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친구들

  • 장르: SF, 일반
  • 태그: #소문의식목일
  • 분량: 26매
  • 소개: ‘식목일 소일장’ 참여를 위해 쓴 글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쓴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후에 가필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 있습니다. 더보기

봄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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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에 꽃을 피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사실 이건 소문이라기 보다는 전설에 가깝다. 원래 소문이란 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가 와전되기 마련인데 식목일 전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려 원전을 찾을 수 없었다. 전설이라고 부르기엔 최근에 떠다니는 이야기라 소문 정도가 식목일 전설에 대한 대우로 적당할지 모르겠다.

 

3월. 벚꽃이 분홍색잎을 흐드러지게 피었어야 할 시기지만 벚꽃나무는 이름값을 못하고 있었다. 올해만 그런 게 아니라 몇 년째 태만 상태다. 정확하게는 13년. 벚꽃나무는 봄에 푸른 새싹을 틔웠다가 여름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잎을 키우고 가을이 되면 푸른 잎은 갈색으로 말라버리고 겨울에는 갈색 잎을 땅으로 떨궜다. 동네마다 분홍색 연지를 찍었던 벚꽃나무는 그냥 ‘나무’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이는 벚꽃나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은행나무도, 매화나무도, 개나리도 벚꽃나무와 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냥’ 나무가 되어서 좋은 건 가을에 꼬릿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 은행나무 정도다.

 

나는 한가로이 등나무 그늘 아래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인조잔디 위에서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은 수의 아이들과 어른 한 명이 한데 어우러져 축구공을 쫓았다. 아이 수가 짝수였다면 선생님이 끼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6학년 부담임을 맡은 최 선생님만 고생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초등학교는 전부 문을 닫는다. 아이가 다시 태어난다면 초등학교가 문을 다시 열지 모르겠지만 현재 방침으로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정부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리던 출생률은 나무들이 이름표를 떼고 ‘그냥’ 나무가 되어버린 12년 전을 기점으로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원인으로 급감했다. 완전 제로였다. 혹시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니면 늦게한 부부가 있지 않을까 인구조사원들이 일일이 문을 두드렸지만 태어난 아이들은 ‘0명’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해였다.

 

딱히 아이들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건 아니었다. 나는 점수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교대를 선택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청소년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 아이들에게 직접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는데(눈치가 없어 따돌린 줄도 모르는 걸까?) 주위에 그런 아이들을 더러 보았기에 비슷한 환경에 둘러싸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지금은 아니지만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만 봐도 다리에 힘이 풀린 적도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끌려다니는 최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목줄이 단단히 죄인 강아지 같았다. 최 선생님은 호수같은 눈망울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불쌍한 최 선생님. 내 처지에 최 선생님을 동정하다니. 그늘에 쉬고 있다고 해서 내 처지가 최 선생님과 다른 건 아니다. 내가 최 선생님보다 2년 선배이고 담임이라 멋대로 체육 수업을 최 선생님한테 떠넘긴 것 뿐이다.

 

나는 기지개를 폈다. 등받이가 없어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몸통을 뒤로 꺾었다. 아이고. 저절로 엄살이 새어나왔다. 우리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나와 최 선생님이 지은 죄라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죄 밖에 없었다. 뉴스만 제대로 봤었다면 진작 다른 직업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알았다면 찾았을까?

 

남들은 쉽다 하는 초등학교 임용고시라지만 나는 세 번이나 떨어졌었다. 지원자가 적어 기준점만 넘으면 될 일이었는데 시험날만 되면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사고를 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때 나는 눈치를 챘었어야 했다. 수호천사가 다른 직업을 찾으라고 언지를 줬는데 나는 이걸 시련이라고 받아들였다.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역경. 그리고 영웅은 역경을 넘어야 한다. 왜 나는 나를 영웅이라고 생각했을까. 평소에는 보통 중에서 가장 보통인 인간이 되고 싶어했으면서.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진 않아도 그래도 한 가지는 아니었을텐데. 교대를 간 이상 하나밖에 없었나? 대학에서 보낸 4년이 아까워서라도 시험 준비는 했을 거 같다. 이렇게 고민해봤자 소용 없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다.

 

띵동댕동. 늙수구레한 수업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운동장 중간에서 최 선생님이 축구공을 들고 서있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뭐라하더니 아이들은 급수대로 뛰어갔다. 뛰지 말고 가! 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마디 외치고 내가 앉아 있는 등나무 그늘로 왔다.

 

“겨울 방학 내내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움직이니까 힘드네요.”

 

“고생했어요. 그래도 익숙해져야 돼요. 올해 체육 수업은 최 선생님 몫이니까.”

 

최 선생님은 아연한 얼굴로 나를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고 한 것 같았는데 작게 말해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이니까 힘내보죠.”

 

나는 최 선생님의 어깨를 두드렸다. 옷 위로 베인 땀이 묻었다.

 

최 선생님이 축구공을 비품 관리창고에 넣으러 간 사이 나는 조금 더 등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보내다 교실로 향했다. 도리 상 다음 수업은 내가 해야한다. 학교로 들어서자 수업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있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있는 것도 앉아있는 거라고 치면 전부 앉아있었다. 내가 교실로 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