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 1. 이어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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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어짐

 

 

 

살이 타고 있다. 아니 녹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팔은 벌써 어깨 부분까지 검게 녹아내려 모습을 감쳤고 남아 있는 장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난 눈을 감고서 그저 끝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삶의 끝에서부터 계속되는 연장선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있다면 무엇일까? 천국? 지옥? 아무래도 좋으니까 보고 싶어.

 

 

 

어서 보여줘.

 

 

 

내 바람에 응하듯 점차 의식이 사라졌다.

 

 

 

+ + +

 

 

 

엘 라피엘, 북동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엘 동맹의 국가 중 하나로 북서대륙과 최단거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장 무역이 활발할뿐더러 엘 동맹의 중심국가로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사실상 북동대륙은 브렐 브로인을 제외하면 엘 동맹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엘 동맹의 대륙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그도 그럴게 브렐 브로인이 사실상 브렐 동맹의 마지막 국가이기 때문이다. (섬 국가 브렐 로젠을 제외하면.) 언젠가 엘 동맹이 세상을 지배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거의 확정적으로 말들 하곤 한다.

 

 

 

“는 개뿔.”

 

 

 

프랑토아 라피엘은 탁자에 수북이 쌓여 있던 서류들을 바닥에 핑계치곤 침대로 몸을 날렸다.

 

 

 

“제기랄, 동맹의 규모가 커지니까 문제도 커지잖아.. 아바마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아,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건가?”

 

 

 

그는 이불을 껴안고 몇 바퀴 침대위에 뒹굴 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기세등등하게 방의 중심에 섰다.

 

 

 

“만일~ 내가 시골의 청년으로 태어났다면~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했겠지~”

 

 

 

아무렇게나 음을 맞춰 노래를 한 소절 뽑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마마, 취미를 즐기시는데 죄송하지만 곧 출발하셔야 합니다.”

 

 

 

시녀의 목소리가 방문 반대편에서 들려오자 프랑토아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들은 게냐..”

 

 

 

“의도치 않았습니다. 죄송하옵니다.”

 

 

 

“그럼 됐다.”

 

 

 

그는 아무렇지 않아하는 시녀의 목소리에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곧바로 망토를 두르고 깃털이 꽂힌 모자를 눌러 쓴 다음 방문을 열었다. 밖에선 고개를 숙인 시녀가 서있었다.

 

 

 

“얼굴을 들어도 좋다.”

 

 

 

천천히 올라온 그녀의 얼굴은 고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토아의 취향에 딱 맞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 태자마마?”

 

 

 

“아.. 이제 출발해야겠지.”

 

 

 

그는 자신의 이성을 붙잡고자 마음속에도 몸부림쳤다. 상상 속에선 이미 시녀를 방 침대에 백 번 정도 눕혔다. 하지만 황태자라는 칭호의 무거움 때문에 본능에 충실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랑토아는 좀 걷고 싶은 기분이었기에 시녀에게 필요 없다고 전하고 그대로 궁을 빠져나갔다. 라 론다는 궁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규모도 크고 온갖 부유층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서민들의 구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거리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난 지 전속력으로 뛰어 다니고 가게들은 호객 행위에 바빴다. 프랑토아는 이 거리가 좋았다. 이 활기 안에 있으면 자신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항상 군주보단 음유시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렇기에 그는 일을 관둘 수가 없었다. 엘 동맹이 파탄나면 서민들의 생활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는 이것을 정의감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자기만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심이라고 불렀다.

 

 

 

“이보시오. 괜찮소?”

 

 

 

한동안 얼굴을 찡그린 채 가만히 서있자 남자상인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프랑토아는 얼굴을 가리고 뒤로 돌았다.

 

 

 

“괜찮소. 신경 써줘서 고맙군.”

 

 

 

“조심하시오. 나리.”

 

 

 

상인의 배려담긴 말이 마치 미래를 내다본 것만 같아서 오히려 프랑토아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 + +

 

 

 

그가 모자를 벗어 저택의 시종에게 넘기자 시종을 깜짝 놀라 크게 외쳤다.

 

 

 

“태자마마가 도착하셨사옵니다!”

 

 

 

그와 동시에 문을 쾅 열고 2층에서 중년의 남성이 계단을 빠르게 내려 왔다.

 

키는 작지만 조금 뚱뚱하고 짧은 금발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르고 외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로젯 가의 가장, 플루토 로젯이었다.

 

 

 

“죄송하옵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는데!”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로젯 경.”

 

 

 

“그럼 이쪽으로.”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로젯 경의 집무실로 보이는 장소였다. 벽 한 켠에 책들이 빽빽하게 찬 책장이 있었고 방과 살짝 어울리지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