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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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는 200X년 5월 22일 오후 3시 무렵부터 5시를 조금 넘어서까지 두 시간 동안 쏟아졌다. 서해안 휴전선 바로 위에서 형성된 비구름은 남동쪽으로 빠르게 진행하며 일본 규슈 섬 북단으로 내려갈 때까지 전국에 걸쳐 비를 뿌렸다.

지상에서 올려다보았을 땐 그저 평범한 먹구름이었지만 나중에 인터넷에 공개된 항공사진에선 검붉은 기운이 짙게 드리워진 구름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유별난 색을 제외하면 그날의 비는 딱히 별다를 것은 없었다. 평소와 같이 차가웠고 눅눅했으며 연한 물비린내를 머금고 있었다.

도로 위의 흰색 자동차를, 건물 외벽의 하얀색 타일을, 외근 나온 샐러리맨들의 와이셔츠와 아가씨들의 흰색 원피스를 붉게 물들이는 빗물에 사람들은 놀라 황급히 몸을 피했고 그 두 시간 동안 거리는 이례적으로 한산했다.

저녁 무렵 비가 그치자 여기저기서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붉은 비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신기한 듯 관찰했다. 그것은 빨간색이란 단어보다는 붉은색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이었다.

보도블록 사이 작은 틈에 고인 빗물의 색은 매우 엷어서 녹물처럼 보였지만, 보다 큰 웅덩이에 고여 색이 짙어진 물은 언뜻 핏빛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옷을 적신 빗물은 마르면서 좀 더 색이 진해졌는데 녹물과 핏자국의 중간쯤 되는 색이었다.

누군가 버려놓은 음료수 페트병에 고인 빗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붉은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건 꽤 적절한 비유였다. 붉은 비는 온전히 붉은색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빗물 속에 붉은색을 띤 ‘무언가’가 섞이면서 생긴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까지도 붉은 비는 큰 화젯거리였다. 뉴스에선 밤사이 뽑아낸 추측과 분석들을 첨가하며 이 기이한 기상현상에 대해 떠들어 댔고,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비에 대한 얘기로 수군댔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이 비가 건강에 해로울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소문으론 중국 사막 지역에서 날아온 황사가 섞인 비구름이 원인이라고 했고, 바닷물이 증발할 때 섞여 올라간 미생물이 비와 함께 내린 거라는 설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리 듣기 좋은 설명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비를 맞았던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덕분에 병원과 119 업무가 거의 마비 상태가 되자 방송에선 오늘 내린 비에서 어떤 유해물질도 검출되지 않았다며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 말대로 늦은 오후 무렵까지도 여기저기 생긴 붉은 얼룩들 외엔 붉은 비로 인한 특별한 피해 소식이 없었고, 사람들은 그제야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비를 맞았던 모든 동물들이 발작을 일으키며 죽었다. 붉은 비가 그치고 24시간이 경과한 무렵의 일이었다.

그 일은 우리 집에도 벌어졌다. 딸아이가 애지중지 하던 두 살배기 시추 ‘초롱이’가 입가에 거품을 물더니 배를 까뒤집으며 발작을 일으켰고, 채 한 시간이 못 되어 죽고 말았다. 내가 퇴근하여 집으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아이는 자기 눈앞에서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개를 보곤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부랴부랴 죽은 초롱이를 검은 비닐로 덮어 세탁실에 치워 두고 아이를 달래야 했다.

울다 지친 딸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초롱이가 든 봉지를 들고 집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골목은 낯익은 얼굴들로 분주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해 형, 동생하며 지내던 앞집의 최씨는 난처한 표정으로 옆에 놓인 라면 박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쯤 열려 있는 박스 안으로 쥐색 바탕에 검은 얼룩이 박힌 털가죽이 보였다. 그의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임이 분명했다.

한집 건너 옆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둘 다 밖에 나와 있었는데 곱게 늙은 부인 품에는 갈색 털이 덥수룩한 강아지가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잡종견이긴 하지만 영리하고 사람을 잘 따르던 녀석은 주말이면 부부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곤 했었다.

70년대 지어진 구식 양옥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엔 거의 모든 집이 한 마리씩은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물들 대부분이 비슷한 시간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처음엔 가족과도 같은 동물의 죽음에 슬퍼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그런 사실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뇌리에 스친 건 한 가지뿐이었다. 평소와 달랐던 특이점 한 가지. 전날 내렸던 붉은 비와 그 비를 맞고 있던 동물들의 모습.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최씨였다. 그는 들고 나온 라면 박스를 버려둔 채 황급히 집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예은아!”

예은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 최씨의 딸이다. 어제는 평일이었고 비가 오던 시간과 예은이의 하교 시간은 맞물려 있었다. 아마 그 아이도 비를 맞았을 것이다.

나도 초롱이를 묻어주려던 계획은 일단 미루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봉투는 아이의 눈에 띄지 않도록 현관 계단 뒤에 숨겨두었다.

내 딸 희선이는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다. 어제라면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격일제로 나가는 학원은 쉬는 날이었으니 놀이터에라도 나가지 않은 이상 비가 오던 시간에 밖에 있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 했다. 순간 정원 저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는 흠칫 놀라며 그쪽을 보았다.

소리의 정체는 고양이였다. 갈색 털에 뚱뚱한 몸통이 눈에 익은 녀석은 종종 우리 집 마당을 가로지르며 쓰레기봉투를 찢어놓곤 하던 도둑 고양이었다.

아마도 담벼락 위에 걸려 있었을 녀석의 시체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다. 당연히 녀석도 붉은 비를 맞았겠지. 나는 좀 전 보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여보, 유린아.”

아이 방에 있던 아내는 희선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하며 밖으로 나왔다. 잔뜩 긴장한 내 목소리와 표정을 눈치 챈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상원 씨.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런 초롱이의 죽음에 그녀 역시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침실 쪽으로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아내를 침대에 앉힌 후 난 방금 본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내 얘기를 듣던 아내의 안색은 점차 파랗게 변해갔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야 상원 씨. 동물들이 전부 죽다니? 그러니까 당신 말은…….”

나는 어느새 가늘게 떨고 있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잘 기억해 봐, 어제 그 비가 올 때 희선이 어디 있었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아내의 말에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집에. 나랑 집에 있었어. 초롱이는 정원에서 놀고 있었지만. 나랑 애는 안에서 비 오는 거 보고만 있었어.”

“그래, 그럼 됐어. 다행이네.”

믿기지 않는 얘기에 대한 공포와 아이가 무사하다는 안도의 감정이 섞이며 아내는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진정시킨 뒤 나는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이 기이한 일이 우리 동네에서만 벌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이 현상은 비슷한 시간, 동시에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수만 건의 피해 제보가 접수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틀자마자 들려오는 앵커의 멘트와 함께 보이는 화면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카메라는 어느 양돈장을 비추고 있었다. 금속봉으로 구획이 나누어진 축사 우리 안에는 수십 마리 돼지들이 혀를 빼문 채 쓰러져 있었다. 다음 장면에선 중장비를 이용해 죽은 돼지들을 땅에 묻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인체에 대한 증상이 보고 되지 않은 가운데 보건당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어제 오후 내린 붉은 비와의 원인 관계를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위안이 될까? 나는 혹여 방에 있는 아내나 아이가 들을까 볼륨을 줄인 채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농가에 자빠져 있는 커다란 황소들, 양계장의 수백 마리 닭들과 경마장의 경주마 시체가 연이어 화면을 채우곤 사라졌다.

죽음은 종을 가리지 않고 생물들을 덮치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5월의 끄트머리, 초여름 밤이었다. 벽에 걸어놓은 온도계는 24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내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붉은 비가 내린 지 30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은 의외로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희선이는 마치 초롱이의 죽음 같은 건 본 적도 없다는 듯 행동했고, 아내 역시 별다른 얘기 없이 묵묵히 아침 준비를 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뻣뻣한 몸을 주무르며 잠에서 깬 곳이 침실이 아닌 거실 소파란 것뿐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아내에게 일단 오늘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집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오늘 꼭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난 곧 돌아오겠다고 아내를 안심시키며 집을 나섰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무의식적으로 계단 아래를 돌아보았다. 초롱이의 시체가 들어 있을 검은 봉지 끄트머리가 삐죽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퇴근하면 마당에라도 묻어버려야겠다.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 여기저기엔 아직도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가까이 보니 맑은 물 아래로 마치 개흙 같은 붉은 덩어리가 퇴적해 있었다.

저것이 원인일까, 저 붉은 덩어리들이 떼죽음의 정체일까.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찍혀 있는 기분 나쁜 붉은 얼룩들을 애써 피해갈 뿐이었다.

출근길 버스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들려오는 소문은 심상치 않았고 사람들은 불안해했으며 금요일이기도 했다. 아마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은 출근길이 아닌 병원 대기실일 것이다.

일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집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도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전원 총출동이라도 한 듯 수많은 환경미화원과 공익근무요원들이 저마다 커다란 마대자루를 옆에 찬 채 동물 시체를 수거하고 있었다.

도로에는 떠돌이 개와 고양이 그리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거리를 활개 하던 비둘기들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처음엔 그것들을 피해가려 이리저리 핸들을 꺾던 운전자들은 그 수에 결국 포기하고 갓길에 차를 세우거나 그대로 차를 몰고 갔다.

덕분에 바닥엔 붉은 빗물 자국에 더해 자동차의 무게에 짓눌려 납작해진 동물의 흔적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버스 역시 굼벵이 마냥 느릿느릿 전진하고 있었다.

동물 시체는 무시한다고 해도 앞서가는 다른 차들과 도로 사이를 오가는 미화원들을 피해야 했다. 간헐적으로 버스 바퀴가 무언가를 타고 넘는 감각이 전해졌다.

그럴 때마다 버스 안 승객들의 표정은 기분 나쁜 것이라도 본 마냥 찌푸려졌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선 채 천천히 흘러가는 창밖 풍경을 살폈다.

작업복 차림에 주황색 조끼를 두른 다부진 체구의 미화원이 건너편 차선에서 지나가던 차를 멈춰 세우며 바닥에 너부러진 비둘기 시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미 불룩해진 그의 자루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듯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는데 어림잡아 대여섯 마리는 들어 있을 듯싶었다.

집게로 바닥에 눌어붙은 한때 비둘기였던 거무튀튀한 덩어리를 긁어내던 미화원의 행동이 순간 멈추더니 자신의 마대자루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나 역시도 마대자루에 눈길이 갔다. 분명 조금 전 그 자루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도 느린 속도지만 버스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고 장승처럼 멀뚱히 서 있는 미화원의 모습은 점점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다시 자루가 움직였다. 이번엔 나도 분명히 보았다. 내용물의 무게로 푹 퍼져 있던 누런 자루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은 마대자루의 입구를 조심스레 펼쳐 안을 확인하려는 미화원의 모습이 버스 뒤편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창 쪽으로 몸을 기울여 상황을 살피려 했지만 창틀에 가려 그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순간 요란한 충격음이 버스 안에 울려 퍼졌다.

‘퍽!’

버스가 급제동을 하자 사람들의 몸이 순간 앞으로 쏠렸다. 승객들의 시선은 일제히 소리가 난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기사는 운전석에 몸을 푹 파묻은 채 정면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앞 유리 한 가운데 시커먼 덩어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조금 전 소리는 그 물체가 유리에 부딪히며 낸 것이었고 그에 놀란 기사는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었다.

럭비공 정도의 크기에 짙은 회갈색 깃털로 뒤덮인 덩어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도로 바닥에 눌어붙은 핏덩이처럼 그것 역시 한때 비둘기였던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왜 버스 앞 유리로 날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시체를 집어던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궁금증은 곧 해소되었다. 곧이어 두 번째 충격이 이어진 것이다. 이번엔 내가 서 있는 왼편 창문이었다. 갈색과 밝은 회색 깃털이 섞인 비둘기 한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더니 유리창에 부딪혔다. 동시에 가느다란 균열이 유리를 따라 퍼져나갔고 창문 옆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이 펄쩍 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씨발, 이거 뭐야?”

여드름투성이 얼굴의 앳된 남학생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버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일인지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주변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조금 전 까지 바닥에 퍼져 있던 비둘기들이 꿈틀대며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몇몇은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어디선가 날아온 다른 비둘기 무리들과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낮게 날아다니는 수백 마리 비둘기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도로 위의 동물 시체들을 처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피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들고 있던 자루 안에서 비둘기 시체들이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와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은 히치콕의 영화 ‘새’를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수십 마리 비둘기들이 날개를 퍼덕대며 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갈퀴 같은 발로 옷과 머리채를 부여잡은 채 부리로는 연신 노출된 살점을 쪼아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버스 옆을 지나치던 20대 초반의 공익 요원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꺄아악!”

왼편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놀라서 그쪽을 보니 뒤쪽 창문 너머로 버스를 향해 달려드는 비둘기 무리가 보였다. 곧이어 푸드득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날갯짓이 유리를 두들겨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가미카제 식으로 부딪혀 오던 놈들과 달리 이번엔 창문 가까이 붙어서 부리로 유리를 쪼아대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해 통로로 내려왔다. 그중 등산복 차림의 40대 남자 한 명이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기사양반 빨리 버스 출발해요, 뭐하고 있어?”

“누군 안 그러고 싶어요! 저거 좀 봐요.”

사람들은 우르르 앞쪽으로 몰려와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도로를 살폈다. 4차선 도로는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비둘기 떼의 공격으로 도로 위의 차들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뒤엉켰고, 비둘기 떼로 뒤덮인 몇몇 차들에선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도로 옆 상가 건물로 비둘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버려진 차들로 막힌 도로에서 더 이상 버스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 문 열어요! 우리도 건물 안으로 피하자고요.”

조금 전 소리친 남자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곧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문 바로 앞에 수십 마리 비둘기들이 진을 치듯 모여들고 있었다. 날갯짓을 하며 문가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은 마치 자동판매기 앞에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이렇게…….”

새들의 날갯짓 소리와 유리창을 부리로 쪼아대며 내는 딱딱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몇몇 유리창은 녀석들의 공격을 못 이기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순간 등산복 남자가 문 옆에 달려 있던 소화기를 빼들었다.

“기사 양반 문 열어요.”

“어쩌게요?”

“보면 몰라요, 문에서 옆 건물까지 기껏해야 3미터야. 이걸로 녀석들 주위를 돌려놓고 한꺼번에 달려가는 겁니다.”

그는 소화기의 안전핀을 제거하고 들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그럴듯한 생각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최대한 몸을 가려요. 겨우 새들일 뿐이니까 옷으로 가리면 어느 정도 보호가 될 겁니다. 내가 신호하면 이쪽 문 열어줘요.”

남자는 자신도 상의를 올려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선 출구를 향해 소화기 주둥이를 내밀었다. 사람들도 그를 따라 가방이며 옷가지로 머리를 감쌌다.

“열어요!”

남자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곧이어 익숙한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움직이며 열렸다. 남자는 열린 문틈으로 분사구를 내밀고 힘차게 소화기의 레버를 잡아 쥐었다. 잠깐이나마 그의 작전은 성공하는 듯싶었다.

하얀색 분말이 쏟아져 나오자 눈이 먼 비둘기들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로 부딪혔다. 용기를 얻은 남자는 완전히 열린 문 밖으로 뛰쳐나가 계속 소화기를 분사했다.

하지만 채 3초도 지나지 않아 소화기는 피식 소리를 내며 작동을 멈추었다. 소화기 주둥이에선 이제 덩어리진 분말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올 뿐이었다. 제대로 점검 받지도 않고 장기간 방치해 둔 탓에 소화기의 압력이 떨어져 있었다.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수십 마리 비둘기 떼 한가운데서 남자는 멍하니 자기 손에 들린 소화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개 같은…….”

그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남자를 중심에 두고 원형으로 둘러싼 비둘기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비둘기들에게 뒤덮인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건물로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비둘기들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탓에 방향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제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둘기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덩어리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시도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비둘기들이 모두 남자를 쫓아간 덕분에 버스에 남은 사람들에겐 기회가 생겼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저마다 온힘을 다해 보도 건너 옆 건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도 문을 열고 우리에게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해댔다.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져 문이 열려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사이 등산복 남자를 쫓던 비둘기 떼들 일부가 다시 방향을 선회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놈들뿐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비둘기들도 우리를 쫓기 시작했다. 비둘기 떼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자 건물 안 사람들은 다시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나는 문이 닫히기 직전 간신히 어느 가게 안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명인가는 뒤쳐지고 말았다.

애초에 늦게 출발했던 사람, 걸음이 느린 노인, 운전석에서 비집고 나오느라 늦어진 버스 기사 등이었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황급히 비둘기 떼를 피해 다시 버스 안으로 돌아가거나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로 몸을 피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털실로 짠 얇은 감색 카디건 차림으로 보도블록 위에 쓰러져 있는 노파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유리문 너머로 노파에게 벌어지는 일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노파는 애처로운 눈으로 팔을 내저으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문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비둘기들이 하나 둘 노파의 몸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노인의 작은 몸이 비둘기들에게 뒤덮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 많은 비둘기들이 어디서 나타난 걸까.

언뜻 보니 거리에 퍼져 있던 비둘기 시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에 깔려 박살이 나버린 시체들 외엔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바꿔 말하면 그 비둘기 시체들이 모두 살아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노파를 뒤덮은 비둘기 떼들 아래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아래 노파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가 들어온 곳은 치킨 가게였다. 고소한 닭튀김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는 조금 전까지 먹다 내버려 둔 닭튀김이 담긴 접시도 보였다.

괜한 헛웃음이 나왔다. 어젯밤 텔레비전에서 본 양계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닐하우스 마냥 지붕이 얹힌 곳이었지만 빗물은 어떻게든 새어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수백 마리 닭들이 죽은 채 양계장 한쪽에 쌓여 있었다. 그 닭들도 저 비둘기처럼 다시 살아났을까? 정말 그 붉은 비가 동물들을 죽게 하고 또 살아나게 한 것일까? 답을 알 길 없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것들은 죽었었어,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