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머신

  • 장르: 호러 | 태그: #드림머신 #김미리 #공포 #공포단편 #단편선 #한국공포문학 #한국공포문학단편선 #기계
  • 평점×9 | 분량: 97매
  • 소개: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서비스를 찾아간 연인. 둘의 꿈을 연결시켜 행복감을 전해 준다. 그러나 꿈꾸게 해주는 기계는 행복감은 일순간에 박탈하고 모든 걸 악몽으로 바꿔놓는다. 더보기

드림머신

미리보기

악취가 지독하다.

사방에서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구역질나는 쥐똥 냄새가 난다. 시큼한 위액의 냄새, 찢어지고 뜯긴 상처들이 뿜어내는 썩은 냄새. 배설물 냄새와 함께 역겨운 땀 냄새와 토사물 냄새도 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끔찍한 공기 속에는 피 냄새가 가득하다. 바닥이 온통 핏물로 질퍽거리니 당연한 일이다.

*

겨드랑이가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그들이 내 양팔을 머리 위로 바짝 끌어올려 벽에 비끄러매놓았기 때문이다. 등에 닿는 돌벽은 축축하고 차갑다. 무릎을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다. 나는 몸을 뒤튼다. 수천 개의 가느다란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짓이지만 소용없다.

단단히 고정된 손목이 당겨질 때마다 칼날 같은 고통이 팔 전체를 지나 어깨까지 찌르르 울릴 뿐이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벽에 연결된 수갑의 거친 모서리가 피부를 벗겨 내며 살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기릭…… 끼리긱…… 끼릭…….

고통으로 아득해지던 정신이 화들짝 놀라 돌아왔다. 오른쪽 벽 틈새로 거미줄 같은 빛이 새어들어, 사방이 돌벽으로 막힌 한 뼘만한 공간에 어지러운 무늬를 그렸다. 오른쪽 벽이 밝아졌다는 건, 바로 옆방의 천장이 열렸다는 뜻이다. 정말로 옆방의 천장이 열렸다면!

“끄아아악! 아아악, 내 눈! 아아악!”

인간이 내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이 덮쳐 왔다. 탕. 탕. 몸뚱이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 돌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후끈한 열기가 내게까지 전해졌다. 살과 뼈가 타들어가는 뜨겁고 무시무시한 냄새에 숨이 막힌다. 피비린내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왈칵 토했다.

비명 소리도, 몸부림도 오래가지 않아 멎었다. 거미줄 같은 빛도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토사물에 흠뻑 젖은 채 덜덜 떤다. 이제 내 차례다. 내 머리 위의 천장이 열릴 차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만들었다. 나는 내게 닥쳐올 일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기잉.

기름 먹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열리고 있다. 나는 헛되이 손목을 흔든다.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천장을 가로지른 실낱같은 빛의 선이 보인다. 빛의 선이 어둠에 익숙한 내 눈을 가르며 점점 넓어진다. 어둠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아니, 비명을 지르는 건 나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 같은 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비명을 지른다.

끼기릭…… 기릭…… 끼리릭긱…….

비명 속에서도 그 소리는 선명하게 들린다. 거울이다. 거대한 거울. 수천 조각의 거울이 빼곡하게 들어찬 악마의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얼굴이 웃는다.

“정말 멋진 발명품이야, 그렇지?”

태양이 거울에 불길을 일으킨다. 거울이 내 몸에 불길을 일으킨다. 내 눈동자가 불타오르는 순간,

*

유진은 눈을 떴다.

이미 방 안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유진은 벽시계를 보았다. 7시 18분. 알람시계는 7시 35분에 맞춰져 있으니 아직 17분의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으며 눈을 감았지만 이미 정신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또렷하기만 했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고 했던가. 너무 맑은 정신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분명히 무언가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도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 나쁜 꿈 같은 걸 기억해서 뭐 하게. 유진은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17분이 아니라 열일곱 시간이 남았다 해도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꿈을 자주 꾸었고, 그런 꿈을 꾸다 일어나는 날이면 다시는 잠들지 못했다.

유진은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니 기분 나쁜 꿈의 개운치 않은 뒷맛까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보디 클렌저를 집어 거품을 듬뿍 냈다. 복숭아 향 보디 클렌저는 아미의 선물이었다.

‘이거 쓸 때마다 내 생각해야 해!’

아미의 귀여운 얼굴과 사탕 같은 목소리가 떠올라 유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나는 거품을 온몸에 문지르며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아미는 64번지를 좋아했다.

64번지는 도시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역에 속한 긴 골목으로, 어찌 된 일인지 그곳에는 항상 안개가 고여 있었다. 겨울 끝 무렵이면 항상 도시 전체에 안개가 흔하지만 그곳의 안개는 봄이 되어도, 또 여름이 되어도 아주, 아주 조금 희미해지기만 할 뿐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미는 64번지에 있는 작은 보석 가게의 단골손님이었다. 보석가게라고는 해도 정말로 값나가는 보석이라곤 거의 없고 진열장을 채운 것들은 모조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미는 싸구려 액세서리들 중에서도 그럴싸한 물건을 잘 찾아냈다. 그녀는 눈썰미가 좋을 뿐 아니라 그렇게 찾아낸 것들로 자신을 꾸미는 방법도 잘 아는 여자였다.

아미는 보석 가게 건너편에 있는 향수 가게에도 자주 갔다. 향수 가게에서는 유명 브랜드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좋은 향을 내는 세계 각국의 수입 향수들과, 과일 향을 가진 목욕용품들을 살 수 있었다. 그녀가 유진에게 선물한 복숭아 향 보디 클렌저도 64번지의 향수 가게에서 산 물건이었다.

석 달 전, 아미는 유진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보석 가게를 찾아와 새 머리핀과 귀걸이를 샀다. 원래는 목걸이와 브로치도 새것으로 장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한 아미는 싼값으로 머리핀과 귀걸이를 샀음에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평소에는 언제나 들뜬 기분이어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이상한 가게를 발견했다. 64번지의 막다른 끝에 틀어박힌 가게는 이곳의 다른 가게들처럼 작고 낡은 곳이었는데 간판이 없었다. 대신 반투명한 우윳빛 출입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사랑이란 같은 꿈을 꾸는 것.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서로의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세요.
드림머신! 안전하고 저렴하며 색다른 경험!
체험 시간: 한 시간.

드림머신이란 말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한 아미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문 바로 옆에 연보라색 긴 소파와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덮은 탁자가 있고, 탁자 위에는 허브가 자라는 새하얀 도자기 화분이 세 개 있었다. 무늬 없는 벽지로 바른 벽 한 면에 나란히 걸어둔 액자들이 아미의 눈에 들어왔다. 아미는 액자에 인쇄된 글자들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발명 특허증, 공인 안전 점검 확인증, 사업자 등록증, 64번지 상가번영회 회원증…….

“안녕하세요.”

아미가 고개를 돌리자, 인사를 건넨 남자가 아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커다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노란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였다.

저 녀석 이름이 뭐였지? 벅스버니랑 같이 나오던 녀석인데……. 아미는 삐죽 솟은 갈색 털에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만화 캐릭터를 쳐다보았다. 그 이름은 생각이 날 듯 말 듯 목구멍 근처에서 간질거렸지만, 끝내 밖으로 튀어나와 주지는 않았다.

아미는 남자의 샛노란 후드 티셔츠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색깔도 색깔이지만, 남자가 너무 말라서 옷의 모양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자의 노란 후드 티셔츠는 노란 자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볼품없이 헐렁해 보였다.

“일행이 계신지요? 드림머신은 두 분이 함께 사용하셔야 하는데요.”

남자가 입을 열자 아무렇게나 덧니가 돋아나 불규칙한 치열이 보였다. 불룩 솟은 광대뼈에 홀쭉한 볼,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까칠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 그 얼굴에 마법 같은 생기와 다정함을 듬뿍 불어넣어, 아미는 자신이 마치 이곳의 단골손님이고 그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 온 사이라도 된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아, 저는……. 그냥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 봤어요.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하고요. 간판도 없고 해서.”

“그러셨군요. 64번지에서 간판이 없는 가게는 저희 집뿐이죠. 차 한잔 하시겠어요?”

남자는 아미에게 허브 차를 가져다주며, 자신을 홍이라고 소개했다.

“처음부터 간판을 안 달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적당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좀 미뤄 둔 거였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까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지겹기도 하고, 또 생각해 봤더니 64번지에서 저희 집 하나만 간판이 없다는 게 오히려 다른 가게들이랑 구별되는 특징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홍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더 이상 간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했다는 말이죠.”

싱거운 이유였다. 홍은 아미가 차를 마시는 동안 드림머신의 원리와 이용법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이어 갔다. 핵심인즉, 두 사람이 함께 잠들면 먼저 잠드는 쪽의 꿈을 함께 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꿈을 꾼다고요? 같은 꿈을 꾼다는 말씀이세요?”

“하나의 꿈속에 두 사람이 함께 있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꿈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니, 연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특별한 데이트가 될 수 있지요.”

홍이 아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자, 유난히 새하얀 그의 덧니가 반짝 빛났다. 아미는 종이에 적혀 있던 ‘사랑이란 같은 꿈을 꾸는 것’이란 문구를 떠올렸다. 문자 그대로 ‘같은 꿈’을 꾼다니, 드림머신이란 이름만큼이나 로맨틱한 일이었다.

아미가 차를 다 마시자, 홍은 아미를 드림머신 체험실로 안내했다. 평범한 문 안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 안에 놓인 두 개의 침대가 바로 ‘드림머신’이었다. 한 사람이 눕기에 적당한 작은 침대는 연한 하늘빛이었다. 홍이 말했다.

“편안한 수면을 돕기 위해 특별히 고른 색상이죠.”

침대의 머리맡에는 좀 더 진한 푸른색의 접이식 반구형 뚜껑이 달려 있었다. 제 크기대로 펼치면 침대에 누운 사람의 가슴께까지 내려온다는 설명이었다. 침대에서 나온 몇 가닥의 전선이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 않는 계기판이 달린 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악몽을 꾸면 어떡하죠?”

아미가 묻자 홍이 웃음을 터뜨렸다.

“체험 전에 라벤더 향초를 피우고 숙면을 돕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 드립니다. 심신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드리는 거죠. 이제껏 가게를 운영하면서 악몽을 꾸셨다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셨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홍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사람 좋은 미소가 아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체험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이다. 백만 천만에 하나, 악몽을 꾼다 해도 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고 홍이 덧붙였다.

“다음에 꼭 올게요.”

아미는 홍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홍은 아미를 위해 출입문을 열어 주고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아미는 홍의 친절한 태도와 맛있는 허브 차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같은 꿈을 꾸게 해 주는 드림머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만약 유진과 좋은 사이가 된다면 여기 꼭 같이 와 봐야지. 아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리핀과 귀걸이를 포장한 쇼핑백을 들고 안개를 찰방찰방 밟으며 64번지를 걸어 나왔다.

*

첫 데이트는 대성공이었다. 아미는 멋지게 차려입은 유진의 모습에 절반쯤 마음을 빼앗겼고, 유진이 미리 준비해 둔 앙증맞은 장미꽃 바구니를 내밀었을 때는 남은 절반도 흔들렸으며, 유진이 아미의 잔에 와인을 따르면서 오늘 정말 예쁘다고 말해 주었을 때는 (그것도 전망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고급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에서!) 더 이상 빼앗길 마음도 없을 만큼 유진에게 반해 버렸다.

유진은 너무 늦지 않게 아미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잘 자라고 전화를 했다. 이 전화를 시작으로 아미와 유진은 매일 밤 서로에게 전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로 열흘 만에 두 사람은 손을 잡았고, 한 달이 되던 날 첫 키스를 했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석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이름 대신 ‘자기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유진은 아미에게 딸기 무늬가 있는 잠옷을 선물했다. 아미는 보답으로 유진에게 선물할 보디 클렌저를 사러 64번지의 향수 가게를 찾았다. 예쁘게 포장한 복숭아 향 보디 클렌저를 들고 나오던 아미의 시선이 홍의 가게에 멈췄다.

사랑이란 같은 꿈을 꾸는 것. 종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미는 같은 꿈을 꾸고 싶은 사람이 된 유진을 생각하며 살짝 볼을 붉혔다.

*

유진에게, 아미의 붉은 입술은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미는 노래하는 장미꽃이었다. 노래는 끝도 없이 이어졌고, 유진은 흐뭇한 마음으로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자기랑 통화하고 나서 바로 자려고 했거든? 근데 잠이 안 오는 거야. 왜 그럴 때 있잖아. 졸려서 자리에 누웠는데 그러니까 딱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거.”

유진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그래서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꺼냈는데 그게 마침 아프리카 여행기더라고. 그걸 좀 읽다가 다시 졸려서 잤거든? 그랬더니 딱 그 책에 나온 사진들을 찍은 데로 가는 꿈을 꿨지 뭐야.”

아미는 꿈속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이야기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한가로이 쉬고 있는 야생동물들과 사파리 한가운데에 있는 초특급 리조트, 사륜 구동 자동차 드라이브, 기린 먹이 주기의 즐거움, 그리고 그 꿈속에서 유진과 함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요즘 아미는 밤마다 세계의 이름난 휴양지들을 유진과 함께 다니고 있었다. 아미는 매일 밤 꿈을 꾸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꿈속의 일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아미는 유진을 만나면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부터 말해 주었다. 유진은 꿈을 그토록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아미가 신기하고도 부러웠다.

“그런데.”

아미가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었다.

“자기는 내 꿈 안 꿔?”

아미가 물었다. 표정을 보니, 그녀는 매번 그저 듣기만 할 뿐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는 유진이 내심 서운한 모양이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유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도 꿈을 꾸긴 하는데……. 그런데 난 기억을 못 해. 아침에 일어나면 ‘아, 내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그게 뭐였지?’ 하는 느낌만 있을 뿐이야. 그래서 난 자기가 부러워. 나도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 가끔은 무척 궁금해.”

아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드림머신’ 체험해 보러 가지 않을래?”

“드림머신? 꿈 기계라는 뜻이야? 그게 뭔데?”

마침 웨이트리스가 유진과 아미의 차를 가져왔다. 유진은 아미 앞에 밀크티를 놓고, 각설탕 두 개 반을 넣어 주었다. 밀크티는 아미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고 아미의 입맛에 맞게 각설탕 두 개 반을 넣어 주는 것은 언제나 유진의 일이었다.

“재미있는 기계야. 내가 가끔 가는 64번지의 작은 가게에 있어. 그 기계는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해 줘. 먼저 꿈을 꾸는 사람의 꿈을 공유하는 거래. 연인들은 항상 꿈에서조차 서로를 만나고 싶어 하잖아. 그런데 각자 상대가 나오는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같은 꿈속에서 서로 함께 있는 체험을 하게 해 주는 거지.”

“그게 가능해?”

“응! 발명 특허에, 공인 안전 점검 확인증까지 받았던걸.”

아미는 가게 벽에 걸려 있던 액자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는 말이지…….”

“그래! 재미있지 않겠어? 만약 내 꿈을 같이 꾸게 되면 내가 매일 말로만 하는 이야기들이 어떤 건지 자기도 알게 되어 좋을 거야. 그리고 자기 꿈을 내가 같이 꾸게 된다면, 자기가 그 꿈을 기억 못 해도 내가 기억해서 말해 줄 수 있을 거 아냐? 어때?”

“악몽을 꾸면 어떡하지?”

아미는 홍에게 들은 설명을 그대로 옮겼다.

“하기 전에 라벤더 향초도 피우고 좋은 음악도 틀어 줘서 심신을 이완시켜 주니까 괜찮다고 했어. 이제까지 악몽을 꾼 사람은 아무도 없었대. 그리고 혹시나 악몽을 꾼다고 해도 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깨워 주니까 걱정 없어.”

“그래? 그러면 한번 가 볼까?”

유진이 대답하자 아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응!”

“우리 자기가 가고 싶다면, 당연히 가야지.”

유진은 사랑스러운 아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아미가 유진과 함께 64번지를 찾은 토요일 오후, 홍의 가게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드림머신을 사용 중이었다. 홍은 아미와 유진에게 숙면을 돕는 효과가 있다는 허브 차를 내어 왔다.

“유기농 허브 농장에서 직송한 라벤더와 캐모마일로 만든 차예요. 우리 가게에 오신 분들 중에는 나중에 차만 따로 사 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유진은 향긋한 허브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홍이야말로 숙면을 돕는 차를 좀 마셔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진이 보기에 홍은 매일 밤 악몽을 꿔서 잠을 설치는 사람 같았다. 그나마 웃는 얼굴이기에 다행이지만. 유진은 이제껏 홍만큼 마른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홍은 지난번과 똑같은 노란색 후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아미는 이번에도 심술궂게 눈을 부라리는 만화 속 그 갈색 캐릭터의 이름을 떠올리려 해 봤지만 역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벅스버니의 친구들 중 하나라는 것만 생각날 뿐이었다. 회색 토끼가 벅스버니, 발이 안 보이게 달리는 애가 로드 러너, 노란 카나리아가 트위티, 그런데 저 녀석 이름은 뭐였지?

유진이 선불로 돈을 내자 홍은 두 손으로 지폐를 소중히 받았다. 유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체험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요?”

“예, 정확히 한 시간입니다.”

홍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한 시간 안에 깨면요? 그럼 남은 시간은 환불해 주시나요?”

“한 시간 안에 깨어나는 일은 없어요. 걱정 마시고 여유롭게 즐기셔도 됩니다.”

홍의 웃는 얼굴과 친절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단호한 데가 있었다. 유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안쪽에서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왔다. 표정만 봐도 어떤 꿈을 꾸었는지 대충 짐작이 가서, 아미와 유진까지 덩달아 얼굴이 붉어졌다. 홍이 출입문을 열어 주려고 일어섰지만, 그들은 틈을 주지 않고 후다닥 나가 버렸다. 홍은 머쓱히 서서 머리를 긁고는, 아미와 유진에게 말했다.

“자, 그럼 체험실로 가실까요.”

아미와 유진은 홍을 따라 체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홍의 안내에 따라 아미와 유진은 체험실의 드림머신(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두 개의 싱글 침대 정도로 보이는)에 누웠다. (유진은 ‘정말 이게 제대로 작동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홍은 먼저 라벤더 향초에 불을 붙인 뒤에, 헤드폰처럼 생긴 것을 두 사람에게 하나씩 주었다.

“이걸 머리에 쓰세요.”

두 개의 헤드폰에서 길게 뻗어 나온 선은 중간에 합쳐져 하나의 선이 되었다. 홍이 그 선을 침대에서 나온 전선들이 연결된 계기반의 포트 중 하나에 꽂았다. 그런 다음 두 사람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침대 머리맡에 달린 접이식 반구형 뚜껑을 펼쳤다. 홍은 마지막으로 계기반의 타이머를 조절하여 60분에 맞추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홍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방 안이 어두워졌다.

유진과 아미는 눈을 감았다. 헤드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맑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졌다.

방 안에 라벤더 향기가 퍼졌다. 어느 순간, 약간 딱딱하게 느껴지던 침대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침대는 비누 거품처럼 부풀어 올라 유진의 온몸을 감쌌다. 유진은 따스한 거품 속에서 달콤한 잠으로 빠져 들었다.

유진은 밝게 빛나는 여러 가지 색깔을 보았다. 빨간색과 남색, 오렌지색과 보라색, 노란색과 자주색과 파란색이 꽃처럼 피어났다가 소용돌이처럼 뒤엉켰다.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현란한 색들이 서로 섞이더니 마침내 암녹색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손님?”

낯선 목소리가 유진을 불렀다. 유진은 여전히 멍한 기분으로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

“손님, 주문하신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나왔습니다.”

말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여자가 말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늘씬하게 키가 큰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은 노란 유니폼을 입고, 유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걸 시킨 적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칵테일을 유진 앞에 놓았다.

“스파는 곧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스파? 유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자기야, 날 위해 스파까지 예약했어?”

이번 목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깊이 파인 핫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미가 거기 있었다.

이건…… 뭐지? 유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드림머신이 있던 작고 어두운 방이 아니라, 초록의 향연이 벌어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융단처럼 깔린 보드라운 잔디 위에 유진과 아미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이 있었다.

유진은 가장자리에 섬세하게 비즈 장식을 한 새하얀 식탁보를 알아보았다. 언젠가 아미가 외국 잡지에서 보고 예쁘다고 감탄했던 상품이었다. 요리책에서 오려 낸 듯이 화려한 음식들을 담은 접시도 낯설지 않았다. 아미가 좋아하는 포트메리온(고급 식기 브랜드)이었다.

*

유진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옷차림도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부드러운 리넨 셔츠에 아미의 것과 똑같은 핫핑크색 바지. 유진은 깨달았다.

이건 아미의 꿈이야.

유진은 실소했다. 아미는 나에게 이런 색깔의 바지를 입히고 싶은 건가? 나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물건이잖아.

“여기 어때? 마음에 들어?”

아미가 물었다. 현실의 아미는 어깨를 약간 덮는 길이의 머리를 가졌는데, 꿈속의 아미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였다. 머릿결도 현실의 아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찰랑찰랑 빛이 났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눈과 달콤한 입술은 현실과 똑같았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가 정말로 원한다면 핫핑크색 바지를 입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진은 잔을 들어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마셨다. 유진은 깜짝 놀랐다. 유진이 언제나 그리워하던 맛이었다. 대학 신입생 때 아르바이트하던 바에서 마셨던 바로 그 맛! 무명 화가이자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였던 사장이 자신만의 비밀 레시피로 만들었던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와 똑같은 맛이었다.

유진은 그곳에서 겨우 두 달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이지만 사장의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에 중독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발걸음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장은 가게 문을 닫고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더니 아예 그곳에 정착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유진이 그의 칵테일 맛을 볼 기회도 영영 이집트에서 돌아오지 않게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마셔 봤지만 어떤 것도 그것과 같은 맛은 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 칵테일이 유진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투박한 콜린스 글라스(잔대가 높은 칵테일용 글라스)도 그때의 바에서 쓰던 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이건 꿈이니까.

유진은 씁쓸함을 느꼈다. 오직 꿈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날의 칵테일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기쁘기도 했다.

비록 꿈이지만, 유진은 분명히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입술에 닿는 차가운 유리잔의 느낌에 이어 혀끝을 적시는 액체의 촉감, 입 안으로 번져 가는 뒤섞인 술들의 톡 쏘는 맛, 입천장과 혀 뒤를 거쳐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했다. 꿈인 줄 알면서도 꿈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자기야, 우리 산책해.”

아미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유진은 아미의 부드러운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정원의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도, 유진을 바라보는 아미의 웃는 얼굴도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유진과 아미는 주위에 가득한 신선한 장미 향기를 따라갔다. 정원수의 행렬이 끝나자 만개한 꽃들이 아치형으로 지붕을 이룬 장미의 터널이 나타났다. 유진은 아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아미는 유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서로에게 기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장미꽃잎의 비가 내렸다.

‘아미의 꿈은 정말 아름답구나.’

유진은 아미와 함께 장미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생각했다. 아미는 나를 생각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어. 유진은 가슴이 뿌듯했다.

장미 터널을 벗어나자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유진이 눈을 크게 떴다. 잔디밭 한가운데 커다란 회전목마가 있었다. 빛나는 황금 지붕 아래, 붉은색 비단으로 촘촘히 감싼 막대에 매달려 천천히 돌고 있던 무지개 색 줄무늬 목마들이 마치 유진과 아미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멈추어 섰다. 어서 와서 타라고, 우리는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유진은 아미를 먼저 목마에 타게 하고, 같은 목마에 올랐다. 목마의 등은 두 사람이 함께 타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출발!”

신이 난 아미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치자, 목마는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붕과 바닥의 색색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어디선가 왈츠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아미가 수줍게 말했다.

“나, 자기랑 여기 같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도 그래. 유진은 아미의 귓가에 속삭이며 아미를 꼭 끌어안았다. 이런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

체험실의 문을 닫음과 동시에, 홍의 손가락이 조도 조절 버튼을 눌렀다. 방 안은 잠들기에 적당하게 어두워졌을 것이다. 홍은 방문 위의 타이머를 보았다. 59분 59초, 58초, 57초……. 앞으로 한 시간 동안 홍이 더 할 일은 없었다.

홍은 가게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갔다. 벽과 바닥과 천장이 모두 엄지손톱만 한 까만 타일로 뒤덮여, 화장실은 실제 크기보다 더 작고 어두워 보였다. 홍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돌릴 때마다 끼릭끼릭 소리가 나는 낡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홍이 고개를 들자, 거울 속의 홍도 이편을 쳐다보았다. 살이 없어 뾰족하게 각이 드러난 턱 위에 얇은 입술이 좌우로 벌어졌다. 언제나 손님들에게 상냥하게 미소 짓는 그는 거기 없었다.

검은 뿔테 안경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선명한 핏빛으로 번뜩였다. 깊이 패어 그늘진 뺨 위에 툭 불거진 광대뼈를 가진 비쩍 마른 남자는 제멋대로 덧니가 돋은 입을 벌리고 킬킬킬 웃었다.

*

아미와 유진은 칵테일을 가져다주었던 여자를 따라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창 신나게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데 그녀가 나타나, 스파가 준비되었으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던 것이다. 유진은 회전목마를 좀 더 타고 싶었지만 아미는 스파를 더 원했다.

계단은 지하에 있는 스파로 이어졌는데 채광이 훌륭한 천창이 있어 계단 끝까지 그늘진 곳이 없었다. 금도금된 계단 손잡이와 대리석 계단, 벽을 따라 이어진 벽감마다 놓여 있는 값비싼 장식물들, 입구부터 이곳이 최고급 스파라는 걸 과시하는 듯했다.

“저희 스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붉은색 치파오(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가 출입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주변은 더욱 화려해졌다. 천장의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그 빛을 받는 모든 것을 보석처럼 빛나게 했다. 사방의 조각들은 섬세하고 독특했으며, 소품 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이 없었다. 유진과 아미는 안내를 받아 스파 전용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연한 은빛 실크 가운 역시 최고급품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피부 위로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실크의 감촉이 벌레가 기어가는 양 꺼림칙했다. 유진은 당장 가운을 벗고 스파 따위는 다음에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기색이 너무나 역력한 아미의 얼굴을 보자 감히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파의 직원이 유진과 아미를 마사지실로 안내했다.

마사지실의 바닥과 벽은 반듯하게 자른 화강암으로 되어 있었고, 거기 새하얀 침대 두 개와 두 명의 전문 피부 미용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부 미용사들이 입은 새까만 유니폼은 새하얀 침대와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유진은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왜 이러지?’

유진은 아미를 보았다. 아미는 벌써 침대 위에 올라가 편안하게 누워 있다가 유진에게 말했다.

“자기야 뭐 해. 어서 누워.”

유진은 머뭇거렸지만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웠다. 두 사람 모두 침대에 눕자, 피부 미용사가 오일이 담긴 카트를 밀고 침대로 다가왔다.

“아로마 오일 마사지부터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갈색 유리병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순간 지독한 악취가 터져 나왔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

쥐똥 냄새.

시큼한 위액.

상처의 썩은 냄새.

배설물.

토사물.

그리고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피 냄새!

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유진은 입을 벌렸지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일어나 달아나야 한다는 건 생각뿐, 딱딱하게 굳은 몸은 침대 위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새까만 옷을 입은 피부 미용사가 다가왔다. 새빨간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 눈이 웃고 있었다.

이건 아미의 꿈이 아니야!

유진은 깨달았다. 이것은 아미의 꿈이 아니다. 유진 자신의 꿈이었다. 단 한 번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러나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꾸고 또 꾸었던 꿈속에 유진은 아미와 함께 들어와 있었다. 유진이 그 사실을 깨닫자 주위의 풍경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 이게 뭐야?”

아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렸다. 핏빛 눈동자를 가진 피부 미용사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새하얀 침대도, 깨끗한 돌바닥도 없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암흑. 실낱같은 빛조차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암흑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나의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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