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련

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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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 까!”

 

좌객들의 격려어린 닦달에 똥석이는 능청스레 품을 밟으며 째필이의 왼쪽 발목을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째필이는 화들짝 놀라 왼쪽 발목을 들다가 균형을 잃고 말았다. 똥석이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째필이의 덜미를 움켜쥐고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허우대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째필이는 지푸라기마냥 달랑달랑 거리더니 그대로 멍석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좌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했다. 똥석이는 기고만장하게

 

‘다음은 누구야?’

 

하고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윗대 쪽 좌객에서 한 청년이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와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멍석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펄쩍 펄쩍 뛰며 공중에서 발질을 선보이며 기량을 뽐냈다. 똥석이도 그에 지지 않고 맞서 공중제비를 돌며 멍석을 누볐다. 째필이는 좌객 사이에 끼어 앉아 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째필이 형아는 저런 거 안 해?”

 

애기 탁견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진 아이가 슬금슬금 기어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나도 해 보고는 싶어.”

 

하지만 째필이의 신경질어린 대답은 환호성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똥석이가 공중으로 펄쩍 날아올라 아랫대의 선수의 머리를 까버렸을 때였다. 아랫대에서 몇 명이 항의를 했지만 이쪽 선수가 괜찮다며 만류했다. 그렇게 투석전으로 연장되었을 뻔했던 올 결련은 무사히 부상자 없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 판에서 똥석이가 아랫대 선수의 눈을 찔러버리는 바람에 결국 패싸움으로 마무리되었다.

 

째필이는 괜히 선수란 이유로 패싸움에 말려들어서 괜히 진탕 퍼맞고 구석으로 물러갔다. 그는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다. 윗대 예쁜이가 자기 쪽을 슬쩍 보았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만날 그시기 처 맞고 올 거면 므 잔다고 그래 용을 쓰냐? 흣딧거리 하덜 말고 느 애비한테 요것이나 갖다 즈어.”

 

“아이씨, 제 할일 좀 할게요!”

 

지방 어디에선가 올라왔다던 이웃 아주머니가 째필이한테 광주리 하나를 들이밀었다. 째필이는 안 가겠다고 뻗대다가 결국에 어머니한테 등짝을 세게 얻어맞고 나서야 투덜거리며 일어나 짚신을 신었다.

 

“광주리만 갖다 주고 와! 딴 길로 새지 말고!”

 

“아, 알겠다니까!”

 

째필이는 광주리를 한 아름 안고 문짝을 발바닥으로 슬 밀어 열었다. 지금은 이리도 균형이 잘 잽히는데 멍석에만 서면 뭐가 그리 흔들흔들 하는지. 그런 째필이를 보는 어매는 찬거리로 쓸 나물을 손질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것이 나이 먹고 장가도 안 들어서 어쩌죠?”

 

“은제 저노마 안방 문풍지를 뜯어볼 제! 장가들 생각은 있는 겨?”

 

“모르겠어요. 웬 이쁘장한 계집애한테 헐떡거리는 거 같긴 하더구먼.”

 

그 말에 이웃집 아주머니가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으느집 아가야?”

 

“저어기, 윗동네 애라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으휴. 나이 꽉 차 가꼬 장가도 안 들고 말여…….”

 

그 즈음 째필이는 광주리를 안고 논두렁을 설렁설렁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논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보이자 째필이는 광주리를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광주리를 덮고 있는 보자기를 끌렀다. 광주리 안에는 떡과 천으로 밀봉된 탁주가 있었다. 째필이는 떡 하나를 집어서 입어 넣고 씹었다. 쫀득쫀득한 떡을 꿀떡 삼킨 그는 다시 보자기를 덮고 대충 정리한 뒤 아부지한테 걸어갔다.

 

“째필이 온다! 아범! 새참 왔소! 먹고 하소!”

 

건넛집 머슴이 침을 뚝뚝 흘리며 외쳤다. 그 말에 다리 걷어붙이고 논일을 하던 째빌이 아범이 논밭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얘! 소금 던져라!”

 

“소금? 소금…….”

 

째필이는 보자기를 열고 소금을 찾아 뒤적거렸지만 소금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소금……. 소금 없는데요?”

 

“하이고, 이놈아. 제대로 좀 찾아 봐!”

 

논두렁으로 올라온 째필이 아범의 다리에는 시꺼먼 거머리 몇 마리가 들러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째필이 아범은 거머리를 떼어낼 소금을 찾아 보따리를 뒤적였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째필이 아범은

 

“에잉! 이노무 마누라는 소금 하나 안 챙겨줘!”

 

하면서 집게손가락으로 거머리를 하나하나 떼어내기 시작했다.

 

“아아나, 묵으라.”

 

머슴아가 떨어진 거머리를 집어서 째필이에게 장난스럽게 던졌다. 그에 째필이는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젖히다 반대쪽 영감님 논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째필아! 그기 그므리 있다!”

 

그러자 째필이는 또다시 진저리를 치며 논 밖으로 허겁지겁 기어 나왔다.

 

“아주 염병들 한다.”

 

째필이 아범은 혀를 끌끌 차며 막걸리 병을 따서 한 모금 들이켰다.

 

“끄으! 쓰다. 째필아! 아직도 탁견 한답시고 처 맞고 다니냐?”

 

“야아, 느는 탁견은 아안돼. 허우대나 키워서 씨름이나 해라. 허우대 크면 이이 논일하는데도 좋지 않간?”

 

째필이는 떡을 한 개 집어 입에 넣으며 대답을 피했다.

 

“야야, 말 좀 해봐아.”

 

하지만 째필은 떡을 입에 문 채 우물거리기만 했다. 머슴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떡을 입에 넣고 막걸리와 함께 삼켰다. 째필이 아범은 막걸리를 한 모금 더 거하게 마시더니, 째필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서 슬쩍 물었다.

 

“그 계집애지? 응?”

 

째필이는 짐짓 움찔하여

 

“그 계집애라 하면 계집이 한두 명이에요? 저 집 계집애도 그 계집애고, 그 집 계집애도 그 계집애고.”

 

“그래, 그 집들 중에서 어느 계집애고?”

 

“그런 문제가 아녜요.”

 

째필이 아범은 손바닥으로 째필이의 뒤통수를 퍽, 하고 후려 갈겼다. 째필이는 고것이 아파 논두렁을 대굴대굴 구르다 그만 다시 한 번 논밭으로 굴러 빠져 버렸다.

 

“이놈아! 우리 쌀 다 망가진다. 아범도 성질 좀 죽이셔.”

 

“아니기는. 면상에 그린 그 계집애 얼굴이나 지우고 말해라, 이 내 새끼야.”

 

째필이는 주섬주섬 옷을 추리고 논두렁으로 기어 올라왔다.

 

“그게 여기 쓰여 있다고요?”

 

하고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말이다. 이에 머슴아는

 

“고 말을 고렇게 알아 처먹으니 만날 얻어터지고 오제.”

 

하고 혀를 끌끌 차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너, 그만 먹어! 우리 집 술이나 축내는 새끼가…….”

 

“뭐? 새끼이? 한 번 해 볼 텨?”

 

머슴아는 짐짓 화를 내는 척하며 웃통을 내던지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 모습에 째필이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며

 

“아니이, 그게…….”

 

하고 바로 눈부터 내리까는 것이었다.

 

“염병들 그만 하고 내려와! 한나절 다 보낼 거? 째필이! 너도 내려와서 좀 거들어!”

 

하지만 째필이는 거머리가 두려워 광주리에서 떡을 한 주먹 쥐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이럴 때는 넘어지지도 않았다.

 

 

 

“여기서 옷도 버리고선 뭐해?”

 

째필이는 한 입에 떡을 문 채 얼어붙어 버렸다. 얼굴이 봄날 꽃무더기 마냥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른 채, 째필이는 떡을 물고 우물거렸다.

 

“떡이야?”

 

째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한데 나도 조금만 줘.”

 

그에 째필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떡을 찢어 나눠 주었다. 소녀는 고운 얼굴로 떡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너희 집 떡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

 

하고 말하니

 

“헌데 왜 아랫말까지 내려왔어?”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째필이가 슬며시 물었다.

 

“너 보러 왔다. 왜?”

 

예쁜이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째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떡을 입에 문 채로 허허 하고 웃었다. 그 바람에 입에 문 떡이 툭 하고 흙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에잇, 더러워라.”

 

“못 먹겠다. 아깝게.”

 

“그냥 주워 먹어. 별 새삼스럽게.”

 

그들 간 꽃잎이 풀풀 날리는 대화 사이 불쾌한 소리가 목소리가 섞이었다. 예쁜이는 목소리가 들려온 등 뒤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선 ‘와하!’ 하고 이상한 소리로 웃었다.

 

“평소에도 나랑 택견 하면서 많이 먹었지 않았던가?”

 

째필이는 눈을 스을 흘겼다.

 

“뭐하러 여기까지 내려 왔어?”

 

“이 애 데리러.”

 

똥석이는 예쁜이 손을 덥석 잡았다. 이에 째필이의 눈에서 번쩍 하고 번갯불이 튀었으나 그 번갯불이 닿기에 앞서 예쁜이가

 

“에이, 놓아라, 이 자식아.”

 

하고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그렇게 확 싫어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째필이의 눈에는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으로만 보였다. 어쩌면 싫은 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끔씩만 내려오는 아랫말 보다야 항시 놀고 있는 윗말의 사람이 훨씬 가까울 테니.

 

생각이 이에 미치자 입술을 지근 깨문 째필이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어 똥석이의 복장을 걷어찼다. 정확히는, 걷어차려 했다.

 

“이 자식아, 어디서 까불대? 해볼 터냐?”

 

똥석이는 달려드는 째필이의 발을 쥐고서는 한 손으로는 목을 콱 쥐었다. 째필이가 캑캑거리며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똥석이는 가볍게 휙휙 피할 뿐이었다. 째필이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자 이번에는 예쁜이가 달려들어 말리려 했다. 하지만 똥석이에 비해 키가 작은 예쁜이는 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깡패 새끼야! 어디서 행패냐! 내려 놔라, 이 녀석!”

 

“아니, 이 자식이 먼저 까불고…….”

 

“싸움이야! 싸움이 일어났다! 사람 죽여요!”

 

하고 악을 쓰자 이제 서야 똥석이는 째필이를 내려놓았다. 째필이는 목을 문지르며 캑캑거리고 고통스러워했다. 바닥에 나자빠져 이미 더러운 잠방이는 더욱 엉망이 되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예쁜이 앞이라 애써 앙앙 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참아내었다.

 

“저어, 괜찮아?”

 

똥석이가 슬쩍 손을 내밀며 물었지만 예쁜이가 째필이를 보호하려는 듯 둘 사이의 척 하고 앉아 거리를 두게 했다. 똥석이는 그런 예쁜이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의 눈빛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져가더니 그 자리를 공허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랫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쁜이의 비명을 들은 탓이었다. 똥석이는 사람들에게 쫓겨 터덜터덜 윗말로 돌아갔다. 예쁜이는 뜀박질로 그를 앞질러 쌩하니 가버렸다. 똥석이는 그렇게 달려가는 예쁜이의 폴랑거리는 치맛자락을 망연히 보면서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퍽하고 쓰러져 버렸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받은 흙바닥은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배를 깔고 앞으로 엎어진 그도 흙과 함께 타올랐다. 배가 점점 더 뜨거워지자 그는 몸을 뒹굴 굴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하늘에서 부서져 그의 눈 위로 쏟아졌다. 파란 하늘은 언제나처럼 파랗기만 한데 그의 눈에는 그 파란 빛이 결련을 벌이고 난 후 허벅지에 든 시퍼런 멍 같기만 했다.

 

그는 끙끙거리며 일어나 땅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퍽 하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똥석아! 기둥 좀 차지마!”

 

이에 똥석이는 더더욱 격렬하게 기둥을 걷어찼다.

 

“기둥 또 부술 작정인거?”

 

똥석이는 기둥을 향해 몇 번 더 발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뱉어낸 요란한 기합을 끝으로 그는 기둥에 기대어 앉아 헉헉 거리며 숨을 골랐다.

 

“낼 모레 탁견 한다고 또 그러고 있지?”

 

똥석이는 말없이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정강이가 얼얼했다. 그는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와 예쁜이가 얼마 전 아랫말에 내려가 행패 아닌 행패를 부린 것 땜에 또 다시 결련을 열겠단다. 얘기들 들어보니 이번에야말로 아주 패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단다. 똥석이는 그러한 말에 신경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