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자꾸 왔어요

  • 장르: 호러, 추리/스릴러
  • 평점×25 | 분량: 158매
  • 소개: 택배가 자꾸 왔어요. 모든 건 택배 때문이에요. 택배로 인해 시작된 막장종합세트. 더보기

택배가 자꾸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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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자꾸 왔어요

 

 

 

1. 처음 택배는 내 동생 종환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종환이가 선물을 보내다니, 내 생애 그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세상천지 혈육이라곤 그 애와 나 단 둘이지만 아버지가 달라서인가 아무래도 내 생각 같지는 않았거든요. 믿어지지가 않아서 보낸 사람 김종환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박스를 열었습니다. 십 센티 정도 크기의 갈색 유리병, 빨간 리본이 달려 있었어요. 솔직히 갈색 병에 빨간 리본이라니 너무 촌스럽지만 중요한 건 가격, 아니, 마음이죠. 무슨 선물일까? 즐거운 기대감에 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갈색 유리를 통해 보이는 건 응? 중하새우 달랑 한 마리?

 

헉…… 전 정말이지 너무 놀라 병을 떨어뜨릴 뻔했다고요. 병에 든 것은 글쎄, 내 동생 종환이의 손가락 아니겠어요. ‘킹왕짱’ 반지가 문신으로 새겨진 종환의 약지, 협박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잘려버렸어…… 지난주에 만들어준 돈으로는 칠천 모자란다고 징징대더니, 엄살이 아니었나봐…… 후회와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러나 제 처지에 마음 놓고 동생 걱정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계추 같은 남편 귀가 시간이 다 되었거든요. 순진한 남편이 봤다가는 조만간 어머니의 유도심문에 넘어가 다 주절댈 거고, 저를 미워하는 시어머니는 절 아주 쫓아내려 들 테니까요. 너무 급해서 변기에 쏟아 붓고 물을 내렸는데요, 옴마야, 손가락이 안 내려가는 거예요. 변기솔로 밀어 넣고 다시 물을 내리고, 몇 번을 되풀이한 끝에 가까스로 성공하자마자 남편이 돌아오고, 나는 뺨에 경련이 나도록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식사를 마치고, 샤워도 안 하고 보채는 남편에게 꼴딱 넘어가는 시늉을 해주면서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머릿속엔 종환의 손가락만 왔다 갔다 했어요. 눈앞이 캄캄해요. 돈을 주지 않으면 다음에는 손목을, 그다음에는 목을 잘라 보낸다고 했는걸요.

 

 

 

이튿날 아침 남편이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 후에,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가출 사 개월째인 시누이가 바로 등잔 밑, 우리 위층에 살고 있었거든요. 저로서는 믿을 데라곤 제 시누이이자 여고동창인 선영이 밖에 없었어요.

 

“그이 있으면 어쩌려고 갑자기!”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자 선영이가 기함을 하더군요. 선영이의 배는 남산만 해져 있었어요. 저는 용건도 잊고 그 넉넉하고 풍요로운 배를 바라다 봤습니다.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세상 참 불공평하지. 가뜩이나 미운털 박힌 처지에 임신까지 안 되어 전전긍긍하는 나한테는 안 와주는 아기가, 시집도 안간 처녀한테는 처억 들어서다니…… 돈푼이나 있다고 고고한 척하는 시어머니는 내 동생을 무슨 흉악범 취급하고 나를 착한 아들에게 달라붙은 꽃뱀 취급하지만 그러는 자기 딸은 흥, 우리 위층 사는 조폭 같은 사내하고 눈이 맞아 임신하고 가출했답니다. 억센 엄마 아래 억눌려 자란 여자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잖아요. 선영이 배짱에 가출이라야 고작 오빠네 윗집이지만, 아무튼 저는 시댁 식구들의 눈에서 시누이를 숨겨주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알게 되면 선영이는 당장 산부인과에 끌려가 아이를 지워야할 테니까요. 미우나 고우나 여고 동창이니 어쩌겠어요. 어린 시절 한때 실수들을 알고 있으니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요.

 

“절대로 안 돼. 칠천이라니! 지난주에 빌려준 것도 그이가 눈치 챈 것 같아 무서워 죽겠는데. 그거 회사 돈이라 못 채워 넣으면 그이도 큰일 난단 말이야.”

 

전 구구절절 밀고 당길 정신적 여유가 없었어요.

 

“그럼 할 수 없네. 어머님께 털어놓고 말씀드려 봐야겠네……”

 

내 입으로 시어머니에게 말할 리도 없건만, 그 말 한 마디면 끝. 순진한 선영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안방으로 가서 구두상자를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얼른 세어 보니 헌 돈 만원 권 백장 묶음 칠십 개였어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안절부절 ‘그이’ 올까 무섭다며 얼른 가라고 제 등을 떠밀더군요. 이런 소심한 애가 그런 건달하고 어찌 살아갈까나, 하도 답답해서 요령 좀 가르쳐주려는데 띠띠띠띠,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영이는 사색이 되어 나를 문간방에 밀어 넣었습니다. 아니, 올케언니 왔다고 왜 말을 못한대요.

 

에그, 저 멍청한 것은 표정관리도 못한 채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남자를 맞이하겠지……

 

제가 걱정한 대로 잠시 후 거실에서 나는 소리가 답답하기 짝이 없더군요.

 

“너 안방 옷장 안 구두상자 치웠냐?”

 

“응? 으응, 사, 상자? 아니, 아, 안 치웠어. 정말이야, 난 상자 같은 거, 보지도 못 했어.”

 

아유, 저런 답답이 같으니. 그러나 전 비웃지 않았어요. 비웃을 여유도 없이 건달의 말투가 험악해졌습니다.

 

“거짓말 하지마! 니가 돈 빼돌렸지!”

 

아, 아냐, 거짓말 아냐, 나, 돈 빼돌린 적…… 선영이는 더듬더듬 거짓말을 하지만 그렇게 서투르니 먹힐 리가 있나요. 전에 내가 빌린 돈이 문제가 된 것 같다더니 사실인 듯했습니다. 선영이를 갈구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나는 점점 불안해졌어요. 나는 벽에 귀를 바짝 대고 들었습니다.

 

“개 같은 년. 난 널 생각해서 네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잖아! 네년이 칠칠맞게 애를 배도 그냥 놔두고, 가출해서 갈 데 없는 년 내 집에 받아주고, 비밀 지켜 달라 해서 너 먹을 거 입을 거 다 사서 날라주고, 어느 밸 빠진 사내새끼가 너처럼 멍청한 기집년한테 그렇게 해줘?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년이, 내 돈을 빼돌려? 그게 어떤 돈인지 알아?”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살벌했어요. 말소리 사이사이 쿵쿵, 무언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한 진동이, 바로 내가 기댄 벽에 전해졌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행거 사이에 주저앉았습니다. 갑자기, ‘뚝!’ 하는 으름장이라도 들은 어린애처럼, 벽 너머의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벽은 최후의 단말마보다 더 처절하게 침묵했어요. 몇 초일까,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 몇 초가 흐르고,

 

“선영아! 선영아! 야, 정신 차려봐!”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후다닥 부산떠는 소리가 한참 들리고, 그리고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정적의 사이사이 거친 숨소리, 다친 짐승이 앓는 소리 같은 것이 섞여들며 또 얼마인가 시간이 흐르고,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느릿느릿 다가왔습니다. 건너편의 욕실 문이 힘겹게 열리고 이어서 무거운 것을 털썩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더니 짐을 덜었는지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 소리가 내가 숨어있는 문간방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심장이 저 혼자 목구멍으로 탈출하려는 것을 꿀꺽 삼켜 누르고 행거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몸을 가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종아리 근육이 불거진 다리가 옷자락 사이로 보였습니다. 조심스레 시선을 올리자 몸을 잔뜩 비꼰 용이 꿈틀거리는 게 보여 헉, 비명을 참았지요. 등짝에 용 문신이 가득한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찾고 있었어요. 사내는 선반 위의 공구함을 들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후우우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나오더니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어요. 이가 따다닥 마주치는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손으로 내 입을 막는데 확, 몸을 숨겼던 옷자락이 들쳐졌습니다.

 

190센티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벌거벗은 채 내 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를 부릅뜬 사내 낯빛은 잿빛이었어요. 아래윗집 인사도 없이 살던 우리 둘은 그렇게 첫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내는 내 머리채를 휘어감아 끌어올렸어요. 무지막지한 힘에 두 발이 공중에 뜨며 머리가죽이 벗겨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너무 무서우니까 비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 아랫집 여편네 아냐? 선영이 올케년”

 

사내도 나를 알고 있었어요.

 

“백장미파 여왕께서 여긴 웬일이셔?”

 

여고시절 별명까지 알고 있는 거 보니 선영이가 내 흉을 있는 대로 본 모양이에요.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졌겠구나…… 아래위로 나를 훑던 사내가 내 발밑에 시선을 멈추었어요. 아뿔싸. 구두상자가 열리고 만 원권 다발이 쏟아져 있었어요. 사내의 턱이 툭 불거지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사내는 악물은 이빨 사이로 중얼거렸습니다.

 

“너였구나. 돈을 뜯어간 게 네년이었어.”

 

끝장이다……

 

나는 살려주세요,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는 살려달라고 끝없이 외우며 맨 위 단추 한 개를 살짝 풀었습니다. 가슴이 드러나게 몸을 조금 숙이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어요. 희망은 있어요. 사내는 의자에 걸터앉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내는 내가 전에 빌려간 돈이 필요하겠지. 이미 그 돈은 종환이의 빚으로 사라졌지만 이 사내는 그걸 모를 것이고, 나를 살려두고 돈을 받아내려 들겠지. 살려만 주시면 꼭 갚겠노라고 애원하자. 그리고 풀어주면 몰래 경찰에 신고를……

 

맙소사. 사내는 선반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어요.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두말하기 귀찮으니까 얼른 벗어.”

 

덤덤한 목소리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어요.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옷을 몽땅 벗어야했습니다. 얼굴을 찍고, 전신이 드러나게 찍고, 다리를 벌리고 온갖 민망한 포즈의 사진을 찍던 사내의 아랫도리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캠코더를 삼발이에 고정시켜 놓고는 내 위에 올라탔어요. 백구십은 훌쩍 넘는 거구의 사내가요. 소리를 참으며 절정이 지나고 사내가 몸을 일으켰어요. 나는 벌거벗은 채 사내를 따라 방을 나가야했습니다.

 

목욕탕에는 내 시누이, 나의 친구 선영이가 누워 있었습니다.

 

제 몸이 휘청, 흔들렸어요. 그러나 내 처지에는 기절도 사치. 사내가 눈을 부라리자 저절로 몸이 바짝 세워지더군요. 전 사내 명령에 따라 죽은 선영이의 옷을 벗겨야했습니다. 사내가 목욕탕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시어머니에게 맞장구치며 은근히 시누이 노릇깨나 하던 선영이지만…… 의기소침 풀죽어 있던 불쌍한 여고 동창. 선영이 뿐 아니라 내 처지 역시 암담해 훌쩍였으나 사내가 시퍼런 회칼을 들고 돌아오자 눈물도 쑥 들어가데요.

 

사내는 오른쪽 어깨부터 시작했어요. 몇 번 해보았는지 익숙한 솜씨더군요. 회칼로 어깨의 피부를 긋자 검붉은 피가 용암처럼 흘러나왔어요. 창백한 선영이는 금세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욕지기가 올라왔지만 사내는 구토조차 허용하지 않았어요. 나는 사내가 시키는 대로 샤워기를 들고 흐르는 피를 씻어냈습니다. 사내는 공구들을 동원해 관절을 둘러싼 질긴 힘줄들을 뜯어냈습니다. 소리가 날까봐서인지 전기톱 같은 건 쓰지 않더군요. 사내는 남아 있는 살을 회칼로 삭삭 잘라 오른 팔을 말끔하게 떼어내더니 내게 내밀었습니다. 얼결에 받아들기는 했는데 내 손에 들린 선영이 팔이라니, 너무 끔찍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욕조에 홱 던졌더니 사내가 눈을 부라렸습니다.

 

“반으로 잘라.”

 

한 치의 반항도 허용되지 않는 명령이었어요. 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팔꿈치에 칼을 대야했어요. 저는 그렇게 공범이 되었습니다. 결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어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일이었건만, 남편과 시모는 선영이를 토막 친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지요……

 

사내가 왼팔을 떼어내는 동안 나는 오른 팔을 두 토막 냈습니다. 사내가 왼쪽 고관절을 분리하는 동안 나는 왼팔의 팔꿈치를 절단하고, 사내가 오른쪽 고관절을 떼어내는 동안 나는 왼쪽 무릎을 절단하고, 사지를 여덟 토막 낸 사내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눈을 감았습니다. 묵념이라도 한 걸까요. 잠시 후 눈을 뜨더니 한때 사랑하여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자의 얼굴을 마주 보며 머리를 분리했습니다.

 

내가 샤워로 피를 씻어내는 동안 사내는 문간방에서 커다란 트렁크를 가지고 왔어요. 트렁크를 열어놓고 시체조각들을 집어넣었으나 맙소사, 뚜껑이 닫히지 않더군요. 사내는 얼굴이 벌게져서 팔다리 조각 배치를 이리저리 바꿔보지만 소용없었어요. 남산만큼 솟아오른 배가 문제였어요. 씨근덕거리던 사내는 몸통을 다시 꺼내 목욕탕 바닥에 내던졌어요.

 

턱뼈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더니 시퍼런 회칼로 선영이의 몸통 가운데를 깊이 잘랐습니다. 피와 양수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내 얼굴에 뿌려져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사내는 피를 뒤집어 쓴 채 선영이 뱃속에 손을 넣어 아기를 꺼내들었어요. 탯줄이 달린 아기 몸통에서 피가 주르륵 떨어졌습니다.

 

순간

 

응애……

 

아기가 가냘픈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우악, 으아악, 으허어억……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사이로 연약한 아기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고, 눈앞에는 노란 기름방울들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내는 욕실에 없었습니다.

 

꿈이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기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빌었어요. 그러나 신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트렁크 안에는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선영이의 얼굴이 있었고, 욕실바닥에는 배가 갈라진 몸통이 던져진 채였어요. 처음 배를 가를 때 잘려버렸는지 조그만 팔뚝이 뱃속에서 비죽 솟아있었습니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 게 실제였는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열 토막을 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어떻게 그 속에서 태아가 살아있었겠어요……

 

거실에 나와 보니 사내는 소파에 망연자실 앉아있었습니다. 그 팔 안에는 수건에 싸인 아기가 안겨 있었어요. 사내는 나를 보더니 아기를 내밀었습니다. 예쁘장한 시누이와 남성적인 사내를 반씩 닮은 아기였어요. 나에게는 주지 않는 아기를 왜 이런 부모에게 보내는 걸까. 수건 한쪽이 피로 흥건히 젖은 채 아기는 얕은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아기를 가만히 얼러보았습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며 사내가 갈라진 소리로 말했습니다.

 

“넌 안 믿겠지만, 난 선영이를 사랑했어. 비록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다. 선영이네 가족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선영이나 이집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 그렇게 철저히 보호했는데……”

 

사내가 그런 태도를 보인 건 아주 잠깐이었어요.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조하고 냉혹한 본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 팔이 잘렸어. 아빠 손에 죽은 엄마의 뱃속에서, 아빠 칼에 잘렸어. 목숨을 살려 줄 테니 아기를 책임져 줘. 다른 일은 내가 다 막아주겠다. 아기를 키워주는 조건으로. 빚은 천천히 갚아도 돼. 하지만 아기를 유기하면 그건 용서하지 않겠다.”

 

맙소사. 차라리 돈을 갚으라고 하지, 이 간난동이 아기를 어쩌라고?

 

아연해진 나는 아랑곳없이 사내는 거침없이 욕실로 돌아갔어요. 배가 갈라진 채 납작해진 몸통을 들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사내가 힘껏 누르자 트렁크 뚜껑은 드디어 맞물려 꽉 닫혔습니다. 사내는 옷을 입고 차 열쇠를 챙기더니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신발장에서 워커를 꺼내더군요. 산에 가서 묻을 생각인가…… 현관에 걸터앉아 몸을 숙이고 워커 끈을 매는 뒷모습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었어요. 이 강인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사내에게 시누이이자 친구인 선영이 죽었고, 나는 이 사내와 숨넘어가게 성교를 하고 선영을 절단 내는 일을 거들었다. 선영이 배를 가르자 믿을 수 없게도 사내와 선영의 아기가 살아있었고, 사내는 불쌍한 선영의 아기를 내게 맡겼다. 그러나 아기는, 나는 누구보다 아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기를 키우려면, 이 아기를 데리고 남편과의 집에 돌아가면……

 

내게 달리 어떤 길이 있었을까요.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이 가능했을까요. 나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회칼을 꽉 쥐고 만감이 교차하는 그 등을 힘껏 찔렀습니다.

 

그다음은 사내에게 배운 대로였어요. 힘은 딸리고 시체는 더 무거우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지만, 사내에게 배운 대로 사지와 목을 분리하고 시체를 열 토막 내서 가방에 담았습니다. 내 몸무게 두 배는 되는 가방을 옮기려니 꼼짝도 안 해요. 할 수 없이 내용물을 다시 꺼내고 빈 가방을 문간방에 갖다 놓고 토막을 하나씩 가져다 넣었습니다. 욕실과 현관을 청소하고 내 몸을 씻고나니 탈진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문제의 돈 상자를 챙겨들고 우리 집으로 내려와 종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돈과 종환을 맞바꾸기로 하고 소파에 쓰러졌어요. 소파에서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그대로 죽었어야 했을까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했습니다.

 

종환이 돌아오면 트렁크 처리를 맡기자. 사내의 차 키를 주면 알아서 처치하겠지. 나는 일단 쉬어야해……

 

 

 

2. 두 번째 택배는 발송인이 없었습니다.

 

종환의 손가락을 택배로 받았던 생각이 나 무서워졌지만, 괜한 걱정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종환의 빚은 다 갚았으니까요.

 

그 일이 있은 후 이제 이주일,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위층 우편함에 들어 있더군요. 자동이체가 되는 걸 확인하고 찢어버렸어요.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왔고, 주말에는 함께 시댁에도 들렀습니다. 그 기세등등하던 시어머니도 시누이 가출이후 점점 풀이 죽는 중이에요. 아들을 붙잡고 며느리의 흉을 보는 대신, 며느리를 붙잡고 딸 걱정을 했어요. 그렇게 그악스럽게 살아온 인생이 허탈하기도 하겠지요. 나는 괜찮을 거예요. 곧, 돌아올 거예요를 연발하며 위로했고, 시어머니는 그렇겠지? 곧 돌아오겠지? 내게 동의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제 말에 팩팩거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건 결혼 후 처음이었어요.

 

모든 건 괜찮았어요. 다만 한 가지…… 기묘한 악취가 신경에 거슬렸어요. 그 악취는 미약하지만 기묘하게 불편했습니다. 화장실과 싱크대며 베란다, 배수구마다 샅샅이 소독했지만 악취는 가시지 않았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냄새가 느껴질 때면 괜히 범죄나 살육의 역겨움이 떠올라 메스꺼웠습니다. 내 몸에 냄새가 밴 것만 같아 아침저녁 샤워를 하며 미친 듯이 몸을 문질렀어요. 건조해진 피부가 가려워 피부과에 가서 약 처방을 받았어요. 약의 효과로 나른하고 졸린, 그런대로 평온한 날들이었습니다.

 

괜찮아. 이제 다 지난 일이야……

 

나는 용기를 내어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습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아이스 팩이었어요. 나는 아이스팩들을 들어냈습니다.

 

아악…….

 

나도 모르게 택배박스를 집어던졌어요. 상자가 모로 넘어지며 상자 안에 꽉 차있던 선영이 머리통이 튕겨져 나와 바닥을 굴렀습니다. 몇 바퀴 구른 후 똑바로 멈춰 선 그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끼아아아…… 내 몸 속에 사는 괴물 익룡이 날카롭게 포효하며 목구멍으로 솟구쳐 올라왔어요. 나는 내 입을 두 손으로 막았습니다.

 

 

 

“분명히 묻었다니까. 포천 시골집까지 차 몰고 가서 뒷산 중턱에 한 길은 파고 묻었어. 내가 왜 그걸 빠트리겠어?”

 

종환이는 오히려 화를 냈어요.

 

“정말 깊이 묻었어? 누가 본 사람은 없고?”

 

“그렇다니까. 그런데, 누나, 대체 왜 그러는데?”

 

“급한 일이야.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와. 다시 한 번 해 줄 일이 생겼어.”

 

또다시 종환이를 불러 상의할 수밖에, 달리 어떤 방법이 있겠어요.

 

“이게 무슨 냄새야?”

 

종환이는 집에 들어서며 실례되는 말부터 지껄이더니 선영이의 머리통을 보고는 기절을 할 듯 놀라더군요. 그러나 전과 2범답게 어우, 식겁했네, 아무렇지 않은 듯 상자를 집어 들고 나가며 호언장담 내뱉었습니다.

 

“어느 새낀지 몰라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매너가 안 되어먹었잖아. 남의 무덤을 파고 시체를, 그것도 하필이면 숙녀 얼굴을 꺼내 짐짝처럼 굴리다니, 그냥 두지 않겠어!”

 

제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고 별을 두 개나 달고 빚더미에 쫓기던 녀석에게 이런 일을 맡긴 건 분명 실수였습니다. 전화를 하더니 시체 조각들이 통째로 없어졌다더군요. 그 애의 한마디 한마디가 귀로 들어와 혈관에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내 혈관에는 따듯하고 맑은 피 대신에 차고 끈적한 불안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종환이에게 돈을 줄 테니 알아보라 시키는 것밖에, 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종환이는 스스로 대단한 인맥이라도 가진 듯 허세를 떨지만, 녀석의 실체는 조직원이 아닌 호구에 가까워요. 처음 별을 달 때부터 그랬습니다. 건달들이 끼워주는 데 으쓱해서 어울려 다니다가 동네 공중변소 비슷한 년을 돌림빵 하는데 한몫 낀 거예요. 성욕이나 지배욕, 하다못해 폭력충동도 아닌, 건달들 사이에 꼬랑지 빼는 꼴이 쪽팔려 저지른 짓이었어요. 그렇게 순진하고 단순한 애예요, 종환이는. 공중변소가 고소를 한다는 소문이 돌자 주요 건달들은 다 잠적하고 결국 얼빵한 종환이만 걸려들었어요. 종환이는 내게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남편을 만나기 전 업소나 나가던 내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시어머니는 내 동생을 무슨 연쇄살인마 취급하지만 사실은 고작 강간범이에요. 종환이는 결국 함께 윤간을 저질렀던 건달들의 연줄을 통해야 하겠지요. 아니면 저를 납치했던 조직에 연락하든가. 어차피 그놈이 그놈, 어느 쪽이건 돈을 요구하겠지……

 

나는 고민 끝에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선영이네 현관문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건달남편이 돈을 숨겨놓는 장소도 다 알고 있거든요. 선영이는 제가 묻는 건 다 말해 주었어요. 우린 그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어요. 그런 선영이를 잃고 저도 정말 힘들었다고요.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불쑥 들어갔지만 호들갑떠는 선영이는 없었습니다. 집안은 고요하다 못해 괴괴했어요. 그날 제가 뒷정리를 하고 나와 그런대로 말끔했지만 기묘한 악취가 났습니다. 우리 집에서 풍기는 것과 비슷한 고약한 냄새였어요. 소심한 모범생이던 선영이는 살림도 깔끔하게 했었어요. 임신을 하고도 쓸고 닦고 바지런을 떨었는데 바로 이 집에서 그런 처참한 살육의 희생자가 되고, 집에는 아무 흔적 없이 이 흉흉한 악취만 남다니…… 눈물이 치밀어 소파에 주저앉으려다가 경악했습니다. 악취의 진원지가 소파 위에 있었어요.

 

아기. 팔이 잘린 채 수건에 쌓여있던 간난신생아가 흙빛으로 부패해가고 있었습니다……

 

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전 누구보다 아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시오패스도 아니고, 시체 둘을 토막 쳐 가방에 담는 경황에 어떻게 아기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아무리 아기를 원했다 해도 그 상황에서 아기 분유, 기저귀, 그런 것들이 생각나겠느냐고요. 그런데 제가 죽을 것 같이 힘들어하는 그 사이에 선영의 아기, 사내가 부탁한 아기, 아기를 유기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던 바로 그 아기가. 썩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저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고요. 아기가 부패해 공기에 스며든 거잖아요. 그 공기를 어떻게 마실 수 있어요.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았어요. 나는 허겁지겁 수건에 싸인 아기를 집어 들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냉동칸에 아이를 넣고 문을 탕 닫았습니다.

 

그리고 안방의 옷장에서 현금 상자들을 모두 챙긴 후 서둘러 현관을 나섰습니다. 빨리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문을 벌컥 밀어 여는 순간 바로 문 밖에 있던 남자가 퉁 부딪혔어요. 너무 놀라 밀던 현관문을 도로 당겨 쾅 닫았어요. 들고 있던 상자에서 지폐 다발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현관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돈을 주워 담으며 눈물이 쏟아졌어요. 현관 천장의 자동 센서가 꺼지며 컴컴해진 바닥에 웅크려 소리 한참동안 죽여 울었습니다.

 

 

 

그 후 집안에 감돌던 악취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결코 편하지 못했습니다.

 

종환이 녀석은 어이없게도 점점 시건방져졌습니다. 대체 누구 도움으로 제 목숨이 붙어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고도 그러는 건지……

 

“비밀리에 수소문을 해봤더니, 내가 가방 묻고 간 이튿날 까만 양복 입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는 걸 본 주민이 있더라고. 아무래도 어느 조직 사람들 아닐까 싶은데, 줄을 동원해 보면 알아볼 수야 있겠지만 말이야……”

 

비열한 눈웃음을 치며 말꼬리를 흐리곤 했습니다.

 

비록 내 동생이지만 녀석의 인간성은 정말 믿을 바가 못 되었어요. 그 애의 첫 죄목은 강간이었지만, 두 번째는 장기밀매였어요. 녀석이 손가락을 잘린 건 정확히 사채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정신머리가 썩어빠진데다가 강간전과까지 있는 녀석이 제대로 취직을 할 수가 있겠어요? 전과자답게 무슨 불법추심업체 같은 데를 직장이랍시고 다니더니, 그나마도 한심한 일을 저질렀어요. 사채업자에게 위임받은 채무자에게 불법 장기매매를 주선해놓고는 그 대금을 상습적으로 삥땅친 거예요. 그게 들통 나서 추심업체와 사채업자 양쪽으로부터 호된 응징을 당한 거죠. 불법추심을 혼자 뒤집어쓰고 징역을 살고 나오니, 사채업자는 삥땅친 돈을 엄청난 고금리로 뻥튀기 해 요구했어요. 놈들은 부잣집에 시집간 나를 물고 늘어졌지만 내가 어쩌라고요. 나는 아무 실권이 없었어요. 재산은 모두 시어머니 것이었고, 남편은 시어머니의 착한 인형일 뿐인데요. 괜히 남편에게 부탁했다가는 시어머니 귀에까지 들어갈 게 뻔한 걸요. 그래서 선영이에게 돈을 뜯어, 아니 내가 뭐래, 빌려서 갚아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문제는 내가 달리 기댈 곳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종환이가 돈을 요구할 할 때마다 선영이네서 갖고 온 돈 상자를 열어 적지 않은 돈을 쥐어 줘야했습니다. 너 역시 사체 유기 죄인이니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고 강조를 했으나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잠도 잘 수가 없었어요. 침대 옆에 토막 난 선영이 시체가 누워 있다가 어느 순간 징그러운 사내로 변해 벌거벗고 나를 덮쳤어요. 내가 몸부림치면 사내는 토막토막 조각나며 침대에 스며들었습니다. 깨어있을 때면 선영이의 머리통이 바닥을 구르며 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구토가 치밀어 올라 헛구역질을 하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수면부족에 영양실조, 거기다가 그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못 먹고 토하는 날이 계속되다가 병원에 가니, 아아 세상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 벌써 10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너무 힘이 들어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3. 세 번째 택배도 발송인이 없었습니다……

 

택배상자를 받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와 계셨어요.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택배회사는 낯선 업체였습니다. 배달부는 키가 컸어요. 고개를 올려 얼굴을 흘끗 보았으나 캡을 눌러써서 뾰족한 하관에 얇은 입술이 보일 뿐이었어요. 말없이 시간이 지체되자 거실 안쪽에서 시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뭐냐?”

 

“아, 별 거 아녜요.” 침착하게 대답하고 상자를 내려놓았습니다. 배달부에게 캐물어보거나 뒤라도 밟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문을 닫았습니다.

 

“뭔데 그러냐?”

 

시어머니가 가까이 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아, 그냥 택배에요. 동생 거예요……”

 

시어머니의 눈이 샐쭉해지더군요.

 

“동생 뭘 사주는데? 나도 구경 좀 하자.”

 

심장이 쿵,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 했으나 침착하고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사주는 게 아니라 동생이 주문한 건데요, 집 비우고 여행 간다고 택배를 이쪽으로 돌려놓은 거라 제가 뜯기가 좀……”

 

“뭔데 구경도 못하게 하냐?”

 

시어머니는 상자와 나를 번갈아 노려보더군요. 저는 시어머니에게 대놓고 대항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슴이 쿵닥거렸으나 필사적으로 태연하게 버텼습니다.

 

“니 친정동생, 요즘 가까이 드나드는 것 같던데,”

 

시누이 가출이후 기가 꺾였던 여장부가 다시 살아나더군요.

 

“내가 살아생전 내 집에 전과자 드나드는 꼴을 보게 되다니……”

 

쿵쿵대던 심장이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대지만 나는 죄스러운 척 눈을 내리 깔고 시어머니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급한 김에 동생이 여행갔다고 둘러댄 게 실책이었어요. 택배상자는 우리 집 현관에서 하룻밤을 자야했습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새벽 두 시가 지난 어둠 속,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스박스 뚜껑이 들썩이는 소리가 틀림없었어요. 누군가 상자를 건드리는 거지? 옆 자리를 더듬어보니 남편이 없어요. 소스라쳐 일어나 나가보았지요. 아이스박스 주변에 유령이 등장하는 무대장치처럼 차고 흰 연기가 자욱했어요. 오금이 저려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숨죽여 지켜보았습니다. 뚜껑이 들썩이더니 빼꼼, 한 귀퉁이가 열렸어요. 상자 안에서 무언가 꿈틀대더니 검은 머리통이 비죽이 올라왔어요. 시누이의 두 눈이 나를 노려보았어요. 아악, 비명을 지르며 몇 번이나 악몽에 깨어났어요. 처음에는 도닥이며 위로해주던 남편도 밤새 잠을 설치자 충혈된 눈으로 짜증을 냈어요. “엄마 성격 너도 알잖아! 그 정도도 못 맞춰?” 고작 시어머니 때문에 악몽을 꾸는 줄로 오해하는 남편이 괜히 서러워 눈이 붓도록 울었습니다.

 

어렵사리 임신한 며느리 돌봐준다고 시어머니는 매일 우리 집에 왔습니다. 사실은 사돈총각 드나들까봐 감시하려는 거지요. 이튿날도 아침 일직 시어머니가 오시고, 상자에서는 쾨쾨한 냄새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을 전화로 불러 택배 상자가 왔는데 어머님이 계시니 그냥 현관에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현관 밖에서 기다리는 동생에게 상자를 주려고 집어 드는데, 스티로폼 상자가 물컹, 썩은 것 같았어요. 번쩍 들어 올리니 안에서 꿈틀, 움직임이 느껴졌어요. 악, 소리를 지르며 상자를 떨어뜨렸습니다. 우둥퉁, 퉁, 높지도 않은데서 떨어진 상자가 두 바퀴 굴렀습니다. 거실 안쪽에서 뱁새눈을 하고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일어나 다가와요. 나는 미친 듯 상자를 집어 동생에게 안겨 주고 문을 쾅 닫았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격렬하게 꿈틀거렸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정말 죽을 것만 같은 날들이었어요.

 

 

 

-우리 쪽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번 택배로 온 양반이 속했던 회사 같아.

 

저는 정말이지 잘못 들었나 했어요.

 

-뭐? 누구? 이번 택배로 온 양반이라니?

 

-누나 시누이 애인. 택배상자에 그 양반 모가지가 들어있더라. 거, 진작 좀 처리하지, 요즘 날씨에 아이스팩 다 녹아버려서, 아주 폭삭 썩었어. 냄새 장난 아냐.

 

이 인간은 지금 농담할 생각이 나는지,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무서워지더군요.

 

-그 양반 회사에서 조직원 관리를 안 했겠어? 더군다나 돈까지 빼돌리는데, 요주의 관찰하고 있었겠지. 그날 집을 관찰하고 있다가 내 뒤를 밟았을 것 같아.

 

-아니, 그럴 리 없어. 그 양반 말로 회사에서는 모른다고, 선영이 보호하느라 숨겼다고 했어. 나름 순정파라……

 

히힛, 동생이 비웃더군요.

 

-멍청한 작자 같으니라구. 그렇게 멍청하니 누나에게 조각조각 토막이 났지. 이 바닥이 어떤 바닥인데, 돈 비는 건 회사에선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걸?

 

-하긴, 그런 건 네가 잘 알겠다. 삥땅치다 걸려봤으니.

 

내 농담에 동생이 삐딱해졌어요.

 

-누나 생각엔 그 작자라고 안 들켰을 것 같아? 내 생각엔 말이야, 지금 그 멍청한 양반이 빼돌린 걸 누나에게서 받아내려고 겁주는 거 같은데? 누나 부자인 거 아니까. 약점도 제대로 잡았겠다 아주 단단히 벼르는 것 같은데?

 

머리가 휭 돌며 메스꺼웠어요. 시누네 현관을 열고 나오다 밖에 있던 남자와 부딪힌 일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누군가 밖에서 엿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거예요. 휘청 주저앉다가 화장대 위의 병들이 쏟아졌어요. “무슨 일 있냐?” 침실 문 바로 밖에서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문짝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었는지……

 

-그만 끊자. 어머니 바로 밖에 계셔.

 

소리 죽여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랫배가 불끈거리며 당겨서 침대로 가 누웠습니다. 커튼을 치고 잠을 청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요. 한숨도 못 이루고 뒤척이다 현관 벨소리에 일어났어요. 시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꼼짝 않고 나를 노려보고 나는 비척대며 현관으로 갔습니다.

 

택배.

 

모자를 깊이 눌러 쓴 택배기사가 내미는 아이스박스에, 발송인 이름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어요. 정신없이 택배상자를 받다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사인을 하는 사이 시어머니가 택배 상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동생이 부탁한 거라고 외치며 상자를 낚아챘어요. 시어머니는 니 동생 드나들지 못하게 하랬지 새된 소리를 지르며 상자를 끌어당기고, 상자는……

 

아이스박스가 제풀에 요동치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뚜껑이 열려버리고, 상자에서 난데없이 어린애 팔뚝이 튀어 나와 시어머니의 목줄을 움켜쥐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니 시어머니가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저는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았어요……

 

매일 밤이면 밤마다, 발송인 없는 택배가 오고, 구석에 놓인 상자가 빼꼼이 열리며, 선영의 잘린 목이 따라오고, 윗집 남자의 썩은 눈알이 나를 엿보았습니다.

 

종환이는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뜯기고 나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급기야는 집 앞으로 찾아왔어요. 나는 친구가 왔다고 거짓말하고 종환이를 만나러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친구들 하는 말이 그쪽하고 타협을 하려면, 아무래도 실탄이 좀 필요하다는데?”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지난번에 줬잖아!”

 

“어어, 그깟 몇 푼, 내 친구들 수고비로도 모자라지. 사안이 웬만해야 부탁을 하지. 한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토막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