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었다

  • 장르: 호러
  • 태그: #숨바꼭질
  • 분량: 122매
  • 소개: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여얼 더보기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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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지막 환자입니다.”

 

간호사가 나가자 곽성호 박사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눈을 약간 길게 감았다 뜬 다음, 과장되지 않은 미소를 띄며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모친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로 들어오는 임미진 환자가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굳이 심리학 박사 학위나 정신의학과 전문의 자격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안 감은 지 사나흘은 되어 보이는 단발머리가 풀썩풀썩 흔들릴 정도로 쉴 새 없이 고개를 이리저리로 돌렸고, 흰 부분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핏발이 선 눈동자는 단 일 초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 같은 딸을 의자에 앉히고 그 옆에 자리 잡으며 부인이 대신 인사를 건넸다.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품위 있는 의상, 그리고 명품 핸드백으로 미루어 보아 대단한 재력가는 아니더라도 형편이 궁색한 가정은 아닐 듯 했다.

 

덥고 습한 한여름에 재킷까지 차려 입은 점, 그것도 육십대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다고 할 수 있는 바지 정장을 입은 모습은 그가 남들의 이목과 체면에 신경을 써야하는 위치에 있는 자주적인 성격이 강한 인물임을 짐작케 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딸인 임미진 환자는 검은 민소매 티셔츠에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이었다. 트레이닝복 바지가 무릎까지 접어 올려져 있어서 드러난 오른쪽 다리가 성호의 책상 모서리에서 달달 떨고 있었다. 무릎과 복숭아뼈 그리고 가냘픈 팔에도 몇 군데 오래된 피멍 자국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성호는 펜을 들어 상담일지에 ‘가정폭력?’이라고 적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는 병원 내 젊은 세대 답지 않게 뭐가 됐든 종이에 먼저 적었다가 컴퓨터에 다시 옮기는 편을 선호했다. 동기들은 시간 낭비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를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는 것 보다는 사각사각 손글씨를 쓰는 편이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주고 신뢰감을 상승시킨다는 믿음도 있었다.

 

“딸애가 갑자기… 후우.”

 

부인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자기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이렇게 겁에 질려서 벌벌 떨기만 해요. 이런 적 없이 멀쩡하….”

 

“으으으으!”

 

미진이 신음을 흘리며 모친의 품에 파고들었다. 스물두 살 아가씨의 행동으로 보기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모녀간에 나이차가 많은 편이었다. 요즘엔 마흔 넘어서 출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십 년 전으로 치면 늦둥이로 불렸을 것이다.

 

“죄송해요. 이것 좀….”

 

부인이 부들부들 떠는 딸을 토닥이며 책상 위에서 느리게 진자 운동을 하고 있는 커다란 은색 구슬을 가리켰다.

 

“이것 좀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은색 구슬 장식품을 책상 맨 아래의 키 높은 서랍에 넣고 나서야 환자의 발작적인 진저리가 다소 가라앉았다.

 

사각사각. ‘금속 둔기로 폭행?’ 성호가 메모를 추가했다.

 

“아, 얘가….”

 

성호의 시선을 받은 부인이 입을 열었다.

 

“얘가 반사되는 물건만 보면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요. 거울이든, 냉장고 문이든, 심지어는 숟가락까지도요.”

 

“증상이 갑자기 시작됐다고 하셨죠? 언제부터였나요?”

 

사각사각. ‘Eisoptrophobia?’ 아이솝트로포비아는 거울공포증을 가리킨다.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공포증이다.

 

“얘가 얼마 전에….”

 

부인은 문장을 한 번씩 끊어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강박.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인이나 자녀에 대한 통제욕도 강하다.

 

“그러니까 이 주 전에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사고가 있었거든요.”

 

“사고요? 어떤… 교통사고?”

 

이제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공황장애와 마찬가지로 공포증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을 수도 있지만, 뭔가 원인이 될 만한 상황을 파악하면 당연히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게 이 아이가….”

 

예상대로 문장은 또 끊겼고, 성호는 계속 이야기하시라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릴적 친구들끼리 양양으로 놀러 갔는데, 한 아이가 절벽에서 추락해서 그만….”

 

“아아아악!”

 

그 순간 미진이 다시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 앉아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방팔방으로 고개를 휙휙 돌렸다. 사고 당시에 대한 이야기가 트리거로 작용한 듯 했다. 환자의 증상이 그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당장은 상담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미진아, 진정 좀 해. 대체 왜 이러니?”

 

딸의 팔을 붙잡는 부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짜증이 비슷한 비율로 뒤섞여 있었다.

 

“상태가 많이 심각하군요. 우선을 자극이 될 만한 요소들, 그러니까 반사되는 물건들을 최대한 감추시고, 환자 앞에서는 사고 얘기도 삼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성호는 시계를 흘깃 봤다. 오늘따라 오후내 몰려든 외래 환자 탓에 퇴근 시간은 한참 지났고, 약속 시간도 임박했다. 펜을 내려놓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일단 신경안정제 처방 해드릴게요. 이거 드시고, 추이를 지켜 본 다음에 입원 치료를….”

 

“입원은 안 됩니다.”

 

부인의 단호한 선언에 처방전을 입력하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원 입원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네, 물론 통원 치료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타닥타닥. 다시 처방전에 타이핑을 시작했다.

 

“처방해드리는 약 드시고, 상황을 보시죠. 수면유도제도 같이 넣어 드릴게요. 지금은 대화가 불가능하니 다음에 상담치료를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시면 간호사 선생님이 처방전 드리고 다음 진료 예약도 도와드릴 겁니다.”

 

성호는 친절한 표정을 입은 채 모녀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미진은 모친의 팔에 매달려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슬리퍼를 끌었다. 마치 모든 것을 보지 않기 위해 모든 곳을 보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문을 닫은 성호는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진료 차트는 내일 정리하는 게 낫겠군. 주식과 메신저 등등 열려있던 프로그램들을 닫고 컴퓨터를 종료했다. 가운을 벗어 책상 옆 옷걸이에 걸었는데, 누군가 노크를 했다. 마지막 환자라고 하지 않았나?

 

“예?”

 

멋진 코트를 입은 훤칠한 키의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튀지 않는 고급스러운 톤의 주황색 코트가 예쁘긴 했지만, 푹푹찌는 한여름에 코트라니 정말 스타일 최우선주의가 어지간하다 싶었다.

 

여자는 과학수사대에 있는 의대 동기의 소개로 알게 된 서울 지방 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신혜인 경감이다.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고백했다가 대차게 까이고 의대 동기에게 큰 비웃음을 받았다. 너는 정신과 의사라는 놈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냐. 혜인이 여자 좋아해. 그 후로도 가끔 어울리긴 하는데, 틈만 나면 놀림을 받고 있다.

 

“혜인이 네가 어쩐 일이냐?”

 

“방금 다녀간 환자에 대해 얘기 좀 할까 해서.”

 

“신혜인 경감님, 환자에 대한 정보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호가 단칼에 잘라내듯 대답했지만, 혜인은 못들은 척 코트를 뒤로 펄럭 넘기고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고개를 갸웃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봐도, 혜인은 고집스런 눈빛으로 맞받고는 턱짓으로 성호에게도 착석을 권했다.

 

“아니, 잘 알면서 왜….”

 

“연기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뭐?”

 

혜인은 성호가 의자에 앉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

 

“임미진 씨 배우였어? 예쁘다고 생각은 했는데, 내가 티비를 잘 안 봐서.”

 

“아니. 그건 아니고 현대무용 쪽에서 상당히 유명하다고 하더라. 아까 함께 왔던 엄마도 무용학과 교수에, 입김이 세다고 들었어. 아빠쪽은 대기업 간부래.”

 

갑부까지는 아니어도 여유있는 집안일 거라는 성호의 생각이 맞았다.

 

“연기를 의심하는 이유라도 있어? 무용도 연기력이 필요하겠지만, 아까 내가 본 것이 연기였다면 당장 여우주연상을 줘도 되겠던데.”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던 성호가 농담조로 대꾸했는데, 혜인은 예의상으로 웃는 척도 하지 않았다.

 

“다섯 명이 여행을 갔다가 세 명이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했어. 생존한 두 명은 임미진 씨처럼 증언이 불가능한 상태고. 겉보기에는.”

 

“한 명이 아니었군. 그런데, 겉보기에는… 이라고?”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건 네 전공 아냐? 나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중시하거든.”

 

“눈에 보이는 걸 의심하는 게 중시하는 방법인가?”

 

그제야 혜인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냉소에 가까웠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니까.”

 

“사물은 진실만을 말하나?”

 

“증거를 조작하는 것 역시 사람이야.”

 

“어쨌든 생존자 두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는 거군.”

 

“용의점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두자.”

 

성호는 임미진 환자의 거울공포증을 떠올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증상은 죄책감이 원인일 수 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기의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당시 상황이 떠오르기 때문에 공포심과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까 보호자는….

 

“사고였다고 하던데?”

 

혜인은 성호의 표정에서 그가 뭔가 의심가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사실을 읽어냈다.

 

“사고라… 사망자 셋 중 하나는 해안가 절벽에서 추락했지. 거기까지는 사고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어. 하지만 다른 한 명은 흉기에 목을 찔렸고, 나머지 한 명은 교살을 당한 채로 지하실에 갇혀 있었어.”

 

“뭐라고? 그렇다면 명백한 살인 사건 아니야? 그런 사람을 저렇게 돌아다니게 해도 되는 거야?”

 

“증거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두번째 사망자를 찌른 흉기에는 세번째 사망자의 지문만 묻어있고, 세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지하실은 안에서 잠겨 있었어.”

 

“밀실… 이네.”

 

혜인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곧장 밀실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니 추리소설 깨나 읽으셨나 봐? 닥터 왓슨, 나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보지 않겠어?”

 

소설 보다는 김전일, 코난 등의 만화책을 더 읽었지만,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겠지.

 

“네가 셜록 홈즈라도 된다는 건가?”

 

“에놀라.”

 

혜인은 실망한 티를 감추지 않고 쯧, 하는 소리를 덧붙이며 짧게 대꾸했다. 성호는 나중에 검색을 해보고서야 에놀라 홈즈가 셜록의 여자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혜인의 고집스러운 눈썹이 뭔가를 듣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며, 자신의 뱃속에서 여전히 혜인의 호감을 얻고 싶다는 원시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깨달은 성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포비아라고 알지?”

 

“그럼. 온갖 혐오 역시 내가 뿌리 뽑아야 할 범죄야.”

 

“그런 종류의, 그러니까, 무식에서 비롯된 혐오를 뜻하는 포비아는 그나마 교육을 통해서 상식적인 수준으로 개선이 가능하긴 한데. 고전적인 의미의 포비아는 공포증을 뜻해. 특정 대상에 대해 강박적이고 비정상적인 공포심과 두려움을 겪는 걸 가리켜.”

 

혜인이 이제 슬슬 본론을 말하라는 뜻을 담아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거울공포증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보이는데, 많은 경우에 자기혐오 혹은 죄책감과 결부되어 있지.”

 

혜인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정말이지 환자의 개인 정보에 대해 말씀하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수사에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뭔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연락 주세요.”

 

혜인은 손가락 두 개를 오른 눈썹께에 갖다 대며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119 신고를 한 것은 임미진이었다. 또 한 명의 생존자인 김서현의 양양 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구급대와 경찰이 함께 출동했다. 그들이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발견한 것은 목에 깊은 자상을 입고 누워 있는 두 번째 사망자였다.

 

정신이 나간 듯한 상태로 부들부들 떨며 껴안고 있던 임미진과 김서현의 옆에 살인 무기인 부엌칼이 놓여 있었다. 피묻은 지문이 확실하게 찍혀있는 흉기를 증거품으로 수집하고 두 사람을 용의자로 체포하려던 경찰에게 임미진이 상처투성이의 손으로 한쪽 바닥을 가리켰다.

 

마루 바닥을 살펴보니 시체의 목에서 쏟아져 나온 피가 흘러들어간 곳에 지하실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다. 가뜩이나 처음으로 접한 시체에 머리가 띵할 정도로 긴장한 젊은 경찰이 달달 떨리는 손가락을 방아쇠에 건 리볼버를 움켜쥐고 왼손을 바닥문의 홈에 끼워넣어 힘을 써봤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가져온 장도리로 한참 용을 쓴 후에야 안쪽에서 잠겨있던 문이 빠각하고 깨지며 열렸다. 어두운 계단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면서 손전등을 찾아 허리춤을 더듬던 젊은 경찰은 엄마야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문 바로 아래, 계단 꼭대기에 허연 얼굴이 핏발이 선 두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세번째 사망자였다. 시체를 끌어올려 살피니 가느다란 줄이 여러 겹 목에 감겨 교살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둘에 앞서 해안가 절벽에서 추락한 첫번째 사망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신경쇠약에 걸렸거나 환각을 보는 것처럼 행동하던 두 생존자를 파출소로 데려가서 어르고 달래며 조서를 쓰던 도중이었다. 밤바다에서 첫번째 사망자의 시체를 회수하자마자 서울에서 두 생존자의 부자 부모들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변호사의 주장으로는 첫번째 사망은 명백한 사고였고, 두번째 사망의 범인은 칼자루에 지장을 찍은 듯이 지문을 남긴 세번째 사망자였다. 그리고 그 세번째 사망자는 안쪽에서 걸쇠로 잠긴 밀실에서 죽었다. 그는 오히려 지하실에 숨어있던 제 3의 범인을 경찰이 허둥대다 놓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했다. 그리고는 모두 함께 도망치듯 서울로 가버렸다.

 

여기까지가 혜인이 건네받은 사건의 개요였다. 생존자 중 김서현은 현역 국회의원의 딸이어서 아버지의 두터운 보호막 안으로 숨어들어버렸다. 파트너인 김형사를 그쪽에 붙여놨는데, 며칠째 머리카락도 못 봤다고 한다.

 

혜인은 또 다른 생존자 임미진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거울공포증을 겪고 있다는 단서를 얻었다. 끔찍한 살인들을 저지른 자신의 얼굴이 자기가 보기에도 무서울 게다.

 

“근데 선배, 그 밀실은 어떻게 된 걸까요?”

 

김형사의 질문에 혜인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건 대단한 트릭도 아니야. 목에 피아노 줄을 감은 다음 위협하며 지하 계단 아래로 내려가라고 시켰겠지. 안에서 문도 걸어 잠그라고 시켰을 거야. 그리곤 목을 졸라서 죽이고 문틈으로 피아노 줄을 빼내면, 너 같은 애들이 밀실 미스터리라고 범인을 풀어주게 되는 거야.”

 

“그럼 칼에 묻은 지문은요?”

 

“물론 세번째 사망자가 두번째 살인의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 하지만 밀실 트릭까지 계획하면서 살인을 하는 자들이라면 지문을 조작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않아?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첫번째 사망도 사고가 맞는지 의심의 여지가 남고.”

 

“전부 추정일 뿐이고 증거는 하나도 없잖아요.”

 

“잠긴 지하실에서 목졸려 죽은 게 말이 되니? 끈도 발견되지 않았잖아. 증거가 없다는 점이 바로 증거야.”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네가 뭔들 잘 알겠니. 다섯 친구들 통신 내역은?”

 

김형사는 입을 삐죽이며 마우스를 쥐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도착했네요. 어디히 보자하.”

 

“거 영감처럼 이상한 멜로디로 말하는 버릇 좀 고쳐라.”

 

“여행을 앞두고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어요. 문자나 톡은 없고, 음성 통화만 했네요. 요즘 세대답지 않네. 저처럼 젊은 사람은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하거든요. 통화하려면 괜히 긴장도 되고 해서.”

 

“젊은 사람 앞에 안 어울리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저처럼? 아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어?”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휠을 굴리던 김형사의 손이 멈추었다. 등을 굽혀 모니터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니 안 그래도 고릴라 같은 인상이 더욱 강조되었다.

 

“왜 그래? 뭐 있어?”

 

“여행 전날에 다들 같은 문자를 받았네요. 근데 발신자 정보가 없네? 이런 건 처음 봐요.”

 

“문자 내용은 뭔데?”

 

김형사가 모니터에서 얼굴을 떼고 혜인과 눈을 맞추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숨었다.”

 

“뭐?”

 

“문자 내용이 이거예요. 숨었다. 딱 세 글자.”

 

그 문자 이후로 다섯 친구들은 통화를 시작했다. 문자를 계기로 연락을 했고, 여행도 가게 되었다는 의미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다섯 명 중 하나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인물? 숨었다라니, 누군가와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문자에 대해서 물어 봐야겠다. 너는 다시 김서현 집에 가 봐. 나는 임미진한테 갈게.”

 

“들여보내 주지도 않아요오. 의원님 댁이라고 다들 어찌나 깐깐한지 원.”

 

“그럼 넌 그냥 시원한 사무실에 있어라. 나는 갈게.”

 

“아니, 뭘 또 그렇게… 저도 갈게요.”

 

 

 

 

 

 

 

김형사를 타박했지만 혜인 역시 미진과 대화를 나누기는 커녕 문전박대를 당하고 집 앞에 주차한 차 안에서 언제 찾아올지 기약없는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해는 시뻘건 노을을 끼얹은 후에 건물 틈으로 사라졌다. 열대야가 예정된 초저녁의 끈적함에 시달리다 지쳐 혜인은 운전석에 앉은 채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까풀 아래에서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숨었다.”

 

속삭이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혜인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고 좌우를 살폈지만, 차 안에 누가 있을리가 없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꾼 모양이다. 놀라 허둥대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뜨듯한 날숨을 길게 내보냈다.

 

차 시동을 꺼두느라 에어컨도 못 켜고, 창을 살짝 내려놨더니 시원한 바람은 고사하고 모기만 날아들었다. 귓가에 모기가 날개짓하는 소리였나? 조수석에 벗어 둔 코트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며 목에 흥건한 땀을 닦아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차창 밖을 올려다봤지만 부잣집답게 높은 담장 너머로는 멋지게 관리된 나무 꼭대기만 보일 뿐 건물은 멀찍이 안쪽에 숨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슬슬 돌아갈까.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혜인은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급히 무음으로 설정을 바꾸고 괜스레 성을 내며 확인하니 김형사다.

 

“뭐야?”

 

소란스러운 주변음과 함께 김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선배, 선배, 여기 앰뷸런스 오고 난리났어요! 구급대원들이 들어갔는데, 안 나오는 거 보니까 심상치가 않은데요? 어? 경찰차도 왔어요. 저도 따라 들어갈게요.”

 

“그래, 나도 지금 갈게. 상황 보고해라.”

 

혜인은 서둘러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렸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임미진의 집 대문을 빠르게 훑었다. 은회색 승용차가 좁은 언덕길의 경비 초소와 의류수거함 사이로 커브를 아슬아슬하게 달렸다. 내리막길을 활강하듯이 달리다가 끼이익 요란하게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대로에 합류했다. 깜짝 놀란 트럭 운전수가 경적을 눌러댔지만 혜인은 아랑곳않고 속력을 높였다.

 

김형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어.”

 

“선배, 김서현 씨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뭐? 어떻게? 왜?”

 

“교살인데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뒤에서 목을 조른 손자국이 있어요.”

 

혜인은 좌회전을 위해 방향 지시등을 켜고 신호를 기다렸다.

 

“그게 뭐가 말이 안 돼?”

 

“시체의 위치가… 침실의 구석 모서리에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앉아 있거든요. 뒤에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어요.”

 

“죽인 다음에 옮겼나 보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좌회전 신호와 동시에 자동차 모니터에 통화대기가 떴다. 저장되지 않은 휴대폰 번호였다. 전방과 백미러를 살피며 차를 왼쪽으로 돌리는데,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음식 배달 오토바이가 튀어 나와 급정거를 했다.

 

“에이씨, 저….”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차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야, 나 전화 들어온다. 일단 끊어 봐.”

 

“아, 선배!”

 

“왜?”

 

“그리고 이상한 게 또 있는데요. 김서현 씨가 양손에 손거울을 들고 있었어요. 얼마나 꽉 쥐고 있는지 빼느라 애먹었대요.”

 

거울…? 혜인은 눈썹 사이를 좁히며 대기 중이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형사님! 저 임미진이 엄맙니다.”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지난 번에 어거지로 쥐여 준 명함을 다행히 버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네, 말씀하십시오.”

 

“미진이가… 미진이가 없어요!”

 

“예?”

 

“저녁도 안 먹어서….”

 

혜인은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죽이라도 먹이려고 끓여서 방에 가 봤더니, 애가 사라졌어요.”

 

“사라져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젭니까?”

 

한 명은 살해, 나머지 한 명은 납치인가.

 

“오후 다섯 시 반… 여섯 시 쯤요.”

 

혜인이 시계를 확인했다. 여덟 시 사십 분.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신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차고에 보니까… 미진이 차도 없어요.”

 

부인의 말에 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직접 차를 몰고 간 거잖아.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혜인은 백미러를 보는 것만으론 안심이 안 되어 고개를 돌려 사각지대에서 달려드는 배달 오토바이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다시 차를 움직였다. 사이렌을 울릴까 하다 그냥 이동하기로 했다.

 

“형사님, 저희 애 좀 찾아주세요.”

 

굳게 닫혀있던 대문을 지나 집 안에서 마주했을 때, 얼음장벽 같이 도도하던 교수님의 모습은 어느새 여느 걱정 많은 어머니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던 자신감이 무너진 탓이리라.

 

“어디로 갔을지 짐작되는 곳은 없습니까? 누군가 찾아오지는 않았고요?”

 

“아뇨. 집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어요. 설마… 서현이네….”

 

부인은 아직 김서현이 사망한 것을 모르는 눈치여서 혜인도 굳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임미진이 김서현의 사망에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시체가 양손에 거울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임미진의 경우 거울공포증이 확인되었지만, 김서현은 현직 국회의원 부친의 비호 아래 철저히 감춰져서 사정이 어떤지 알 수도 없었다. 혹시 김서현이 자신을 공격하는 임미진에게 겁을 줘서 쫓아내려고 거울을 들고 있었던 것일까.

 

“김서현 씨의 집에 갔을 것이라 짐작하시는 이유라도?”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집이 아니라… 양양 별장요. 불안증에 시달리는 동안 그곳 얘기를 자꾸 했거든요.”

 

그런 상태로 양양까지 운전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역시 모든 게 연기였나.

 

“그 별장에는 자주 갔었나요?”

 

“다섯 친구들이 어릴 때는 방학마다 놀러 갔어요. 저희 부부도 몇 번은 가봤고요. 근데 그 일이… 있었던 후로는 십 년째 비어 있었거든요. 갑자기 거길 왜 가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혜인의 왼쪽 눈썹이 지진탐지기의 바늘처럼 꿈틀하고 올라갔다.

 

“그 일이요?”

 

 

 

 

 

 

 

가로등도 없는 좁은 길을 돌아 자동차가 마당으로 진입하자 삐쭉빼쭉한 나무 그림자가 별장 건물을 빠르게 긁고 지나갔다. 차는 현관을 향해 전조등을 비춘 채로 멈춰 섰다. 운전석에 앉은 것은 미진이다. 캄캄한 별장은 어두운 밤하늘과 경계가 불분명해서 현관으로 들어가면 그 뒤의 심연에 빠져들 것 같은 풍경이었다.

 

미진은 오소소 팔에 소름이 돋아 에어컨을 껐다. 시동은 켜 둔 채다. 공포로 눈물이 차오르는 눈에는 분기가 서렸고, 턱과 손에는 힘을 꽉 주어 떨리는 것을 참아냈다. 심장이 머릿속에서 뛰는 것 마냥 울렁거려 어지럼증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참을 망설이다 딸깍 차 문을 열었다. 왜 이곳을 찾았는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진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띵띵띵. 차 문이 열려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문을 다시 닫으라는 뜻이다.

 

“숨었다.”

 

여자아이의 속삭임이 귓가 머리칼을 흔들었다. 한차례 몸서리를 친 미진은 밭은 숨을 내쉬며 왼발을 밖으로 내밀어 땅을 디뎠다. 자그락. 설마 차에서 내릴 줄은 몰랐다는 듯이 발 밑의 자갈들이 놀라는 시늉을 했다. 한 발을 마저 내딛어 몸을 일으킨 미진은 덥고 습한 공기 속으로 낙하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진이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내밀자 별장도 한 걸음 다가왔다. 그렇게 또 한 걸음. 자신이 가는 것인지, 별장이 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비밀스런 여름밤이 미진의 등 뒤에서 자꾸만 음흉한 입김을 불며 그의 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속의 별장은 낮에 봤을 때보다 몇 배는 커 보였다.

 

자그락 자그락. 자동차 전조등이 어둠을 밀어낸 터널 같은 길을 지나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창에 비친 나무 그림자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문이 열리고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들이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앞장 선 서현을 따라 들어 온 미진과 지유, 태희, 청아는 등에 맨 가방을 내려놓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리고 내부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름방학을 맞아 서현네 별장에 처음으로 놀러온 참이다.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을 통해 정오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보석처럼 빛났다. 아이들의 눈에는 동화 속 궁전이 따로 없었다.

 

“너희는 이층 방을 쓰렴.”

 

서현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꺄아아 부산을 떨며 대리석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뛰지 말고! 다칠라!”

 

서현엄마는 앞으로 삼 일간 저 말괄량이들을 어떻게 혼자 돌보나 걱정이 앞섰다. 함께 오려던 남편이 갑자기 당에 일이 생겨 빠지면서 보좌관을 붙여준다는 걸 거절했다. 모처럼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려는 건데, 딱딱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는 다른 엄마들이라도 데려와야지.

 

“와, 대박! 바다가 훤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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