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모든것이었던

  • 장르: 추리/스릴러, 일반
  • 평점×5 | 분량: 44매
  • 소개: 화장장에서 나누는 다섯 사람의 대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더보기
작가

모두에게 모든것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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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중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모니터에 떠오른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섯명의 사람들은 숙연한듯 고개를 푹 숙였다.

 

나이가 든 여성은 또다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녀의 옆 남자는 말없이 어깨만 두드리고 있을뿐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어떤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그 사람을 위해 마지막 예를 지켜준 것인지, 혹은 차마 이야기를 꺼낼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지. 대기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교복을 입은 남녀가 조용히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하…”

 

고요한 방안의 분위기를 깨는 깊은 한숨. 나이 든 여성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던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 본채로 한숨을 쉬었다.

 

그도 눈물이 터져나오려는지, 눈만 꿈뻑꿈뻑대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창문 밖을 조용히 지켜보던 여학생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정말 가버린거에요…? 그 언니가 이렇게 갈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창문에 손을 살짝 대고는 바깥의 차디찬 광경만 바라봤다.

 

“진짜 가버린거냐구요…”

 

여학생은 또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헝클어진 머릿결 사이로 눈물이 떨어지는게 보인다.

 

그녀의 옆에 서있던 남자는 그녀의 어깨만 말없이 매만졌다. 울음이 터져나올것만 같았지만 그는 참을수 밖에 없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손가락까지 걸고 눈을 마주치며 했던 말이 있기에 그는 어금니를 꽉 악물고는 시큰거리는 느낌을 참으려 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남기고 훌쩍 떠나는게 어디있어…”

 

그녀는 애써 울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눈물을 참는것이 힘든 듯 보였다.

 

닦고 또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그녀는 방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남학생은 그녀를 따라나가려 대기실 문 손잡이를 꽉 잡았다.

 

“냅둬라.”

 

팔짱만 끼고 화면을 보고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회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던 그는 안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씨팔 진짜. 개같아서…”

 

“야, 진현민.”

 

“뭐요. 틀린말했어요?”

 

“그래도 니 동생이잖아.”

 

현민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 라이터의 부싯깃을 긁었다.

 

하지만 이미 기름이 다 되어버린건지, 약한 스파크만 두어번 튀고 불은 켜지지 않았다.

 

현민은 얼굴을 찌푸리곤 담배를 손으로 구겨버렸다.

 

“동생이면 뭐요. 틀린말 했나…”

 

그는 다 구겨져 끊어진 담배를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갈색 담뱃잎들이 여기저기로 흩날린다.

 

“아무것도 안남기고 이렇게 가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의 입가는, 애써 태연한 척 하려는 듯 꾹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한참을 참았던 것인지, 강한 척을 하려는 것인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한방울의 눈물을 흘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문고리를 잡고있던 남학생은 걱정되는듯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어다 보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바깥에서 한기가 살짝 밀려들어왔다.

 

그는 다시 앉아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5일동안 장례식장을 지켰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떠난 그 한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야했던 그 자리에서, 그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떠났다는 그 자체가 너무도 무거웠기에, 떠났다는 그 자체가 너무도 믿기 힘들었기에.

 

“그렇다고 스스로 그렇게 떠나버리면 어떡해요, 형… 이러면 안되는거잖아요.”

 

황명철이라는 명찰을 단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는 문고리쪽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갑작스레 방을 뛰쳐나간 자신의 친구가 걱정되는 것인지, 그는 문밖을 쳐다보기만 했다.

 

“쟤… 그냥 둘거에요?”

 

“그럼 어떡할라고?”

 

“안달래주면…”

 

명철은 말을 하다 입을 꾹 닫았다. 만약 상영과 둘만 있었다면 내질렀겠지만, 지금 죽은 그 사람의 부모와 같은 방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을 돌봐주던 그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그것도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떠날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언제나 고통스럽다고 말했었지만 차마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현민은 난처해하고 있는 명철을 보고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사람이 꽉 차있던 방안은 세 사람만 남아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중년의 여성을 달래고는 방을 서성이던 남자는 명철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현정이가 그 전부터 이야기를 했었니?”

 

“네?”

 

“현정이가 자기 죽을거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냐고.”

 

명철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죽일 것처럼 쳐다보고 있는 남성의 이글거리는 눈길에, 남성이 자신에게 표출하고 있는 분노에 기가 눌린듯 고개를 살짝 내리깔았다.

 

“네… 있어요…”

 

“자주 그랬어?”

 

남자는 명철의 어깨를 꽉 잡고는 벽쪽으로 살짝 밀쳤다. 숙이고 있는 얼굴을 보려고 하는 듯, 그는 억지로 힘을 주어 명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뭐라고 했었어?”

 

명철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가 머리를 들어 올렸을때 본 것은, 눈물 두어줄기가 흐르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었다.

 

“뭐라고 했었냐고!”

 

쾅. 남자는 다시 한번 명철의 어깨를 부여잡고는 살짝 밀쳤다.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벌겋게 핏줄이 터진 그의 눈동자와 입에서 튀어오르는 파편들에서 보이는 것은 분노였다.

 

“힘들다고 했었어요… 괴롭다고… 하루하루 사는게 너무 숨막힌다고 했었어요… 빠져나오지 못할거라고 했었구요…”

 

명철의 어깨를 잡고 있던 힘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애비라는 새끼가… 애가 괴로워 미치겠다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는 힘없이 명철의 어깨를 놓고는 다시 중년 여성의 곁으로 돌아갔다.

 

“여보… 미안해… 내가 못난거야 내가…”

 

그는 자신의 아내 어깨만 두드리고는 그녀와 같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통한일까, 아니면 억울함일까. 그는 실핏줄이 모두 터져버린 벌건 눈에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있었어도, 달리 할 수 있는것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화장중이라는 글자만 떠있는 전광판 아래에서, 세사람은 말없이, 멍하니. 망령들처럼 멍하니, 표정을 잃은채로 눈물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선배는 저한테 많은걸 열어줬어요.”

 

명철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침묵을 깬 그의 한마디에 두 중년 남녀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을 쳐다보지 못하는 명철은 고개만 푹 숙인채로 말을 이어갔다.

 

“전학을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이리저리 채이면서 지냈어요. 겉돌기만 했고. 그때 만난게 선배였어요. 작가 동아리 들어가서 그냥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지내야지 싶어서 들어갔는데 선배를 만났었구요.”

 

명철은 또다시 울컥하며 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는듯 주먹을 꽉 쥐었다.

 

“선배 아니었으면 전 출간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했을거에요. 소재를 던져준것도, 제 글을 봐준거도 선배였고, 퇴고를 도와준거도 선배였어요. 그런데…”

 

명철이 말을 마저 잇질 못했다. 그가 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또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때, 반투명 유리문이 다시 안쪽을 향해 열렸다. 나갔던 두 사람이 다시 대기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닫히는 문 틈으로 또다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춥다는듯 몸을 떨지 않았다.

 

멍하니, 그냥 앞만 바라보고 넋을 놓고 있었지 그 어떤 누구도 춥다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명철은 들어오는 두 사람을 살짝 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웃기만 하던 선배의 모습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동아리방에 가끔 들어올때면 옷이랑 노트가 다 찢긴채로 울고있는 선배를 봤어요. 찢겨진 옷 틈으로는 베여있는 상처나 긁힌 상처가 가득했었어요. 어떻게 도와드리질 못했어요.”

 

“그걸 가만 두고만 있었냐?”

 

부인을 다독거리고 있던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말을 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었다. 붉다 못해 불길을 내뱉고 있었다.

 

“도와드렸어요. 그런데…”

 

명철은 말을 멈추고는 교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배에는 선명한 멍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렇게 끝났어요. 나중에는 아예 동아리실 앞에서 문을 막고 절 못들어오게 밀치기만 했어요. 방 안에서는 비명소리에 물건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었구요. 몇번이고 밀치고 방 문을 열어보려고 했어요.”

 

“그건 저도 여러번 봤어요.”

 

눈물을 닦고 들어온 여학생이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는 엄청 힘들어했어요. 가끔 둘이서 하교할때면 말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말없이 흘렸어요. 말없이…”

 

여학생은 같이 들어온 현민의 부축을 받아서는 살짝 의자에 몸을 누였다.

 

“제가 항상 물었어요. 언니 왜그래요? 선배 왜그래요? 말이 없었어요. 아무런 말도. 그냥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고. 그렇게 답만 했어요.”

 

“저한테도 언제나 그랬어요. 명철아, 니 글은 어떻게 돼가? 잘 써져?”

 

“나한테도 그랬어. 대회 입상했다면서, 많이많이 축하해. 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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