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꽃신

  • 장르: 호러, 판타지 | 태그: #헨젤과그레텔 #선녀와나무꾼 #소가된게으름뱅이 #새엄마 #의붓딸 #고부갈등 #유산 #감금 #강간 #노예
  • 평점×30 | 분량: 169매 | 성향:
  • 소개: 전부인과 사별했고 그 사이에 딸이 있음을 속인 남편, 아들 낳기를 강요하는 시어머니. 남편과 의붓딸과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등산 중에 길을 잃고 신발도 잃어버린다.... 더보기

빨간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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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 발이 너무 아파. 신발 좀 찾아 줘. 발이 아파서 못 들어가겠어.”

 

여자 아이의 목소리다. 서너 살 쯤 됐을까. 아주 어린 아이, 늘 같은 목소리. 현관문 뒤에서 난다. 이번이 세 번째던가.

 

신발을 찾아줘야 되는데 귀찮기만 하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찾는 척 신발장을 뒤적거려 본다. 신발장 안은 상자로 가득하다. 저걸 일일이 열어봐야 하나. 아아, 성가셔. 나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데 왜 신발이 필요할까. 모르겠다. 들어오려면 알아서 들어오고, 못 들어오면 어쩔 수 없지.

 

방에 돌아가려고 옆으로 한 발 디뎠다. 그런데 순간, 목둘레에 뭔가가 들러붙는다. 금속 재질의 차가운 올가미다. 올가미가 단단하게 조이며 숨이 막혀왔다.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등줄기를 흐르는 땀 위로 불길하고 찝찝한 예감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남편은 이미 출근한 뒤다. 의붓딸인 유미는 제 방에서 자고 있을 거다.

 

이불 안에서 꿈을 되새겼다. 설마 또 그렇게…… 아니야, 그럴 리가, 아니야, 차라리 그랬으면……. 이 못된 년…….

 

마지막 말이 선고라도 되는 듯 치골 뒤가 욱신거린다. 그래, 역시 그런 거였군. 잔뜩 웅크린 채로, 아랫배와 허리가 뒤틀리는 통증을 견뎠다. 문득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끼고 안방 화장실로 달려갔다.

 

후다닥 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자 선혈이 쏟아졌다. 변기 안이 시뻘겋다. 실리콘 같은 허여멀건 덩어리도 둥둥 떠 있다. 가엾은 내 새끼. 미안하고 안타까운 가운데 묘하게 후련하다. 그걸 내려다보는데, 화장실 문이 쿵쿵 울린다.

 

“엄마! 뭐 해? 나 배고파!”

 

딸아이 유미다. 타이밍을 맞춰도 꼭…….

 

“엄마 볼 일 보는 중이야. 배도 아프고, 오래 걸려. 그러니까,”

 

유미가 문을 마구 쳐댄다.

 

“빨리! 배고프다고!”

 

얄밉다. 착한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아이다. 언제부터 ‘엄마’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단어였던가.

 

일단 통증은 진정된 것 같다. 다리 사이며 변기며 피가 묻은 곳을 휴지로 벅벅 문질러 닦고 변기 레버에 손을 갖다 댔다.

 

이대로 눌러야 하나? 내 새끼도 떠내려가는 건데?

 

그럼 어떡해. 건져서 장례라도 치러줄래?

 

유미의 발길질과 악다구니가 거세진다. 생각의 흐름이 막힌다. 변기 물을 내리고 나가 아침을 차렸다. 식욕이 없어 내 밥은 안 떴다. 유미는 나더러 왜 안 먹느냐고, 배가 아프다더니 괜찮으냐고 묻지도 않고는 반찬이 맛이 있네 없네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회사에 전화해 휴가를 냈다.

 

그 사이 유미는 제 방으로 돌아가 서랍을 탁탁 여닫으며 또 뭔가를 고시랑댔다. 입을 옷이 없다는 소리겠지. 나도 초등 3학년 때 패션에 관심이 많았었나. 유미는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채 책가방을 둘러메고 현관에 섰다.

 

“뭐 해? 지각하겠어.”

 

“유미야, 엄마가 지금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시현이네한테 태워 달라 하면 안 될까?”

 

아이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발을 굴렀다.

 

“미쳤어? 그 똥차를 또? 쪽팔리게!”

 

하지만 언제 복통과 출혈이 올지 몰라 운전하기가 겁났다. 아이를 간신히 설득해 데리고 나간 뒤 택시에 태워 보냈다. 아이는 끝끝내 쐐기를 박고 떠났다.

 

“나 납치당하면 엄마 책임이야.”

 

집에 돌아와 아이가 어질러 놓은 방 안 꼴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옷 하나마다 욕을 하나씩 씹어 삼키며 개킨 뒤 서랍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친구들이 보면 혀를 찰 테다. 자식이 잘못하면 따끔하게 가르치는 게 엄마의 도리라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엄마 사정도 이해해 주고, 제 앞가림도 소소하게 할 줄 아는 나이라고. 걔가 네 친딸이라도 그렇게 떠받들어 모실 거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엄마란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품는 존재 아닌가. 게다가 못된 계모로 비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유미가 내 노고를 알아줄 것이다.

 

아이 옷장 서랍을 닫고 일어서는데 또 한 차례 통증이 몰려왔다.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출혈을 확인했다. 진정된 후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내 자궁은 지난주까지 품고 있던 태아와 태반이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로써 세 번째. 의사가 습관성 유산이란다. 정밀 검사를 해 보자고. 나는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긴 채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길가에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엄동설한을 버티고 돋아난 꽃들이 기특하면서도 미련해 보인다. 한 달 뒤면 바람에 쓸려 사라질 운명인데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아득바득 피어날까. 눈물이 핑 돈다.

 

남편한테 유산 소식을 알리고, 아파트 단지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햇반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갔다. 햇반과 미역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려는데 답장이 왔다.

 

‘엄마한테 얘기했어?’

 

내 엄마가 아니라 자기 엄마를 뜻하는 거다. 내 몸이나 기분이 어떤 지에는 관심 없고 자기 엄마만 걱정되나 보다.

 

‘아니.’

 

답장을 보내고 미역국에 햇반을 말아 먹은 뒤 낮잠을 잤다.

 

 

 

2.

 

낮잠은 오래가지 못 했다. 시어머니의 전화 때문이었다.

 

이번 태몽은 분명 아들이었는데 참 아깝게 됐다, 그러게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지 않았니, 일은 적당히 하고 퇴근 좀 일찍 해라, 밥 좀 제대로 해 먹어라, 말이 많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자, 한약을 지어 먹자 호들갑을 떠는데, 그냥 네, 네 하다 끊었다.

 

친구들이 놀란다. 21세기에도 아들 타령하는 시어머니가 다 있냐고. 남편이 외동이고 부모는 어머니 한 분뿐이라 결혼 전에 걱정해주던 친구들이다.

 

“외동 아냐. 누나가 있었대.”

 

나는 그렇게 항변했었다.

 

결혼을 결정하고 시어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유미를 처음 봤다. 유치원생이라고 했다. 존재조차 모르던 아이였다. 죽은 누나의 딸이란다.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끄집어내기 싫은 가족사인가 보다 여기고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남편의 첩이라도 보듯 독기 오른 눈으로 날 째려보던 유미의 모습에 눈치 챘어야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임신하자 시어머니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유미는 남편이 사별한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고. 자긴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우리가 데려가 키우란다. 나는 남편이 친구들 모임이나 집안 경조사에 나를 한사코 데려가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었다. 늘 그런 사람이다. 불리할 때면 입을 다물고 자기 엄마를 내세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사기 결혼 당했다며 노발대발했다. 당장 이혼하라고 난리였다. 나는 앞날만 생각하자며, 뱃속 아이한테 형제가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며 달랬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남편을 사랑했다. 아니, 그랬다고 믿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기만당했지만 이혼이 답은 아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태클을 매번 외면할 거냐. 이혼은 지는 거, 실패하는 거다. 부부는 허물을 덮어주며 사는 거다. 뱃속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는 것 또한 내 생각이었다.

 

한편, 엄마 없는 아이를 내치는 일도 나쁜 짓 아닌가. 양심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동화에 나오는 못된 계모 따위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착한 계모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잘 커가던 뱃속 아이는 갑자기 성장을 멈췄다. 생명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술로 아이를 제거하고 여느 산모들처럼 몸조리를 해야 했다.

 

두 번째 아이를 변기에 흘려보내고, 세 번째 아이도 흘려보냈다. 시어머니의 주장과 달리, 의사는 내 잘못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면역학적인 이유로 내 몸이 임신을 유지하지 못 하는 걸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죄책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나는 혼자서 결론 내린다. 아이들은 자기를 원하지 않는 엄마를 떠나간 게 아닐까. 애초에 내 몸이 그렇게 생겨먹은 이유가 내 심리를 반영해서가 아닐까.

 

그런 결론을 안겨 준 건 유미다. 최선을 다해 그 애를 돌보면서도 나는 매순간 절감한다. 나한테는 엄마로서의 성정이 조금도 없다. 나는 아이라는 종족이 싫다. 내 사랑과 에너지는 일을 향한다. 나는 그것이 분산되기를 원치 않는다.

 

남편은 이런 내가 이기적이란다. 차라리 잘 됐다, 둘째는 포기하고 유미 하나만 잘 키우자는 내 말에 남편은 또 이기적이라고 나무란다. 착한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못된 여자란다.

 

“웃겨. 나한테서 도대체 뭘 봤길래?”

 

“엄마가 그랬어. 네 관상도 그렇고 손금이나 사주팔자도 남편 보필 잘 하고 아들 여럿 낳을 팔자라고. 나랑 궁합이 좋다고.”

 

남편이 분하다는 듯 덧붙였다.

 

“홀딱 속았지.”

 

“속은 건 난데.”

 

나지막이 내뱉자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유미의 방에서 두 사람이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3.

 

청명한 하늘로 날아올라 파랗게 녹아버리고 싶다. 아찔한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숨 자고 싶기도 하다. 여름휴가를 온 우리는 어느 도립공원 안의 계곡 옆에서 쉬고 있었다. 산중의 어느 암자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를 하러 올라가는 중이었다.

 

배낭에서 생수를 꺼내 목을 축이는데, 유미가 아빠와 깔깔대며 계곡물을 튕기고 장난을 친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샐쭉해서는 고개를 돌린다. 더워죽겠는데 무슨 산이냐며, 워터파크나 가자고 툴툴대더니 아직도 앙금이 안 풀렸나. 그러게 누가 따라오래?

 

봄에 있었던 유산 후 영구 피임 수술을 결심하자 남편이 결사반대했다.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나? 몇 달 째 이어지는 다툼에 지쳐버려, 이번 휴가는 혼자서 조용히 다녀오고 싶었는데 남편이 또 반대했다. 가정 있는 여자가 왜 휴가를 혼자 가냐는 거였다. 온 식구가 한날한시에 같은 곳으로 휴가를 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누가 제정해 놨다느냐? 그런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암자에 남자라도 숨겨놓은 거 아니냐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에 그럼 다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자 유미가 다른 델 가자고 한 것이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머리를 식히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나에게 사람으로 북적대는 워터파크라니? 그럴 거면 휴가 자체를 가지 않겠다고 맞서자 남편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면 된다고 설득했고 유미는 있는 대로 입을 내밀며 따라나섰다.

 

그래 놓고 저렇게 신난 건 또 뭔데. 이상하게 짜증이 솟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이 안 가고, 나한테 정을 주지도 않는 아이다.

 

저거 무슨 엘렉트라 콤플렉스 아닌가 싶다가도, 유미가 내 친딸이었으면 부녀의 다정한 모습에 이리도 모난 심정을 느꼈을까, 콤플렉스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만 나왔다.

 

모처럼의 산행인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나는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가 가기로 한 암자에서 보자고 두 사람한테 통보하고 일어섰다.

 

한참 뒤, 나는 더위에 지치고 길을 잃고 말았다. 목구멍이 바짝 말랐지만, 생수는 이제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벌써 배까지 꼬르륵대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분명히 잘 다져진 등산로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수풀과 나무가 우거졌을까. 눈 뜬 채로 잠든 것처럼 중간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 더위를 먹은 걸까?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정표도 길도 없다. 전화기는 통화권에서 이탈됐다는 표시만 뜨고 작동되는 것은 시계뿐이다. 길이 아닌 곳을 헤매려니, 발에 걸리는 것도 많고, 얼굴을 찌르는 것도 많다. 벌레는 또 왜 이리 달려드는지. 보통 고역이 아니다.

 

느낌 탓인가, 자꾸 걸어서인가, 더위도 훨씬 심해진 것 같았다.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탈진해 쓰러질지도 모른다. 진정한 삼복 더위였다.

 

희미한 물소리가 들리기에 내려가 봤다. 덤불 아래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물을 함부로 마시면 기생충 걸린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당장 목말라 죽는 것보단 나을 것이었다.

 

물은 의외로 시원했다. 갈증이 해소되니 생뚱맞은 욕구가 일었다. 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등산로에서 떨어져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도 없을 텐데. 나는 속옷만 걸치고, 커다란 웅덩이에 몸을 던졌다. 더위에 달아오른 몸이 식으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머리까지 푹 담그고 수영을 즐겼다.

 

한참을 그러다 극심한 배고픔에 정신을 차렸다. 밖으로 나가 물을 대충 턴 다음 옷을 입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등산화가 안 보이는 거다. 체력 단련 좀 해 보겠다고 거금 주고 장만한 빨간색 등산화가 말이다.

 

바위 뒤로 넘어갔나, 계곡물에 빠졌나. 금방 눈에 띌만한 색인데, 샅샅이 찾아봐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맨발로 산을 다니다간 금방 다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수도 없다. 난감해하는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덤불이 흔들리더니 웬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시대착오적인 차림 때문이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한 남자였는데, 희한하게도 하얀, 하지만 오랫동안 빨거나 손질하지 않아 꾀죄죄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발에 신은 것은 검정 고무신이고, 등에 진 것은 지게였다. 머리는 입대를 앞둔 사람처럼 짧게 깎았고, 눈 주위만 보면 젊은 것 같은데 얼굴의 반을 덮은 수염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혹시 내가 가기로 한 암자의 스님인가?

 

나는 내가 소위 ‘역관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하다는 듯, 남자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몇 번을 훑더니 발에서 멈췄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신발이 없어졌네요.”

 

남자가 지게를 내려놓더니 거기에 쌓인 나뭇가지 사이에서 뭔가를 꺼냈다. 검정고무신이었다. 남자용인지 내 발보다 한참 커서 질질 끌며 걸어야했지만 나는 그것도 감지덕지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사 스님이세요?”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그럼 전화라도 좀 빌려 쓸 수 있을까요?”

 

남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오라 했다.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목소리를 들으니 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남자는 앞을 가로막는 가지와 수풀을 낫으로 치며 길을 텄다.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하지만 지친 데다, 고무신이 자꾸 벗겨져서 남자와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졌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피로만이 아니었다. 이제 배는 꼬르륵거리다 못 해 천둥을 치고 있었다. 달랑 생수 하나 챙기고 나머지 음식은 남편 배낭에 넣은 게 죽도록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4.

 

끝없이 이어지던 나무와 수풀이 뚝 끊기고 채소밭이 나왔다. 채소밭 너머에는 흙 마당, 그곳엔 조선시대 배경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초가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이엉을 덮은 지붕 위로 솟아오른 굴뚝. 부연 연기가 새어나오는 걸 보니 부엌에서 밥이라도 짓는 모양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펼쳐진 멍석에는 얇게 썬 호박, 가지, 버섯이 한가득했고, 마당 왼쪽 구석에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는 닭과 병아리들이 돌아다니고, 오른쪽 구석에는 우물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쭈뼛쭈뼛 마당에 들어서자, 부엌으로 보이는 곳에서 웬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유미처럼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였는데, 한 번도 빗은 적이 없는지 기다랗고 시커먼 머리카락이 온통 헝클어져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아이는 반가운지 놀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날 뚫어져라 쳐다보다 엄마! 하며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년이, 또또! 할머니라 부르라니까!”

 

앙칼진 지청구와 함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인이 나왔다. 긴 머리를 뒤로 모아 쪽진 모습이었다. 여인도 여자 아이도 남자처럼 불결한 한복과 촌스런 검정고무신 차림이었다.

 

여인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구석구석 관찰했다. 무례한 시선에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화를 쓸 수 있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 했다. 게다가 전화가 뭐냐고 반문하는 통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한국형 아미시(Amish)들인가? 청학동은 여기에서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피로와 배고픔으로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으니까.

 

“죄송하지만 밥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내 말에 여인이 반색했다. 사례 따위 필요 없다며 팔을 잡아끌어 툇마루에 앉히는데,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친절이 친절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여인이 사라지자 여자 아이가 와서 들러붙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지저분했다. 얼굴이며 손이며 꼬질꼬질한 게 며칠을 안 씻은 게 분명했다. 기다란 손톱 밑에 때가 시커멓게 껴 있었고, 머리와 옷에서는 퀴퀴한 냄새도 났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러나면 아이가 다가오고, 물러나면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땟국이 흐르는 손으로 내 옷과 배낭을 허락도 없이 만지고 뒤져댔다. 내 립스틱으로 툇마루를 칠하는 모습을 보니 단단히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내 처지가 처지인지라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남자는 웃통을 벗고는 부엌 앞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를 하고 있었다. 육체노동으로 다져진 데다 식성이 좋은지 백두급 씨름 선수를 연상시키는 몸매였다. 그가 뭐라고 외치자 아이가 가서 그의 등에 물을 끼얹어줬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욕실도 없나? 집이 워낙 작아서, 구조라고는 툇마루에 나란히 붙은 방 두 개와 오른쪽 끝의 부엌이 다였다.

 

그때, 뭔가가 눈길을 끌었다. 우물에는 나지막한 나무 지붕이 씌워져 있었는데, 네 개의 굵은 통나무 기둥이 그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기둥에는 기다란 쇠사슬이 달려 있는데, 길이가 어찌나 긴지 흙바닥까지 흘려 내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두리번거리는 사이 밥상이 나왔다. 가장자리에 이가 수두룩하게 빠진 닳고 닳은 나무 소반에 차려진 것은 삶은 감자, 삶은 닭, 열무김치였다. 음식을 담은 것은 재질이 뭔지 모를 시커멓고 얼룩덜룩한 금속 식기였다. 수저도 마찬가지라, 저걸 입에 넣어도 될까 의심스러웠다. 식욕이 확 달아났지만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고 다독였다.

 

그들과 함께 상에 둘러앉자 여인이 말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자가 복이 많네. 오늘 초복이라 닭을 잡았다오.”

 

닭고기를 뜯다 말고 갸우뚱했다. 초복? 며칠 뒤가 말복인데? 아무리 현대 문명과 담을 쌓아도 그렇지 날짜까지 마음대로 세나?

 

여인한테 물었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여인은 불편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얘기가 진행되자 ‘아랫마을’ 사람들을 흉보기 시작했다. 그 인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 와서 산다는 식이었다.

 

아랫마을이라니, 이 도립공원 매표소 주위의 상가를 말하는 건가? 여인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여인의 말투와 표정이었다. 아까까지 내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미간의 깊은 주름,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입가, 시시때때로 번뜩이는 눈빛. 악독해 보이기까지 한 그 모습이 나한테 친절을 베풀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아까는 초보 배우의 어설픈 연기처럼 부자연스러운 인상이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식사를 마치니 긴장이 풀어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이대로는 도저히 산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툇마루 구석에서 잠깐 눈 좀 붙이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5.

 

“……서른도 넘은 것 같은데.”

 

“뭐 어떠냐. 그 정도면 아직도 한창이다. 궁디가 실한 게 애만 잘 낳겠구만. 내가 순득이 낳을 때만 해도 마흔이었어.”

 

“이 아줌마가 이제 우리 엄마 되는 거야, 엄마?”

 

“이년아, 할머니라 부르라고! 몇 번을 말해!”

 

여인의 호통에 깜짝 놀라 눈이 떠졌다. 세 사람이 툇마루 옆에 나란히 서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해가 많이 기울었는지, 마당에는 검푸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아, 이런, 죄송합니다. 이만 가 봐야겠네요. 정말 실례했습니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자, 여인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야밤에 가긴 어딜 가. 그러다 다쳐. 밤 되면 호랑이 나온다고. 자고 가.”

 

“아니에요. 그렇게 폐를 끼칠 순 없어요.”

 

배낭을 메고 검정고무신을 꿰어 신은 채 헐레벌떡 마당을 벗어났다. 그러다 몇 걸음 못 가 고무신이 벗겨지며 넘어지고 말았다.

 

“것 봐. 무리라니까. 자고 내일 아침에 가.”

 

그새 쫓아온 여인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질질 끌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이토록 힘이 넘치는지.

 

결국엔 저녁까지 얻어먹고 말았다. 꽁보리밥에 호박잎과 여름 배추 같은 것들로 차린 식사였다. 초면에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몰라 맛도 향도 알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는 중에 해가 완전히 져서 초가집 주변이 깜깜해졌다. 불빛이라고는 이들이 켜 놓은 호롱불과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별이 내뿜는 것이 다였다. 손전등조차 챙겨오지 않은 나는 여인의 말대로 이 시각에 산을 내려가기란 무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상을 물린 뒤 여인과 여자 아이와 함께 한 방에 들었다. 부엌 바로 옆의 방이었다. 좁은 방에 사람 셋이 들어가 부대끼니 후덥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문 좀 열자 하니 여인은 모기가 들어와서 안 된다 했다. 너무 덥다고 푸념하자, ‘여자는 모름지기 몸을 따뜻하게 해야 애가 잘 들어서는 법’이라는 면박이 돌아왔다. 그 말에 시어머니가 떠올라 입안이 씁쓸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뭘 어떡해야 할지를 몰라 엉거주춤 앉아 있자, 여인도 여자 아이도 저고리며 치마며 훌훌 벗어던지더니 속바지만 입고 이불에 누웠다. 나는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과 속옷차림으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아 등산복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여자 아이가 옆으로 온다. 이름이 순득이란다.

 

“옛날 얘기 해 줘, 옛날 얘기.”

 

“옛날 얘기 잘 모르는데…….”

 

“아이, 그러지 말구. 아무거나 해 줘.”

 

아이는 자꾸만 졸랐다. 뭐라도 얘기해주기 전까진 잠을 안 잘 태세였다. 그래서 유미가 어릴 때 수면의식 용으로 읽어주던 그림책 내용을 몇 개 들려줬다. 순득이는 너무 재미있다며 감탄하더니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무덥고 답답하고 냄새가 났다. 아이가 나를 놓아주고 저 멀리 떨어졌으면 싶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잠이 들었나 보다. 질식할 듯 헉헉대다 눈이 떠졌다. 숨 막히는 더위였다. 땀에 전 옷이 피부에 찰싹 들러붙었다. 순득이가 여전히 나를 안고 있었고, 아이의 머리카락이 내 목을 휘감고 있었다. 아까 머리에 이가 기어 다니는 걸 본 것 같은데.

 

순간 몸이 근지러워지며 탄식이 나왔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이 사람들과 뭘 하는 건가. 호랑이가 나오든, 발을 다치든 산을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을 메고 고무신을 질질 끌며 마당을 지났다. 어디선가 문 열리는 소리가 삐거덕 울렸다. 뒤돌아보니 두 방문은 얌전히 닫혀 있었다. 그렇다면, 뒤뜰의 뒷간 문이 열리는 소리일 것이다. 아까 볼일을 보러 갔다가 그 비위생적인 몰골과 악취에 경악했던 곳이다.

 

뒷간 문이 왜 열렸는지는 알 바 아니었고, 텃밭 사이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

 

이 집 사람들은 만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다들 반말이다. 홱 돌아보니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저러고 자다가 뒷간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불빛이라곤 처량하게 떠 있는 달에서 쏟아지는 것뿐이었지만 보일 건 다 보였다. 하지만 내가 스무 살짜리 숫처녀도 아니고 남자 나체에 놀랄 군번인가. 상대도 내 시선을 민망해하지 않는다. 나는 신세 많이 졌다고, 안녕히 계시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때, 저벅저벅 서두르는 발소리 뒤로 남자가 덮쳐왔다. 나는 순식간에 그의 굵은 양팔 안에 갇히고 말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이래요? 놔요! 놓으라고요!”

 

있는 힘껏 발버둥 쳤지만 덩치가 불곰만한 남자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남자가 나를 제 방으로 끌고 갔다. 꼭 닫힌 장지문이 지옥을 향한 입구인 것만 같았다. 옆방 문이 빼꼼 열리고 여인과 아이가 내다봤다.

 

“도와주세요!”

 

하지만 방문이 쾅 닫히고 둘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어이 남자의 방안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오, 제발, 누가 내 머리에서 그 기억을 지워 준다면 영혼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능욕당하고 말았다.

 

남자의 물건이 나를 쑤셔댔다. 그러는 내내 그가 웅얼거렸다. 같이 살자고, 아들을 낳아달라고. 고약한 구취와 땀내가 코를 찔렀다. 육중한 몸이 무지막지하게 짓눌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래에서는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주먹을 휘두르고 비명을 지르자 남자가 따귀를 날렸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구토가 올라왔다. 악몽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남자는 씨물을 토해내더니 알몸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열어놓은 방문을 통해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몇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방관하며 고고하고 초연하게 빛나는 모습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별들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방금 벌어진 일이 현실인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 뭘 어떡해야 할지도 몰랐다. ‘증거확보’와 ‘신고’ 두 단어가 뇌리에 맴돌았지만, 비이성의 극치에 내던져진 나에게는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단순한 음절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저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싶었다. 두 눈을 꼭 감자, 맞물린 눈꺼풀을 비집고 눈물이 흘렀다.

 

그때, 밖에서 철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남자가 돌아왔다. 그를 보자 모든 사고가 중단되며 경직돼 버렸다. 공포에 질려 방구석으로 기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이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건가. 그는 자비를 애걸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목둘레에 서늘한 것이 철컥 채워졌다. 쇠로 만든 올가미였다. 올가미에는 기다란 쇠사슬이 연결돼 있었다. 그 끝은 우물로 이어져 있으리라.

 

끝 모를 절망 앞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이들은 날 잡아먹으려는 마귀였다.

 

 

 

6.

 

나는 노예가 되었다. 휴식도 주말도 주어지지 않는다.

 

낮에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텃밭을 가꾼다. 때문에 해가 질 무렵이면 피로가 내리눌러 머리가 무겁다. 삭신이 녹아 부서지지만 쉴 수가 없다. 웅복이라는 남자의 씨받이가 돼야 하는 탓이다.

 

나는 강제로 그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잠자리를 거부하면 커다란 주먹이 날아온다. 그의 노리개로 혹사당하는 일은 매일 당하면서도 매 순간이 고통스럽다.

 

그의 어머니인 중년여인은 나에게 웅복을 서방님이라고 그리고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라 했다. 속으로 이가 갈렸다. 그렇게 해 줄줄 알고? 서방 같은 소리 하네. 그리고, 나한테 어머니는 우리 엄마뿐이라고.

 

어머니란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품는 존재 아닌가? 저 여인은 스스로 내 어머니가 되겠다고 선언한 주제에 사랑과 희생은 나한테 강요한다. 우리 엄마는 물론이고, 그토록 얄밉던 시어머니까지 천사로 보일 지경이었다.

 

직장 일에만 열심이고 가사는 소홀히 했던 나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말년이라는 이름의 저 여인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매사에 잔소리를 들이부었다. 순득이를 야단칠 때 쓰는 회초리를 나한테 휘두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예전에는 가정 폭력 당하는 사람들이 왜 당하고만 있을까 의아했었다. 이제는 십분 이해가 된다. 그냥 무기력해지고 마는 거다. 무기력과 우울이 이성적 사고는 물론이고 탈출에 대한 몽상마저 마비시켜 버리는 거다.

 

폭행과 노동에 지친 내가 그나마 숨을 돌리는 시간은 뒷간에 갈 때뿐이다. 쓴웃음만 나온다. 시궁창 같은 내 처지에 딱 어울리는 곳 아닌가? 무슨 이따위 휴가가 다 있단 말인가. 야근에 시달리던 지난날이 오히려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달아날 방도가 없다. 통화권 이탈인데다, 전화기는 배터리가 다 돼서 꺼져버렸다. 유선 전화도 없고, 저 세 사람 말고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인즉, 우체국 집배원조차 오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내 목에는 무쇠 올가미가 채워져 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겁탈을 당할 때에도. 올가미를 풀 열쇠는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쇠사슬이라도 기둥에서 뽑아버릴 순 없을까. 쇠사슬은 딱 뒷간과 텃밭까지만 허용되는 길이라서, 더 이상 발을 뻗으면 목이 조여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우물 기둥에 연결된 쇠사슬을 온힘을 다해 잡아당긴 적이 있었다. 꿈쩍도 안 했다. 기둥에 아주 단단히 박아 놓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기둥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끼며 톱 같은 도구는 웅복이 철저히 관리한다. 부엌 식칼로 기둥을 자르는 건 바위에 계란치기나 다름없다.

 

어느 날, 우물에서 물을 긷다 말고 쇠사슬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순득이가 옆에 왔다. 물 아깝게 뭐 하는 짓이냐는 말년의 핀잔을 들어가며 매일 씻겨준 덕분에 아이의 얼굴과 손이 뽀얗다. 아침마다 빗겨주고 땋아주는 머리가 허리까지 늘어져 달랑거린다.

 

학교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집에서 놀며 살림을 돕는 아이다. 아이가 장기 결석하면 학교 관계자가 찾아올 만도 한데 아무도 순득이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출생신고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말년과 웅복은 순득이의 교육에 관심이 없다. 내 덕분에 순득이는 그나마 한글과 숫자를 읽고 쓰게 됐다. 공책과 연필이 없으니 우리 수업은 흙바닥과 나뭇가지를 칠판과 분필 삼아 이루어진다.

 

아이는 산 아래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질문이 끝도 없지만 대답해주는 일은 늘 즐겁다. 경청하는 눈망울이 눈부시도록 초롱초롱한 까닭이다. 알량한 지식 몇 개 알려줬을 뿐인데 엄마는 어쩜 그렇게 똑똑하냐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 궁둥이가 절로 들썩여지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

 

아이는 나보고 착하다고도 한다. 아닌데. 난 착한 여자가 아닌데. 착한 엄마는 더더군다나 아니고. 하지만 할머니와 아빠에게 하루에도 열두 번씩 꾸중을 듣고 이틀이 멀다하고 매질을 당하는 아이의 눈에는 내가 상대적으로 착해 보이긴 할 것이다.

 

나를 향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 부모가 아이에게 받는 가장 큰 선물 아닐까. 순득이한테 엄마라 불리는 게 좋다. 이 노예로서의 삶을 꿋꿋이 이어가게 하는 단 하나의 버팀목이다.

 

“엄마, 엄마는 우리 버리고 도망가지 마.”

 

순득이가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다 문득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엄마 도망갔니?”

 

순득이는 툇마루에서 낮잠을 자는 말년을 쳐다보며, 아니, 하다가 이내,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엄마가 참 많았는데 전부 도망갔어.”

 

도망갔다고? 마음속에 희망이 싹텄다.

 

“어떻게?”

 

내 물음에 순득이는 우물을 가리켰다.

 

“이 안으로. 다 이 안으로 도망갔어. 어떤 엄마는 동생도 데려갔다. 남자애였는데, 그래서 할머니가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몰라. 엄마랑, 아니 할머니랑 아빠는 못 보게 했지만 난 알아. 여기 고무신이 놓여 있었는걸. 물이 더러워질까 봐 벗어놓고 들어간 거야.”

 

왈칵, 욕지기가 일었다. 나처럼 잡혀온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거다. 게다가 모두 자살함으로써 이 지옥을 탈출했다.

 

앞으로 물을 마실 때마다 우물 속에서 허옇게 퉁퉁 불은 여인들의 시체가 연상될 것 같다. 애꿎게 목숨을 잃은 어린 아이의 울음이 환청처럼 고막을 울렸다. 부르르 몸서리가 쳐졌다.

 

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죽음에 대한 갈망보다도 탈출과 생존을 향한 소망이 더 크다.

 

웅복과 말년을 없애 버릴까. 그 생각도 여러 번 해 봤다. 과연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난 아직 닭도 못 잡는데. 천장에서 떨어지는 벌레를 모아서 볶아 먹곤 하는데 나더러 잡아서 볶으라면 기겁하며 도리질을 치고 만다. 남의 생명을 해함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렇게 갈등과 고통 속에서 세월이 흘렀다. 월경이 끊겼다. 신발을 찾아달라는 아이가 꿈에 나타났다. 뒷간에서 선혈과 덩어리를 쏟아냈다.

 

월경이 시작됐다. 세월이 흐르고 월경이 끊겼다. 모든 것이 반복됐다. 몇 번인지 세다가 잊어버렸다.

 

 

 

7.

 

말년의 구박이 나날이 심해진다. 이제 나는 살림에 도가 터서 그걸로 타박 듣는 일은 없다. 살아 있는 닭 모가지도 비트는데 뭐. 도망가려 꿈틀대는 벌레들도 거리낌 없이 냄비에 던져 달달 볶는다.

 

말년이 못살게 구는 이유는 내가 아들을 못 낳아서다.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이젠 나도 헷갈리지만.

 

웅복은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 나를 덮친다. 희번덕거리는 눈빛은 아들 욕심보다 다른 욕구가 더 크다는 걸 알려준다. 괴물 같은 놈이다. 내 다리 사이에 작두가 달렸으면 싶다.

 

올가미 좀 풀어 달라 애원하면, 아들 셋 낳으면 풀어준단다. 제 새끼 놔두고 도망가겠냐는 계산이다. 이거야말로 선녀와 나무꾼 아닌가.

 

선녀는 쇠사슬에 묶여있지도 않았는데 왜 나무꾼과 함께 살았을까. 나무꾼을 사랑해서? 나무꾼이 사랑해 줘서? 하지만 결국 달아난 건 그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방증 아닐까?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착각이 올가미였고, 은인이자 연인으로 여긴 사람이 실은 자신을 속인 것이라는 깨달음이 올가미를 푼 열쇠가 된 것이다.

 

마침내 자유로워진 선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달아났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신발이라고는 툭하면 벗겨지는 고무신뿐인데. 말년도 순득이도 나보다 발이 작아 그들의 고무신을 신을 수도 없다. 이 산중에서 신발이 있어야 도망을 가지. 선녀가 도망간 건 날개옷 덕분이다. 날 도망가게 해 줄 날개옷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쯤에서 나는 결론 내린다. 내 빨간 등산화는 잃어버린 게 아니다. 도둑맞은 거다. 내가 계곡에서 물놀이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웅복이 숨긴 게 틀림없다.

 

도대체 어디에 숨겼을까? 아니면 그냥 버렸을까?

 

등산화도 못 찾고, 아들도 못 낳고, 웅복과 말년을 증오하는 세월이 꾸역꾸역 굴러갔다. 온 산에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던 날이었다. 순득이의 속곳에 피가 비쳤다. 그 무렵 아이는 가슴도 봉긋해지고, 아이와 어른을 구분 짓는 털도 나고 있었다.

 

순득이는 부끄럽다며 이제 혼자 씻는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눈빛이 깊고 서늘해졌다. 말수도 줄어들고 잘 웃지도 않는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 얼마나 붙잡혀 있었던 걸까. 5년? 6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데 말년과 웅복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다. 조만간 아들 볼 수 있겠다며 기뻐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잠시 멍하다 기함하고 말았다. 설마…….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극도로 추하고 더러운 현실.

 

웅복은 이제 나를 내버려둔다. 나와 웅복이 지내던 방에 말년이 들어오고, 웅복은 옆방으로 옮겨갔다.

 

이들이 정말 인간이 맞는가. 믿겨지지가 않는다. 치가 떨린다. 두 모자는 인두겁을 쓴 악마들이었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