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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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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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H

“9H 연필 주세요.”

손님의 말에 주인이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연필 코너로 간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9H 연필이 없다.

“지금 9H가 없는데…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딸랑.

손님은 주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방구를 나선다.

“뭐야, 대꾸도 없이…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네.”

* * *

사내의 좁은 방에는 침대와 책상뿐이다. 그는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으로 간다.

책상 위 연필꽂이에는 이미 뾰족하게 다듬어진 연필들이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서 있다.

사내는 서랍을 열어 연필깎이를 꺼낸다. 엄지손가락만 한 것부터 기차 모양 연필깎이까지 줄줄이 나온다.

다른 서랍에서 새 연필도 한 주먹 꺼낸 뒤, 서둘러 연필깎이에 연필을 꽂고는 돌린다.

중간중간 연필깎이를 바꿔가며 열심히 깎는데 느닷없이 눈꺼풀이 내려간다. 최근 심해진 졸음증 때문에 병원까지 갔지만 의사 말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MRI 판독 결과 역시나.

머리를 흔들어가며 한참 깎다 보니 연필깎이에 꽂힌 연필이 뻑뻑해서 잘 돌아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내는 연필깎이에서 연필을 억지로 빼내더니 연필 끝을 노려본다. 그는 입을 삐죽 내민 채, 엄지손톱 윗면으로 뾰족하게 깎인 연필심을 시험한다.

연필 끝이 힘없이 바스러지자 사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을 차례차례 시험하지만 다른 연필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랍에서 커터를 꺼낸다.

그는 새 연필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다가 침을 꿀꺽, 삼킨 뒤 이윽고 깎기 시작한다.

“사각, 사각, 사각…”

연필깎이에 넣고 돌릴 때와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커터로 연필을 깎은 뒤에 아까처럼 엄지손톱 윗면에다 연필심을 눌러본다.

끄떡없다.

‘이 느낌이지!’

별안간 사내의 시선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연필깎이들로 옮겨간다.

‘역시나 쓸데없는 시도였군.’

그는 가장 작은 연필깎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러다 하나, 또 하나… 처박는다.

연필깎이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잠깐씩 주저하지만 결국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내, K는 커터로 연필의 나무 조각을 가늘고 길게 떼어내며 연필이 몸에 박히는 완벽한 경사각을 상상한다. 연필깎이는 그러한 과정이 생략된다.

K는 경도가 강한 9H 연필을 고집한다.

그가 고심해서 깎은 연필은 경동맥에 박아 넣은 뒤에도 심이 부러질 확률이 극도로 낮다. 연필깎이로 깎은 것처럼 뾰족하지 않아도, 훨씬 더 안정적이고 위력적인 살인도구가 되는 것이다. 경험으로 증명한 일이다.

마지막 사건만 아니었다면, K는 회사가 정해놓은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먹고살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프리랜서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