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꽤 전의 이야기다.
기억나는 대로 짚어보면, 21세기가 되면서 Y2K가 온다고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았지만, 사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고, 세기말 감성의 음악이나 영화들이 나오기도 했으며, 메가패스라는 이순신 장군님 껄껄 웃는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됐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나라는 월드컵을 앞두고 꽤 시끌벅적 소란이었다. 히딩크가 감독으로 취임했고,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감독을 데려왔다고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애당초 축구에 관심이 없던 나는 누가 국가대표를 하든 상관없었다. 친구가 아는 선수 있냐고 물어오더라도 나는 그냥 TV에서 몇 번 봤던 유명한 이름. 황선홍, 홍명보, 최용수, 김병지의 이름을 댔다. 그러면 친구들은 더 신나서 떠들어 댔다. 포지션이 어떻고, 누가 몇 골을 넣었고, 이번 월드컵은 가능성이 있느니 마느니 등등… 언제 그렇게 축구 선수 이름과 규칙들을 달달 외웠는지, 학교 시험을 그렇게 외웠으면 전교 1등은 떼놓은 당상이겠다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올라올 뻔했다. 그래서 이 열기가 빨리 식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학교 교실에서든, 인터넷이든, TV에서든 어디를 가나 축구 얘기뿐이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해댔고, 좋아하는 선수와 자기 이름을 이어보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일상이 흘러, 매미가 울고 유자 빛 풍금이 흩날리는 어느 초여름 날, 누군가에겐 별거 아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꽤 충격적인 어떤 사건이 하나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