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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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일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늦여름밤도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한 푼 씩 늘어갈수록 따라서 두꺼워지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러고는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에 화가 났다. 아까 확인했잖아. 배터리가 나갔다고, 이 병신아. 나는 치미는 욕지거리를 뱉어 내며 휴대전화를 바닥에 던져 깨 버리려다 간신히 참았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몇 해 전 아내가 생일 선물로 사 준 시계에는 다행히 야광침이 달려 있었다. 9시 48분. 2분이 흘렀다. 겨우 2분. 20분은 걸은 것 같았는데.

순간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30미터쯤 앞에서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인생에서 차 전조등이 그렇게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용도로 만들어 놓은 길인지,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지나가는 차를 단 두 대 목격했을 뿐이었다. 첫 번째 차는 팔을 열심히 흔들어 가며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고 내 곁을 스쳤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차는 이상할 정도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아예 좁은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어 양팔을 엇갈려 흔들었다.

“세워 주세요! 세워요!”

차는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코앞에서 멈췄다.

전조등 불빛이 위를 향했다. 눈에 별안간 강렬한 빛이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허겁지겁 운전석 쪽으로 가 창문을 두드렸다. 실내등이 켜지고 창문이 내려왔다.

여자. 나는 흠칫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커다란 검은 구멍이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 머리칼. 30대 중반쯤 됐을까?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확실치는 않다. 한밤에 선글라스라니, 그제야 차가 이 한적한 도로에서 경운기처럼 느리게 다가왔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시죠? 갑자기 그렇게 뛰어들면 위험하다는 거 모르세요?”

그 목소리에는 잠꼬대를 하는 듯한 몽롱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휴, 덕분에 살았습니다. 차는 고장 나고, 핸드폰 배터리는 다 되고, 아주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여자는 내 호들갑에도 아랑곳없이 무뚝뚝하게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나는 또 과장된 웃음을 보였다.

“좀, 얻어 탈 수 없겠습니까? 어디 가까운 시내나 그런 데 내려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저 치한이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거기다 사례는 톡톡히…….”

“타세요.”

여자는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창을 올렸다. 나는 머쓱했지만 반색을 하며 뛰어가 문을 열었고, 가방을 끌어안은 채 조수석에 몸을 들이밀었다. 여자는 실내등을 끄고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에어컨의 서늘한 냉기를 즐기며 말했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차는 퍼지고, 길은 모르겠고요. 차 좀 얻어 탈까 했는데, 아니 이 길에 무슨 귀신이라도 나온답니까? 왜 이렇게 지나다니는 차가 없는지.”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인데요?”

여자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요 근처에 저수지 하나 있죠?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잠깐 거기를 좀 들렀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팬벨트가 나갔지 뭡니까. 정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말하면서 여자의 쭉 뻗은 다리를 흘끔거렸다. 여자는 늦여름에 어울리는 핫팬츠와 빨간 티셔츠 차림이었다. 나 역시 반바지 차림이었고, 털이 부스스한 내 다리와는 정반대로 여자의 다리는 매끄럽고 뽀얗게 보였다.

여자의 가느다란 다리가 내 허리를 꽉 조이는 상상이 불쑥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불순한 욕망이 끓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이화 저수지예요.”

여자가 갑자기 말했다.

“예?”

“거기. 그 저수지 이름요.”

“아, 예. 근처에 사시나 보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 근처에는 경치 좋은 곳이 많더군요. 이런 데서 살면 참 좋겠습니다. 공기도 맑고.”

“살진 않아요. 별장이 있긴 하지만.”

“아, 그러시구나. 그럼 놀러 오셨다 돌아가시는 거겠네요.”

묵묵부답. 그저 자동차의 엔진 소리뿐. 붙임성이 없는 차가운 여자였다. 나는 여자의 다리를 다시 힐끗 보고 시선을 돌렸다. 차는 중앙선 곁을 따라 느릿느릿 끈질기게 전진하고 있었다.

여자는 조금 전 내가 걸었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었다. 갈라지는 곳도 없었으므로, 좀 더 간다면 분명 이화 저수지가 나타날 것이었다. 시내는 반대 방향일 텐데.

여자가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지 잡음만 흘러나왔다. 여자는 연달아 채널을 바꿨지만 어느 곳에서도 음악이나 말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버튼을 누르는 여자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뭔가가 여자의 손등에서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검은 액체였다. 그것은 가느다란 선을 새기면서 여자의 손등을 타고 기어서, 여자가 라디오를 끄는 순간 바닥으로 뚝 추락했다.

나는 여자가 커피 같은 걸 마시다가 손에 흘린 것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친절 아닌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여자의 손 앞으로 내밀었다.

“저기, 손에 뭐가 묻었는데요?”

여자는 자신의 오른손을 흘끔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피가 났네요.”

피?

“어디 긁히셨어요?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 이걸로 좀 닦으시죠.”

내 호들갑에도 여자의 무심한 어조는 변함없었다.

“괜찮아요.”

그러고 여자는 계기반 위에 놓인 일회용 티슈를 한 장 빼내,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손등을 쓱쓱 문질렀다.

“실수였어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긴 했는데……. 오랜만이라 좀 흥분했나 봐요.”

여자는 휴지를 바닥에 그대로 버리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딱히 내게 하는 말 같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가를 하다가 실수를 해서 손을 다쳤다는 소린 거 같은데, 흥분은 또 뭔가? 나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런 때가 있죠. 늘 하던 일인데도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저도 무심코 햇빛 아래서 카메라를 여는 바람에 기껏 찍은 거 다 날린 적이 많습니다. 웃기는 일이죠. 명색이 사진 밥 먹는 놈이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다 하다니.”

“사진작가세요?”

여자가 물었다. 슬슬 대화가 풀려 나가는 느낌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낯선 길에서 만난 남녀, 대화에 이어지는 호감, 호감에 이어지는 로맨스.

“작가는요, 무슨. 그냥 조그만 사진관 하나 하고 있습니다. 밤낮 신혼부부 사진만 찍어 대는데, 일 년에 한 번씩은 행복해 미치겠다는 표정의 화장 떡칠한 얼굴들이 지긋지긋해질 때가 생기거든요. 그때 이렇게 사람 아닌 걸 좀 찍으러 슬슬 돌아다녀보는 겁니다. 자영업자는 그래서 좋죠. 문 닫고 싶을 때는 닫아버리면 되니까.”

갑자기 여자가 풋 웃었다. 그리고 웃음과 어울리지 않는 냉랭한 투로 말했다.

“저를 찍으시면 되겠네요.”

“예?”

“사람 아닌 걸 찍으러 오셨다면서요?”

나는 잠깐 대꾸하지 못했다. 여자는 쿡쿡 웃더니 돌연 웃음을 끊었다. 그 웃음에는 등을 서늘하게 하는 뭔가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여자의 뜬금없는 농담에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운전하는 귀신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전 귀신이라고 한 적 없어요.”

담담한 그 어조에, 불현듯 여자의 선글라스를 잡아채 벗겨 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다. 방해물을 벗기고 그 눈을 똑바로 쏘아본다. 그런데 여자의 두 눈엔, 눈동자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쿵. 쿵.

차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어둠과 빈 좌석뿐.

“방금 그 소리, 못 들으셨습니까?”

나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여자는 정면을 주시하며 반문했다.

“무슨 소리요?”

분명했다. 절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뒤쪽……. 그럼, 트렁크?

“트렁크에 뭐 쌓아 놓으셨어요? 방금 그게 떨어진 거 같은데.”

가장 말이 되는 설명임과 동시에 너무도 께름칙한 설명이었다.

“그런 건 없어요.”

여자가 말했다. 그 미묘한 어감을 잡아내는 데는 1초도 필요치 않았다. 그런 건 없어요. 그런 건 없다. 대신 다른 것이 있다?

쿵! 다시 그 소리. 심장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역시 트렁크 쪽이다. 확실히 뭔가가 저 안에 있다. 단순히 차가 흔들려 떨어지고 굴러다니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를 담아 두들기고 있다. 의지? 아니, 본능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나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옆얼굴을 흘끔거리고 두 손을 비볐다. 손바닥에 땀이 고여 있다. 카메라 가방의 어깨 끈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정돈되지 않은 말이 입천장을 간질였다. 여자의 오른손이 다시 라디오로 올라왔다. 나는 움찔했다. 겨우 그 정도로 겁을 먹은 내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전한 잡음. 세상 모든 방송국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이게 고장 났나……? 왜 안 나올까요?”

여자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여자를 곁눈질하며 중얼거렸다.

“산 때문에 주파수가 안 잡히는 거 같습니다.”

내 목소리에는 말라붙은 꽃이 바스라지는 듯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런가요…….”

그게 무슨 대수야! 이 멍청한 년아! 트렁크, 트렁크에서 소리가 난다고! 여자를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내려서 트렁크를 확인해야 한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확성기를 틀어 놓고 웅변을 토했다.

놈은 억지로 내 입을 통해 나오고자 했고, 나는 간신히 놈을 체포해 결박하고 재갈을 물렸다. 그럴 필요 없었다. 전혀. 그저 모르는 척하면 그만이다. 남의 차를 얻어 타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 정도는 상관없다.

하지만 트렁크를 보자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것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차선을 바꿔 남의 인생에 끼어들기를 하는 짓이다. 그런 일을 당하면 누구나 앞에 끼어든 저 개새끼를 밟아 버리고 싶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오랜만이라 좀 흥분했나 봐요!’

흥분? 그래, 오랜만에 요리를 하다가 흥분해서 식칼에 베었을 수도 있잖아? 웃기고 있네. 도대체 무슨 요리를 하는데, 흥분씩이나 한단 말이야? ……사람 요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만.

나는 그 생각을 즉시 떨쳐 버렸다. 이 이상 깊이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아주 좋지 않다. 나는 여자의 손등을 훔쳐봤다. 화장지로 닦긴 했지만, 흐릿한 핏자국은 여전했다. 가슴속에 모래가 꽉 찬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여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속 30에서 40킬로미터 정도였기 때문에 반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적이 아닌, 정신적인 충격이 뒤통수 어디쯤에서 전류처럼 전신으로 쫙 번졌다. 씨팔. 무시했어야 했다. 뒤에서 무슨 개소리가 나든 간에 못 들은 척, 자는 척했어야 했다. 이제 이 년은 차를 멈춰 놓고 나를 처리하려고 하는 거다! 오랜만이라 좀 흥분을, 흥분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통증이 정신을 바짝 들게 했다. 진정해, 상대는 여자야. 낌새가 수상하면 한 방 먹여 주면 되는 거야. 많이도 필요 없어. 한 방이면 끝날 거야. 주먹을 꼭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정면을 볼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누구도 진정시켜 주지 않은 라디오가 제멋대로 잡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겼다. 전조등 불빛 아래의 5미터 정도 정면, 도로 위에 뭔가가 쭉 뻗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았다.

한 시간 전 달빛에만 의지해 길을 걷다 목격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씩씩거리며 걷다가 몸의 절반 이상이 뭉개진 시체를 보고 우뚝 걸음을 멈췄더랬다. 그것은 짐승의 시체였다. 산짐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그게 무슨 종류인지 알 수 없었다. 도로를 건너다 달려오는 트럭에라도 받힌 모양이었다.

짐승은 중앙선에 두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였고, 확인이 가능한 발은 그것 두 개 뿐이었다. 그 위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무참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퉤 뱉었다. 그러고 그쪽으로 눈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너구리 시체네요.”

여자가 말했다.

“전에도 요 근처에서 한 번 봤어요. 로드 킬이라고도 하죠. 흔한 일이에요.”

동물에 대해 박식한 여자였다. 여자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어쩌시려고요?”

내리려는 건가? 그런데 왜? 내 물음에 여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저렇게 버려둘 수는 없잖아요? 다른 차가 와서 또 뭉개 버리면 안 되니까. 불쌍하잖아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저걸 수습해서 염하고 장례라도 치를까? 상주는 뒷산의 아들 너구리가 맡고? 이 병신 같은 년! 그냥 살짝 피해서 지나가면 된다고. 그러면 된단 말이야. 나는 억지웃음을 쥐어짜내며 말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뭐, 어디 관공서 같은 데서 알아서 하겠…….”

쿵!

벼락이 엉덩이 바로 뒤에 떨어진 것처럼 큰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여자도 그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주먹을 더욱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아픔이 강해졌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한 번 매만지고 다시 나를 보았다. 나는 여자의 입가에 뜬 흐릿한 미소를 느꼈다. 뇌가 뜨끈해지는 듯했다. 웃어?

이대로 패 버려! 저 선글라스로 주먹을 날려! 또 확성기가 울부짖었다.

“불쌍하잖아요, 그렇죠?”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저 치어 죽은 너구리가 불쌍하다는 뜻인지, 트렁크에 갇혀 뚜껑을 연방 두드리는 저 뒤편의 뭔가가 불쌍하다는 뜻인지는 불분명했다. 어쩌면 둘 모두일지도 몰랐다. 숨이 막혔다. 여자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 하얀 장갑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장갑을 손에 끼었다. 문이 열리자 여자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후, 하고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 냈다. 여자의 늘씬한 다리와 엉덩이가 보였다. 여자의 허리춤에는 시장 상인들이 쓸 법한 지퍼 달린 조그만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어째서 저런 것을 허리에 매달고 다니는지 순간 의문이 들었다.

여자는 너구리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뻗어 라디오를 껐다. 잡음이 사라지고 나자 공기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너구리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오른손을 뻗어 너구리의 남아 있는 앞발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체를 끌면서 중앙선 곁을 따라 차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반쯤 벌리고 경악에 차서 너구리의 남아 있는 상체에서 내장이 흘러내려 도로에 길게 늘어지는 모습을 쳐다봤다. 선글라스를 낀 핫팬츠 차림의 여자가 달빛 아래에서 짐승의 시체를 끌고 오는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모골이 송연할 정도였다.

저 여자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인 여자라면 저런 것은 쳐다보지도 못해야 한다. 그런데 저건 뭔가? 약간의 망설임도 없다. 마치 주말마다 로드 킬을 당한 동물들을 수거하러 다니는 듯 자연스럽다.

쓰윽, 쓰윽. 실제론 들릴 리 없는, 내장이 도로에 끌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튀어! 그대로 튀는 거다! 다시 그놈의 확성기. 조용히 해!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도망쳐서 어디로 갈래? 응? 또 헤매다가, 길바닥에 쓰러져서 잘래?

망설이는 사이 여자는 벌써 지척이었다. 여자는 바깥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좀 도와주실래요?”

그 말에는 남자의 자존심을 긁는 묘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하는데, 남자인 너는 뭐냐? 차 안에 찌그러져 앉아서 벌벌 떨고 있기만 할 거냐? 그런 비아냥거림. 씨팔 년. 신경 긁지 말고, 그건 그냥 저쪽으로 던져 버리고 돌아와서 운전이나 하란 말이다. 트렁크고 뭐고 못 들은 척해 줄 테니까. 네가 미친년이든, 완전 돌아 버린 년이든 상관 안 할 테니까!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도 나는 웃음을 흘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도와달라는 말까지 들은 이상 어쨌든 나서야 했다. 빨리 치워 버리고 여길 떠야 한다.

“죄송합니다. 얻어 탄 주제에 제가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치울 테니까, 그 장갑 벗어서 주세요.”

어쩔 수 없는 떨림이 목소리 사이사이에 진액처럼 배어 나왔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그냥 제가 치울게요. 명색이 수의산데, 그 정돈 해야죠. 근데 그냥 트렁크에 넣기는 좀 그러네요. 뒷좌석에 신문이 있을 거예요. 그걸 좀 꺼내 주실래요?”

나는 여자가 수의사라는 사실에서 뭔가 아귀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수의사라면 지금의 행동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트렁크라니. 그러니까 지금 그 시체를 트렁크에 넣겠다는 말인가? 저기 원래 들어 있던 건 어쩌고? 트렁크에 진짜 아무거나 꽉꽉 구겨 넣고 다니는 건가?

섬뜩한 상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트렁크에 들어간 너구리 시체가 눈을 뜬다. 그리고 아우성을 치고, 트렁크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쿵, 쿵, 쿵…….

나는 상상을 흩어 버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런데 트렁크에는 뭐가 있습니까?”

엉겁결에 그렇게 말해 놓고, 나는 뒤로 돌아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 했다. 여자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뭔가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내 달싹거리는 입술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씨팔, 끼어드는 게 아니었는데. 싱긋 웃는 여자의 표정이 느껴졌다.

“아, 트렁크요. 신경 쓰지 마세요. 조금 덩치가 큰 개예요. 아까 마취를 시켰는데, 지금 풀렸나 봐요.”

멍멍 짖고 네 발로 걷는 개? 쓴웃음이 나오려 했다. 내 과민반응이었다. 다친 개를 트렁크에 넣고 다니는 수의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시트에 털이 묻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애완견을 트렁크에 실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개였군요.”

“예, 그래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신문은 안 꺼내 주실 건가요?”

“아, 죄송합니다.”

나는 뒷문을 열고 상체를 밀어 넣어 안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신문은커녕 전단지 한 장 보이지 않았다.

순간 말벌에 쏘인 듯한 통증이 왼쪽 허벅지를 꿰뚫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