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 (Projection)

  • 장르: 일반, 기타
  • 평점×4 | 분량: 32매
  • 소개: 그들의 이야기, 혹은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혹은 나 자신의 이야기. 더보기
작가

투사 (Pro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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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정현씨, 수고했어요!”

 

가방을 둘러메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하루도 정말 힘들었다. 들어오는 잡무 처리도 하고, 사무보조 일도 하고, 이런저런걸 끝내고 보니 벌써 8시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터라 울적하긴 하다.

 

아무리 이런게 일상적이라곤 하지만, 가끔은 집에 제시간 맞춰서 가고싶단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회사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멍하니 기다리기만 한다.

 

고층에서 1층으로 내려갈때 까지.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스친다.

 

난 오늘 열심히 했던가.

 

오늘 일은 열심히 했던가.

 

오늘 일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오늘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많이 웃고, 얼마나 많이 찡그리고, 얼마나 많이 눈물을 삼켰는가.

 

웃긴 했을까? 살짝 미소라도 지었을까?

 

대리님이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시기도 했다. 그래. 그땐 잠깐이나마, 희미하게나마 웃었던거 같다.

 

괴로운게 더 컸던거 같다. 힘들다는 마음. 애써 괜찮을거라고 스스로 위안삼는 그 마음.

 

조금이라도 쉬고싶다는 그 마음. 그냥 다 던져놓고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마음.

 

그런게 더 컸던거 같다.

 

그래, 실수한 내가 잘못했다. 잘못하지 않았다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그정도로 혼이 나고 쿠사리를 먹어야 했을까.

 

뭐 이딴 새끼가 다있냐는 말을 듣고 종이 뭉치를 얼굴에 쳐맞아야 했을까.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몇 안보인다.

 

다들 벌써 퇴근 했겠지. 나처럼 남아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몇 되나보다.

 

동지일까. 저 사람들도 나처럼 힘든 하루를 보냈을까.

 

지친 마음에 터벅터벅 한걸음씩 바깥으로 옮겨나가며, 언제쯤 집에 가지, 집에 빨리 가고싶다 그러며 한시간 한시간을 견디고 있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숨쉬기 힘들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저 사람들은 나랑 같을까.

 

나와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철로 한걸음 한걸음씩 터벅대며 걸어가는 저 사람들 하루는 나와 비슷했을까.

 

얼마나 피곤했을까.

 

얼마나 거지같았기에 저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모두 돌아다니는걸까.

 

하기사. 나도 무표정한걸.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왜이리 눈이 퀭하지.

 

한 열흘정도 제대로 못자고 일을 해대니 당연하겠지.

 

지하철이 언제쯤 올까 싶다. 늘 들리는 그 흥겨운 노래마저도 들릴 생각이 없고, 그저 시간만 떼우듯 난 숨만 쉬고 있다.

 

난 폰을 꺼내들었다. 음악이라도 듣자 싶다.

 

그냥 이렇게 시간이나 때우고 있다보면 언젠간 지하철이 오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늘 회사에서 하루하루 시간때우며 ‘언젠간 시간이 오겠지. 퇴근할 그 시간이 오겠지’ 하면서 앉아있는 그때처럼.

 

귀에 이어폰을 살짝 눌러 꽂고는 이어폰 버튼을 살짝 눌렀다.

 

노래가 뭐든 나오겠지.

 

어짜피 내 라이브러리에 있는 노래중에 내가 싫어하는 노래는 딱히 없으니 큰 문제가 있을까 싶다.

 

늘 똑같은 하루에 치여 살고 늘 똑같은 그 루틴대로 늘 똑같은 그 시간에 집에서 나서고 집에 들어가고.

 

늘 똑같은 생활만 하는데 노래 하나 고를 필요 있을까.

 

어짜피 있는 노래는 늘 있는 그 노래고 쳇바퀴 돌아가듯 나왔던 노래가 또 나오고 하는걸.

 

첫 노래는 아무 가사 없는 연주곡이다. 기타 바디를 퉁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멍하니 스크린도어에 비친 날 바라본다.

 

반쯤 풀려 와이셔츠 첫번째 단추 언저리에 걸려있는 넥타이, 팔에 대충 걸쳐놓은 외투, 지친듯한 얼굴.

 

선명하게 보이는 다크서클, 무표정한 얼굴. 쓸쓸한 눈빛에 측은한듯 바라보는 눈길.

 

잘 보인다. 너무나. 저 눈빛은 나를 위로하는 눈빛일까 아니면 불쌍한듯 바라보는 눈빛일까.

 

힘든것같다. 너무나 힘들어서 입조차 떼는거도 힘든 사람 처럼 보인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피로에 찌들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은 사람마냥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불쌍하다. 너무나 불쌍하다 못해 멍청해보인다.

 

사람인가. 저게 사람인가. 그냥 기계같다. 아무 영혼 없는 기계같다.

 

측은한 마음이 문득 들어 조금이나마 힘을 주려고 웃음을 지어봤다.

 

거울속의 사람도 웃음을 짓는다.

 

휭하니 지하철이 지나가며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지하철의 불빛에 가려져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뻐근한 어깨를 살짝 푸니 지하철이 멈추고, 난 열린 문을 지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다행인지 뭔지 자리가 많이 남아있다.

 

벌써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건지, 아니면 오늘 일을 가지 않은 사람이 많은건지.

 

문 옆쪽 자리가 남아있다. 이걸 못잡으면 또 불편하게 사람들 사이에 콕 끼여서 앉아 가야겠지.

 

난 누가 앉을새라 급하게 몸을 날려서는 구석자리에 앉았다.

 

다행이다.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앉아갈 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적어도 30분 이상은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데 앉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같기만 하다.

 

연장 끝나고 집에 갈때면 항상 9시 언저리였는데, 그때는 앉기는 커녕 맨 끝 차 벽쪽에 기대서 내내 서서 가야만 한다.

 

적어도 그런 날들보단 낫겠지.

 

난 눈을 살포시 감았다. 너무나 피곤하다.

 

혹시나 잠들어버려 환승역을 놓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게 대수인가.

 

치익. 퉁퉁거리는 이어폰 속 노래 너머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고는, 열차가 출발하는 느낌이 든다.

 

집으로 간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건가 싶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너머로 봤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지쳐있는 사람. 지쳐있는 내 모습. 더이상 봐야하나 싶다.

 

저렇게 지쳐있는데 왜 저리 지쳐있는 걸까.

 

사람이 저렇게 지쳐있어도 되는걸까.

 

난 뭘 위해서 이렇게 일을 하고 지쳐있을까. 살짝 눈을 떠서 지하철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아까 봤던 그 모습이랑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잃은채로 그저 그렇게 지나가기만 한다.

 

나도 나에게 관심을 잃었을까. 나는 왜 이리 지쳐야만 하는걸까.

 

얼마나 더 일을 해야할까. 나는 왜 일을 하는걸까.

 

처음에 일을 구했던 이유가 뭘까. 난 무슨 마음으로 일을 구했던걸까.

 

뭐때문에 일을 하려고 했던 걸까. 그 이전에 난 뭐를 하고 싶었던걸까.

 

내 꿈은 뭘까. 꿈은 뭐였을까.

 

꿈.

 

그게 뭐였을까.

 

시간이 너무나 지나고 또 지나서. 잊어버린 것 같다.

 

희미한 무언가로 남아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난 뭘 원했던걸까.

 

예전 기억을 더듬어 가도 희미하기만 하다.

 

마치 무언가가 날 눌러놓은 듯,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은 무슨. 머나먼 저편으로 날라가버린 먼지같은 그게 기억날리가 있을까.

 

어릴땐 그래도 눈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