 애들 먹이고도 꽤나 남아서 부유수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부유은행에 기부하기도 했다.

 

기부는 지금도 하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빠라면 누구나 그렇다. 뭔 짓을 해도 젖이 잘 안 나오거나 유두가 함몰돼서 아이에게 젖 물리는 게 불가능한 남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애가 분유를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불쌍한가? 그래서 우리는 그런 가정을 위해 부유를 기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다함께 행복한 사회를 꾸려가기 위해 남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지 않는가? 옛날 옛적 효자 심청도 아빠를 일찍 여읜 바람에 동네 아저씨들한테서 동냥젖을 얻어먹고 컸다지 않나.

 

그렇게나 중요한 부유수유의 첫걸음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양 옆구리에 작고 연약한 아기를 하나씩 끼고 앉아 있는 것부터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데다가, 그 쪼끄만 입이 커다랗게 열리기를 기다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유두를 물려야 되는데, 말이 쉽지 막상 해 보면 잘 안 되고 애는 울어대고 진땀이 흐른다. 그냥 물리는 것도 아니고 유륜까지 깊게 물려야 내 젖꼭지도 안 아프고 애들도 공기를 안 먹는다는데 이론적인 얘기일 뿐, 그것 역시 수월치가 않았다. 어떤 남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물릴 수가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젖도 잘 안 나오는 걸 보니 자기는 아빠의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마다 울어대는 아이들을 데리고 24시간 씨름하다 보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오곤 했지만 아무도 분유를 먹이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이끌어 주신 분이 계셨으니 바로 우리의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은 나이 지긋한 어느 할아버지였다.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는데, 그와 어울리게 가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 없이 축 처진 상태였다. 그렇게 볼품없는 가슴이지만 무려 열여덟 명의 아이들을 먹였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보고 놀라지 말라고 했다. 다들 열에서 열둘 정도는 낳지 않느냐며, 자기가 조금 더 많이 키웠을 뿐이라고. 아내 분이 폐경이 늦게 와서 아이들을 많이 낳으셨고 덕분에 자긴 부유수유의 달인이 된 거라고 했다. 두 분은 정부에서 수여하는 다산가정 훈장도 받으셨단다.

 

“수유하는 게 많이 힘들죠? 이런 소리 하면 꼰대라고 욕하겠지만, 사실 그거 요즘 남자들이 힘든 걸 모르고 커서 그래요. 나 때는 말이에요. 하루 종일 밭 갈고 김매면서 허리 펼 새 없이 일만 하다 아기 젖 먹일 시간 되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고요? 애가 젖을 빠는 동안 난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쉴 수가 있었거든요.”

 

존경스러웠다. 이 힘든 부유수유가 기다려질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고된 삶을 사셨단 말인가? 하루 종일 밭일 논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상상이 되지가 않았다. 종일 일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힘들어 죽겠다고 죽는 소리 하지만, 사무직이라 앉아서 일을 하니까 엉덩이에 땀 차는 게 불만이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시겠지?

 

그나저나 옛말에 ‘밭 맬래? 애 볼래?’ 하고 물으면 다들 밭 맨다고 대답한다지 않나? 솔직한 심정으론 나도 그렇다. 월요일이 돌아와서 출근할 때면 마음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주말 내내 애들 젖 먹이는 게 너무 힘이 드니까. 특히나 내 젖꼭지를 장난감 내지는 수면제 취급하는 아들놈 때문에 미치고 환장…… 앗! 내가 이런 불경스런 생각을! 신성한 부유수유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거다. 그래서 그냥 유축해서 먹일까도 생각해 봤는데 유축시간을 따로 확보해야 하고 젖병이랑 유축기 깔때기 씻어야 될 것도 늘어나니까 그게 더 귀찮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난 사무직이라 다행이다. 유축할 때 편하니까. 회사에 유축실도 잘 돼 있고, 유축기 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라 불리는, 웬만한 월급쟁이들의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메델라 심포니도 여러 대 비치돼 있다. 회사 돈으로 산 건 아니고 정부에서 지원해준 거긴 하지만. 유축하고 나면 부유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반은 부유은행으로 보내고 반은 집에 잘 들고 가면 된다. 그럼 나와 아내가 출근한 동안 육아도우미 아저씨가 데워서 아이들한테 먹여준다.

 

아내는 보험 영업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외근을 나가는데 아마 나랑 입장이 바뀌었으면 외근 스케줄이랑 유축 스케줄이 겹칠 때 여간 곤란한 게 아닐 터였다. 공공장소에 마련된 유축실은 유축기 고장도 잦고 비위생적이니까. 하긴 그래서 영업직을 여자들이 하는지도 모르지.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뭐, 임신 후기부터는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하긴 하더라만, 그 몇 달만 버티면 애 낳으면서 고생 끝 아닌가? 남자는 애들 클 때까지 부유 먹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영양분이 쭉쭉 빠져나가는데. 내가 이 소리 하면 아내가 ‘여자도 임신하면 잠 잘 못 자고 영양분 빠져나가거든? 회음부도 안 찢어져본 주제에!’ 하고 소리를 꽥 지른다. 그럼 난 찍소리 못 하고 쪼그라들고 만다. 회음부가 찢어져본 적이 없기에. 그러는 당신은 젖꼭지가 찢어져본 적 있냐고 맞서고 싶지만 어디서 하늘같은 아내한테 말대꾸냐고 주먹이 날아올까 봐 가만히 있는다.

 

아무튼, 회사에서 유축과 근무를 반복하다 퇴근해도 그게 퇴근이 아니다. 애들 젖 주러 집으로 출근하는 거다. 이렇게나 고달픈 생활이지만 맞벌이는 필수다. 우리 사장님 정도는 돼야 애만 낳아놓고 유부(乳父)를 들여 편하게 키울 수 있는 거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그런 생활을 꿈도 못 꾼다. 당장 우리만 해도, 내가 지금 몇 시간 간격으로 수유하니까 부부관계 할 기력이 없어서 망정이지, 애들 크면서 수유횟수가 줄어들면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될 거고 (남자들은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생각이 난다니까) 자연스레 임신이 될 거다. 그럼 또 쌍둥이들이 태어나겠지. 난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유하느라 파김치가 될 거고, 내 젖꼭지는 너덜너덜 누더기가 될 거고. 아아, 사장님 남편이 부럽다. 유부한테 애들 맡겨놓고 골프 치러 다닌다지? 우리도 그렇게 돈을 벌어 유부를 고용할 수 있을까? 그럼 이 지긋지긋한 젖뭉침과 유선염은 안녕일 텐데.

 

월요일 아침, 내가 이런 얘길 했더니 탕비실에서 만난 우리 팀 김 과장이 혀를 쯧쯧 찼다. 아차, 실수했다. 어떻게 애 아빠가 돼가지고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얼마나 부성애가 모자라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일까? 나 자신을 꾸짖는데 김 과장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됐다는 거다. 무슨 전제? 김 과장이 말하기를, 애를 자꾸 낳는 게 문제의 시작이라는 거다. 아니, 이런 망언이 있나? 애를 자꾸자꾸 낳는 게 우리 사회의 미덕이거늘!

 

내가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리자(누가 우리 얘길 들었을까 봐, 다행히 우리가 부유촉진차를 홀짝거리던 탕비실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김 과장이 뜬금없이 하는 말이, 우리 사장님은 부자 축에도 못 낀다는 거였다.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애를 안 낳는다나?

 

못 낳는 게 아니라 안 낳는 거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김 과장은 자기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부장한테 들은 얘기라며, 이 부장은 또 박 상무한테 들었고 박 상무는 우리 사장님한테 들은 얘기라고 했다.

 

아니 글쎄, 사장님이 이번에 황천동 근처 청천동으로 이사를 가서 황천동을 슬슬 돌아다녀봤는데 그 동네는 절간 같더라는 거였다. 아기 울음소리가 전혀 안 들리더라고. 황천동이 어딘가? 난다 긴다 한다는 재벌들, 전현직 국회의원들, 고위공무원들, 전직 대통령들이 사는 곳 아닌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저택들과 아름다운 조경과 깨끗한 거리로 소문난, 공기부터가 격이 다르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말이다.

 

더 이상한 게 뭔지 아냐고 김 과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 동네에는 결혼한 사람도 없다는 거였다. 죄다 혼자 사는 여자뿐이라고. 동네가 조용한 게 하도 이상해서 우리 사장님이 시간 날 때마다 그 동네를 서성였는데 어째 그 대궐 같은 집마다 들락거리는 사람이 딱 한 명씩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사람 사는 동네에 아기가 없다니?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정부에서는 왜 그들에게 결혼하라고 하지 않은 걸까? 그들은 정부의 경고장를 받고도 그 엄청난 벌금을 물고 혼자 사는 걸까? 돈과 권력이 넘쳐나니까? 역시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해할 수 없고 발도 디딜 수 없는 세계였다.

 

베일에 싸인 그들만의 삶이 한층 궁금해졌지만 이런 식이 아니면 주워들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인터넷에는 우리 같은 서민들 얘기만 올라오지 부유층 얘기는 안 올라오니까. 말 그대로 딴 세상 사람들인 것이다.

 

그때, 김 과장이 내 귀를 잡아당겼다.

 

“아야! 왜 이러세요?”

 

내 짜증에도 불구하고 김 과장은 태연히 귓가에 속삭였다.

 

“제일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사실 나도 궁금해서 가 봤거든. 근데 거기서 누굴 만났는지 맞춰 봐.”

 

김 과장은 황천동에서, 작년에 실종된 우리 팀 신입사원 정새롬 씨를 만났다고 했다. 두 눈이 커졌다. 남자 사원들의 우상이었던 그 미모의 정새롬 씨? 3년 전에 내 초등학교 동창 강민경이, 또 재작년에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유나/유노 어머니가 실종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들은 아무 단서도 찾지 못 했고, 때문에 수많은 남자 사원들이 정새롬 씨를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웃긴 건, 자기가 정새롬이 아니라는 거야. 사람 잘못 봤다고. 얼굴도 목소리도 그대론데, 진짜 정새롬 씨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뭐야, 그럼 그냥 닮은 사람이었겠지. 김 과장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작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머리가 깨지더니 그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릴 한다. 그 전까진 아이들이 너무 좋고 아이들한테 젖 먹이는 것보다 보람찬 일은 없을 거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던 사람이 이런 소릴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최 대리, 부유수유 언제까지 할 거야?”

 

“당연히 세 돌까진 해야죠. 국제보건기구에서 그랬잖아요. 부유는 아빠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보통은 ‘그래, 그래.’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김 과장은 떨떠름해하는 표정으로 반 박자 늦게 답했다.

 

“뭐어, 그렇긴 하지만, 둘째들 태어나면 넷 다 먹여야 될 수도 있는데?”

 

“힘들어도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왜요, 과장님은 그만 먹이시려고요?”

 

“음, 너무 힘들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런 생각만 자꾸 들어서. 그냥 분유 먹여볼까 하고.”

 

“분유를요? 부유은행에 신청하면 공짜로 주는데 왜 굳이.”

 

“의학적인 이유가 아니라서 안 준다더라고.”

 

순간, 김 과장의 네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다. 특히나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둘째들이. 부성애가 모자라는 아빠 때문에 그 어린 것들이 분유를 먹어야 하다니. 나중에 커서 얼마나 머리가 나빠지고 잔병치레를 하고 성격도 고약해질까? 혹시 김 과장도 분유를 먹고 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이상해진 게 설명이 안 된다.

 

그때, 김 과장의 와이셔츠에 두 개의 어두운 동그라미가 퍼져가는 게 보였다. 젖이 새서 옷이 젖은 것이다. 수유패드를 안 했냐고 물으니 저번에 수유패드에서 나온 화학물질이 신경 쓰여서 안 한다고 했다. 애들이 먹을까 봐 걱정된다고. 흠, 저런 걸 보면 또 부성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참 헷갈린다.

 

어쨌든 나도 그 뉴스를 보고 일회용수유패드가 아니라 천 수유패드를 쓰던 참이었다. 그런데 김 과장이 내 가슴을 가리키며 젖이 샌다고 했다. 이런 젠장, 오늘만 도대체 몇 번째야? 또 갈아입어야겠네. 뭔 놈의 젖이 이렇게 콸콸…… 아니, 아니, 내 신성한 가슴과 부유를 욕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빨랫감이 느는 게 싫은 거지.

 

김 과장과 유축실로 가서 유축을 했다. 그런데 김 과장이 양 가슴에 깔때기를 하나씩 갖다 대며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시발, 이럴 때마다 뭔 젖소가 된 것 같다니까. 짜도 짜도 끝이 없어.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으라고.”

 

헉! 어떻게 저런 말을! 머리가 잘못돼도 정말 단단히 잘못된 모양이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뚫어져라 쳐다보자 김 과장이 피식 웃었다.

 

“왜, 최 대리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가 젖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고 유축한 젖을 우리 아이들에게 먹이기 싫었다. 부정 탈 것 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의 모범시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모범적인 답변을 내놨다.

 

“전 고맙기만 한 걸요. 젖이 이렇게 잘 나오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우리 애들 젖동냥 시키느라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애들도 불쌍하고.”

 

김 과장을 은근히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잘 크면 되지, 뭐가 불쌍해. 분유에도 영양분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무식한 인간을 봤나. 분유 먹는 애들이 얼마나 잘못 크는지는 널리 알려진 상식인데. 분유 자체가 인간에게 안 맞기도 하지만, 소한테서 그 젖을 짜내려고 호르몬 주사를 놓질 않나, 비위생적인 축사에서 돌림병이 자주 도니 항생제를 자꾸 쓰질 않나, 그런 것도 문제 아닌가? 뭣보다도, 해괴한 말을 자꾸 하는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누가 보면 내가 김 과장과 같은 부류인 줄 알 것 아닌가. 아무래도 김 과장과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유축실에서는 이 부장과 박 상무도 유축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따로 마련된 임원용 유축실을 쓰고 있었다. ‘아랫것’들과 마주 보고 앉은 상태로 가슴을 드러내고 유축하기란 서로 민망한 일일 테니까. 부장이나 상무 정도 되는 자가 과장이나 대리보다 가슴도 작고 젖 양도 적으면 그 얼마나 모양 빠지는 일인가. 풍만한 가슴과 넘치는 젖은 남성성과 부성애의 상징 아닌가.

 

칸막이가 천장까지 닿아 있었지만 두 사람 말소리가 다 들려왔다. 사장님이 산행을 기획하고 있다는 거였다. 직원 단합을 위해서 이번 토요일에 근처 관악산에 다 같이 가보자고 한다고. 김 과장과 나는 마뜩찮아 하는 눈빛을 나누며 속으로 불평불만을 고시랑거렸다. 아니, 사장님이야 남편이랑 유부가 애를 보니까 주말에 심심하고 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몇 시간 간격으로 젖을 물리든가 유축을 하지 않으면 다들 젖이 뭉쳐 난리가 날 텐데. 거기다 아내들은 우리 속도 모르고, 애 아빠가 애 안 보고 어디 가냐고 독박육아 하게 생겼다며 얼마나 바가지를 긁어댈까? 가장 큰 문제는 등산로에 마련된 유축실이다. 뻔한 거 아닌가? 개나 소나 쓰는 낡아빠진 유축기, 깨끗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그리고 유축한 부유는 어떻게 들고 다니라고?

 

하지만 직원들의 불만어린 표정이 사장님한테는 안 보인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주 토요일, 다 함께 관악산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산을 오르는 내내, 어린 시절에 태권도 학원 사범님을 따라 남산을 억지로 올라가며 힘들다고 징징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었다. 수시로 유축할 필요도 없었고, 사범님이 유축하는 동안 우린 쉴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필 요 며칠 아들 녀석이 젖 빠는 게 시원찮다 싶더니만 어김없이 오른젖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별히 하는 게 없어도 아픈데 집에서 챙겨온 유축기와 부속품과 부유저장팩과 보냉팩을 짊어진 채로 산을 오르니 더 아프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축된 부유 양이 늘어나니 배낭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진 것도 한 몫 했다. 등산 내내 마신 물이 젖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 먹일 것만 남겨두고 부유은행에 기부할 건 그냥 버릴까 하다가 다들 잘 챙기기에 눈치가 보여 보냉팩에 다 집어넣었다. 유축기는 등산로에 비치된 유축기가 못 미더워 들고 온 건데 너무 무거워서 몇 번이나 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 애들한테 그런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유축기로 유축한 젖을 먹일 수는 없었다. 성능이 떨어지는 유축기라면 젖뭉침이 더 심해질 지도 모르고.

 

그런데 막상 등산로 유축실에 들어가 보니 유축기가 메델라 심포니였다. 정부에서 부유수유 장려사업에 돈 깨나 쓴다더니 진짜인 모양이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아무래도 위생이 신경 쓰여 집에서 가져온 걸로 유축했다. 나 말고도 유축 스케줄이 돌아온 직원들이 많아서 함께 앉아 유축하며 소곤대는 목소리로 사장을 흉봤다. 사장은 이미 여자 직원들과 함께 정상에 올라가 있어 우리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지만.

 

유축이 끝나고 다시 산을 오르는데 한 시간 뒤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유축한 게 뭐가 잘못됐는지 젖이 오히려 더 뭉치고 아픈 것이었다. 심지어 오한이 느껴지며 열까지 나고 있었다. 안 돼! 이 빌어먹을 유선염이 또 오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가능한 빨리 젖을 짜내야 했다.

 

나는 동료들에게 먼저 가라 이른 뒤 가장 가까운 유축실로 달려 들어가 유축 강도를 최대로 높여 젖을 짜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유축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다. 생전 처음 와 보는 험준하고 깊은 산속에서 홀로 유축하는 그 외로움을 도대체 무엇으로 달래야 할까?

 

아니 그런데 이런 일이? 너무 무리해서 짰는지 유두에 물집이 잡히며 껍질이 까지더니 피가 맺혀 버렸다. 이러면 애들한테 물릴 때 비명 나올 정도로 아픈데. 이걸 어떡하나. 어떡하나.

 

바보같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얼른 유방내과를 찾아가자는 생각에 유축하던 걸 부랴부랴 정리하고 유축실을 뛰쳐나갔다. 순간, 돌부리에 발이 걸리며 대(大)자로 엎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며 턱을 심하게 박았다. 뒤통수까지 얼얼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어느 컴컴한 움막 안이었다. 아주 희미한 조명만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는데 마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처럼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웬만한 집기들은 자연에서 조달한 재료들로 직접 만든 것 같았고, 사람도 원시인처럼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엥? 사람이라고?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살결이 까무잡잡한 어느 남자였다. 아니, 여자였나? 헷갈렸다. 수염을 보면 남자가 분명한데 다 벗어젖힌 웃통에 가슴이 납작하지 않은가! 혹시 유방암에 걸려 절제수술이라도 받은 걸까? 하지만 수술 자국이 없는데?

 

그는 내가 눈 뜬 것을 보더니 마음이 놓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치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난 곳을 돌아보니, 남자가 커다란 항아리 안의 허연 액체에 기다랗고 벌건 막대 같은 것을 담가 놓아서 그런 것이었다. 물방울이 보글거리고 수증기가 펄펄 올라오며 막대 색깔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니 불에 달군 쇠꼬챙이인 모양이었다.

 

남자가 투박한 나무 사발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액체를 담아왔다.

 

“마셔 봐요, 젖몸살에 특효니까.”

 

“뭔데요?”

 

“막걸리요, 데운 막걸리. 이거 마신 다음 이불 뒤집어쓰고 한숨 자면서 땀을 쫙 빼면 씻은 듯이 나을 거예요.”

 

이게 다 무슨 소리? 젖몸살, 즉 유선염이면 소염진통제랑 항생제를 먹어야지 웬 막걸리? 거기다 술을 마시면 부유에 알코올이 섞여 나오는데 애들한테 어떻게 먹이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낯선 사람에게서 먹을 것을 대접받고 있다. 그런 건 안 먹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건 유치원생도 안다.

 

남자는 내 심리를 눈치 챘는지 보란 듯이 사발을 가져가더니 꿀꺽꿀꺽 소리도 우렁차게 막걸리를 들이켰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서 남자가 저렇게 술을? 부유수유는 어떻게 하려고. 아 참, 가슴이 없어서 못 하나? 아님, 아직 결혼을 안 한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가 조신하질 못 하고…….

 

내가 속으로 혀를 쯧쯧 차는데, 캬아, 소리를 내던 남자가 수염에 묻은 막걸리를 문질러 닦더니 자신이 마시던 그 사발에 다시 막걸리를 떠 왔다. 가만, 보아하니 세수도 양치질도 안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지금 사발을 같이 쓰자는 건가? 남자는 또 한 번 내 심리를 눈치 챘는지 막걸리를 재차 마셔버리고는 새로운 사발에 막걸리를 떠 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하지만, 부유수유 중이라서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머리가 아찔해지며 주저앉고 말았다. 고열 때문에 현기증이 일어난 것이다.

 

“어두워서 지금 내려가면 위험해요.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안심해도 돼요.”

 

우리? 누가 더 있단 말인가? 내 질문에 답하듯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저 무슨 소쿠리라고 생각한 어느 물건에 아기가 뉘여 있었다. 그때, 저쪽 구석에서 지저분한 거적을 들어 올리며 웬 사람이 일어났다. 여자였다. 아니, 남자였나? 얼굴이 수염 없이 매끈한 걸 보니 여자는 맞는데 가슴이 왜 남자처럼 봉긋할까? 더욱 놀라운 것은 여자가 아이를 안더니 옷을 풀고 자신의 젖을 물리는 것이었다!

 

내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여자와 아이를 쳐다보자 남자가 헛기침했다.

 

“거 너무 빤히 보는 거 아닙니까? 남의 마누라 가슴을.”

 

그렇다면 저 남자가 남자가 맞고 저 여자가 여자가 맞다는 건데 어떻게 여자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걸까? 그리고 맘에 걸리는 것은 아이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아이는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아아, 가엾게도…….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른 체 해야 할지 망설이는 한편 여전히 여자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으니 남자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신기해하는 건 알겠는데 그만 좀 보라고요.”

 

나는 그제야 시선을 떨구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지…….”

 

“꿈 아녜요. 진실이죠.”

 

“진실?”

 

남자가 느긋한 동작으로 내 옆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 다 속고 있는 겁니다.”

 

“속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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