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사건 현장에 들어서자 더운 열기와 함께 역한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나는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스위치를 켰다. 썩은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몸뚱이 주위로 파리 떼가 득실거렸다.

손으로 파리 떼를 쫓으며 다른 손으로 땀이 밴 이마를 훔쳤다. 셔츠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피해자의 몸뚱이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피해자는 벌거벗겨진 채 두 손은 보일러 기둥에 묶여 있었다. 피해자의 얼굴에 전등을 비췄다. 얼굴은 코뼈가 드러나고 허연 이빨이 도드라져 보일 만큼 부패가 심했다.

구더기가 야금야금 파먹은 두 눈은 얇게 썬 오이 두 쪽을 얹은 것처럼 보였다. 불빛은 시체의 목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왔다. 젖꼭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유독 구더기가 많이 몰려 있었다.

냄새를 맡은 파리가 시신의 구멍이나 상처에 알을 낳는 사실을 비춰보면 범인이 유두를 잘라 냈을 가능성이 컸다. 쥐새끼의 짓이라면 시체 훼손이 더욱 심했을 것이다.

코에서 손을 떼고 숨을 크게 내뱉었다. 손전등의 불빛은 부푼 배를 지나 음부로 내려갔다. 거기에 뭔가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피해자의 음부에 거의 닿았을 때 누군가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우 형사였다. 나는 손을 거두고 상체를 세웠다.

“이봐, 질 속에 뭐가 든 것 같아. 한번 보라고.”

나는 가까이 다가온 우 형사에게 손전등을 건네며 말했다.

“뭐 같아 보이나? 손가락 같지 않아?”

우 형사는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그런 거 같다고 맞장구쳤다. 그는 보일러 기둥 뒤에 가려진 피해자의 손을 살폈다. 오른 쪽 약지가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일주일 뒤 부검 감정서가 도착했다. 질 속에 든 것은 피해자의 손가락이었다.

그로부터 2주 후,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

두 번째 사건 발생 장소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 입구 비닐하우스였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파리 떼들이 이미 실내 안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현장으로 걸어가면서 피해자의 몸뚱이를 살폈다. 언뜻 봐도 몸은 만신창이였다. 베이고 찔린 창상이 서른이 넘었다.

“반장님!”

사건 현장으로 먼저 출동했던 우형사가 한 손에 수첩을 들고 씨근덕거리며 달려왔다.

“출동 전에 주민들이 몰려와 족적도 엉망진창이에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피해자의 손가락이 모두 부러졌고 손톱이 뽑혀 있어요.”

“뭐?”

“피해자가 반항하다 부러진 게 아니라 범인이 일부러 부러뜨린 거 같아요. 열 개 다 부러진 걸 보면. 손이 아주 퉁퉁 부었던데요. 살해 전에 부러뜨렸다는 말인데…….”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 어떤 괴이한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불쾌한 뭔가가 내 속을 뒤집어 놓는 거 같았다. 우 형사를 뒤로 한 채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켰지만 바람이 불어 와 불씨를 꺼트렸다. 칙 칙 라이터를 켜며 담배를 문 입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헐벗은 낮은 산과 공허한 들판,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반투명 비닐하우스.

천 년 묵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는 완공을 앞둔 아파트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무심코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는데 음산한 그림자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멈출 수가 없어. 멈출 수가 없다고.’

서늘한 바람은 살육의 냄새를 풍기며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

23년 전 여름, 그날은 구름이 잔득 낀 음울한 날씨에 가루비까지 내렸다. 저녁밥을 먹고 경찰서로 돌아오니 개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코는 냄새 하나로 범인을 색출해 낼 정도로 정확하고 독하다는 뜻에서 동료 형사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는 인간을 통제하는 능력이 타고난 대공 요원이자 고문 기술자였다.

“가지.”

날은 덥고, 비는 내리고, 급하게 먹은 우동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하고 몸도 무거웠지만 나는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어두침침한 지하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총 세 개의 조사실과 허름한 간이 변소가 있었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유달리 손과 머리만 큰 개코는 조사실로 가는 동안 내게 단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말수가 적고 혼자 있길 좋아했으며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없었다. 나도 지하 조사실 말고는 그를 볼 기회가 없었다.

주먹만 한 자물쇠가 채워진 방 앞에 가서 섰다. 개코는 호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문을 열었다.

양은 냄비를 엎어놓은 듯한 전등갓 아래로 젊은 여자 두 명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접힌 철제 의자 두 개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작은 테이블은 아무렇게나 밀려나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두덩을 보니 밤새 울었던 모양이었다.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오한이 든 사람처럼 발발 떨기 시작했고 개코는 무엇이 즐거운지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나는 여자들을 보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개코는 능숙하게 의자를 끌어다가 두 여자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할 때도 됐지? 그 쪽지 말이야.”

“우, 우린 몰라요! 정말이에요!”

단발머리 여대생은 참고 있던 숨을 토하듯 재빨리 대답했다.

“우리?”

개코는 입술을 늘여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라면 느네 둘이 관계가 있단 말이네.”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여대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개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울지 마…… 난 여자들이 울면 머리가 아파요……. 김상우, 어디 있니? 말만 하면 지금 당장 보내 준다니까.”

예상과는 달리 분위기는 차분하게 이어졌다. 단발머리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정말 몰라요…….”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닌데도 개코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가에 주름이 패었다.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정말 모르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는 학교 근처에서 노숙을 하는 저능아였다. 개코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고는 여자의 너저분한 머리칼을 한 번 쓸어주더니 그녀의 손을 보며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이런, 여자 손이 이게 뭐야?”

분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상체를 숙인 개코의 얼굴이 둥그런 전등 불빛 아래로 드러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때 좀 봐……. 손 이리 줘 봐.”

개코는 셔츠 주머니에서 손톱깎이를 꺼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손톱깎이가 그날따라 끔찍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단정해야지. 이게 뭐야. 이럼, 남자들이 싫어해.”

그의 눈동자가 두 여자를 빠르게 스쳤다. 저능아의 뚱뚱한 손이 개코의 무릎 위에 올려졌다. 손톱깎이의 날이 저능아의 손톱 안으로 천천히 기어들어갔다. 손놀림은 부자연스러웠다. 그랬기에 손톱이 부러지고 살을 벨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틱.

“빨리 나가고 싶지?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 집에 갈 수 있어. 아니면 아저씨가 벌 준다.”

저능아는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난 아냐 하고 뽀로통하게 대꾸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지만 그의 질문은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되었다.

“누가 그 종이 달라고 그랬어? 아까 내가 사진 보여 줬지? 그 남자 맞아?”

“기억 안나…….”

“아깐 모른다며? 이번엔 기억이 안 나?”

개코는 입을 한 번 삐죽거리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틱.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대생은 숨이 끊어질 듯 헉헉 댔다. 살인적인 긴장감에 숨이 막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틱.

악!

저능아의 입에서 칼날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왼쪽 검지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톱이 송두리째 뽑혀나간 것이다. 저능아가 날뛰었고 갑작스런 소란에 정신이 멍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에 띄지 않게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여대생이 머리를 감싼 채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두 여자의 고함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개코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나를 돌아봤다. 살기가 덕지덕지 묻은 징그러운 눈빛으로.

“어이, 안 끝났어.”

그는 저능아의 손가락을 잡고 비틀어 손톱 하나, 하나를 우악스럽게 뽑았다. 거구의 저능아는 허연 거품을 문 채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손을 빼려는 여자와 손목을 잡고 늘어지는 개코의 실랑이로 조사실에는 살기가 떠돌았다.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 심장 박동은 급격하게 빨라졌고 움츠러든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한 번 잡은 먹이는 절대 놓지 않는다는 전설처럼 개코는 무식하게 억세고, 무서울 정도로 독했다.

정신을 잃었는지 저능아의 몸놀림이 둔해졌고 이내 물 먹은 솜처럼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나는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열 개의 손톱을 모두 뽑고 나서야 개코는 피곤한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피 묻은 손톱깎이를 셔츠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내게 명령했다.

“벗겨.”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개코는 나를 못마땅한 듯 노려보면서 의자 등받이를 잡고 여대생 앞으로 갔다. 철제의자가 시멘트 바닥을 끌었다. 끼끽끼끼익. 위기감을 부추기려는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억지로 입을 벌리듯 양손으로 접힌 의자를 폈다. 착.

그때, 여대생이 몸을 웅크린 채 바닥을 기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 행동은 개코를 더욱 자극시킬 뿐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네네, 하라는 대로 네네, 그러면 간단하다. 커다란 손이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쭉 찢어진 두 눈이 나를 노려보았다.

“앉혀.”

얼른 두 여자를 일으켜 의자에 마주 앉혔다.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싶었지만 약골이란 소리는 죽어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저능아의 얇은 셔츠를 두 손으로 확 잡아 쨌다. 덩치만큼이나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났다. 저능아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도,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개코는 그녀의 반라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엉클어진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넘긴 후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여대생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저능아만 물고 늘어진 것이 의아했다. 그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며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저능아는 이번 일과는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그는 담배 끝자락에 타는 불을 지그시 응시했다. 타 버린 담뱃재가 셔츠 위로 떨어졌다. 잠시 후, 꽁초를 머리 뒤로 던지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족치려는 년은 병신이 아냐. 그 옆에 있는 년이지. 곧 불거야. 안 불곤 못 배기지. 의리가 있으면 그만큼 양심도 있는 법이니까. 병신은 도구야, 고문 도구.”

바로 대리 고문이었다. 노숙자 하나쯤 사라진다고 그리 문제될 것도 없고 여자들의 연약한 심리를 잘 이용하면 쉽게 정보를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능아를 고문하는 동안 그에 못지 않은 고통을 받은 건 단발머리 여대생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죄 없는, 그것도 장애자가 죗값을 치른다는 것은 양심이 있는 사람에겐 끔찍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이란 게 말이야.”

개코는 자신의 손을 앞뒤로 돌려보면서 내게 말했다.

“참 신기해. 이걸 보라고.”

그는 뭔가 잡으려는 듯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길 반복했다.

“신체 중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손가락밖에 없어. 못하는 게 없잖아? 이게 우릴 먹여 살린다니까. 요, 요거 꿈틀거리는 걸 보라고.”

단 한 번도 손가락이 신기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개코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내가 듣든 말든 계속 중얼거렸다.

“그런데 난 희한하게…… 이놈들이 참 무섭단 말이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김상우 일당 중 두 명이 체포된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이번엔 좌측 끝 방이었다. 실내로 들어서자 두 놈 모두 볼따구니가 복숭아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한 명은 H대학 총 학생회장이었는데 사진으로 본 것과 달리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콜콜 말라있었다.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사흘을 버틴 놈들이었다. 따귀 몇 대 맞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에 개코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어이 지용이, 숨어 다니느라 고생했어.”

지용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개코를 노려보았다. 개코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굵은 뿔테 안경을 낀 퉁퉁한 녀석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너도. 빨리 끝내자. 피곤하니까. 김상우 어딨어?”

지용에게 물었다.

“알면 말했죠. 모르는데 뭘 말하는 겁니까? 직접 찾아보시죠.”

만만찮은 놈이었다.

“니가 말해 주면 더 쉽지.”

“형사가 발로 뛰지 입으로 뜁니까?”

지용은 곧바로 대답했다. 개코의 낯빛이 굳어졌다. 이를 악물어서인지 아래턱이 팽팽해지고 넓은 이마를 가로지르는 힘줄이 불뚝 돋아났다. 잠깐 동안 살벌한 침묵이 흐르는가싶더니 이윽고 개코가 껄껄 웃었다.

“젊은 놈이 패기가 있군. 좋아. 여기 끌려와서 질질 짜는 놈들 보면 아주 찢어 버리고 싶어. 넌 마음에 든다. 준비는 됐어?”

“마음대로 하십쇼.”

지용은 눈을 꼿꼿이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개코는 뒤돌아서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이빨에 낀 뭔가가 거슬리는지 계속 쯥쯥 소리를 내며 서랍장 앞으로 걸어갔다. 맨 아래 서랍에서 벽돌 크기의 뭔가를 꺼냈다. 나무 대패였다.

나는 그것을 보자 목구멍이 턱 막히고 속이 울렁거렸다. 개코는 난데없이 대패 쓰는 법을 내게 물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꾸물거리는 데도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하는 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나무 대패로 무엇을 할 작정인지 녀석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자, 어디가 좋을까. 어디부터 할까.”

안경 낀 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뼈도 깎을 수 있을지 참 궁금하단 말이야. 우선 살부터 벗겨내야겠지만.”

지용의 앙상한 다리를 바라보는 개코의 입이 뼈다귀 앞의 개처럼 헤벌어졌다.

“삐쩍 골아서 금세 되겠는걸. 정강이부터 하는 게 좋겠지?”

그는 어설픈 협박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한다면 하고, 해서는 안 될 일도 해 버리는 지독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태연하게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나는 늘 가슴을 졸였다.

찌익.

개코가 녀석의 얇은 면바지를 솜씨 좋게 찢었다. 그때까지도 지용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하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내가 의자 위에 걸쳐 둔 수건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자 녀석은 가소롭다는 듯 푸 하고 수건을 도로 뱉어 냈다.

개코는 낮게 웃었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당장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따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잡아.”

나는 잘 훈련된 셰퍼드처럼 지용의 등 뒤로 달려가 두 팔로 그의 상체를 옭아맸다. 나무 대패가 지용의 무릎 아래에 놓였다. 녀석은 떨고 있었다. 아니, 우리는 한 몸이 되어 떨고 있었다.

개코는 상체에 힘을 실어 나무대패를 아래로 쭉 밀었다. 그 순간, 지용은 주먹을 쥔 채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무딘 대팻날이 살가죽을 무자비하게 뜯어냈다. 녀석의 고개가 뒤로 휙 꺾였고 흰자위만 드러난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더!”

“악!”

피로 물든 벌건 살덩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대팻날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흘렀다. 한 번 더 대패질을 했다간 그의 말대로 뼈까지 깎아낼 것 같았다. 나는 개코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벗어둔 셔츠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투실투실하게 살찐 녀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한 시간 뒤엔 너야.”

*

개코 손에 걸려든 용의자들이나 심문 대상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자살 혹은 사고사로 처리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정의의 사도, 고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고 다그치는 법도 없었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단계별로 차근차근 조져버리면 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의문이나 불안감 따위는 갖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체를 굴욕적이라고 생각했다. 쇠붙이로 만든 로봇처럼 고통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부녀자나 여대생들이 잡혀오는 날은 부쩍 즐거워했다.

개코는 딱 세 번 질문을 한 후 곧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하의를 벗겨내기만 해도 웬만해서 자백을 했다. 허위 자백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자백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두려움에 떨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즐겼다.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기는 것을 좋아했고 선홍색 피를 보면 야수처럼 흥분했다.

대공 관련 업무를 하다보면 공사가 심문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80년, 광주의 K대학 학생이 돌연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대공과에서 조곤조곤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랬다.

개코는 그를 무릎 꿇게 한 후, 항문에 낚시 바늘을 끼우고 줄을 발가락에 연결해 매질을 했고 몸이 꼬꾸라지자 항문과 발가락에 연결된 줄이 당겨져 항문의 살이 찢어지는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학생은 끝내 자백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항문이 3센티나 찢어지고 갈비뼈 두 개가 부서졌고 한쪽 눈알까지 함몰 되었으니 자백은커녕 숨도 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튿날, 유치장에서 목을 맸다.

*

닷새 만에 집으로 갔다. 여보.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내는 깨어 있었다. 표정이 어두웠다. 왜 그러냐고 물어 봐도 말이 없었다.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서야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

“무슨 소문?”

“당신이…….”

아내의 말은 이랬다. 이웃에 사는 20대 남자가 특수 절도 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던 중 조사실 옆방에서 여자의 비명을 들었다고 한다. 용의자도 강력계 형사도 심문 도중 꿈쩍꿈쩍 놀랄 정도로 소름끼쳤다는 것이다.

취조를 마치고 조사실을 나오는데 옆방에서 내가 피 묻은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며 나오더란다. 그가 본 사람이 확실하게 ‘나’라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내는 확신하는 듯했다. 남의 말을 잘 믿는 순진한 아내가 이럴 땐 미워지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그가 본 형사는 내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아내는 취조 과정에 대해 의심을 품고 처음으로 내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심문 과정 중 이따금 벌어지는 고문에 대해 말하면 아내는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역정을 낼 게 빤했다. 나는 그 소문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거듭, 내게 물었다. 나는 마지못해 말해 주었다. 심문 과정은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처럼 가벼운 질문을 하고 자백을 받기 위해 가끔씩 방망이로 책상을 내리치는 정도라고. 아내는 내 말을 믿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까칠까칠한 내 손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물 좀…… 주세요…….”

속옷만 입은 여자는 우리가 들어가자 물을 달라고 부탁했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의 문서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포한 혐의로 붙잡혀 온 여자였다. 여자의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물 줘.”

웬일인지 개코는 순순히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바가지에 물을 떠 조사실로 돌아왔다. 시름시름 앓던 여자는 조사실로 돌아온 내 발소리를 금세 알아채고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잠깐.”

개코는 내게 팔뚝만 한 곤봉을 건넸다.

“쑤시던지 때리던지, 하고 싶은 데로 해 봐.”

“네?”

나는 물이 든 바가지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뭐하는 거야?”

그가 목소리를 높여 다그쳤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는지 여자가 몸을 둥글게 말고 내게로 기어왔다.

“살려 주세요…….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내가 머뭇거리자 개코는 이 일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며 내 어깨를 꾹 잡았다. 무겁고 딱딱하고 차가웠다. 나는 그가 ‘우리’라고 말할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한 배를 탔다는 게 두려우면서도 우리가 한편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일하기 싫어? 그럼 나가.”

그가 곤봉을 내게서 뺏으려고 했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나는 곤봉을 꽉 쥔 채 놓아 주지 않았다. 개코는 내 눈치를 살피며 곤봉에서 슬그머니 손을 떼며 말했다.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살아남으려면 배워야 해. 어서 시작하라고.”

우는 아이를 어르는 엄마 같은 말투였다. 빠져나갈 수 없었다. 해야 한다. 나는 바가지에 든 물을 여자의 사타구니에 쏟아 부었다. 여자는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물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담요부터 씌워.”

그가 명령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걸린 담요를 여자의 몸 위에 펼쳤다. 개코는 팔짱을 낀 채 문간으로 걸어가더니 벽에 몸을 기댔다.

“시작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곤봉으로 여자의 등짝을 때렸다.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꼬꾸라졌다. 좀 더 세게. 퍼억. 곤봉은 허공으로 날라 올랐다가 다시 여자의 머리통을 쳤다. 여자는 내 몽둥이질을 피해 달아나려고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담요가 그녀의 몸에서 벗겨졌다. 다시 씌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퍼억. 나는 속으로 말했다.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집요하게 여자를 쫓아다니며 곤봉을 휘둘렀다.

나무 곤봉이 축축하게 젖은 몸뚱이에 닿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짐승처럼 바닥을 기었고 짐승처럼 울었다.

구석에 머리를 처박히고서야 여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자를 뒤집어 지근지근 발로 밟았다. 둥그런 브래지어 아래로 젖가슴이 삐져나왔다.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만지고, 빨고,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시커먼 음모를 뜯어내고 싶었다. 나는 불경스런 성욕에 저항하듯 여자의 도발적인 몸뚱이를 때리고 또 때렸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개코는 책상 서랍에서 파스를 꺼내 내게 건넸다.

“맞은 것처럼 아플 거야. 어깨에 붙이라고.”

나는 파스를 붙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아내 품에서 잠들고 싶었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에게 말했다.

“퇴근 안 하세요?”

그가 웃었다.

“퇴근? 여기가 내 집이야.”

나는 얄팍한 파스를 이리저리 구기면서 물었다.

“이 일이…… 좋으세요?”

개코의 시선이 스르르 내게로 옮겨졌다.

“질문이 우습군. 좋냐니?”

몽둥이로 여자를 때린 것은 처음이었다. 시작은 불쾌하고 괴로웠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 싫지 않은 묘한 감정을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순 없었지만 개코가 이 일을 즐기는 이유 중에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물었다. 직업에 만족하냐고.

“만족? 나라를 위한 건데 만족이라니?”

거짓말.

“빨갱이는 적이야. 들어가 쉬어.”

개코는 이런 대화가 지겹다는 듯 숨을 깊게 내쉬었다.

“오늘…… 전, 어땠…… 나요?”

나는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나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그의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입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웃기만 했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개코는 내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대신해 출장 고문을 갔다. 수많은 자백을 받아낼 때마다 두둑한 특근 수당까지 챙겼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일은 점점 쉬워졌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

말도 없이 잠수를 탄 개코가 보름 만에 나타났다. 습기로 눅눅한 숙소 안은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로 뿌옜다. 나는 그가 누워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자마자 그간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다. 그는 허공에 시선을 박은 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나는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 것을 알고 말을 멈췄다. 낮고 뭉툭한 코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목구멍을 막은 가래를 입 안으로 끌어올리려고 칵칵거렸다. 재떨이에 담배를 끄더니 그 위에 누런 가래를 뱉었다. 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달라보였다. 나는 실내에 정체되어 천천히 움직이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개코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여길 나가면 무슨 낙으로 사나?”

“네? 그만 두시려고요?”

“음.”

“왜요?”

“내가 할 일이 없으니까. 자네도 이젠 제법 하잖아.”

“그래도 전 아직…….”

그가 내 말을 가로챘다.

“지겨워.”

지겹다는 말이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그랬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지겹다고. 만날 하는 짓 말이야.”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시는 건…….”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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