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유희

  • 장르: 호러
  • 분량: 69매
  • 소개: 지하실에서 의문의 작업을 거듭하는 남자. 그의 비밀은? 더보기

하얀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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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멘트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문 앞에 매달아 놓은 백열등의 희미한 불빛은 그의 앞쪽으로 점점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계단 밑은 지하실이었다. 그의 집 아래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업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원래 그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었다. 이 지하실은 그가 자신의 작업을 위하여 새로 만든 공간이었다. 이미 지어져 있는 집에 새로 지하실을 만든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그의 집 뒷마당은 넓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 밑으로 지하실을 만들었다. 만약 그의 집이 아파트였거나 마당이 없는 집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은 작업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데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실 지하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집안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너무 많았었다. 우선 작업을 하고 난 뒤처리부터 문제였다. 작업 뒤에 나오는 부산물들을 처리하는 일 자체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부피를 줄이는 일은 잘게 분해하면 되었지만, 냄새만은 곤란했다. 그에게도 피비린내와 고약한 악취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단순히 불쾌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감까지 안겨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작업 뒤의 결과물을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집안은 결코 좋은 보관 장소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는 결과물을 방안에 보관하려 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위험한 짓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의 유희도 그날로 끝장이었다. 그는 그런 상황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유희를 즐기고 싶었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오랫동안 누리고 싶었다. 그러자면 좀 더 비밀스러운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지하실을 따로 만들었다. 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비밀을 유지하기에 최상의 방법이었다.

 

곧 그는 지하실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공사를 맡긴 작은 건설 회사에는 단순히 창고가 필요한 걸로 이야기했다. 구조가 복잡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단순히 네모난 공간이면 되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일부러 집안에다 만들었다. 들어가는 모습조차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이유였다. 지하실은 그다지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고 완성되었다.

 

지하실이 완성된 뒤에는 그 안에 간단한 가구들을 배치했다. 여러 개의 캐비닛과 넓은 테이블 하나, 그리고 휴식을 위한 소파 하나를 두었다. 복잡한 기구들로 지하실을 채워 넣을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최대한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입구는 잘 보이지 않는 한쪽 구석에 위치시켜 놓고, 언제나 단단히 잠그기로 했다. 단,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의심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도록 자물쇠를 여러 개 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완성된 지하실은 그에게 매우 즐거우면서도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 있으면 바깥 세계의 무엇도 잊어버렸다. 심지어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할 정도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자신의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조차 잊게 되었다. 그저 자신이 작업을 하는 그 행위 자체에 빠지게 되었다. 지하실은 그에게 그렇게 특별한 곳이 되어 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각만큼 자주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에게도 생계를 위한 직업이 있었고, 설사 쉬는 날이라고 해도 매번 내려오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시간이 없어서 자주 내려오지 못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업에 가장 중요한, 작업 재료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업, 아니 작업보다 유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재료가 살아있어야 했고, 싱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찾아다니는 재료는 바로 여자였다. 매우 젊고 아름다운 여자여야만 했다.

 

그의 주위에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없지는 않았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도 많은 숫자의 여직원들이 있었고, 그리고 그 중에는 그가 원하는 스타일의 여자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재료로 사용하는 짓은 위험스러운 행동이었다. 전혀 모르는 여자가 필요했다. 그와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그런 여자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미 죽은 여자들 중에서 찾아 다녔다. 그가 자신의 행동에 어떤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은 바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원했다. 문제는 이러한 여자들 중에는 죽는 여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간혹 이런 여자들이 죽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였다. 사고로 죽거나 병에 의한 죽음이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 조건에만 맞으면 어떻게 죽었건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죽는 경우에는 뼈까지 파손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재료로 사용이 불가능했으며, 병에 걸려 죽은 경우에도 대개 오랜 동안의 질병으로 인해 그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다 화장을 하는 경우에는 아예 재료로 사용할 가능성조차 없었고, 토장의 경우에도 이미 매장된 무덤을 파내야 했기 때문에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그는 단 한 차례도 재료를 입수하지 못했었다.

 

어쩌다 한번 시신을 거의 얻을 뻔했던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힘들게 겨우겨우 무덤을 파헤치고 나서 보니 시신은 이미 그가 가져가지 못할 상태였다. 시신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당황했다. 부패가 진행되기 시작한 시신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으며,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구토가 나왔다. 그에게는 시신 자체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 시신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자의 인골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부패되어가는 여자의 시신에서 인골만을 추릴 수 있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날 그는 집에 와서 자신의 배 속에 들어있는 모든 걸 게워내야만 했다. 썩어가는 시신을 보는 일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좀 더 신선한 시신이 필요했다. 다 썩어가는 시신이 아닌.

 

그 뒤로 그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무덤을 파고, 죽은 사람만을 찾아다니는 소극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기로 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했다. 그의 취향에 맞는 여자를 직접 죽여서 데려오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그저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보이면 다가가서 목숨을 끊어버리고 데려오면 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그의 상상보다도 너무 쉬웠다. 여자를 미행하다 죽이기 쉬운 장소가 나타나면 재빨리 다가가 심장에 칼을 꽂아 넣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찌르는 순간에 입을 틀어막기만 하면 되었다. 일단 입을 틀어막고 심장을 칼로 여러 차례 찌르면 간단했다. 그리고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한 천 조각을 상처 깊숙이 쑤셔놓고 테이프로 봉한 뒤, 여자를 등에 업고 돌아오면 되었다.

 

가까운 거리는 그대로 집까지 업고 오는 경우도 있었고, 먼 거리는 우선 가까운 여관 등에 여자를 놓아둔 뒤, 집으로 가서 차를 가져와 싣고 오기도 했다.

 

의외로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죽인 여자를 업고가도 별로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사람들의 주의를 끈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시신을 집에 데려온 다음이었다.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작업자체가 유희이기는 했지만,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했다. 집안에서 하기에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작업이후 나오는 부산물을 처리하는 일도 문제였다. 어디엔가 버려야했고, 버리기 전에 일시적으로 보관할 필요도 있었다. 그가 지하실을 만들게 된 이유도 이러한 여러 가지 곤란함 때문이었다. 지하실을 만들기 전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자체도 문제였고, 뒤처리도 너무 번거로웠다.

 

시간도 문제였다. 날이 밝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환한 대낮까지 그의 작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지하실을 만들기 전까지는 겨우 한 번밖에 작업을 한 적이 없었다.

 

지하실을 만든 이후에야 그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지하실에서는 아침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바깥까지 피비린내와 악취가 새어 나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당연히 뒤처리에도 여유가 생겼다. 작업 뒤의 부산물도 일시적이나마 보관이 가능했다. 악취가 바깥에까지 퍼질 정도로 부패하기 전에 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유희를 위한 지하실을 만들었고, 요즈음에는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한 명의 여자 시신을 업은 채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가 오늘 데려온 여자가 매우 특별한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지금까지 그가 데려왔던 여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니 단순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가 원하는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여자였다.

 

그는 어제 저녁에 이 여자를 처음 보았다.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이었다. 우연히 지하철 옆 좌석에 여자와 나란히 앉게 되었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동안 여자가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자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여자의 뒤를 따르는 동안 그는 주체하지 못할 흥분을 누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여자는 지금까지의 여자 중에 최고의 여자였다. 다른 여자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여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의 화신의 모습이었다. 깨끗하고 하얀 피부, 날씬한 몸매, 청순함과 섹시함의 이중적인 매력을 지닌 얼굴, 깔끔한 무릎길이의 갈색 투피스 스커트 정장과 옷과 매치시킨 갈색 패턴 스타킹, 그리고, 적당한 굽 높이의 뮬을 신은 모습까지. 여자는 뛰어난 외모와 그에 못지않은 패션 감각까지 지닌 흔치 않은 여자였다.

 

그러나 그는 여자의 외모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좀 더 여자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단순히 여자의 ‘예쁜’ 외모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조용히 여자의 뒤를 따랐다. 좀 더 여자에 대해 알고 싶었다.

 

여자의 뒤를 따르던 그는 잠시 뒤, 여자가 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집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기껏해야 그의 집과 5분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여자의 집 외양도 자신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담한 1층 단독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여자의 집을 확인한 뒤, 그는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이 되자 그는 서둘러서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너무 흥분한 탓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지만 피곤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로 기분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여자의 집 근처로 간 그는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여자의 집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아침에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잠시 여자의 집을 바라보다가, 좀 더 눈에 띄지 않는 위치로 자리를 옮겨서 지켜보기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집 문이 열리며 여자가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움직이려다 말고 여자의 모습을 주시했다. 여자는 하얀 원피스와 운동화를 신은 가벼운 차림이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아침을 맞는 상쾌함이 나타나 있었다. 여자는 문을 나와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의 발걸음에 따라, 그도 여자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여자의 발걸음은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한 걸음으로 천천히 아침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공원을 산책해 나갔다. 공원은 훌륭했다. 도심에 있는 공원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규모도 크고 숲도 있었다. 산책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있는 숲 옆으로 나 있었다. 산책로에는 벤치도 여러 개 있어서, 여자는 이따금씩 벤치에 앉아 들고 나온 책을 읽기도 했다.

 

그는 뒤에서 여자의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면서 책을 읽는 모습.

 

그녀는 너무나 완벽했다. 그가 꿈속에서나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제 저녁에 퇴근할 때 본 여자의 모습과는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그녀는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여자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매력을 다양하게 연출해내는 여자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바로 그런 여자였다.

 

그녀를 빨리 죽이고 싶었다. 죽여서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다른 여자들을 상대할 때는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여자를 죽일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는 여자를 죽일 기회를 엿보며 계속 여자의 뒤를 따랐다. 도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칼도 있었고, 상처를 틀어막을 천 뭉치와 테이프도 있었다. 기회만 오면 여자를 즉사시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기대대로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여자는 산책로에서 벗어나 나무가 울창한 숲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봤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둠이 다 물러간 상태였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여자의 뒤로 다가섰다. 여자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자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여자가 몸을 돌린 순간, 그는 여자의 심장에 깊숙이 칼을 꽂아 넣었다.

 

그가 여자의 심장에 칼을 꽂은 순간, 여자의 얼굴에는 칼에 찔린 고통이나 공포보다, 어리둥절한 의문의 표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고통과 공포의 감각이 찾아오자 여자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여자의 비명은 새어 나오지 못했다. 그가 여자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은 순간, 여자의 입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좀 더 여자의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두세 번 정도 더 여자의 심장을 칼로 찔렀다. 여자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여자의 등을 받쳐 들었다. 그리고 칼에 찔려 틈이 벌어진 그 곳으로 준비해온 천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테이프로 봉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