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의 우주

당신과 나 사이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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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잘 있지? 15년만의 대접근. 나는 붉게 빛나는 점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오늘도 국제화성기지의 코딱지만 한 실험 모듈에서 분 단위로 짜인 빡빡한 실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것이다.

 

옆으로 눈을 돌렸다. 우주를 떠다니며 빛을 뿜는 수많은 별들. 저 중에 아빠가 계신 별은 어느 걸까. 초광속통신장비 앤서블(Ansible)의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아무런 답신이 없다. 송신기가 우주 전 방위로 24시간 내내 신호를 보내도록 설정해 놨는데 수신함은 늘 비어있다. 상용화된 지 얼마 안 된 기술이라 불안정한 걸까?

 

아니야, 기계는 정확해. 아빠가 언젠간 답을 해 주실 거야. 중얼거리며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거실 너머에서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음 날, 아이들이 교실 구석에 겹겹이 모여서는 들떠서 어쩔 줄을 모른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한가운데에 정한울이 서 있었다. 아, 오늘 특활이 있던가. 한숨이 나온다. 이따 천문관측동아리 카노푸스에 가야하는 탓이다. 동아리 1학년 대표 강나래의 그 잘난 체 하는 얼굴을 봐야 하다니.

 

나와 달리 한울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긴 저 녀석은 늘 저렇다. TV 스크린에서도 학교에서도. 붉고 투명한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예쁜 눈을 찡긋하는 모습에 대한민국 여자들이 죄다 반하지 않았나. 나처럼 아이돌 그룹에 관심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빼고.

 

한울이가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 다른 반에서 찾아온 아이들과도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다 보니 교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소동은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가라앉지 않았고, 선생님이 들어와 호통을 쳐서야 멈췄다.

 

한울이가 오는 날이면 으레 그렇듯 수업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 나는 선아를 생각하며 동아리실로 향했다. 막돼먹은 논리를 앞세우는 강나래나 별자리 이름으로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대는 정한울 같은 애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다행이다. 선아와 다른 반인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선아는 오늘도 옆 자리를 맡아놨다가 내가 들어오자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선아 옆에 가 앉았다.

 

“문유영, 아니지, 에바 무운(Eva Moon)! 이번 주엔 외계인 통신에 성공하셨나?” 나래가 키득대며 묻는다.

 

뭐가 우스운지 다른 아이들도 웃음을 참지 못 했다. 내가 오기 전부터 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웃지 않는 사람은 나와 선아 둘뿐이었다.

 

“언젠간 성공할 거야. 우주는 넓고 별은 많으니까.”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다.

 

“그래, 참 고생이 많구나. 언젠가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하면 연합 정부는 너한테 고마워해야 될 거야. 외계인이 있다면 말이지만. 아, 뭐, 있을 수도 있지. 근데 생각해 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개미랑 브라질의 개미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둘은 서로가 있는지도 모르고 만날 방법도 없잖아. 지구인과 외계인의 관계도 그런 거야. 어쩌면 진짜 개미라서 신호를 받고도 뭔지 모르는 거 아니니?” 나래가 얄밉게 깔깔거렸다.

 

어쩜 언론이 하는 말을 저리도 고대로 따라할까. 오랫동안 지구인들은 우주를 탐사하고 측정하며 통신을 시도해 왔지만 외계 문명의 흔적조차 찾지 못 했다. 국제천문학회는 관측 가능한 범위의 우주 내에서 지구가 유일한 생명의 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힘들 수도 있겠지. 근데 앤서블도 워프도 백 년 전에는 상상 속에만 있었던 거잖아. 원래 과학 발전은 상상에서 출발한다는 걸 모르니? 상상의 나래를 조금도 못 펴는 걸 보니, 나래야, 네 이름이 아깝구나.”

 

그러자 나래가 발끈하며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동아리실 내에 팽팽하게 감도는 긴장감은 한울이가 훤칠한 몸을 휘청대며 일어나자 깨져버렸다. 녀석은 한 손에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오는 길에 자판기에서 뽑은 모양이었다.

 

“에헤이, 친구들끼리 왜 이러시나! 자, 우리 화기애애하게 티타임을 즐겨 보자고. 커피는 역시 카푸치노가 최고야. 메테오룸의 리더 정한울이 우리 카푸치노 인들에게 선사합니다!”

 

한울이가 극적인 동작으로 긴 팔을 휘둘러 출입문을 가리키자, 한울이랑 친한 남자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종이컵 여러 잔을 두꺼운 책으로 받치고 나타나 커피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래는 조금 전의 일은 금세 잊고 한울이 옆에 가 앉으며 커피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고는 동아리 이름을 아예 카푸치노로 바꾸자며 설레발까지 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이 카푸치노 운운했으면 동아리를 나가라고 난리쳤을 애가.

 

오늘은 별자리의 유래나 각자가 관측한 별에 대한 토론이 아닌 아이비리그 지원에 필요한 에세이 작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왔다. 나래의 오빠가 작년에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그 별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그 과정을 책으로 내고 그 이야기를 에세이에 쓴 덕분에 얼마 전에 아이비리그 대학들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성적도 무척 좋았지만, 나래의 아버지가 유인타이탄탐사선 휴매니티 1호의 승무원이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나래의 오빠는 에세이에 아버지처럼 훌륭한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이야기도 적었다고 했다.

 

카푸치노 향이 진하고 좋았다.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해 봤다. 내가 에세이를 쓴다면 뭐라고 적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퍼스트맨(First Man)이라는 고전영화를 보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대요. 그리고 훈련 받다가 만나서 결혼하고 저를 낳았지요. 아빠는 우주 유영 중에 제 출산 소식을 들었대요. 그래서 제 이름이 유영이에요. 미국에서 살 때는 에바 Eva라고 불렸고요.

 

그 뒤는 암울하지만 희망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빠가 탑승한 휴매니티 1호는 세계 최초로 워프 기술이 적용된 유인타이탄탐사선이었죠. 우주선은 워프 시도 중에 동시다발적인 기기 이상을 호소하다 사라졌어요. 외계인 납치설, 폭발설, 승무원 불화설,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우주선 조각조차 찾지 못 해 사고 원인을 알 수 없었죠. 연합항공우주국은 몇 달 뒤 승무원들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고 새로운 휴매니티 1호를 준비했어요. 우리 아빠가 탄 휴매니티 1호는 0호가 돼 버렸고요. 유명한 이야기죠? 근데 그게 끝이에요. 지구인들은 우리 아빠와 동료 승무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해요. 실패한 사람들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는 법이니까요. 저는 우주비행에 대한 꿈은 없지만 아빠를 찾으려는 꿈은 있어요. 엄마는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빠가 미지의 별에 불시착한 거라고 생각해요. 워프하다가 잘못돼서 엉뚱한 우주로 간 거죠. 아니면 웜홀로 빨려 들어갔거나요. 저는 새로운 우주도 아빠도 꼭 찾아내고 말 거예요.

 

 

화면 속의 엄마는 수척해 보였다. 중력이 약한 상태라 매일 운동해도 근육을 잃는 건 어쩔 수 없다 했다. 우주식이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눈빛만은 저렇게 반짝이는 건 꿈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앤서블 통신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할 게 뻔하니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내가 슬퍼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담임과 상담하고 온 엄마는 아빠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울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심리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그때마다 휴매니티 0호의 불시착에 대해 말하자 상담가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고 엄마의 눈물은 늘어만 갔다. 결국 내가 모든 것이 덧없는 상상이었음을 고백하고 아빠가 보고 싶다며 대성통곡을 해 보인 뒤에야 상담을 끝마칠 수 있었다.

 

내가 앤서블 통신에 목매는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할머니와 선아뿐이다. 할머니는 내 이론을 믿는 유일한 사람이고, 선아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내심 안다. 하지만 선아는 내 생각에 경악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 나는 그것으로도 족하다.

 

“유영이 아빠 문주현 씨,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아빠 딸 유영이가 아빠를 찾고 있어요. 제 목소리가 들리면 언제든 답을 남겨 주세요. 항상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빠를 다시 한 번 불러보기도 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고전소설 <마션 Martian>을 소리 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라디오를 틀자 소년 그룹 메테오룸의 노래 <비행(非行)? 비행(飛行)!>이 흘러나왔다.

 

-마음껏 날아, 라아! Fly, fly, fly. 날개를 펼쳐, 라아! Wing, wing, wing. 우린 자유, 야아! We’re free, free, free. 네 꿈을 이뤄, 봐아! Dreams come true true…

 

웩! 한울이는 그 좋은 실력을 도대체 왜 이 따위 노래에 낭비하는 걸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라디오를 껐다. 그 때 웬 남자가 말했다.

 

-와, 이건 무슨 노래죠?

 

흐익! 나는 의자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앤서블 스피커다! 저기에서 소리가 나오길 그토록 고대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귀신이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누구세요?”

 

-저는 ‘카일룸’이라고 해요. 그쪽은요? 아, 참, 유영 씨라고 했던가요?

 

“맞아요. 카일룸…… 씨는 어느 나라에 사세요?”

 

-저는 칸타투스에서 살아요. 칸타투스라는 행성을 아세요? 지구에서 330만 광년 떨어진 윌라투스 은하에 있는 행성이에요.

 

“뭐라고요? 흥, 뻥치시네. 그 멀리 있는 행성인이 한국말을 한다고요?

 

-평생 속고만 사셨나? 제 실제 말소리를 들려드리죠.

 

잠시 후, 스피커에서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띠따삐따 히치하치 퍼스트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기지 말아요.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잖아요!”

 

내가 성질을 내자 카일룸라는 남자가 유쾌하게 웃었다.

 

-그쪽도 만만찮거든요. 통역기 안 돌리면 유영 씨 말이 되게 웃기게 들리는 거 알아요?

 

나는 반신반의하며 카일룸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언어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며 국가 간 언어 비교는 물론 행성 간 언어 비교 연구를 하고 있다 했다.

 

“행성 간? 그럼 지구랑 칸타투스 말고도 생명체가 사는 별이 또 있단 말인가요?

 

-물론이죠. 거기선 잘 안 보이겠지만 우리 은하에서 보이는 또 다른 은하가 있어요. 거기에도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하나 있죠. 놀랍게도 거기에 한국어와 비슷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덕분에 유영 씨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거예요.

 

아빠에 대해 물어봤지만 카일룸은 지구인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이 칸타투스에 불시착한 소식도 못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 일은 정말 안타깝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여기나 다른 행성에서 환생하셨는지도.

 

“환생이요?”

 

-네. 사실 제가 성간 통신을 시도한 건 우리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서거든요.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어요. 다음에는 다른 별에서 태어나보고 싶다고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암호도 정했어요.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요.

 

“우와, 정말 뭉클하네요. 꼭 할아버지를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유영 씨도 아버지를 꼭 찾으시길 빌어요.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친구를 얻었다. 그것도 외계인 친구!

 

 

오늘 특활에는 특별 손님이 초청됐다. 나래의 아버지로, 지구 최초로 타이탄에 워프해서 다녀온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다른 동아리 아이들까지 몰려와 동아리실은 터질 것 같았다. 휴매니티 0호의 사고만 없었다면 저 자리에 선 사람은 아빠였을 것이다. 나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미는 것을 다독여야 했다.

 

특활이 끝났다. 재잘재잘 떠들며 동아리실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 화성에 갔다 온 사람도 보고 싶다! 유영아, 너희 엄마 언제 오시니?”

 

“가을에 귀환하시니까 한 번 부탁드려 볼게.”

 

신나 하는 친구들의 환호 뒤로 누군가가 독설을 퍼부었다.

 

“흥, 개나 소나 다 가는 화성? 화성에 가는 게 특별한 건 백 년 전 얘기지.” 나래의 목소리였다.

 

“개나 소나 다 가는데 넌 갈 수나 있고?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지덕체를 다 갖춰야 된다던데, 어쩌니? 넌 그 중에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차갑게 받아쳤다.

 

“뭐야?” 나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뭐? 아아, 지덕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구나? 그래, 그렇겠다. 넌 지덕체 중에서도 지가 특히 모자라니까.”

 

“이게 진짜!”

 

나래가 달려들자 평화론자를 자처하는 한울이가 담벼락처럼 가로막고 나섰다.

 

“아이고, 우리 카푸치노 차기 회장님, 진정하셔. 예쁜 얼굴에 주름 생기겠어. 자자, 우리 매점 가서 시원한 아이스 카푸치노나 한 잔 해볼까.”

 

한울이가 복도 반대편으로 나래를 끌고 가자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나섰다. 나는 콧방귀를 한 번 뀐 뒤 선아를 돌아봤다.

 

“오늘 우리 집에 갈래? 할머니가 순대볶음 해 주신대.”

 

“나 일찍 가 봐야 해. 우리 엄마 기일이거든.” 선아는 약간 침울해 보였다.

 

카일룸에게서 들은 환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하자 선아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환생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