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토 (red toe)

  • 장르: SF
  • 분량: 28매
  • 소개: 일을 마치고 바(bar)에 들린 광부, 잭. 잭이 아무 칵테일을 주문하려고 하자 처음 보는 사람이 잭을 말리며 ‘레드 토’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대신 주문한다. 더보기

레드 토 (red t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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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접이식 곡괭이를 바 테이블(bar table) 밑에 내려놓았다. 대충 걸쳐 놓은 곡괭이가 미끄러져 바닥에 쾅 하고 부딪쳤다. 접이식이라고 하나 꽤나 무겁기 때문에 충격음이 공간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잭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휘둘러보곤 눈을 질끈 감았다. 불경한 눈빛은 싸움을 부른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적을 만들 만큼 잭은 멍청하지 않았다. 같은 실수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

 

오크 나무와 구리를 적절하게 배합한 바 테이블 건너에는 마스터가 손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스터는 크기가 다양한 크리스털 글라스를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공간 전체를 둘러보았다. 마스터의 시선이 가끔 잭에게도 머물렀는데 처음 보는 손님이라 조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물지만 주문을 종용했다가 별것 아닌 걸로 시비 거는 손님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본 적 없는 손님들은 깜짝 상자 같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열기 전엔 아무도 알 수 없다. 스프링에 매달린 피에로가 나올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고 보물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보물이 나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어쨌든 마스터는 잭이 곡괭이를 집어던지는 꼴을 보니 얕잡혀 보이고 싶지 않은 류의 인간으로 인식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러시 폴(rush fall) 유일한 바(bar)의 도어 벨은 쉴 틈 없이 딸랑거렸다. 이곳은 광부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이며 놀이터였다. 손님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아이처럼 마스터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마스터는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해주었다.

 

“마스터, 여기 레드 토(red toe) 하나!”

 

어떤 사내가 바에 기대 주문을 했다. 사내는 우락부락한 생김과 달리 머리카락은 매끈했고 형형색색으로 반짝였다. 마스터는 눈썹을 까딱하며 마른 수건과 크리스털 글라스를 내려놓고 셰이커를 들었다. 사내는 오지랖이 넓은지 오가는 사람들에게 툭툭 한 마디씩 던졌다. 어투가 상냥하지 않았지만 악의가 담겨 있진 않았다.

 

잭도 주문을 위해 앞에 놓인 구리 코스터에 손을 가져갔다. 글라스 밑면만 한 코스터는 메뉴판 역할도 겸한다. 잭은 중심을 기준으로 동그랗게 파인 홈을 따라 손끝으로 매만졌다. 아쿠아 젤리샷, 아카 사워, 그레이 러시안, 모하또, 준넉, 레드 토…. 잭은 이름이 익숙한 칵테일을 골랐다.

 

“마스터, 그레이 러시안. 더블로.”

 

마스터는 잭을 흘끗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형씨.”

 

바 한편에서 수다를 떨던 사내가 잭을 불렀다. 사내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잭은 딴청 부리며 사내의 존재를 무시했다. 사내는 포기하지 않고 ‘어이’와 ‘형씨’를 나누어 잭에게 툭툭 던졌다. 대화의 캐치볼은 맥없이 한 방향으로만 튀었다.

 

“마스터, 형씨가 주문한 거 아직 안 만들었지? 기다려 봐. 형씨, 첫 잔인 거 같은데 ‘레드 토(red toe)’가 아니라 ‘그레이 러시안’을 마신다고? 그래선 안되지. 다른 데선 몰라도 ‘러시 폴’에서는 안돼.”

 

사내는 잭의 주문을 가로챘다.

 

“형씨. 고깝게 듣지 말아. 보아하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여기는 여기만의 룰이 있어. 얘기하기 전에 통성명부터 하자고. 내 이름은 서몰이야. 형씨는?”

 

“잭.”

 

“으음, 형씨.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삼일 전에 은하 기차로 도착했어.”

 

“담당은 어디 구역이야?”

 

“‘파하’ 구역.”

 

“‘파하’면 스치지도 못했겠군. 나는 ‘마바’ 구역에서 일해. 근데 거기는 신입들 안 챙겨주나. 기본 예절도 안 가르쳐주고. 각박하구만. 뭐, 어쨌든 여기서 첫 잔은 무조건 ‘레드 토’야.”

 

“왜지?”

 

잭은 턱을 사선으로 그어 서몰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일종의 의례야. 사고없이 일을 마쳤다는 것에 대해 여신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는 거지. 형씨, 우리 마을 광산에서 뭘 캐는 지는 알아?”

 

서몰은 발치에 놓인 접이식 곡괭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잭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대부분 광물들은 연마를 통해 보석으로 만들거나 정제를 거쳐 에너지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쓰임새는 거기서 거기였다. 그리고 떠돌이 광부는 일당만 받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고져스 코어. 스칼렛 워터, 몰라? 돈만 보고 왔나 보군. 여기 러시 폴에서만 나는 스칼렛 워터는 다른 광물들과는 조금 달라. 광석이지만 광석이 아닌. 고체지만 고체가 아닌 광석이거든. 본 적 없어?”

 

잭은 다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채광한 광석은 원석이 포함된 암석채로 옮기기 때문에 잭은 스칼렛 워터를 본 적이 없었다.

 

“마스터, 레드 토 스피릿 조금만 담아서 주겠어?”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드 토 스피릿 아주 조금을 락 글래스에 담아 건네주었다.

 

“이게 스칼렛 워터야. 이 상태는 사람이 마실 수 있게 정제를 한 거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돼.”

 

서몰은 크리스털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레드 토보다 짙은 진홍빛 액체가 찰랑찰랑 가볍게 움직였다.

 

“미개척 행성에서 미확인 광물의 발견. 매력적이지 않아? 한탕 주의자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마법의 문구지. 그들은 굶주린 개떼처럼 깡촌 러시 폴로 몰려들었어. ‘스칼렛 워터’만 있으면 떼부자가 될 거라는 욕심 하나로 말이야. 하지만 세상일이 자기 욕심처럼 흘러가는 일은 좀처럼 없지.”

 

서몰은 마스터가 구리 코스터에 올려놓은 레드 토를 홀짝였다.

 

“스칼렛 워터는 썩 좋은 광물이 아니야. 비고정성이라 단독 채광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