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 장르: 호러 | 태그: #통증 #김준영 #공포 #공포단편 #단편선 #한국공포문학 #한국공포문학단편선 #기형낭종
  • 분량: 137매
  • 소개: 아내가 사라진 후, 명훈에게 통증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빨이 자라나더니 그 다음엔 손가락이 자라난다. 그러더니 몸 전체에서 무엇인가가 자라기 시작한다. 통증은 더 강해지고, 명훈... 더보기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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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박 형사라고 소개한 남자가 집으로 찾아온 건 아내가 실종된 지 10일째 되던 날 오후였다. 오전 내내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화창하게 갠 하늘에서 내려온 7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창을 통해 집 안을 비추었다. 한동안 아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던 먼지들이 그 햇살 속에서 마치 유영이라도 하듯 떠다녔다.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그 나른한 풍경 속에,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손에 찻잔을 든 채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방문은 그런 나를 다시금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자극이었다.

“그사이 부인에게서 연락이 오진 않았나요?”

형사의 의례적인 질문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예상했다는 듯 측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심정을 저희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하루에 수십 건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지만 그중 80퍼센트 이상은 결국 별일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성급하게 실종 사건으로 취급할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형사는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날 바라봤다.

“제 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저에게 연락을 해 오곤 했거든요. 게다가 우리 사이에 특별한 문제나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인을 보셨던 때부터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그사이 새롭게 기억나신 건 없나요?”

“지난번 서에서 말씀드린 것 외에는 별다른 게 없습니다. 그때 얘기 드린 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열흘 전 오전, 출근길 집앞에서 나를 배웅해 주던 모습이 제가 직접 아내를 본 마지막이었고, 그날 오후에 사무실로 걸려왔던 전화가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렇군요. 당시 통화할 땐 부인께서 백화점에 있다고 하셨다고요?”

“예,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여름옷을 새로 사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그날 친구와 함께 쇼핑을 나갔던 것 같습니다.”

말을 간신히 마친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몇 번이나 했던 얘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에 짜증이 난 것도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된 치통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으십니까?”

“예……. 며칠 전부터 치통이 심해서…….”

“저런……. 그렇지 않아도 힘드실 텐데, 병원은 가 보셨나요?”

“아니요. 그럴 경황도 없었고…….”

“그러시더라도 한번 병원에 가 보십시오. 이런 때일수록 몸 관리를 잘하셔야죠.”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그날 함께 백화점에 가셨다던 부인의 친구 분께 확인해 보니 함께 쇼핑을 하고 저녁까지 먹은 뒤, 당일 오후

7시경에 헤어졌다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 부인의 행적을 알아보고 있으니 새로운 것이 나오면 바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사이에 부인께서 집으로 연락을 주신다든가, 어디에 계신 건지 알 수 있는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으시면 남편 분께서도 바로 저희 쪽으로 알려 주십시오.”

형사는 협조에 감사하다며 힘내라는 얘기까지 남기고 돌아갔다. 형사의 말대로 오늘은 병원에 가서 치통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결심을 확인이라도 하듯 또다시 시큰한 통증에 입 안이 아려 왔다.

*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치과가 두렵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랑니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치과를 들락거렸던 일은 아직도 끔찍한 악몽으로 기억된다.

마치 중세 시대 고문 틀을 재현한 것처럼 느껴지는 치과용 의자에 입을 한껏 벌리고 눕자 깡마른 체구의 의사가 다가와 입 안 여기저기를 한동안 살펴보더니 갑자기 진료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거 참……, 이상한 일이네. 이럴 수도 있나?”

의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말을 던져 놓고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검진에만 열중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나의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했다. 한참을 더 내 입 안을 살피고 몇 장인가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본 후에야 의사는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불러들였다. 서로 마주 앉게 되자 의사는 그제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통증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했죠?”

“한 사나흘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식의 통증을 느낀 적이 없고요?”

“예…….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겁니까?”

나의 질문에 의사는 바로 대답을 못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 말입니다……. 잘못되었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는 건지……. 지금 환자 분은, 그러니까 성함이…….”

이름을 확인하려 차트를 들춰 보는 의사에게 나는 이름을 알려줬다.

“김명훈입니다.”

“예. 김명훈 씨, 사실 지금 김명훈 씨의 상태는 뭐라고 단정해서 말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나름대로 저도 이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의사가 좀처럼 본론을 꺼낼 생각은 않고 계속 두루뭉술한 얘기만을 이어 가자, 나는 답답해져 최대한 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며 물었다.

“혹시 심각한 병이라도 걸린 겁니까? 설령 그렇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으니 시원하게 설명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아닙니다, 심각하다면 심각하겠지만 그렇다고 건강에 치명적이라거나 한 건 아닙니다. 워낙 희귀한 경우라 저도 놀란 나머지 자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네요. 일단…….”

의사는 자신의 왼편 벽에 걸린 뷰 박스의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그 위에 방금 촬영한 명함 크기가 될까 말까 한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올려놓고선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시는 게 방금 촬영한 환자 분의 엑스레이입니다……. 사실 환자 분의 신상에 대해 모른 채 이 엑스레이만 봤다면 별거 아니라고 넘어갔을 사진이죠. 여기……. 보시다시피 이게 환자 분의 치아들입니다. 얼른 보기에도 별다른 소견이 없는 건강한 치아입니다. 다만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죠…….”

의사는 나의 치아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 사이를 새끼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여기 작은 치아가 보이시죠?”

“예.”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실은, 여기 보고 계시는 이게 유치(乳齒)입니다.”

“유치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치통의 원인은 새로운 치아가 올라오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그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황당하다는 투로 나는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사람의 이라는 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시려는 말씀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맞는 얘기이기도 하구요. 어릴 적 이갈이를 완전히 하고 나서는 새로운 치아가 돋아나는 경우가 드물죠. 고작해야 사랑니 정도가 더 날 뿐이지만 지금 김명훈 씨의 상황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기존의 치아 밑에서 새로운 이가 다시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통증이 이어지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의 설명을 멍하게 듣고 있다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되물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새로운 이가 올라오려고 한다는 얘기입니까? 내일 모레면 서른인 제가 말이에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한 건가요?”

“아주 드물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가 올라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과잉치라고 해서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이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김명훈 씨의 경우는 더욱 특이한 것이…….”

의사는 다시 엑스레이를 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여기 여섯, 모두 여섯 개가 올라오고 있거든요. 이렇게 동시에 올라오는 건 이갈이 하는 어린애들한테도 드문 경우란 말입니다. 하물며 29세의 성인에게 이 정도라면…….”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나이에 새로 올라오는 이 때문에 고생을 하다니 이 말을 누가 믿어 줄 것인가?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새로운 이가 올라온다고 해도 더 이상 나올 자리가 없을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전체적인 치열에 이상이 생길 뿐더러 새로 올라오는 이가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썩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치열의 변화로 부정교합이 일어나 턱관절이나 안면근육까지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심각하게 들리는군요?”

“그대로 방치한다면 정말 심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아니 제가 보기엔 전무하다고 봐도 좋은 경우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예측에 의존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지만 현재로 보아선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치아의 치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이가 자라 나온다고 해도 아이들이 이갈이를 할 때처럼 기존의 치아가 저절로 빠지리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 덧니가 될 거란 말이죠. 그렇게 되면 방금 말한 부작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의 결론은 뭔가요?”

나의 질문에 의사는 다시 엑스레이로 눈길을 돌려 한동안 고민스레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다시 돌아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새로 올라오는 치아들을 수술로 발치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진행 상태로 보아 앞으로 이삼 주 안에는 잇몸을 뚫고 올라올 텐데 그렇게 되면 통증이 굉장히 심하실 겁니다. 게다가 그쯤 되면 기존 치아들의 위치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할 거구요. 그렇게 되기 전에 치료를 받아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너 개 정도는 발치하는 쪽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의사의 말대로 수술을 위한 스케줄을 잡고서야 나는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두워진 거리는 퇴근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을 이 희귀한 증상에 관하여 의사와 얘기를 나누었고, 손에는 통증을 줄이기 위한 약까지 받아 들고 있건만 나는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로부터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에게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

“으아아!”

잠결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자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입속에서 시작해 머릿속을 한 바퀴 돌아 나가는 듯한 통증은 난생처음 겪어 보는 끔찍한 것이었다.

“으윽. 으으으…….”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발버둥만 쳐 댔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듯이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한참을 버둥대다 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를 떠올리고 침대맡 탁자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멍하던 의식이 서서히 또렷해지며 몸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하아, 하악, 대체 이게…….”

나는 혼잣말을 되뇌며 황급히 서랍을 뒤져 약을 찾아내자마자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흐아아악!”

알약이 입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또다시 밀려오는 통증에 하마터면 약을 다시 뱉어낼 뻔했다. 입 안에 들어간 알약이 바짝 마른 입 안 점막에 들러붙자 그 부위에서부터 새로운 통증이 더욱 강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비틀거리는 몸을 끌고 거의 기다시피 화장실로 갔다.

가까스로 화장실 세면대에 도착하자 나는 황급히 물을 틀어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로부터 쏟아지는 차가운 물은 입 안에 들러붙은 알약을 목구멍으로 넘겨줬을 뿐 아니라 계속되던 통증을 어느 정도 진정시켜 주었다.

잠시 후 진통제의 효과인지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나는 한시름 놓으며 화장실 바닥에 너부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아직 새벽녘인지 해가 뜨지 않은 데다 채광창마저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 안은 컴컴했다. 나는 문밖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아 켠 후 세면대를 잡고 일어선 채 입 안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아…….”

크게 벌린 입 안을 들여다본 나는 흠칫 놀라며 입을 다시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안의 상황은 나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화장실 벽에 붙은 거울을 통해 공포에 찬 표정으로 입을 가린 채 백열등의 밝은 불빛을 받고 서 있는 기괴한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면서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보았다. 벌어진 입 안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입 안에 고인 채 입술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는 피였다. 입 안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피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입 안과 치아 사이를 붉게 물들이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나는 입 안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고개를 젖혀 출혈 부위를 찾아보았다. 입 안 여기저기가 헐어서 껍질이 벗겨지거나 하얗게 일어나 있었지만 출혈의 원인은 점막이 아니라 잇몸이었다. 치과에서 진료를 받은 것이 고작 3일 전이었는데 새로운 치아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잇몸을 뚫고 나오는 바람에 찢어진 잇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과 의사의 예상대로 기존의 치아들 역시 그대로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올라오는 치아들은 기존 치열의 옆자리에 삐뚤빼뚤 기이한 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었다.

‘어떻게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 이가 자라날 수 있는 거지?’

새로 올라온 치아들은 이미 기존에 있던 영구치와 비슷한 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는 이성적으로 좀처럼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놀라게 했고 처음 입 안을 보았을 때 황급히 입을 다물게 했던 것은 치아가 아니라 혀였다.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을 약 올릴 때처럼 입 밖으로 혀를 쭉 내밀어 살펴보았다. 끝에서부터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혀. 누군가가 칼로 그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끝이 나누어진 나의 혀는 마치 뱀의 그것처럼 기이한 모양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

결국 나는 치과 의사와의 수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미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생니를 뽑아낸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그 엄청난 성장 속도를 의사가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모두 여섯 개라던 진단과는 달리 처음 통증이 시작된 지 10여 일이 지나자 새로 솟아 나온 치아는 이미 열 개를 넘어섰고 계속해서 새로운 이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계속해서 솟아 나오는 이빨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필요 이상의 과잉치로 인해 턱 아래로 얼굴 모양이 이상하게 비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입을 벌릴 때마다 뱀처럼 갈라진 혀가 남에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사무실에서마저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나의 모습을 회사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고, 게다가 입 안의 통증이 자꾸 심해져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병가를 내기로 했다. 아내의 실종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데다 얼른 보기에도 나의 건강 상태는 확연히 나빠 보였기에 회사 측에서도 쉽게 병가를 쓰도록 해 주었다.

아내가 실종된 지 28일. 통증이 시작된 지 20여 일이 되던 날 박 형사란 남자가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 나는 이미 진통제가 없으면 하루도 제대로 보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입 안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고 계속되는 고통에 시달려 체중 역시 5킬로그램 이상 빠져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형사는 병원은 다녀와 봤냐는 얘기부터 꺼냈다.

“사랑니 때문에 생긴 통증이라고 하더군요. 수술을 받았으니까 조만간 나아지겠죠…….”

“하지만 그 마스크는……?”

“아. 이건 감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는 나의 궁색한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하긴 그에게 나의 몸 상태는 그리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오늘 찾아뵌 것은, 실종된 부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어와서입니다.”

“새로운 소식이요?”

그의 얘기에 나는 앞으로 몸을 숙이며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아프기로서니 아내의 실종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실종 당일 백화점을 나선 이후 부인의 행적에 대한 단서입니다. 여기 이 사진들을 보시죠.”

형사는 들고 온 노란색 서류 봉투 속에서 사진을 서너 장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비디오 화면을 그대로 출력한 듯 거친 화질의 사진들은 촬영 각도로 보아선 아마도 CCTV 촬영 영상인 것 같았다.

“여기 두 장은 실종 당일, 시 외곽의 휴게소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전국의 휴게소에는 도난 사고 등을 대비해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실종 당일 촬영분을 수집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걸 찾아냈죠. 여기 날짜와 시간이 보이시죠? 보시다시피 실종 당일 저녁 9시경에 촬영된 것으로 백화점에서 친구 분과 헤어진 뒤 두 시간 후입니다. 여기 세워진 차 보이세요?”

“예, 제 차로군요. 그날 아내가 타고 나갔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질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번호판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번호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이 내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형사는 두 번째 사진을 내 쪽으로 밀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사진 속 인물을 가리켰다. 흰색 민소매 원피스에 검은색 핸드백을 팔 사이에 끼고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아내였다.

“맞습니다. 제 아내예요.”

“저희도 확인을 해 봤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사진들은 감시 카메라 동영상을 캡처한 것인데 이후에 아내 분께서 차를 타고 휴게소를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잡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박 형사는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짐작하는 바를 말했다.

“제 아내 옆의 남자 얘기군요…….”

나는 다시 사진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사진 속엔 아내 바로 옆에 붙어서 걷고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함께 찍혀 있었다.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이 일행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사진이었다.

“그렇습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부인과 일행으로 보입니다. 이후에 부인과 함께 차를 타고선 휴게소를 빠져나갔고요. 혹시나 해서 휴게소의 다른 감시 카메라까지 확인을 해 봤는데…….”

나머지 사진들에는 휴게소 매점과 식당 코너 등지에서 그 남자와 함께 있는 아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직 남자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영상을 분석해 본 결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남자가 부인을 납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나의 눈치를 살피는 형사를 보며 나는 한숨과 함께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 해 주었다.

“애인일지도 모른단 얘기군요…….”

“죄송합니다, 화면 분석 결과로는 전자보다 후자 쪽의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두 사람이 굉장히 친근한 관계인 듯 보였으니까요.”

나는 얼굴을 감싸 쥐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럼 형사님 말씀은 제 아내가 다른 남자랑 도망이라도 쳤다는 건가요?”

“혹시 재산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부인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있다든가, 각자 자산을 관리하고 계시진 않았나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게 작년이었습니다. 상당한 자산가셨죠. 아내에게 상속된 유산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나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듯 더욱 세게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형사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현재 그 휴게소 주변 숙박업소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드신 줄은 알지만 우리의 추측이 맞는다면 목격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내가 할 말이 이제 형사에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알았다. 사랑의 도피……. 그것이 아내의 잠적에 대한 설명이란 걸 증거가 말해 주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 일에 더 이상 수사력을 낭비할 만큼 한국 경찰들은 한가하지 않았다.

“그녀를 찾아 주십시오……. 저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어느새 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형사가 다녀간 뒤로 나를 괴롭히는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입 안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많이 줄어든 반면, 손발을 비롯해 전신에서 새로운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손발의 통증이 특히 심해서 나는 걷거나 물건을 쥐는 간단한 동작에도 마치 류머티즘 환자인양 괴로워하며 애를 먹었다. 전신으로 통증이 퍼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을 단순한 종기라고 생각했다. 양손의 손날 쪽, 정확히는 새끼손가락 바로 옆에서 돋아나기 시작한 쌀알 크기만 한 돌기는 점점 커지더니 이틀도 되지 않아 3, 4센티미터 크기로 자라났고 그 끝에는 단단한 각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각질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리를 잡아 가면서 그것이 손톱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돌기는 이미 완전한 손가락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새삼스레 이것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지 실감했다.

치아가 새로 돋아나는 것도, 혀가 갈라지는 것도 넘어갔지만 새로 솟아나는 손가락을 보고도 넘겨 버릴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더 이상 나 혼자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고 내 몸에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설명이라도 들어야만 했다. 전화로 부른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통증 때문에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병원에 실려 온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마스크 아래 감춰져 있던 입은 두 배로 늘어난 치아와 그로 인해 변형된 골격, 피부로 괴물처럼 변해 있었고, 열두 개로 늘어난 손가락은 통증으로 벽과 바닥을 긁어대느라 손톱이 모두 뒤집어 진 채로 미친 사람처럼 몸을 비틀어 대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를 담당하게 된 의사는 내 몸의 변화가 모두 최근에 생긴 일이란 나의 설명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선천적인 기형과 정신과적 질병으로 인한 자해 행위를 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간 치과로부터 나의 진료 기록과 당시 나의 상태에 대한 의사의 얘기를 전해 듣고선 그런 의심은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진지해졌다.

처음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는 듯 당황하며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던 병원 측은 다시 수일이 지난 후에야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나에게 그들의 진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기형낭종.’

그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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