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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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가 다가오자,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둔감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감지할 정도로 그 변화는 빠르고 또렷하게 나타났다. 교실 안의 아이들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활력과 기대감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나이든 어른들이야 따분함을 달래줄 행사가 모처럼 다가왔음을 반기는 흐뭇함일 테고 내 또래는 어떤가? 다른 것보다도 우리 바로 윗세대, 그동안 우리를 보고 ‘해 구경도 못 해본 것들’이라며 놀려대던 이들과 동등한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에서 누구 못지않게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제(太陽祭), 즉 해맞이 축제는 성인만이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운이 좋은 편이다. 13세에 처음으로 태양제에 참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해맞이는 물론이고 태양을 보는 것 자체가 이번이 명실 공히 첫 경험이 되니까.

6년 전 태양이 뜨는 날 7살의 나는 방에 갇힌 채 혼자 있었다. 재수 없게 사흘 전에 발병한 성홍열으로 인해 격리 조치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마을은 사방이 막힌 거대한 폐쇄공간이었기에 전염병은 가장 민감하고도 엄격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모두들 태양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기쁨의 축제를 벌이고 있을 무렵, 아무도 없는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조그만 기억 하나만을 얻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되살릴 수 있다. 납빛 공간 속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일순 주위가 안개가 낀 듯 희부옇게 변하는 걸 느꼈다. 처음엔 열과 땀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진 때문으로 알았지만, 누운 채로 고개를 뒤로 젖히니 내 뒤쪽 벽, 키도 안 닿는 높이에 있는 둥근 창문에서 반한 빛이 비치는 것이 아닌가. 열린 적도 빛이 들어온 적도 없기에 지금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둥근 선창(船窓)이었다.

그 으슴푸레한 잔광만이 내가 가진 태양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 전에는 내가 3살 때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양제가 뭔지도 몰랐을 정도로 어렸으니까. 그저 주위가 시끄러웠고, 또래 아이들과 함께 카펫이 깔린 널찍한 방에서 뒹굴며 놀았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학교에 가도 달라진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이들은 오랜 지루함에서 벗어나 마음껏 일탈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른들로부터 들은 화려했던 태양제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들도 이 파티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며 기대를 마음껏 부풀렸다.

운동회나 학예회 직전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들뜬 상황이라, 제대로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몇몇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걸로 수업을 대신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수업시간엔 볼 수 없던 반짝이는 눈동자를 하고서 선생님의 말을 한껏 빨아들였다.

“모두 조용히! 교과서 71 페이지를 펴세요!”

그런데 그 좋던 분위기를 깨는 일갈. 우리는 모두 에이, 우우, 선생니임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칭얼거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역사 담당인 할매탕구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평소대로 수업을 진행하려 했다.

“너희들은 이번 태양제가 처음이겠지만, 나는 벌써 열 번도 넘게 참여해 왔어. 지금 돌아보면, 태양제의 참 의미를 모두 잊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심히 안타깝구나. 그냥 춤추고 놀자고 벌이는 잔치가 아니란 말이야. 누구 태양제를 왜 개최하는지 아는 사람 있나?”

그런 것은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거대한 배고, 배의 바깥은 바다와 구름과 비와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날씨는 언제나 흐림 또는 비이고, 바깥세상은 위험한 곳이어서 누구도 나갈 수 없다.

과학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별은 타원형의 공전주기를 갖고 있으며 주위 항성들 간의 중력 간섭으로 주기가 일정치 않다.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 시기는 대략 3년 안팎인데, 그나마도 하늘이 먹구름에 싸여 있으면 태양을 관측할 수가 없다.

운이 좋게도 구름이 옅어지거나 바람에 밀려나서 비도 오지 않고 구름도 걷힌 맑은 날에 태양과 근접하게 되면, 육안으로도 해를 볼 수 있게 된다. 그 날이 오면 배는 천장을 활짝 열고 모두들 광장으로 나와 태양 아래 춤추고 노래하며 해맞이를 한다.

대충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지명당한 몇 명의 아이들이 일어서서 말했다. 할매탕구는 역사 선생답게 그 대답에 하나 더 덧붙였다.

“태양숭배 사상은 저 멀리에 있는 우리의 고향, 지구에서 전래된 거예요. 지구는 우리와 달리 사시사철 하늘이 맑게 개어 있고 바다만큼이나 거대한 육지가 있어 사람들은 모두 그 위에서 살면서 하루의 반을 태양 아래에서 보냅니다. 빛과 힘, 그리고 창조의 근원으로서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서는 태양을 신격화해 왔던 것입니다.”

아, 그래요? 애들은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탕구는 이미 수업 모드로 들어가 있었고, 우리의 부푼 기대는 사그라들었다. 김 빼는 데는 뭔가 있다니까.

역사시간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지구의 역사였고, 지리시간에 배우는 것은 지구의 모습과 나라였다. 대체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갈 일도 없을 지구에 대해 왜 배워야 한담? 더구나 거기는 땅도 크고 사람들도 많이 살아서 외워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오대양 육대주의 이름은 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 배우는 것 중의 하나였다.

사실 지금 여기에, 지구에서 온 첫 세대는 아무도 없었다. 100세를 넘긴 최고령자 어른조차도, 당신이 나고 자랄 무렵의 마을은 지금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역사시간에선 약 1400년 전에 지구에서 온 탐사선이 이 행성에 처음 도착하였고, 얼마 후엔 대규모 조사단이 도착하여 지구화(Terraforming, 테라포밍) 과정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과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기술한다.

결국 철수를 거부한 소수만이 선박형 부유도시에 남았지만, 지구연합 정부에선 초소형 국민체로 간주할 뿐 정식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우리는 난민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라고 한다.

그래봤자 그건 다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지구와의 교류는 이미 1000년 가까이 끊긴 상태이고, 우리 모두 지구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이상을 알지 못한다.

산소 부족과 그에 반비례한 이산화탄소 증가, 인구의 증가와 식량 부족이 맞물려서 3세대가 지나자 선조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문명 생활을 포기하고 산아 제한과 사회주의에 입각한 농업 중심의 부족 공동체가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이 정도는 우등생이 아니라도 수업 시간에 졸지만 않으면 다 알고 있는 간단한 역사다.

우리의 역사는 이토록 간단명료한데도 공부를 시키고 경쟁을 시켜야 성에 차는 어른들은 기어이 골치 아픈 지구의 역사를 우리에게 외우도록 강요하고 있단 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과 지구에서 활약한 인물들에 대해 알아서 어디에 써먹으라고.

“다음은 쟤, 진타라는 내가 제일 처음이야. 먼저 손대면 죽을 줄 알아.”

으름장을 놓는 남자애의 표정이 끔찍했다. 그 얼굴과 몸짓은 텔레비전에서 본 지구의 영상을 환기시켰다. 아프리카라는 상상도 못할 만큼 거대한 대륙에 산다는 마운틴 고릴라의 모습이었다. 산속 울창한 숲에서 살고 우두머리가 암컷들을 모두 섭렵하는 야생 동물.

녀석은 영락없는 마운틴 고릴라 대장이었다. 주위에는 덩치가 작은 수놈들이 어슬렁거리며 남은 암컷들 얻을 생각만 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기분 나쁜 점은 녀석이 가리킨 ‘쟤’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며칠 전부터 태양제가 다가오자 고릴라들은 한데 모여 반의 여자애들을 가리켜 얘는 네 거고, 쟤는 내 거고 하는 식으로 품평을 하고 나눠가지고 있었다.

정말, 여자들은 아무 말도 생각도 안 하는데 전부 자기들 멋대로 정하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남존여비 일부다처제 사회가 된 거지? 그건 지구에서조차 사라진 낡은 인습이라고 배웠는데 말이지.

지금 우리 마을은 철저한 모계사회다. 자식에겐 배 아파 낳아준 어머니만이 법적, 사회적인 보호자요 양육권자이다. 아이를 수정시켜준 남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친척관계는 오직 직계 여성으로만 존재했다.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12세 이상의 성인 여성은 누구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주어지고 12세를 넘은 성인 남성은 친족을 제외한 성인 여성 누구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다(물론 상대의 허락이 있을 경우에만.).

성인들의 성관계는 가능해도 임신과 출산, 양육은 모두 여성들에 의해 정해지고 인구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마을을 다스리고 도시를 운영하는 정치, 사회, 문화 지도자의 자격은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폐경기 이후의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남자들은 모두 그들의 수족이 되어 복무할 뿐이다.

하지만 딱 하루의 예외가 주어지는 날이 있으니 바로 태양제 때라고 한다. 그 날만은 유일하게 남자들에게 이 사회의 주도권이 넘어간다고 한다. 남자들의 육체적인 힘과 야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태양제 동안에 모든 성인 남녀들은 누구와도 성관계가 가능하며 거부할 수 없었다(물론, 어머니를 포함한 친족을 제외하고). 아울러 피임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남자들의 고삐를 풀어주는 날인 셈이었다.

평소에는 사회가 엄격하게 출산을 통제하고 있으면서도 이 날만 예외로 두고 있었으니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또래가 많은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지식으로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우리가 태양제 때 벌어진 광란의 결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애는 나밖에 없는 것인지, 주위를 둘러봐도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어떻게 치장을 하고 누구를 만날까에 대해서 얘기하며 들떠 있었다.

억눌린 남자들의 야만성이 마음껏 활개 치는 단 하루, 3년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한 그 날이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야, 왕눈이. 넌 내가 제일 먼저야. 목욕재개하고 준비하고 있어, 알았어?”

이미 내 안에서는 대장 고릴라로 굳어진 도앙두안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희롱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던 참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말과 행동을 대놓고 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설사 녀석이 짓궂은 장난을 치더라도 ‘선생님께 이를 거야.’ 혹은 ‘엄마한테 다 말해.’ 같은 퇴치 주문만으로도 녀석을 쉽게 물러나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임을 잘 안다. 뒤에 있던 똘마니 고릴라들이 일제히 낄낄거렸다. 다음은 내 차례라는 둥, 왕눈이는 가슴이 작아서 별로라는 둥, 제 멋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태연한 척하려 애썼지만 모멸감과 두려움에 몸이 떨리고 눈물이 삐져나왔다. 여자인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그것도 작년에 성인식을 치른 엄연한 성인인 내가 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상 태양제를 피할 수는 없었고, 나도 꼼짝없이 열린 천장 아래서 남자들이랑 몸을 섞어야만 할 운명이었다.

고릴라의 두터운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더니 민소매 셔츠 아래 드러난 팔뚝 밑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의 열기와 끈적한 욕망이 손바닥을 통해 내 살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와 혐오감을 맛보았던 그때,

“더러운 손 치워. 해 뜨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어느새 내 앞을 막아선 여자애가 있었다.

이름은 반옌. 달리기 잘하기로 유명한 옆 반 아이였다.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서 남자는 물론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작년 체육대회 때 100미터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단체 릴레이를 모두 우승해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운동은 영 젬병인 나도 선망의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서로 얼굴과 이름만 아는 정도였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거의 없었다.

반옌은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내는데, 같은 반 여자애들이 밥을 같이 먹자거나 숙제를 같이 하자며 달라붙어도 무심한 표정으로 대할 뿐이어서 오래 버티질 못하고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곤 했다.

어떻게 옆 반 아이에 대해 그렇게 잘 아냐고 물으면, 나 역시 그렇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몰래 지켜볼 뿐 결국 실행하지 못했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세차게 뛴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겠는가.

고릴라는 생각지 못한 방해에 약간 놀란 듯했으나 이내 눈썹을 찌푸리며 위협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빈정대었다.

“쳇, 누구신가 했더니 옆 반 꺽다리 아냐? 두고 봐. 넌 태양제 날 혼자서 멀뚱멀뚱 서 있을 테니까. 그게 얼마나 쪽팔리는지 알기나 해? 형들이 그러는데 태양제 때 짝짓지 못한 사람은 왕따 당한대. 여자는 애도 못 낳는 반편이 취급받고, 남자는 고자 소리 듣는다더라.”

반옌은 고릴라의 야유에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맞받아쳤다.

“그래? 그럼 너희들도 미리 듣고 익숙해지는 게 좋겠네, 이 고자들아.”

“씨팔, 방금 뭐랬어?”

고릴라가 당장이라도 때릴 듯 주먹을 치켜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려 하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반옌의 행동이 더 빨랐다. 고릴라가 정강이를 차이며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인 순간, 반옌은 들었던 놈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한 바퀴 돌리며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슬쩍 쳐다보니 똘마니들은 쫄아서 덤빌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반옌은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말했다.

“거기 부하 고자들, 너네 두목 일으켜줘라.”

고릴라는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면서도 씩씩거리며 으르렁거렸다.

“에이 씨, 태양제 때 두고 보자!”

“그 날 나를 보면 도망가는 게 좋아. 그때는 아주 바다에 빠뜨려 줄 테니까.”

놈들은 물러갔고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박수를 치는 여자애도 있었다. 반옌은 나를 돌아보며 굳었던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때? 기분 좀 풀어졌어?”

돌연 반옌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아, 응. 고마워, 나 때문에…….”

“어차피 저 녀석들 한 번쯤 혼내주고 싶었어. 지가 뭐라도 된 양 나대고 다니잖아. 여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말야.”

우리는 함께 웃었다. 반옌은 기지개를 쭉 펴고는 반쯤은 혼잣말로 말했다.

“아~ 아, 힘을 썼더니 배고프네.”

“우리 집에 안 갈래? 맛있는 거 줄게.”

“좋지! 근데 나 장난 아니게 잘 먹는데 괜찮겠어?”

“걱정 마. 며칠 먹으려고 많이 만들어놨으니까.”

자연스레 반옌을 집에 초대하게 되어 내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껏 나만 알고 있던 비밀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반옌과 나는, 세상에 없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비밀의 공유만큼 둘을 하나로 강하게 묶어주는 끈이 또 있을까.

우리는 수력발전으로 불을 밝힌 전등 아래로 상록수와 덩굴식물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렀다. 인공 강 위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고, 해바라기가 빼곡히 찬 둔덕을 넘어 서어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과 바나나 농장, 감자와 고구마 밭을 지나 우리 동네로 왔다.

반옌이 사는 마을은 남쪽 과수원 너머에 있기 때문에 조금 둘러서 오는 셈이었지만 이십 분 정도 거리여서 멀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 함께 들어와 매콤한 닭고기 만두를 잔뜩 먹고 배를 채운 후에 나는 반옌을 비밀 장소로 안내했다. 집에서 문 하나만으로 이어진, 콘크리트로 둘러싼 투박하고 약간 을씨년스러운 외견을 한 건물이다.

“와아……! 이게 뭉글이구나. 실물은 처음 봤어.”

수조 앞에 선 반옌이 꾸밈없이 감탄을 하자 나는 애완동물 자랑이라도 하듯 뻐겼다.

“그치? 이래봬도 아무나 구경 못하는 거야.”

뭉글이는 정식 명칭은 아니다. 발음도 어렵고 뭔가 그럴싸한 학명이 따로 있었지만, 내가 뭉글뭉글 움직인다고 뭉글이라 이름 지은 이후로 다들 그렇게 불렀다. 역시 이름은 부르기 쉬운 게 제일 아닌가.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는 우리 엄마의 연구실. 실은 엄마 몰래 연구실에 친구를 데리고 들어와서 연구 중인 표본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들키면 나중에 된통 혼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이 행성의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뭉글이는 이 커다란 물의 별에서 이전부터 살고 있던 토착 생물이라고 한다.

지구화를 위해 얼음을 녹이고 염화나트륨과 염화마그네슘 등을 투여했으나 지구의 어류를 방류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 죽었다고 한다.

결국 섣부른 수질 조정은 토착 생물의 개체 수만 줄어드는 결과를 맞아 뭉글이도 지금은 멸종 위기 단계에 처했다고 한다.

동식물 중에서 우리가 채집하고 조사한 것은 수십 종이 넘지만, 이 뭉글이는 유일하게 인간과 맞먹는 지능을 가졌다고 추측되기에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엄마는 지구의 어류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물은 두세 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무언가 지적인 활동의 증거를 보이는, 의사소통을 하는 생물은 뭉글이가 유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초음파를 해석하질 못해서 증명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뭉글이의 외견은 멀리서 보면 지구의 생물 중에서 물범을 닮았다. 크림색의 둥글고 길쭉한 몸통에, 꼬리 끝과 양쪽에 조그만 지느러미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촉수가 없는 해파리처럼 반투명하고 물결을 따라 흐느적거리며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깨끗한 수조 안에서는 두뇌며 장기와 같은 내부기관들이 생생하게 보인다.

뭉글이의 가장 큰 특징은 곤충처럼 두 가지 형태로 변태를 한다는 점이라고 할까. 지금 수조에 담긴 이 모습이 유체(幼體) 상태로 자유로이 바다를 떠돌아다니지만, 어느 시기 수천 킬로미터의 해저로 내려가 바닥에 몸을 고정시키고 성체(成體)로 탈바꿈하여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인 채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때 성체의 모습은 목이(木耳) 버섯과 닮았다.

“신기하네, 실물은 처음 봤어. 그럼 얘는 언제 성체가 돼?”

내 설명을 견학 온 학생처럼 얌전히 듣고 난 반옌이 물었다. 나는 엄마 덕에 얻은 지식을 마음껏 뽐내며 대답했다.

“이 아이는 성체가 못 돼. 해저로 내려가서 뿌리를 내려야 하거든. 엄마는 뭉글이의 체내에 수심을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을 거래. 그러니까 이 수조 바닥은 쟤한테는 너무 얕아서 안 되는 거지.”

“평생 유체로 살다가 죽는 거야? 조금 불쌍하다.”

“괜찮아. 얘들은 유체로 사는 기간이 아주 짧대. 3년 정도? 대신 성체가 되면 수백 수천 년도 더 살아간대. 우리 조상이 지구에서 오기 전부터 이 별 밑바닥에는 뭉글이들이 잔뜩 모여서 살고 있었다는 거야.

근데 쟤들은 성체가 되면 두뇌가 없어진대. 지금은 지능이 높은 고등 생물이지만 성체가 되면 원시적인 상태로 퇴화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유체인 채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반옌은 내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떠올렸다.

“……근데 3년이라니까, 뭔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맞아. 태양에 별이 근접하면 유체들은 성체로 변태할 때가 왔음을 안다나봐. 엄마는 그 이유를 뭐라고 설명했는데 생각이 안 나네. 내가 볼 때는 태양이 싫은 가봐. 그러니까 바다 밑으로 도망치지.”

“하하하. 우리랑은 반대구나.”

반옌은 남자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우리?”

“다들 해맞이 한다고 난리법석이잖아. 그때 찍은 사진 보니까 장난이 아니던데. 곳곳에 불을 피우고 몸에 색색의 그림을 그리고…… 재미있겠지?”

하지만 내 표정이 밝지 않음을 알아차렸는지 미소를 거두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 애들 일은 걱정하지 마. 뭣하면 내가 옆에 있어줄게. 마음에 드는 남자 있으면 말해. 내가 그 꼬맹이들 막아줄 테니 그 틈에 가서 만나면 되잖아.”

“저기, 너는 있니? 태양제 때 짝짓고 싶은 사람.”

갑작스레 찾아온 낯선 침묵을 이겨내고 간신히 물어보았다. 대답은 약간의 뜸을 들인 후에야 돌아왔다.

“있어. 음, 있었어, 라고 해야 되겠구나.”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과거형으로 고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아직 그걸 물어볼 만한 사이가 못 된다는 자격지심으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는 대신 번역 기계 쪽으로 향했다. 뭉글이의 초음파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연구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성과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애당초 신체 구조도 사는 환경도 다른 뭉글이와 인간이 같은 개념의 언어를 쓸 리가 없으니 포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엄마에게 있어 뭉글이와 인간의 교류는 지금껏 연구를 계속 하게 만들어준 목표이자 원동력이 되어 왔음에도, 이 프로젝트는 엄마와 보조 연구원들이 다른 연구와 실험에 바빠 등한시하는 바람에 어깨너머로 구경만 하던 내가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한 결과, 지금 명실 공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되었다.

“나한테도 가르쳐줘, 재미있겠다.”

나는 연구에 흥미를 보여준 반옌이 고마워서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뭉글이를 보여준 친구는 다섯 명 남짓 되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꽤 친해진 다음에나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수족관에 온 듯 실험기구며 수조 안의 생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 그 이상 나아가진 않았다.

“우리가 지금껏 알아낸 문장들이 있어. 이걸 누르면 뭉글이들의 초음파로 변환되거든. 마침 먹이 줄 시간이 되었으니까 해보자.”

나는 먹이라는 의미의 초음파를 보내며 먹이 주입 버튼을 눌렀다. 흐느적거리며 뭉글이가 먹이에게로 다가갔다.

“이 초음파만 보내도 먹이 나오는 구멍 근처로 다가와. 하지만 먹이는 안 주면서 파장만 자꾸 보내도 오질 않아. 거짓말에는 속지 않는단 말이지.”

“정말 머리가 좋구나.”

최소한 파블로프의 개보다는 수준이 높다는 의미였다.

“근데 우리가 아는 문장이 몇 개 안 되. 배가 고프다든지 아프다든지 여기로 와라 가라 이런 초보적인 수준이야. 뭉글이들의 언어는 그 정도 표현밖에 못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언젠가는 언어를 알아내어 대화를 나누는 게 내 꿈이야.”

“그래서 진타라는 공부를 잘하는구나.”

난 전교에서 5등 안에는 드는 실력이지만 반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러웠다. 옆 반인 나에 대해 의외로 알고 있구나 싶어서.

“실은 너랑 같은 반이 되고 싶었어. 그랬다면 벌써 친하게 지내고 있었을 텐데.”

반옌의 말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왜, 어째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물론 나는 이런 내 생각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서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니, 이게 책에서 읽은 이심전심이라는 걸까. 우리가 이토록 빨리 서먹함을 벗고 친해진 것도 그런 마음 덕택인가보다.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읽었던 소설 속 남자와 여자가 꼭 이랬다. 서로를 마음 깊이 원하고, 사랑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망설였다. 거기엔 집안의 반대나 각자의 약혼자 등 가로막은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모든 시련을 넘어선 주인공들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리고 맺어지며 감동적인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렇게 보자면 뭉글이도 똑같다. 지금 나는 뭉글이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어쩌면 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망상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뭉글이는 지금 붙잡혀서 좁은 수조에 갇힌 불쌍한 처지였고, 나라면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을 거다.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아가야 할 뭉글이를 엄마와 나는 연구를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이유로 가둬두고 있는 것이다.

방금 내가 유체 상태인 채로 사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지만, 실은 이것도 사람인 나의 기분으로 내린 단정일 뿐이다. 분명 쟤는 성체가 되길 원하겠지.

뭉글이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람은 마음을 직접 전할 수가 없다. 지금 반옌처럼 말을 하든가, 하다못해 표정이나 몸짓이라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뭉글이의 초음파가 그런 언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금껏 엄마와 나는 믿어왔다. 그런데도 긴 세월동안 연구를 해도 기초적인 의미밖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 파장을 일반적인 소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파장의 흐름을 물속에서 그려내는 무늬 혹은 문자로 해석하고 이것을 읽는 거라면? 혹은 이 파장이 물에 반사되며 비치는 색상의 차이로 의미를 전달하는 거라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한 가지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곳으로만 갔지만, 눈을 돌려보면 다른 길이 거기에 있었다.

“아! 그래 어쩌면!”

나는 비명 같은 큰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아르키메데스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쩌면 뭉글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몰라!”

“진짜?”

“아직 근거는 없지만, 이런 생각은 엄마도 안 해봤을 거야. 전부 반옌이 덕분이야, 고마워!”

“응? 내가 뭔가 말했나?”

“말했고말고!”

나는 찢어질듯 높은 소리로 말하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공책을 펼쳐 지금의 아이디어가 휘발되기 전에 떠오르는 대로 끼적대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뭉글이의 파장을 여러 방식으로 기록한 그래프와 영상을 띄웠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무늬로 생각하고 지켜보기 시작했고, 수조가 아닌 바다에서 뭉글이가 파장을 보낼 때의 기록 영상을 띄워서 물의 움직임과 반사된 색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이 중에서 무언가 정답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과학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어차피 지금껏 해온 방식이 옳다는 증거도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밑져야 본전인 셈이었다.

하나에 집중하면 무서울 정도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반옌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잠시 후 내가 후 하고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연구실의 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후였다. 그리고 뒤에는 어느새 엄마와 연구원 둘(모두 나와 같은 엄마의 딸이다)이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던 엄마가 나를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진타라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며? 한 번 보여주렴.”

“어, 엄마? 언제 왔어요?”

“너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구나? 너의 집중력은 아마 인류 최고일 거야. 벌써 세 시간도 더 지났어. 네 친구가 그러던데? 네가 지금 뭉글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지, 반옌이 있었다. 하지만 3시간이나 지났다니 이미 집에 돌아갔겠지?

“하아,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지…….”

“가다니? 아직 안 갔어. 지금 네 방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내 방에서? 안 돼, 엄마! 왜 내 방이야!”

“네 친구인데 그럼 내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니? 얘는 참.”

엄마는 별 일도 아닌데 난리냐는 말투였으나 나에게는 더없이 심각한 일이었기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내 방은 반옌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더럽고 지저분하다. 한쪽엔 책이, 다른 쪽엔 속옷이고 뭐고 막 벗어놓은 옷이, 구석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친구들이 놀릴까봐 안 들고 다니는 인형까지!

“자, 착용해 보렴.” 엄마는 내게 발신기를 포함한 각종 장비를 내밀었다. “테스트와 시뮬레이션은 끝냈어. 하지만 실제로 뭉글이와 대화를 하는 건 네가 처음으로 하는 게 좋겠다 싶대. 네가 낸 아이디어니까 말이야.”

나는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머리에 전극을 꽂고, 입 바로 옆에 마이크를 붙이고,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매었다. 모두 지구에서 전래된 선조들의 기술이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낸 5일 만에 수수께끼는 풀렸다. 결국 정답은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뭉글이의 초음파를 해독하지 못한 것은 그 파장을 진폭이나 주파수의 변조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이나 화면 위에 그래프로 그려놓고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그들의 파장은 2D가 아닌 3D였다. 물이라는 매질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물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동안 다른 방식으로 쌓아온 연구 성과와, 이번의 해석을 결합하자 그 초음파는 사람의 뇌파와 비슷한 부분이 많음을 알아내었고, 덕분에 엄마는 단 이틀 만에 350개가 넘는 낱말의 사전과 이를 상호 변환 가능한 번역기를 만들어내었다
.
수조에 들어가니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

「자랑스런 우리 딸, 내 말 들리니?」

“네, 엄마.”

내 목소리는 수조 밖 스피커를 통해 엄마와 연구원과 반옌에게 틀림없이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밝은 표정이 그 증거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네 음성신호를 뭉글이의 파장으로 변환할 테니 말을 건네봐.」

“알았어요. 근데 뭐라고 말하지?”

「일단 가볍게 시작해봐. 배고프냐고 물어보든지.」

하지만 그래서는 이전의 방식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막상 생각나는 것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적어도 이 행성에서 지구인이 토착 생물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니까.

그렇지만 “외계 생물체여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간을 대표하여 당신에게 우호의 인사를 보냅니다!” 같은 영화에 나올 법한 멋진 인사말을 건넨다 해도 상대방의 언어에 인간이나 우호, 인사 같은 낱말이 없다면 이해를 못 할 테니 말짱 꽝이 아닌가.

“안녕? 난 진타라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별 수 없이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알아들을까. 엄마는 테스트를 거쳤다고 하지만 제대로 전달이 될까.

설레는 가슴을 안고 기다렸다. 하늘거리는 상대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벌써 한 1분은 기다린 것 같다. 슬슬 조바심이 났다.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타라, 다른 말을 해봐.」 그때 귀로 엄마가 아닌 반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덕분에 엄마의 특별 허락을 얻어서 놀러온 참이었다. 「뭉글이가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쟤들에겐 이름이 없을지도 몰라.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봐.」

“알았어. 해볼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상대방을 최대한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을 했다.

“내 기분은 매우 좋아. 너의 기분은 어떠니?”

내 말이 고유한 파장으로 바뀌어 수조의 물을 가로질렀다. 그 파동이 상대방에게로 전달되고…… 인간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물결의 흐름이 내게로 되돌아왔다.

갑자기 내 귀에 소란스런 환호성이 들릴 때까지도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