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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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곳은 한강의 멋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 창가다. 우린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와인을 곁들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누가 먼저 포근한 의자에 몸을 묻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은은한 조명이 영서의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영서와 난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신비스럽기까지 한 밤의 분위기에 흠뻑 취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게 상당히 오래만이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각자 회사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결혼 준비로 바빴던 탓이다.

우린 사흘 후 결혼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내게도 결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근 20년 가까운 세월을 혼자 살아왔기 때문이다.

단지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이 없다는 소리다. 그래서 난 결혼 그 자체보다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에 더 흥분되고 설렌다.

처음 영서네 집에 인사를 갔을 때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던 순간이 있었는데 가족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영서가 미리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그녀의 아버지가 가족관계를 물어왔고 난 어릴 때 형을 비롯한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답했다.

당시 영서 부모님은 상당히 놀라는 기색이었고 이내 무슨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지금껏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물어왔다.

무슨 사고였냐고.

하긴 가족이 같은 날 한꺼번에 죽었다는데 달리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생각해?”

고개를 돌리니 영서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냥. 창밖을 보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거짓말. 결혼하고 나서도 그런 표정 짓고 있는 거 보면 속상할 것 같아.”

“내 표정이 어땠는데?”

“본인은 모르겠지만 가끔 지금처럼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있어. 그런 때는 표정이나 분위기가 평소와 완전히 달라서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그런 얼굴 보고 있으면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내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민석 씨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그랬어?”

오히려 놀란 얼굴로 반문하자 영서가 말했다.

“결혼하고 나서 그런 기분 들면 안 될 것 같아. 혹시 말이야, 민석 씨 가족과 관련된 거라면 지금 내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가족 얘기 나올 때 늘 그런 표정을 지었거든. 지금도 가족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냐?”

딱히 가족 생각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웠지만 옛날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 맞다.

“가족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한 번도 내게 얘기해 준 적 없잖아. 이젠 나도 들어야 할 자격이 있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은 물론 영서에게도 부모님과 형의 죽음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대충 얼버무리거나 그냥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애매한 답으로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 그 얘기를 들려준다면 영서가 늘 궁금해 하던 또 다른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영서가 그토록 좋아하는 고양이를 내가 왜 싫어하는지. 우리가 결혼하더라도 고양이만큼은 왜 절대로 키울 수 없는지.

영서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나는 주저하다가 19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의 죽음과 관련한 그 기이한 일에 대해 입을 연다. 어쩌면 얘기를 해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심지어 영서조차도.

“우리 아버지는……”

난 잠시 숨을 골랐다.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게 너무 낯설었다.

“아버지는 빌라를 지어서 분양하는 일을 하셨어. 당시 빌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인데 지금의 아파트보다 인기가 더 있었지. 집을 지어서 남들에게 파는 아버지셨지만 정작 우리 집은 남의 집에서 전세를 살던 때였어. 그래서 아버지가 빌라를 분양해 번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도 바로 우리 집을 사는 일이었지. 그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어.

그 집은 변두리에 있었고 낡고 음침했지만 우리가 이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 아버지는 나중에 땅값이 오를 걸 대비해 그 집을 사셨던 거야. 하지만 우린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물론 나 때문에 그 일이 생긴 셈이지만.”

2

그랬다. 우린 그 집에 들어가지 말아야 했고 그 모든 비극은 나로 인해 일어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내 탓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내려놓을 수 없을 어둡고 무거운 죄의식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서 지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처음으로 집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들떴던 가족들은 이사한 집에 들어가 보고는 적잖이 실망했다. 넓기만 했지 폐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낡은데다 집이 너무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집 뒤쪽으로는 야산이 있었는데 기분 나쁜 기운을 뿜어내는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했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버려진 사당집까지 있어 분위기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건, 날이 저문 후 집 밖에서 수십 마리의 음산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집 안엔 커다란 쥐가 들끓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밤에는 고양이 울음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낮엔 쥐와 마주친 엄마의 비명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했다.

식구들이 불평을 늘어놓자 아버지는 완고한 음성으로 말했다.

“집이 좀 낡긴 했지만 넓으니까 얼마나 좋으냐?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살다보면 10년 후쯤엔 땅값이 지금의 열 배는 넘게 올라갈 거다.”

순간 형과 나는 이집에서 자그마치 10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그때 형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나는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이후에도 아버지는 식구들이 집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늘 그런 식의 논리를 펴곤 했다.

엄마가 쥐 때문에 못 살겠다거나 집 뒤에 있는 사당이 기분 나쁘고 겨울이 되면 외풍이 너무 심할 것 같다고 걱정을 해도, 형과 내가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불평을 해도 아버지는 한결같이 “그래서 그렇게 싼 가격에 나온 거야. 안 그랬으면 우리가 이런 집을 어떻게 사?”라며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집에 관한한 아버지는 예전처럼 가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자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집에는 2층에 있는 두 개를 합해 방이 모두 열한 개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집은 세를 놓기 위해 방을 많이 만든 것 같다며 우리도 남는 방을 세를 놓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의 제안에 엄마의 반응은 냉랭했다. 엄마가 비꼬는 것처럼 말했다.

“세를 놓으려면 수리라도 해야지 이런 집에 누가 들어오겠어요?”

“싸게 내놓기만 하면 왜 안 들어와? 주인도 사는데!”

“그런 싼 가격에 이런데 들어와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오죽하겠어요? 애들도 있는데 괜히 이상한 사람들 집에 들였다가……”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잠자코 하라는 대로 해!”라고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쳐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마를 때리진 않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엄마의 충격은 나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은 이사를 한 후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자나 깨나 입에 ‘돈’ 소리를 달고 다녔고 화를 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사업이 꼬이는데다 식구들의 불평에 끊임없이 방어논리를 펴려니 짜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불안감이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전에 집안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던 엄마의 활기도 이사를 온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가 변한 것에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엄마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우울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형도 몹시 예민해진데다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선 함께 방을 쓰며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고 놀이상대도 되어 주었는데 이사를 한 후 방을 따로 쓰고부터는 아예 그럴 기회가 사라졌다. 어느 순간 형에게 거리감이 느껴졌고 그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살던 비좁은 집에서는 보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부딪칠 수밖에 없었는데 이집에선 그럴 일이 없었고 가족 간의 유대감도 그만큼 빠르게 멀어졌다.

자연 나는 이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졌다. 엄마는 뭘 물어도 건성으로 대답하기 일쑤였고 학교 생활에 대해 먼저 물어보는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물론 초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이전처럼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이유의 전부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 집을 감싸고 있던 이상한 기운이 우리 가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나는 당시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은 유독 내게만 엄격하게 구는 것 같았고 아이들은 귀신들린 집에 산다고 놀렸다.

왜 아이들이 우리 집을 귀신들린 집이라고 하는지는 며칠 후 형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밤에 형이 갑자기 마당으로 불러내더니 이상한 말을 했다. 형은 마당에 낮게 깔려 있는 이상한 안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집에는 이사를 하지 말았어야 해! 이집과 뒷산엔 귀신이 산대. 저기 이상한 기운들, 저게 죽은 사람들의 넋이래.”

형의 얘기를 듣는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형의 말처럼 밤만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색의 기운이 집 주변을 에워쌌다. 언뜻 보면 안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집은 괜찮은데 유독 우리 집만 그런 걸 보면 단순히 안개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놀라서 반문하자 형이 두려움이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동네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알아? 이집은 귀신이 사는 집이래. 뒷산에 사당집 봤지? 이집은 거기 사는 귀신의 집이래. 요 밑에 슈퍼 할머니 있지? 그 할머니가 알려주더라. 나쁜 일 당하기 싫으면 얼른 이사 가라고. 고양이 소리와 함께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절대로 집에 들이지 말라면서.”

그러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나만 지나가면 이상한 시선으로 흘끗거렸던 게 생각났다. 또 반 아이들이 ‘귀신들린 집에 사는 아이’라고 놀렸던 이유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 자칫하면 귀신한테 홀려서 나쁜 일을 당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형은 뭘 조심하라는 건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그날 이후로 형은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가능한 늦게 집에 들어왔다. 때론 친구 집에서 잔다는 핑계로 외박을 하기도 했다. 반면 나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웠고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꾸만 쌓여갔다.

플루토를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그날도 학교에 갔다 와서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낮에 고양이 소리가 들려오긴 처음이었다.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벌떡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예전부터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집이 좁은데다 아버지가 무서워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소리는 집 뒤편에서 들려왔다. 나는 무너진 담벼락에 붙어서 담 너머를 살폈다. 똑바로 사당이 보이는 뒷산엔 무성한 아카시아나무를 뚫고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곳곳에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내 존재를 알았는지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숨을 죽이고 있다가 얼른 부엌으로 갔다. 평소 엄마가 고등어를 자주 구워주었기 때문에 부엌에는 늘 먹다 남은 생선이 있었다. 살점이 조금 남은 생선을 가져와 담벼락 옆에 놓고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전까지의 무료함과 외로움은 눈 녹듯이 단번에 사라졌다.

대체 어떤 녀석일까. 이전에 살던 집과 달리 잘만 하면 아버지 몰래 녀석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흥분이 날 들뜨게 만들었다. 사당의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인 건 숨을 죽이고 지켜본 지 30분이나 지나서였다.

얼마 전 아버지에게 사당이 뭐냐고 물었더니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라고 했다. 다시 위패가 뭐냐고 묻자 아버지는 죽은 사람의 영혼 같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당은 정말로 형이 말한 것처럼 귀신이 사는 집이 되는 셈이었다. 녀석은 바로 그런 사당에 살고 있었다. 귀신과 함께.

잔뜩 몸을 도사린 녀석이 노란 눈으로 노려봤다. 언뜻 봐도 집고양이는 아니었고 까만 털로 뒤덮인 놈의 덩치는 그동안 봐왔던 어떤 고양이보다 커보였고 한쪽 눈에 칼자국처럼 길게 난 상처가 인상적이었다.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던 놈은 내가 담벼락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자 조심스레 앞으로 나왔다. 놈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생선 앞으로 다가와 혓바닥을 내밀고 핥더니 제법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나는 놈이 생선을 다 먹어치우고 유유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놈과 처음으로 교감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생선을 들고 놈을 찾았다. 놈을 만날 생각에 하루 종일 마음이 들떠서 공부도 못할 지경이었다. 놈에겐 플루토란 이름을 지어줬다.

얼마 전 형의 방에서 『검은고양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 나오는 고양이 이름이 플루토였다. 소설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놈에게 플루토란 이름을 지어준 건 녀석의 이미지가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와 닮았고 무엇보다 검은고양이였기 때문이다.

플루토는 더 이상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내가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는데도 서슴없이 다가와서는 음식을 먹었다. 오히려 식사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으면 시끄럽게 울어대며 부르기까지 했다.

플루토는 가져다주는 음식을 당연한 듯 먹어치우면서도 결코 고분고분해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쓰다듬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털을 곤두세우고 이빨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플루토는 보통의 고양이 같지 않았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놈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사당의 지붕 위로 뛰어올라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놈의 눈길은 마치 ‘너 같은 겁쟁이는 절대로 여기에 올 수 없지!’라고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플루토와 함께 있는 동안 마치 인간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에서나 느낄 질투와 멸시의 감정을 놈에게 느꼈던 것이다.

나는 무시하는 것 같은 놈의 건방지고 도도한 눈빛이 싫었다. 고양이 주제에 밥을 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위에서 군림하려는 듯한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다.

할 수만 있다면 플루토를 여느 애완동물처럼 주인의 보호 아래서 고분고분 복종하는 고양이로 길들이고 싶었다. 손을 내밀면 손을 핥고 만져주면 행복한 얼굴로 바닥에 늘어지는 그런 보통의 고양이 말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놈을 길들이고 괴롭히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음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플루토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내가 나타나자 놈은 느릿하게 다가왔다가 음식이 없다는 걸 알고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동물들이 음식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놈의 태도는 여전히 건방지고 도도했다.

“음식을 먹고 싶으면 고분고분하게 굴어. 난 네 주인이야. 알았어?”

나는 제법 위협적으로 말하고 플루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놈은 다가오는 손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발톱으로 손목을 할퀴었다. 날카로운 아픔에 얼른 손을 거둬들였지만 이미 손목에는 붉은 두 개의 줄이 생긴 뒤였다.

놈은 음식을 주지 않으면 그렇게 복수하겠다는 듯 오히려 앙칼지게 울어댔다. 놈은 노려보며 털을 곤두세웠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발광하는 노란 눈동자에는 적의와 위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쓰라린 통증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동안 맛있는 음식을 갖다 준 은혜도 모르는 너 같은 같잖은 고양이 새끼는 콱 밟아서 죽여 버려야 해!”

나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놈을 노려보며 당장에라도 목덜미를 움켜쥐고 잡아 흔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몸을 떨면서 으르렁거렸다. 어떻게 하면 놈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힘을 놈에게 과시할 수 있을까.

놈을 잡아 박스 같은 곳에 가둬두고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유린해 주고 싶었다. 누가 주인인지, 짐승은 주인한테 어떻게 굴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었다. 속이 풀릴 때까지 굶기고 때리고 싶었다. 정말로 간절하게 놈에게 복수한 후 지배하고 싶었다.

하지만 플루토는 나처럼 겁 많은 중학생 따위에게 잡힐 고양이가 아니었다. 플루토는 날랬고 나는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사당을 제집으로 삼고 있는 녀석이었다. 놈은 어느새 사당 지붕에 올라앉아 쓰린 손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한가롭게 털 손질을 했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분을 삭여야 했다.

“앞으로 다시는 생선 맛을 못 볼 줄 알아! 그리고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날 밤 다른 고양이 울음은 들리지 않는데 플루토만 밤새 시끄럽게 울어댔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닮은 놈의 소리는 듣는 사람의 심장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는 것처럼 아프게 파고들었다. 놈은 밤새도록 그런 식으로 나를 괴롭혔고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다음날 고양이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투덜거리는 형에게 나는 플루토 얘기를 해준 후 함께 잡자고 부추겼다. 잡아서 길만 잘 들이면 밤마다 천정을 뛰어다니며 집 안에 득실거리는 쥐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뜻밖에도 형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왔다. 우린 모처럼 의기투합해서 어떻게 플루토를 잡을지 고민했고 함정을 만들기로 했다. 우린 플루토가 없는 틈을 타 정성스럽게 구덩이를 팠다.

늘 음식을 놓아두던 자리에 고양이 한 마리가 빠질 수 있도록, 한 번 빠지면 여간해서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충분히 깊고 넓은 구멍을 팠다. 구멍 위에는 얇은 발판을 걸친 후 흙으로 덮었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생선을 올려놓았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린 담벼락에 숨어 플루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형은 30분을 못 견디고 자리를 떴지만 나는 부지깽이와 플루토에게 씌울 목줄을 들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졸고 있던 나는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에 화들짝 잠이 깼다. 구덩이를 들여다보니 플루토가 그 아래서 발광을 하고 있었다. 놈은 나를 올려다보며 발톱을 곤두세우고 처절하게 울어댔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내가 얼마나 정서적으로 피폐하고 불안했는지 그 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환경이 변하고 가족들이 변하자 모든 게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이 매순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뇌세포를 자극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절망과 허탈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런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플루토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거나 벌레를 잡아 모으고 또 그것들을 한 마리씩 죽이는 일로 소일했다.

집에서의 문제는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마음을 지탱하던 울타리가 연이어 허물어졌다. 사실 학교에서의 심리적 충격은 집에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누구보다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했다.

그런데 중학교로 진학해 전학을 하자마자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뒤집혔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문제아에 왕따로 추락한 것이다.

아이들은 귀신 붙은 집에 산다고 따돌렸고 선생님에겐 준비물이며 급식비 따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혼이 났다.

이전에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 따귀를 담임에게 거의 매일 맞다시피 했다. 하지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플루토는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톱을 세우고 필사적으로 흙을 긁어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구덩이는 오히려 넓어지고 함정은 견고해졌다.

“이제야 네가 그동안 주제도 모르고 얼마나 까불었는지 알겠냐? 이 배은망덕한 고양이 새끼야!”

나는 이전에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욕설을 쏟아내며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플루토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 순간에 뭔가가 머릿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던 분노의 뇌관을 건드린 것 같았다.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영혼은 분노의 광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플루토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무섭게 발광하는 소리가 심장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여 끝이 뾰족한 부지깽이로 놈의 몸을 마구 찍어댔다. 폭풍처럼 격렬하게 몰아치던 광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허탈감이 마치 자위를 한 후의 느낌과 비슷했다.

함정 안을 들여다보니 플루토는 진작 숨이 끊어진 뒤였다. 구덩이는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손에 들고 있던 부지깽이에도 끈적거리는 피가 달라붙어 있었다.

플루토의 탁한 동공이 핏빛 구덩이 안에서 무표정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떤 괴물보다 무서웠고 이후에도 종종 꿈속에 등장하곤 한다.

함정을 만드느라 파냈던 흙으로 구덩이를 덮었다. 눈앞에서 플루토의 모습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오그라들었던 심장에 다시 공기가 채워지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는 그걸로 플루토와의 인연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플루토는 바로 다음날 부활했다. 나는 덮어놓았던 구덩이가 파헤쳐진 걸 보고 전율에 사로잡혔다. 구덩이 안에 있어야 할 플루토의 시체도 사라지고 없었다.

검붉은 피로 물든 주변의 흙만 아니었다면 전날의 모든 일들이 실은 꿈속에서 일어난 악몽이 아니었을까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을 푹 놓고 잔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플루토는 직접 눈앞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줬다. 엄마가 부엌에 남겨놓은 생선이 없어진 건 시작에 불과했다.

언젠가는 아침에 방을 나오는데 뭔가 딱딱한 게 밟혀서 보니 방문 앞에 죽은 쥐가 놓여 있었다. 쥐의 목에는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나는 그게 플루토의 소행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네 살의 내 사고는 제한적이면서 단순했고 또한 선입견이 강했다. 쥐를 그렇게 죽일 수 있는 건 고양이밖에 없을 테고, 그 주변에서 내가 본 고양이는 플루토가 유일했으며, 놈이 아니라면 죽은 쥐를 내 방문 앞에 갖다놓았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놈의 복수가 시작됐다는 걸 어렴풋이 직감할 수가 있었다.

진짜 소동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 일어났다. 그날은 모처럼 식구들이 한데 모여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마당 구석에 놓아둔 장독을 열고 간장을 푸던 엄마가 미친 듯이 악을 써댔다.

우리가 저녁상을 팽개치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을 때 엄마는 하수구에 대고 토악질을 하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놀란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뭔데 그래?”

엄마가 쥐어짜는 것 같은 신음을 흘리며 손으로 장독을 가리켰다. 아버지가 소리치자 형이 얼른 손전등을 가지고 나왔다. 아버지가 손전등을 켜서 장독 안을 살피다가 굳은 얼굴로 우릴 돌아보고 말했다.

“너희들은 들어가서 밥이나 마저 먹도록 해!”

하지만 형도 나도 호기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형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안에 뭐가 있는데요?”

아버지가 난처한 듯 엄마와 우릴 번갈아보더니 장독 안으로 손을 넣어 뭔가를 끄집어냈다. 손으로 들어 올린 시커먼 물체에서 간장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손전등으로 그 물체를 비추는 순간 형과 나 또한 엄마와 마찬가지로 토악질을 시작했다.

그건 긴 꼬리에 거의 축구공 만하게 몸이 퉁퉁 불어 오른 커다란 쥐였다. 언제 그 안에 들어가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쥐의 사체에서는 계속해서 간장이 흘러나왔다. 말하자면 온 식구들이 죽은 쥐가 들어 있는 간장을 내내 먹었던 셈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이번 간장이 유난히 맛있다며 끼니 때마다 밥에 비벼먹기까지 했다.

엄마가 어서 그 끔찍한 걸 치우라고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는 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무슨 생각인지 그대로 집을 나갔다. 엄마는 충격이 심했는지 바로 몸져누운 후 거의 일주일 가량 식사를 하지 못했다.

밥만 먹으려고 하면 간장에 불은 쥐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또 그것이 불은 간장을 먹었다는 연산 작용으로 이어져 토악질이 나왔던 것이다.

형과 나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무거운 뚜껑으로 닫아놓은 장독 안에 어떻게 그렇게 큰 쥐가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게 플루토의 짓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귀신과 함께 살던 고양이니까 무슨 일이든 가능했던 것이다.

저녁을 먹다 말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는데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서 ‘야옹’하고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상자를 열고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쥐새끼들!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그러면서 아버지는 함께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에서 쥐덫을 비롯해 쥐약까지 꺼내더니 집 안 구석구석에 설치하거나 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사온 고양이는 플루토와 달리 온순하고 귀여웠다. 내가 목덜미를 쓰다듬으면 이내 스르르 눈을 감곤 했다. 그 고양이에겐 특별한 이름 대신 그냥 ‘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버지의 극약처방 덕분인지, 냥이 덕분인지 쥐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플루토도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놈이 완전히 사라져서 다신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긴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비는 전날 밤부터 쉼 없이 내렸다.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극성스러운 고양이 울음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날 아침 마당에서 엄마의 호들갑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가자 엄마는 고양이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침 8시가 넘었는데 밖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비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천진한 아이처럼 말했다.
“여기 좀 봐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어.”

냥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리에 ‘어디어디?’하며 엄마 곁으로 달려갔다. 모두 네 마리의 새끼가 서로 뒤엉켜 냥이의 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새끼들을 본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혔고 이어진 엄마의 말에서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이상하네? 아빠가 까만 고양인가 봐?”

마침 그 순간 천둥과 함께 번개가 내리쳐서 나는 자리에서 거의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무슨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으냐고 핀잔을 줬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노란 냥이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검은 고양이 새끼들.

그랬다. 그들은 모두 칠흑 같은 빛깔의 검은 고양이들이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고 머리끝이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플루토가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겹게 내리는 비는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내내 물난리 소식이 흘러나왔다. 우리 동네도 아래쪽 지역이 침수되어 형과 나는 학교를 하루 결석해야 했고 아버지 역시 출근을 하지 못했다.

고양이 울음소리와 악몽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데다 높은 습도와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더해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식구들이 하천이 범람한다는 소식에 밖으로 나간 틈을 타 냥이에게 다가갔다. 손에는 아버지가 냥이를 넣어왔던 철재박스가 들고 있었다. 냥이와 새끼들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 나를 잘 따르고 온순하던 냥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나른한 표정으로 내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냥이와 새끼들을 넣은 박스를 들고 비가 쏟아지는 비탈길을 달려 내려갔다. 박스 안에서 냥이와 새끼들이 마구 부딪히며 충격을 받는 감촉이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제야 어떤 위협을 느낀 냥이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범람할 것처럼 물이 불은 하천 앞으로 다가섰다. 넘실거리는 물살에 온갖 쓰레기와 부유물이 뒤섞여 하류로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위험을 느낀 냥이와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처절하게 변했다. 나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센 물살 속으로 박스를 집어던졌다.

무거운 박스는 잠깐 물 위에 머무르다 이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지겨운 냥이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집을 둘러싼 안개가 유난히 짙어진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면서 사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명의 어린아이가 한꺼번에 돌아가며 우는 것 같은 그 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음산하고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마치 냥이의 죽음을 알고 있다고 원망하는 고양이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나는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 2층으로 올라가 형의 방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어 문을 열었더니 형은 책상에 스탠드만 켜놓은 채 방 문을 등지고 창문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형, 뭐해? 고양이 소리 안 들려?”

내가 물었지만 형은 양 무릎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 조심스럽게 형 옆으로 다가갔다.

내가 옆에 왔는데도 형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고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유리창을 두들기고 있었다.

“형,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러자 형이 돌아보지도 않고 뜻밖의 대답을 했다.

“사람들을 보고 있어.”

“사람들?”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형이 뭔가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얼른 창밖을 내다봤다. 창문으로 보이는 건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설혹 저 너머에 뭔가 있다하더라도 방 안에서 그것들이 보일 리가 없었다.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뭐가 보인다는 거야?”

그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퍼런 섬광을 동반한 번개가 내리쳤다. 짧은 순간 나는 분명히 봤다. 사당집 앞에 유령처럼 서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빗속에서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형의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나는 형의 방 창문으로 사당집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형, 저 사람들이 다 누구야?”

형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저녁 내내 저렇게 서서 우리 집을 보고 있어.”

형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봤다. 형의 눈동자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초인종이 울린 건 그때였다. 시계를 쳐다보니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