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크맨

  • 장르: 판타지, 무협 | 태그: #뱀주제글쓰기
  • 평점×39 | 분량: 107매
  • 소개: 이제 갓 전역한 남자가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딩들과 시비가 붙는다. 더보기

스네이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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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마을에 발바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발바리가 몇 년 동안 동네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강간했다고. 피해자가 벌써 2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 소문으로 동네가 발칵 뒤집혔고, 동네 담당 경찰서로 하루에만도 30건이 넘는 문의 전화가 들어왔다. 그 소문이 맞느냐고. 경찰 측에서는 절대 아니라고. 헛소문이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경찰을 어떻게 믿느냐며 대부분 믿지 않았다. 딸자식 가진 부모들은 밤이 되면 만사 제쳐두고 딸부터 챙겼다. 그게 맞지. 나라도 안 믿겠다. 발바리가 활개 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경찰이 아니라고 하니 소문이 더 사실 같았다. 우리나라 경찰을 어떻게 믿나?

 

만약 발바리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아니 내가 범행 현장을 목격한다면 얼마 전에 병장 만기 전역한 예비군으로서 놈을 떡 실신시킬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사회에 나온다고 헬스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끊었다. 정확히 뭘 해야겠다는 개념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될 거로 생각했다. 지옥 같던 군대도 버텼는데 그깟 사회쯤이야.

 

조금만 더 쉬다가 슬슬 직장을 잡자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군대 물부터 빼야 한다. 부대에서 먹은 짬이 아직 다 똥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군인으로 오해되는 건 심히,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아저씨라니. 어딜 봐서? 누가 봐도 오빠고만.

 

내내 친구들과 술로 헬파티를 하다가 간만에 쿨타임을 가졌다. 소주병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설사도 오지게 했다. 몸부터 챙기자. 내일은 등산이라도 해볼까.

 

오늘따라 저녁인데도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밤에 온다고 했고,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떤다고 카페로 갔고. 동생 놈은 왜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고. 뭐 곧 현역으로 입대할 놈이니 하루하루 똥줄 타겠지. 가서 조뺑이 쳐봐야 이 형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거다. 슬슬 배가 고팠다. 밥통을 열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밥이 벌써 누렇게 변했다. 에이 썅. 그렇다고 새로 밥하기는 귀찮고. 라면이나 때리자.

 

트레이닝복을 대충 걸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황해 세트로 먹어야겠다. 거기에다가 삼각 김밥 추가해서. 음식을 사서 편의점을 나오는데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고딩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게 보였다. 한숨부터 나왔다. 쟤들은 저게 간지라고 생각하겠지. 조금만 더 나이 먹어 봐라. 이불킥 할 걸? 슬쩍 훈계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뭐, 담배 펴봤자 지들만 손해지. 자기 건강을 해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시대가 변하기도 했고. 옛날이나 훈계가 먹혔지. 요즘 애들한테는 꼰대라는 소리만 들을 거였다. 그래, 알아서들 해라.

 

그러고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골목 앞을 지나치려는데 담배 피우는 고딩들 뒤로 움츠린 한 아이가 보였다. 세 명의 고딩이 걔를 둘러싼 채 찰지게 발길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 세 명을 가리는 포지션으로 담배를 피우는 두 명의 고딩 중 한 명이 맞는 애를 돌아보며 낄낄댔다. 캭, 퉤. 그 옆의 놈은 나를 꼬나보면서 침을 걸쭉하게 뱉는다. 허, 저 놈 봐라? 어른들이 그냥 지나가니까 자기들이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아나. 어디 좆고딩이.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내려놓고 문지기처럼 건들거리며 담배를 빠는 두 명의 고딩에게 다가갔다. 담배를 피우는 건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한 애를 다구리 까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남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다. 그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맞는 애를 비웃던 애가 다가오는 나를 돌아보더니 슬쩍 눈길을 피했다. 저 새끼는 쫄았고. 앉아서 걸쭉한 침을 뱉던 고딩이 일어나서 자기 옆의 놈을 보더니 자신만만한 얼굴로 톡, 담배 재를 턴다.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는 깊숙이 들이마신 후 연기를 내뱉었다. 기가 차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가오 좀 잡아 보겠다는 거였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두 손을 뺐다. 성큼성큼 고딩들에게 다가갔다. 교복 바지를 줄이고 머리는 무슨 패션인지 모를 이상한 꼬락서니로 해 놓은 게 지들 딴에는 먹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내가 보기엔 개찐따지만. 팔다리가 얇고 머리만 큰 게 무슨 외계인이냐? 끝까지 담배를 끄지 않는 고딩들 앞에 서서 말했다.

 

“야, 니들 뭐하냐?”

 

살짝 쫄은 한 놈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가 담배를 피든 말든.”

 

“그래. 담배를 피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 근데 너네들 뒤에 그거 뭐냐고.”

 

실실 쪼개며 침만 뱉던 다른 녀석이 일어나서 담배를 내던졌다.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아나, 씨발. 안 그래도 담탱이 때문에 기분 좆같은데. 이제는 꼰대가 와서 지랄이네. 저놈처럼 맞고 싶으세요?”

 

풉. 너무 귀엽게 말을 하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오케이. 인정.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냅다 달려가서 놈의 면상에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놈이 몸이 휘청거리며 허리가 뒤로 꺾였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따귀를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놈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정신없이 맞기만 했다. 살다 살다 고딩에게 욕까지 들어먹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움켜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방금 한 말 다시 해봐.”

 

휘청거리던 놈이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양쪽 볼은 이미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게 아니라요.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이걸 그냥 확.”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옆의 놈도 덩달아 흠칫했다. 좋아. 이 두 녀석은 접수했고. 고딩의 머리를 놓아주고, 멍하니 이쪽을 보는 세 명의 고딩에게 말했다.

 

“야, 너네들 이리 와.”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녀석들이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가장 깝치는 한 놈을 제압한 순간 상황은 끝난 거다. 녀석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에서 두려움이 엿보였다. 어디 피지컬도 안 되는 것들이 개겨. 저런 비리비리한 놈들은 세 명이 다 덤벼도 발라줄 수 있었다. 놈들에게 말했다.

 

“애를 왜 때리는 거냐? 여기가 교실이야? 어디 좆고딩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한 놈씩 머리통을 때린 후 맞은 애한테 다가갔다. 움츠린 채 떨던 녀석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다가 자신을 때리던 놈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슬며시 팔을 치워 나를 바라봤다.

 

“저 새끼들 뭐냐? 왜 너를 때리는데?”

 

맞은 애는 아직도 놈들이 두려운지 힐끔힐끔 눈치를 봤다.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는 말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디 사람들 다 지나는 길 한가운데에서 이 짓거리야.”

 

혀를 차고는 뒤에서 한데 모여 수군거리는 놈들을 불렀다.

 

“뭘 보고 섰어? 새끼들아. 빨리 와서 얘한테 사과해.”

 

5명의 고딩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왔다. 몸을 돌려 쓰러진 애를 일으킨 후 말했다.

 

“핸드폰 줘 볼래?”

 

녀석이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자 내 전화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종료했다.

 

“저 새끼들이 또 때린다 싶으면 언제든 형한테 전화해. 알겠어?”

 

핸드폰을 받아든 애가 엉거주춤 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 안 할 거야? 왜 때렸냐니깐? 뭐 뻔하지. 삥 뜯는데 돈 안 준다고?”

 

이상하게도 녀석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 답답하네.”

 

이번엔 등 뒤에 선 놈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때린 이유가 뭐냐고.”

 

새끼들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미쳤네. 아주 개념을 상실했고만. 이번에는 다섯 놈 앞으로 가 한 놈씩 돌아가며 머리통을 때렸다.

 

“그래서, 때린, 이유가, 뭐냐고, 묻잖아.”

 

열중쉬어 자세로 머리를 맞은 놈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이 없었다. 슬슬 화가 났다. 이건 나를 알로 본다는 이야기였다.

 

“야이, 씨발 새끼들아. 내가 묻잖아. 귓구멍에 좆 박았냐?”

 

다시 녀석들의 대갈통을 수차례 갈기며 소리쳤다.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새끼들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해. 알아?”

 

“씨발. 좆도 모르면서.”

 

“뭐?”

 

순간, 다섯 놈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이 개새끼들 봐라. 나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먼저 내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는 놈의 가슴을 밀치고, 좀 떨어져서 발길질하는 놈의 발을 붙잡았다. 인정사정 봐주면 안 된다. 껑충껑충 뛰는 녀석의 복부에 주먹을 내리꽂고, 내 팔을 붙잡은 놈을 뿌리쳤다. 놈들의 몸무게는 기껏해야 60 킬로그램. 난 운동을 하고 살을 찌워서 키 178에 몸무게는 80 킬로에 육박했다. 체급에서 상대가 안 된다. 마치 유치원생이 대학생에게 덤벼드는 꼴이었다. 날 잡았다. 오늘 아주 죽어봐라. 이리저리 날아오는 주먹들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붙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게 메이웨더의 어깨라는 거다. 새끼들아.

 

어느새 등 뒤로 접근한 놈이 내 목을 한쪽 팔로 감은 후 조였다. 컥! 숨이 막혀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들었다. 눈앞에서 별이 펑펑 터졌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허우적거리며 뒤로 손을 뻗었다. 목을 조르는 놈은 이리저리 내 손을 피하며 나를 끌고 뒷걸음질 쳤다. 숨은 막히지. 몸이 뒤로 쏠려 중심은 못 잡겠지. 힘을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주먹과 발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일단 뒤에 놈부터 떼어 놓으면. 그것만 성공하면 너네들은 아주 피똥 싼다!

 

온몸을 뒤틀며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뒤에 붙은 매미 자식이 한순간 굽은 등을 타고 눈앞으로 떨어졌다. 발밑에 꿈틀거리는 놈을 한 대 걷어차려고 발을 드는 순간, 어느새 사방을 둘러싼 놈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내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몸이 여기저기로 흔들리다가 균형을 잃고 땅에 처박혔다. 얼굴로 사커킥이 날아들었다. 퍽! 머리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몇 번의 발길질이 이어지다가 눈앞이 컴컴해졌다. 그리고 블랙아웃.

 

 

 

얼굴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양 볼이 퉁퉁 부어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는 두통에 신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눈두덩은 뭔가가 붙은 듯 무거웠다. 손을 들어 만지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팠다. 주위를 둘러봤다. 길거리였다. 저만치 수십 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졌다. 그제야 고딩들한테 다구리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맞은 애를 비롯해 고딩들이 싹 사라졌다. 씨발 새끼들이. 너네들은 이제 죽었다. 씩씩거리며 일어나다가 끙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난생 처음 노가다 뛰었을 때처럼 온몸이 땡기고, 무거웠다. 끙끙대며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도 그놈들이 핸드폰을 훔쳐가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부재중 통화가 온 걸 확인하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맞은 애의 연락처가 있으니 너네들은 이제 뒈질 준비 해라.

 

저만치 떨어진 검은 봉지를 주워들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씨발. 고딩들한테 다구리나 당하고. 씨발. 쪽팔려서 얼굴도 못 들겠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옆구리가 시큰거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헉헉거렸다. 창피해서 병원도 못 가겠다. 일단 몸부터 회복하고, 맞은 애한테 놈들의 행방을 묻자.

 

거리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다행이다. 오지게 맞은 걸 들키지는 않을 테니. 집에는 이미 엄마와 아빠가 와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런 쪽팔린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 군대를 만기 전역했다는 놈이 전역하자마자 맞고 다닌다면 어떤 얼굴로 볼지 알만했다. 아오, 그 새끼들 잡히면 죽여 버린다.

 

 

 

꼬박 3일 동안 집 안에서 가족들을 피해 다녔다. 밥도 따로 먹고, 친구들 만나러 나간 것처럼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혈기 왕성할 때라도 치료를 받지 않는 한 회복이 더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병원에 다녀오자. 이러다간 몇 개월간 밖에서 떠돌아야 할지도 몰랐다. 절대로 가족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쪽팔려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라고.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병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다구리 맞았던 골목이 보였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앞으로 날아들던 발길질이 떠오름과 동시에 온몸으로 전해지던 고통이 생각났다. 숨이 막히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씨발.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들어 골목을 확인했다. 교복을 입은 고딩들이 언뜻 보였다. 그 새끼들이다. 나를 밟았던 씨발 고딩 새끼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양손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지금 쫀 건가? 저딴 새끼들한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어차피 지금은 몸을 회복해야 하니까 그냥 봐주는 거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쳤다. 누군가가 부른 것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잘못 들은 거였다.

 

병원에서는 누구한테 폭행을 당했느냐고. 진단서를 때겠냐고 물었다. 잠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똑같이 갚아주면 그만인 것을. 입원하라는 말에 통원 치료하겠다고 우겨 겨우 병원을 빠져나왔다. 한 달 정도 병원을 오가면서 치료받을 생각에 답답해졌다. 잠깐이나마 후회했다. 그냥 껴들지 말걸.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 먹었다. 눈앞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지는데 겁쟁이처럼 모른 척 지나가면 그거야말로 남자가 아니다. 난 남자다. 맨 중의 맨. 휴잭맨처럼. 아, 이건 아니고.

 

골목 근처로 오자 또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이런 나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조금이라도 몸이 회복되면 바로 족쳐야지. 무슨 씨발 새가슴도 아니고. 다행히도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골목을 지나다가 다세대 빌라 앞에 경찰차 두 대가 선 게 보였다. 동네 주민들이 경찰차 주위에 모여 웅성거렸다. 뭔 일이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다세대 빌라 현관으로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오갔다. 뭔가 사건이 터진 모양이었다. 경찰들에게 대놓고 물어보긴 뭐해서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현이 엄마, 얘기 들었어요? 왜, 3층에 혼자 사는 여자가 발바리한테 당했대요.”

 

“쯧쯧. 그러니까 문단속을 잘해야지.”

 

“혼자 사니까 문에다가 3중 잠금장치까지 해 놓은 모양이더라고요. 그러면 뭐해. 창문을 넘어서 왔다잖아요. 3층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아까 경찰한테 물어보니까 귀찮아하면서도 알려주더라고. 열린 창문으로 침입했대요.”

 

“어떻게 창문으로 왔대요? 무슨 스파이더맨도 아니고.”

 

“저기 보이죠. 가스 배관. 그걸 타고 넘어왔대요. 아유,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 이사를 하든가 해야지. 남편한테 아무리 무섭다고 말해도 그냥 허허 괜찮다고만 하고.”

 

경찰에 대한 반감으로 소문이 사실일 거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강간 사건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아주 질 나쁜 놈이다. 인터넷으로 발바리에 대한 글을 봤다. 주로 혼자 사는 여자를 노리고, 반지하든 3층이든 창문만 열려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입한다고. 더 가관인 건 범행을 한 후 현장을 깨끗이 정리한다는 사실이었다. 스카치테이프로 자기 음모를 회수하고, 물티슈로 흔적을 닦아낸 후 주머니에 챙기는 건 기본이었다. 아예 피해자에게 샤워를 시켜 혹시라도 남은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제거했다.

 

세상엔 쓰레기 같은 놈들이 너무 많다. 저런 놈은 고추를 잘라야 한다. 사회와 영원히 격리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 다시는 여자들한테 껄떡거리지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집에 들어가려고 아파트 현관 밑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나왔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어머, 얼굴이 왜 그러니?”

 

에이 씨발 좆됐다. 나도 모르게 뒤돌아선 채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엄마가 불렀지만, 모른 척하며 걸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놔, 뭐라고 핑계 대지? 원래 밖에 있을 시간인데 왜 하필 지금 계신 거냐고.

 

엄마가 따라오며 꼬치꼬치 물었다.

 

“현민아. 무슨 일이니? 엄마랑 얘기 좀 해. 싸웠니? 요새 방 밖으로 통 나오지도 않고.”

 

아, 엄마는 그냥 볼일 보면 되지. 왜 자꾸 귀찮게.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었다. 에이 씨. 당분간 피시방에서 살아야겠다. 엄마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아들을 돕는 거라고요. 기다리면 나중에 고딩들을 혼내준 후 알아서 술술 불 텐데. 그거 하나 못 기다리고.

 

뛰다 보니 어느새 다구리를 당했던 골목 앞이었다. 낄낄대는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바람에 휘청거리며 하늘로 솟아 흩어졌다. 그새를 못 참고 또 담배를 빨러 온 모양이었다. 무슨 너구리굴에 연기 피우냐? 새끼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라. 그땐 아주 개박살 낼 테니까. 피울 수 있을 때 실컷 피워. 내가 금연주식회사처럼 강제로 담배를 끊게 만들어 줄게. 이를 악물고 뒤돌아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어이, 꼰대 아저씨. 이리 와서 잠깐 얘기 좀 하지?”

 

꼰대 아저씨? 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골목을 나온 고딩들이 담배를 물고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를 다구리 시킨 놈들뿐만 아니라 못 보던 놈들까지 대략 7명은 넘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나한테 오지게 맞았던 놈이 그때처럼 걸쭉한 침을 바닥에 뱉고는 옆의 놈을 보며 말했다.

 

“야, 우리가 저 새끼 존나게 팼거든. 근데 아까 겁도 없이 지나가더라? 부르니까 또 존나게 도망가.”

 

“나이 먹고 안 쪽팔리나. 소환사의 협곡에서 탈주하는 거 아님?”

 

“저 새끼는 브론즈도 안 될걸? 모친은 잘 계세요, 아저씨?”

 

시시덕거리는 놈들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패드립까지 치는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지. 씩씩거리며 놈들에게 다가갔다. 7명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저번처럼 얻어터질 게 뻔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맞는 건 맞는 거고. 일단은 놈들을 두드려 패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니들이 개념을 상실했구나. 어디 좆고딩이 다구리 까서 이겨놓고는. 혼자선 암 것도 못하지?”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다 같이 덤비는 건 쪽팔린 일이라고 상기시키자. 그러기 위해서는 저번에 나한테 맞았던 놈을 자극해 혼자 덤비게 만들어야 한다. 직살나게 패준 후 전체를 제압하는 거지.

 

“어이 너 외계인처럼 대가리만 큰 새끼. 저번에 나한테 줘터진 거 기억 안 나냐? 뭐라고 했더라? 죄송하다며, 다신 안 그러겠다고 그랬잖아.”

 

쪽팔리지? 분명히 반응이 올 터였다.

 

“뭐래. 저 븅딱이.”

 

7명의 고딩들이 한꺼번에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이게 아닌데? 저놈들은 그때 이후로 집단의 힘에 대해 자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 계기였다. 잘못 생각했다. 따로따로 족쳐야 했다. 튈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불리하다. 일단 후퇴한 후 한 명씩 개인 면담을 하면 지들이 어떻게 할 거야? 울고불고 빌겠지. 하지만, 내가 이대로 도망가면 몰려다니면서 더 지랄발광할 거다. 싸워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후. 갑자기 끊은 담배가 고팠다. 어이, 거기 누구 담배 있으면 하나만 줘라.

 

는 개뿔.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안 그래도 온몸이 편찮은데, 또 맞았다간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고딩들을 피해 달아났다.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 도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훗날을 기약하는 거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공원으로 뛰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진입로에 들어서자 마음이 놓였다. 미친놈들이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지.

 

벤치에 앉아 아까 일을 떠올리자 울컥 화가 치솟았다. 절대 가만히 안 놔둔다. 그 좆같은 새끼들을 어떻게 잡아 족치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도 모르게 벤치 등받이를 팔꿈치로 쳤다. 화가 가라앉지를 않았다. 아픈 것도 잊은 채 주먹으로 벤치 앉는 부분을 수차례 내리쳤다. 쾅! 쾅! 도망쳐서는 안 됐다. 너무 창피하고 분했다. 분명히 도망친 나를 비웃을 터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갈까?

 

아얏! 갑자기 손등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얼른 손을 들어 확인했다. 손등 정중앙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렸다. 뭔가에 물린 자국이다.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살폈다. 발밑으로 붉은 형광으로 빛나는 작은 뱀 한 마리가 길가에 난 풀숲으로 사라졌다. 얼른 뒤 쫓아 발로 풀숲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밟히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풀숲을 헤쳤다. 없다. 아무리 여기저기를 헤집어 봐도 풀숲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을 확인했다.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쪽으로 도망갔다면 분명히 보였을 터였다. 분명히 이 안으로 들어왔다. 풀숲은 작은 나무 밑동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됐다. 이상하게도 안에 있어야 할 형광 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잘못 봤나? 손등의 상처를 확인했다. 붉은 구멍이 두 개. 틀림없는 송곳니 자국이었다. 뱀에게 물렸다면. 그리고 두 개의 송곳니라면. 그건 독사였다. 소름이 쫙 끼쳤다. 얼른 119에 신고해야 한다.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몸을 가눌 수 없어 벤치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누웠다. 지진이 난 것처럼 사방이 흔들렸다. 우리나라의 독사 중에 제일 독성이 강한 뱀은 까치살모사였다. 인터넷으로 대충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색깔이 붉은 형광은 아니었다. 그럼 그 뱀은 뭐지?

 

지금 이런 잡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벤치에 누운 상태에서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핸드폰으로 119에 신고해야 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만 조금씩 까딱거릴 뿐 아예 팔 자체를 움직일 수 없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도와달라고 소리쳐야 한다.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숨도 쉴 수 없었다. 마치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 좁은 관 안으로 내던져진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워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두 눈이 녹고, 코도 녹아 비뚤어지고, 벌린 입은 흐르는 피부로 메워져 영영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읍읍. 이제는 주변이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이렇게 나는 공원 벤치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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