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와중에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

“우리 엄마 아빤 불에 타 죽었어.”

녀석이 말했다. 무심하고 심상한 말투였다. 말투만 듣자면 마치 가물가물한 과거사를 떠올리는,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았다.

돋보기로 개미를 태워 죽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고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래된 노트북 컴퓨터 LCD에 생기는 멍처럼 군데군데 허연 마른버짐이 끼어 있는 녀석의 거무튀튀한 얼굴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은 녀석은 기형적일 정도로 길고 짙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하수도의 웅덩이처럼 번들거리는 꺼먼 눈동자로 개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마리째였다.

제법 굵직굵직한 왕개미라 죽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에서 기어 나와 먹이를 찾아 헤매던 개미들은 머리 위로 따라다니는 태양열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막상 고온의 열기가 갑각질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내 당황하여 열을 피해 이리저리 달아났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돋보기를 투과하며 응축된 태양열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머리나 가슴, 혹은 배를 태울 때마다 개미들은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버르적거렸다.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뻥 까고 앉았네, 병신.”

무심코 튀어나가려던 그 말을 내가 도로 집어삼켰던 것은 무덤덤한 본새와 달리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가 끔찍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개미나 바퀴벌레도 아닌 엄마 아빠가, 차에 치이거나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불에 타 죽었다니…….

열 살즈음의 사내 녀석들은 과시할 거리도, 우길 거리도 많았다. 아직 열리지도 않은 88올림픽 개막식에 다녀왔다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밤하늘을 날아가는 우뢰매를 봤다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불에 타 죽었다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거짓말 치고는 참신하고 기발했으나 하고많은 대상 중에서 하필이면 신성불가침한 부모를 골랐다는 게 영 꺼림칙했다.

신경이 녀석에게로 쏠려 있던 동안 들리지 않던 민방위 훈련 방송이 다시금 귀청을 따갑게 자극하고, 나무 그늘을 타 넘은 뙤약볕이 정수리를 뜨끈하게 파고들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이놈의 민방위의 날 훈련은 대체 언제나 끝나려는지 모를 일이었다.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든 운동장 나무 그늘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든, 그 십오 분이 열다섯 시간처럼 느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녀석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녀석이 대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그 말을 내게 꺼냈는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우와, 진짜? 근데 넌 왜 안 타 죽었어?

녀석이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면 예의상 그런 반응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일명 ‘좆삐리’였다. 녀석이 우리 반으로 전학 온 후로 사내애들은 서열을 재정비하고자 하나둘 녀석에게 싸움을 걸었다.

“너, 나 이겨?”

그때마다 녀석의 대답은 매번 한결같았다.

“아니, 져.”

심지어 2학년 꼬마에게 얻어터져서 코피까지 났다는 소문이 파다한 윤길성이 주위의 부추김에 못 이겨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싸움을 걸었을 때도 같은 대답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하면서도 약자가 강자의 아량을 구하며 으레 보이기 마련인 비굴한 빛은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싸움을 못 한다기보다 그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반 녀석들은 매번 싱겁게 판가름 나는 승부에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내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정말이지 녀석에게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비단 오랫동안 안 씻은 몸뚱이에서 풍겨오는 땟국 내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무표정이 그러했고, 열 살배기 사내애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한 말투도, 대화를 하면서도 절대 상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내리까는 눈초리도 그러했다. 전학 온 후로 녀석이 줄곧 외톨이였던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일 터였다.

어쩌면 녀석이 내게 건넸던 말은 돋보기로 햇빛에 모아 죄 없는 개미를 태워 죽이고 있는 내 행동에 대한 우회적인 질책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엄마 아빤 불에 타 죽었어. 너도 불에 타 죽을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지 마. 불에 타 죽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 선생님, 얘 좀 보래요. 불쌍한 개미를 돋보기로 막 태워 죽여요!

어쩌면 녀석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반 대표 ‘좆삐리’가 던진 실없는 한마디 때문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민방위 훈련을 비교적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이 겸연쩍어하는 투로 다시 입을 연 것은 민방위 훈련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나두 그거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내 쪽에서 녀석을 외면했다. 관심을 줄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돋보기만 있다면 개미 태워 죽이는 일쯤이야 어떤 유치원생 코흘리개인들 못 하겠는가.

아무래도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내게 친한 척 엉겨 붙으려는 심사인 게 분명했다. 어쩌면 녀석의 생뚱맞은 말들도 다 나와 친해지려는 수작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녀석을 아예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름지기 ‘좆삐리’와 어울리면 ‘좆삐리’ 취급을 받게 되는 게 수컷 사회의 생리였다.

훈련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이 운동장과 홍주 전역에 길게 울려 퍼졌다. 운동장 나무 그늘 여기저기에 쪼그리고 앉아 흙장난을 하거나 땅따먹기를 하며 시간을 죽이던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 집합해라. 집합!”

담임이 확성기에 대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용케 치명상을 피해 끈질기게 달아나던 개미 한 마리를 마저 태우려다 포기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돋보기를 거두었는데도 개미에게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개미에게서 일순 불꽃이 확 일었다.

순간적으로 번쩍했다가 사그라진 불꽃이라 나 외에는 아무도 그 불꽃을 보지 못한 듯했다. 개미는 불꽃과 함께 증발했다.

개미가 누워 있던 자리는 화약이 터진 듯 거무스름한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제야 녀석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녀석은 어느새 담임 앞으로 모여들고 있는 아이들의 무리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내 목덜미를 뜨끈한 혓바닥으로 핥고 지나갔다.

*

거짓말이라 여겼던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이튿날 밤 이부자리에 누워 막 잠이 들려는 찰라, 나와 두 살 터울인 누나가 옆구리를 찔러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야, 니네 반에 이한율이라고, 전학 온 애 있지? 구형섭 선생님이 그러는데, 걔네 집에 불나서 걔네 엄마 아빠랑 동생까지 다 죽었대.”

오늘도 일찍 자기는 글렀구나 싶었다. 누나와 한 방을 써야 하는 처지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구형섭은 누나네 담임이었는데 어찌나 허풍이 센지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나 허튼소리들을 무슨 교리라도 되는 양 학생들에게 유포하는 게 취미인 실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내 앞니 하나가 비뚤게 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아이고, 너 인제 큰일 났다. 구형섭 선생님이 그러는데, 이빨 썩은 게 잇몸으로 번지면 죽는대.”

누나가 그렇게 겁을 주었던 당시, 내 앞니 사이는 까맣게 썩어 있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후로 나는 밤마다 잇몸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 죽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는 흔들리지도 않는 앞니를 시간이 날 때마다 붙들고 이리저리 뒤흔들며 용을 써야 했다.

결국 나는 썩은 앞니를 이갈이 시기보다 일찍 내 잇몸에서 뽑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허튼소리를 믿고 용을 쓴 대가로 한쪽이 볼썽사납게 비뚤어진 앞니를 평생토록 달고 살아가게 되었다.

나중에야 친구들로부터 그 정보가 아무 근거 없는 헛소리이며, 구형섭의 별명이 ‘구라쟁이’임을 전해 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살의에 가까운 배신감이었다.

그런데도 누나는 툭하면 ‘구형섭 선생님이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유언비어를 무슨 복음이라도 되는 양 내게 전파하곤 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아, 됐어. 구라쟁이 말을 누가 믿어?”

내가 홱 돌아누우며 퉁을 주었는데도 누나는 여전히 진지했다.

“아냐, 내가 봤다니까. 오늘 걔네 할머니가 학교에 왔거든. 교무실서 청소하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우리 한율이, 불쌍한 우리 한율이…….’ 막 이러면서 니네 담임이랑 얘기하구 있더라고.

근데 그 할머니 옆에 한 일곱 살 정도 먹은 여자애가 서 있는데 걔 볼때기에 꼭 소보로빵 같은 게 붙어 있는 거야. 뭔가 해서 자세히 쳐다봤더니 화상이드라. 아으, 징그러 죽는 줄 알았어. 나 인제 소보로빵 못 먹어.”

몸서리까지 쳐가며 치를 떠는 품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누나 쪽으로 돌아누우며 물었다.

“동생까지 다 죽었대매? 근데 걘 뭐야.”

“걔도 이한율 동생일걸? 동생이 둘이었다던데? 죽은 앤 세 살인가 그랬대.”

아무래도 누나는 녀석의 인적사항에 대해 사전조사라도 한 모양이었다. 민방위의 날 훈련 때 녀석이 무심하고 심상하게 내뱉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우리 엄마 아빤 불에 타 죽었어. 그 말이 사실이었던 걸까. 긴가민가하는 사이 누나의 호들갑은 이어졌다.

“불에 타 죽으면 얼마나 아플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냐. 구형섭 선생님이 그러는데, 불에 타 죽는 게 세상에서 최고로 고통스럽대.”

“웃기시네. 자기가 불에 타 봤대?”

“책에 나와 있대.”

“무슨 책? 몇 페이지, 몇째 줄?”

괜한 오기에 유치하게 따지고 들었지만 불의 무서움이나 화상의 고통 정도는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부모가 집을 비운 어느 날, 누나와 함께 석유곤로로 라면을 끓여먹다 집에 불을 낼 뻔했던 적이 있었다.

성냥불을 아무리 심지에 갖다 대어도 불이 붙지 않자 누나는 석유가 다 떨어진 모양이라고 나더러 창고에서 석유통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내용물이 절반쯤 남아 있는 석유통을 낑낑대며 들고 왔고 누나가 시키는 대로 곤로의 주유 구멍에 대고 석유를 들이부었다.

그러나 당시 여덟 살에 불과했던 내가 흘리지 않고 석유를 부을 수 있었을 리 없었다. 석유통에서 쏟아진 석유가 곤로를 흥건히 적시며 흘러내렸고 바닥까지 석유로 질펀해졌다.

이만하면 라면 한 박스는 끓여 먹겠다 싶도록 석유가 들어갔을 때 나는 뒤로 물러났고 임무교대를 한 누나가 곤로의 심지에 성냥불을 붙였다.

그런데도 불이 잘 살지 않자 누나는 심지통을 좌우로 돌리고 심지통을 들춰 입으로 바람을 훅훅 불어넣었다. 그러다 심지에서 튕겨 날아간 불똥이 바닥에 흥건하던 석유 위로 떨어져 불이 났다. 순식간에 석유곤로는 통째로 불길에 휩싸였다.

“엄마야!”

누나가 기겁하며 뒤로 나가떨어졌기에 망정이지,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더라면 분명 누나도 큰 화상을 입었을 터였다. 누나의 비명과 치솟는 연기에 놀라 달려온 옆집 아주머니가 급한 대로 빨랫줄에 널려 있던 젖은 담요를 걷어와 석유곤로에 덮었다. 신속하게 산소의 유입을 차단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대형 화재로 이어졌을 사고였다.

그날 누나는 부지깽이가 휘어지도록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체벌로, 나는 온몸이 불타는 악몽을 꾸다 잠자리에 오줌을 지리는 망신으로 각각 대가를 치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다가 손등이 화끈거려서 보니, 새끼손가락만 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놀란 와중에 데는 줄도 모르게 데었던 모양이었다. 가벼운 화상이었는데도 그 상처가 어찌나 화끈거리고 쑤시는지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불에 타 죽을 정도라면 말 다 한 셈이었다. 누나가 이런저런 잡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다 제 풀에 잠들고 난 후 나는 오랜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부모가 불에 타 죽었다던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대체 왜 녀석은 내게 묻지도 않은 가족사를 꺼냈던 것일까. 돋보기도 없이 개미가 불에 타 사라진 일은 또 어찌된 영문이었을까. 혹시 그 일이 ‘나두 그거 할 수 있’다던 녀석의 참견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마음속에서도 그런 복잡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의문들의 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괴물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민방위의 날 훈련 때 돋보기에 타 죽던 개미들이 그러했듯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이불을 뒤덮어 쓴 채 그 속에서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그날 밤 나는 내 부모가 불길에 타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하는 악몽까지 꾸었다.

이튿날 등굣길에서 녀석과 마주쳤을 때 그 뜨악한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등굣길에서 녀석과 마주쳤다기보다는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터였다.

내가 대로변으로 통하는 동네 어귀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책가방을 메고 서 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내 지척으로 다가와서는 나와 발걸음을 맞추어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들 보세요.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예요. 나와 나란히 학교로 향하는 녀석의 행동이 꼭 주위에 대고 그렇게 외쳐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의 조우가 영 달갑지 않았다. 어젯밤 이후로는 녀석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껄끄러웠다. 그러나 녀석은 내 의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도리어 나에게 일방적으로 제 가족사를 고백한 행동이 제 딴에는 피를 나눈 의식이라도 되었던지 내 사적 공간을 허락도 없이 침범해 들어왔다.

더욱 거북한 것은 그러면서도 나와 눈을 맞추는 일은 지극히 드문 녀석의 시선이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나와 붙어 다니는 녀석의 눈초리는 의뭉스럽기 짝이 없었다.

딱히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그저 묵묵히 나와 걸음을 맞출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게 못 견디게 싫었다.

“꺼져, 좀!”

등굣길 내내 그 말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그렇게 내뱉고 싶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녀석이 그 말에 행여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녀석에게 섣불리 그런 말을 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 후환이 내게 닥칠 것만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녀석은 그런 존재였다. 주위 사람을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리끼게 하는 존재. 그러나 그 거리낌을 표현하는 것조차 꺼려지게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하필이면 나에게 들러붙다니 그야말로 재수 옴 붙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방과 후 청소를 마친 나는 녀석과 나란히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청소 당번이었고 녀석은 복도 청소 당번이었는데, 청소가 나보다 먼저 끝났음에도 교실 밖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눈물겨운 우정을 발휘했다.

그 즈음 나는 내게서 녀석을 떼어 버리는 일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까짓것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좆삐리’와 어울릴 수 없다는 내 자존심은 녀석에게서 풍기는 땟국 내를 맡지 못할 정도로 마비된 후각만큼이나 느슨해져 있었다.

예비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운동장에 예비군들을 소집해서 향방작계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훈련이 끝난 후였는지 그네들은 군복 차림에 군홧발로 축구공을 좇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누군가 군홧발로 뻥 내지른 공이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상승의 정점에 다다른 공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곤두박질했는데 그 지점이 하필이면 나와 녀석의 대여섯 발짝 앞이었다. 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꺼져!”

땅바닥에 떨어진 축구공이 눈높이까지 튕겨 오른 순간, 등 뒤에서 내달려온 군홧발 중 하나가, 아까부터 내가 녀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일갈하며 축구공 대신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곧바로 1~2미터쯤 허공을 날아 땅바닥에 처박혔다. 엉덩이뼈가 으스러진 것만 같은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는 엉덩이를 붙든 채 땅바닥을 버르적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를 걷어찬 군홧발은 경주마가 장애물을 뛰어넘듯 나를 펄쩍 뛰어넘어 축구공을 향해 내달았다. 내 옆에 쪼그리고 앉은 녀석이 나지막이 물어왔다.

“괜찮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프고 분해서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녀석이 내 팔을 어깨에 걸치고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녀석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걸을 때마다 엉덩이뼈가 욱신거려서 절뚝거려야 했다.

나를 걷어차고 공을 낚아채는 데에 성공했던 군홧발이 다른 예비군의 태클에 맥없이 공을 빼앗기는 광경이 보였다. 열 살짜리 사내애의 엉덩이를 격파하고 내달렸던 저돌성에 비하면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말로였다.

군홧발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일부러 더 눈에 띄게 절뚝거렸다. 그러나 군홧발의 안중에는 축구공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군홧발에게 내 존재를 상기시켜준 것은 그의 옆에 있던 사각턱 친구였다.

“새끼야, 아무리 급해두 그렇지, 애를 그렇게 무식하게 걷어차고 그러냐.”

사각턱이 나무라자, 군홧발은 나를 흘끔 보더니 이내 성가시다는 듯 외면하며 짜증을 냈다.

“씨발, 좆만 한 게 알짱대잖아. 골 찬스에…….”

군홧발은 사과 한 마디조차 없이 나와 녀석을 홱 지나쳐 갔다. 그 순간 녀석이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뭐라고 웅얼거렸다. 그러나 내 귀에 온전히 들어온 단어는 ‘내가’라는 주어와 ‘버릴까?’라는 서술어뿐이었다.

“뭐라고?”

내가 녀석을 돌아보고 물었을 때에야 녀석은 좀 더 크고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태워 버릴까?”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한동안 녀석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물론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는 사내애가 진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 조막만 한 엉덩이를 무지막지하게 걷어찬 군홧발의 행태는 분명 백번 지탄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태워 버릴까?”라는 말은 당찮은 소리였다. 태워 버린다니……. 덩치만 해도 족히 내 두 배는 되는 군홧발이 개미나 파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녀석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으레 내리깔려 있던 시선도 이번에는 대상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 먼저 가.”

녀석이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예의 무심하고 심상한 말투였지만 녀석의 눈빛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살기를 띤 노기였다.

“뭐 하려고?”

내가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심사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큰일을 저지를 작정인 것만은 분명했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군홧발에게 기름을 들이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이려는 심사는 아닐까. 그러나 녀석에게 기름이나 성냥이 상비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녀석이 벌이려는 일이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지만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을 맞느니 일단 자리부터 피하고 보자는 비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흘끔흘끔 녀석을 돌아보면서도 나는 운동장 끝에 나 있는 후문으로 슬그머니 몸을 피했다.

운동장 밖으로 나온 나는 운동장 둘레를 가로막고 있는 허름한 시멘트 담장으로 다가섰다. 당시 담장은 중간 중간에 가로로 틈새가 벌어져 있어 운동장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담장 틈새로 녀석을 관찰한 지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온몸의 긴장이 쭉 빠져나가는 허탈감을 느꼈다. 당장 도시락 폭탄 투척이라도 할 기세였던 녀석은 당초의 기세와 달리 운동장 구석으로 걸어가서는 얌전히 서 있기만 했다.

언뜻 보자면 축구를 구경하며 응원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겨라. 이겨라. 녀석이 예의 무심하고 심상한 말투로 축구를 응원하는 환청이 귓가를 희미하게 스쳤을 정도였다.

녀석은 운동장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군홧발을 빤히 바라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군홧발에게 욕지거리라도 한마디 던지고 달아날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녀석이 보여준 기대 이하의 소극적 행태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선뜻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녀석이 한자리에 붙박인 채로 내내 군홧발을 주시하고 있는 품이 어쩐지 미심쩍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걷어찬 축구공이 담장을 넘어가 버리면서 예비군들의 축구는 싱겁게 끝났다. 공 찾아오는 일이 여의찮았던지 예비군들은 하나둘 운동장을 뜨기 시작했고 군홧발도 사각턱과 함께 운동장 정문을 나섰다.

운동장 구석에 붙박여 있는 것만 같았던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운동장 저 너머로 퇴장하는 군홧발의 뒤를 좇는 녀석의 동작은 어쩐지 느긋하면서도 노련해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잠복 끝에 나타난 용의자를 뒤쫓아 움직이기 시작한 형사 같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던 나는 녀석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저러는지 알고 싶은 마음을 못 이기고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결국 나는 군홧발과 녀석의 꽁무니를 따르기 시작했다.

정문을 나서자 멀찌감치 군홧발과 군홧발의 뒤를 따르는 녀석의 뒤통수가 보였다. 군홧발은 학교 근처의 사거리에서 사각턱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군홧발은 원래 무신경한 인간이었던지 녀석이 십여 미터 정도를 두고 제 뒤를 졸졸 따르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변두리 산동네 어귀로 들어선 군홧발이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녀석은 민첩한 동작으로 군홧발과의 사이를 4~5미터로 줄였다. 나도 덩달아 걸음이 빨리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본능적인 긴장감이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녀석이 군홧발을 불러 세운 것은 그가 녹슨 대문 앞에 다다라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의 일이었다.

“야.”

무심코 모퉁이를 돌던 나는 뜨끔해서 얼른 모퉁이 뒤로 몸을 숨기고 상황을 주시했다. 녀석은 나를 등진 채 군홧발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녀석을 돌아본 군홧발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야아? 혹시 저 말씀이신가요?”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군홧발이 마지못해 녀석에게로 몸을 돌렸다.

“뭐냐, 좆만아.”

녀석은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이상했다. 도와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꼭 누군가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나도 덩달아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골목길 모퉁이 너머에서 그 광경을 훔쳐보고 있는 나를 제외하면 녀석과 군홧발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방은 기이할 정도로 무거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군홧발이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뭐냐고.”

녀석은 눈을 내리깔고 군홧발의 구두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질녘의 햇빛이 내려앉은 군홧발의 구두코가 딱정벌레의 등껍질처럼 반들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뭐라고 나지막이 한마디 내뱉었다.

“뭐?”

녀석이 또 뭐라고 내뱉었다. 보다 크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타.”

“타아? 뭘 타, 새끼야. 말을 타? 여잘 타? 돌았냐? 좆만 한 게 싸가지 없이 어른한테 반말이나 찍찍 해 대고…….”

“타 버려.”

녀석이 그 말을 또렷하고 냉혹하게 씹어뱉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불길한 직감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녀석이 뒤통수와 어깨를 기괴하게 떨고 있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마냥 평온하기만 한데 저 혼자 진도 3의 지진을 맞고 있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녀석이 나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녀석이 모종의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금이 저릿저릿하고 명치끝이 간질간질했다. 군홧발에게 소리를 질러 어서 달아나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고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군홧발의 머리 위로 공기가 이글이글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지랑이였다. 무더운 한낮에 운동장이나 도로 너머에서나 일어나는 기상 현상이 군홧발의 정수리 위에서 일고 있었다.

군홧발 주위의 공기가 맹렬히 달아오르며 부피가 팽창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군홧발의 얼굴이 놀람으로 일그러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확.

불꽃이 그의 얼굴에서 솟구쳤다. 성냥갑의 마찰 면에 그어진 성냥 대가리처럼 그의 머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외부에서 옮겨 붙은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우러나온 불길이었다.

노을빛 불길이 순식간에 그의 얼굴을, 그가 입고 있던 군복을, 그리고 그의 몸뚱이를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불길은 지방질과 단백질을 비롯해 군홧발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유기물을 연료로 활활 타올랐다.

발화점이 성대 부근인 듯 그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는 그저 필사적으로 불을 끄려는 듯 양팔을 허우적댈 뿐이었다. 매정한 불길은 그 양팔마저도 먹어치웠다.

큰대 자로 된 불길이 탈춤을 추듯 가로획을 너울거렸고, 그럴 때마다 그의 머리 위로 짙은 아지랑이가 마블링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회오리쳤다. 화르르화르르. 정적 속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군홧발이 불길에 타오르는 소리뿐이었다. 열기와 누린내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녀석의 반응이었다. 지척에서 불길에 휩싸인 사람이 발광하고 있는데도 녀석은 꿈쩍도 않고 서서 그 참혹한 광경을 빤히 지켜보기만 했다.

육신을 집어삼킨 화마와 맞닥뜨린 열 살배기 사내애의 반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자약하기만 한 녀석의 반응에 온몸의 피가 하얗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군홧발의 발화가 녀석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동안 침묵의 탈춤을 추어대던 인간 성냥개비가 끝내 땅바닥에 풀썩 고꾸라졌다. 뼛속까지 타들어간 군홧발의 몸뚱이가 바닥에 던져진 연탄재처럼 퍽 하고 부스러졌다.

불과 반시간 전만 해도 축구를 하고, 진로를 방해한 엉덩이를 걷어찼던 유기체는 이제 원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로 화해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원래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소지품이라고는 노을빛을 받으며 여전히 번들거리고 있는 군화뿐이었다. 검게 그을린 정강이가 군화 위로 비죽 튀어나와 있지 않았다면 주인이 급한 용무가 있어 군화만 골목길에 벗어둔 채 자리를 뜬 것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그 몰골이 마치 벼락 맞은 나무의 그루터기 같았다.

온몸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뱃속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을 게워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온몸이 부들거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인체발화가 가능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녀석이 저보다 두 배는 큰 어른을 불태워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봤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묻는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기겁했다. 달아나려고 버르적거렸지만 힘이 빠져 버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봤지? 그러게 왜 따라왔어, 먼저 가라니까. 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어. 그러니 너도 죽어줘야겠어. 당장이라도 녀석이 그렇게 내뱉으며 나를 불태워버릴 것만 같아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녀석은 나를 불태우는 대신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걱정 마. 네가 비밀만 지키면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포와 감격에 겨운 눈물이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아기처럼 울어 댔다. 녀석은 그런 나를 부축한 채로 신속하게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얼마 후 나는 홍주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시멘트 둑 위에 녀석과 나란히 걸터앉아 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치고 간 울음보의 뒤끝이 그때까지도 미미하게 남아서 나는 이따금씩 숨을 흑흑 들이마셨다.

녀석은 내 울음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는 변두리 소도시는 마냥 안온해 보이기만 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이라든가, 사람들의 비명 따위는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방금 전 군홧발이 불에 타죽었던 일이 과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혹시 헛것을 본 게 아닐까. 군홧발에 걷어차인 충격에 기절해서 잠시 비현실적인 악몽을 꾼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예의 그 무심하고 심상한 투로 내뱉은 말이 나를 단숨에 혼몽에서 끄집어냈다.

“우리 엄마 아빤 내가 불태웠어.”

녀석은 걸터앉아 있는 둑 벽을 발뒤꿈치로 툭툭 굴러대며 멍하게 운동화 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말투와 태도는 민방위의 날 훈련 때와 별 다를 바 없었지만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엄마 아빤 불에 타 죽었어.’와 ‘우리 엄마 아빤 내가 불태웠어.’라는 말의 간극은 천양지차였다. 전자가 상대를 떠보느라 날려보는 잽이었다면 후자야말로 두개골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강펀치였다.

녀석이 군홧발을 불태워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치명타를 입은 상태였다. 한데 그로기에 빠져 휘청거리는 내게 녀석은 결정타를 먹였다.

목이 바짝바짝 말라오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속에서 다시금 거슬러 올라오는 욕지기를 억누르느라 연방 마른 침을 집어삼켜야 했다.

“나더러 저주받은 새끼랬어. 나 땜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대.”

그렇게 털어놓은 녀석은 팔뚝을 걷어붙여 내게 내밀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웃통까지 까서 몸을 보여주었다. 녀석의 몸을 본 순간 나는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났다.

성한 데가 없었다. 온통 흉터투성이였다.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온몸에 빼곡했고, 군데군데 찢기고 뜯기고 벗겨진 상처가 아물어 생긴 흉터들이 선명했다. 그 흉터만으로도 나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대중목욕탕에서 전신문신을 새긴 폭력배와 마주쳤을 때의 기십 배는 족히 될 위압감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나에게 녀석은 더 이상 ‘좆삐리’가 아닌 괴물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의 흔적을 온몸에 문신처럼 새긴 괴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덩치 큰 어른을 불태워죽일 수 있는 괴물.

그 발화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만일 후천적인 것이라면 대체 어떤 경위로 그 불가해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지, 녀석은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제 부모가 저를 죽도록 미워했고, 제가 부모를 죽이지 않으면 부모가 먼저 저를 죽일 것 같았다고 주절댈 뿐이었다.

“자고 있는데 목을 조른 적도 있고, 찻길로 떠민 적도 있어.”

어쩌면 녀석의 괴력난신은 선천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녀석의 부모도 일찍이 녀석의 괴력난신을 간파하고 두려워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주받은 새끼’라는 모진 소리도 그 때문에 퍼부었던 저주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후천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녀석의 괴력난신은 부모의 학대에서 살아남으려는 자구책으로 생겨난 능력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의혹도 녀석에게 감히 토로할 수 없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녀석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을 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만일 약속의 증표로 녀석이 땅에 침을 뱉고 그것을 발로 문지른 후 발바닥을 핥으라고 요구했더라도 나는 주저 없이 그 요구를 따랐을 터였다. 생명의 위협. 그때 나는 그런 원초적인 공포심에 사로잡혀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왜 이런 얘길 너한테만 해주는 줄 알아?”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