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들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시간여행 #타임리프
  • 평점×40 | 분량: 78매 | 성향:
  • 소개: 카산드라들과 타임 스내처, 그리고 그 여자. 나를 구해준 여자와 편의점에서 나눈 한 끼의 식사. 더보기
작가

카산드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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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단골손님이었다. 이름은 몰랐다. 매일 저녁 8시쯤 찾아와 도시락이며 컵라면, 삼각김밥 따위를 사먹곤 했다. ‘당신이 가는 길에 축복을’이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프랜차이즈 편의점 1호점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어딘가에 2호점이 생기기는 할지 늘 궁금했다.

주고받는 말이라곤 두 마디가 전부였다. “저기요”와 “여기요”. 여자가 “저기요”라고 말하며 계산할 물건을 내어놓으면 내가 “여기요”하고 대답하며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식이었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거스름돈이 오가며 스치던 손끝이 몹시 차가웠다.

여자는 음식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느긋하게 꼭 꼭 씹어 먹었다. 할 일도 없는 참에 페이스북 앱을 켜고 좋아요를 누르다 고개를 들어보면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낯이 내 쪽을 향해 있곤 했다. 마치 내가 자신을 바라볼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러면 나는 휴대전화를 직각으로 세워 재빨리 표정을 감추었다. 나는 소심한 남자였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인지하는 세계 속에서 여자는 지나치게 눈에 띄는 존재였다. 틀린 그림 찾기 놀이를 위해 일부러 그려 넣은 것 같다고 할까. 여자는 말랐다. 게다가 무척 작았다. 160㎝가 될까 말까 한 키였다.

손님이 뜸한 시각. 나는 직접 바코드를 찍어 계산한 핫도그의 포장지를 벗기며 그 여자를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어쩐지 목이 메어오는 느낌이 들어 허둥지둥 계산대를 빠져 나와 탄산음료나 오렌지주스 같은 것을 집어 와야 했다.

아르바이트 시급은 그대로인 반면 간식비로 지출하는 돈은 늘어갔다.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것이 연민인지, 호기심인지, 속수무책으로 시작되는 사랑의 전조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에 수학 과외를 겸하면서 학점까지 신경 쓰느라 내 눈은 언제나 충혈돼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다섯 번, 오후 7시까지 꼬박꼬박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퇴근은 밤 11시.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을 먹은 탓에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이틀을 제외하면 예고 없이 결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여자는 규칙적으로 내가 근무하는 편의점에 나타났다. 매일 같은 시각 산책에 나섰다던 철학자처럼. 그러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뚝 발길을 끊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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