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한숨부터 나온다. 아무리 돈 좀 더 벌어보자고 한거지만, 밤시간대에 옷 잔뜩 차려입고 나와서 열쇠나 흔들고 앉아있다니.

차라리 그냥 집에 누워서 티비 프로나 몇개 더 보고 앉아있을걸 그랬나 싶다.

“아이고… 그러게 왜 대신 서준다 그랬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책상에 다리를 척 걸친 동료가 보인다. 그는 사무실로 걸어들어온 나를 보고는 모자를 살짝 흔들어 주었다.

그러게. 왜 대신 서준다고 했을까.

난 경비 책상 위에 홍삼 액기스 파우치를 던졌다.

“어이구, 뭐 이런걸 또 다 주신담?”

아무 고민없이 확 낚아챈 그는 파우치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 시간까지 고생 했잖어. 나도 이거 빨리 먹어서 없애야하니까 한포 줄때 쳐먹어.”

“아이고, 감사해 죽어부리겠습니다.”

그는 봉투 위쪽을 살짝 뜯고는 홍삼 액기스를 단숨에 털어넣었다.

아껴먹기라도 하지. 비싼건데.

아무리 나도 받았다고는 하지만 한팩 한팩 없어지는게 아깝긴 하다.

선심쓰듯 주긴 줬지만, 그래도 저렇게 소주한잔 쪽 빨아먹듯 먹어버리다니.

“허허. 사실 고생은 나보다 자네가 더 많이 해야하는거 아닌감. 이 개같은 회랑에서 야간 경비 서는 일이 쉬운건 아닌데.”

그는 모자와 외투주머니를 비우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인지 뭔진 몰라도, 그는 황급히 주머니를 비우고 일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낸들 이렇게 갑자기 대타 설 줄 알았나. 어찌나 급했는지 제대로 인수인계도 안해주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출발한거 같더니만.”

“그 친구가 원래 그래. 자네가 좀 이해해야지 어떡하겠어.”

난 그가 열쇠와 집기들을 내려놓는 족족 내 경비복 주머니와 옆구리춤에 하나씩 장비를 장착시켰다. 철렁거리는 열쇠와 차가운 랜턴의 감촉이 느껴졌다.

허리춤이, 그리고 내 하반신 전체가 다 무거워진 것같다.

“아니 우리 센터에 야간 서는 사람이 경호랑 그놈밖에 없는데, 그럼 인수인계라도 잘 해줘야 카바리 치러 들어온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할지.”

난 투덜거리며 그에게 몇마디를 내질렀다. 더럽다는 기분이 사라지질 않는다.

그는 가스총을 내게 건내어 주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 무슨 뭐 거창한 비밀이라도 있는 마냥 자꾸 감추려고 하는게 나도 영 탐탁치는 않지. 근데 뭐 어떡하겠나. 센터장이 경호랑 그놈한테만 경비를 맡기려 하는걸.”

어이가 없다. 잠깐 뇌가 정지한듯 말문이 턱 막혔다.

“아 그럼 경호 데려다가 쓰면 되는거지 왜 나를 이렇게 덥썩 대타로 넣은건지 모르겠구만…”

난 퉁명스럽게 그에게 말을 던졌지만, 그는 어쩔수 없다는 듯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둘 다 안된다고 하는데 그럼 어떡하남. 비번인 자네라도 서야지.”

“그렇다고 그 다음날 주간조가 바로 야간으로 대타 뛰라고 하는건 양심이 없는거 아녀.”

“참… 걱정 말어. 뭔일 있겠어?”

그는 내 옷매무새를 마저 만져주고는 경비모를 살짝 툭 쳐주었다.

“괜찮을거니께 너무 걱정말어. 만약 야간이 그렇게 위험했으면 경호하고 관식이 두놈 목숨줄도 달아났던지 했겠지. 일을 그만뒀든가.”

마지막 인수인계 절차를 마치려 카드키를 집어든 그는 칠판 옆의 보관함을 가리켰다.

“저기 안에 매뉴얼이 있을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할일 없거나 확인할 거 있으면 저거 열어서 확인하면 되고.”

“아,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퇴근이나 혀.”

그는 카드키를 보안 패널에 찍고는 나에게 다시 카드키를 넘겨줬다.

“이거 잃어버리면 자네는 뒤지는거니까 알아서 잘 하드라고. 나도 혹시 모르니까 전화는 열어놓을거여. 혹시나 문제 생기면 전화혀.”

사복 외투를 집어든 그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싶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센터. 고요하기만 하다. 어짜피 사람도 없는거 그냥 문에다가 경비업체 하나 걸어놓고 사람을 빼면 될거 가지고 굳이 이렇게 인력을 써가면서 지켜야 하나 싶다.

난 매뉴얼이라도 살펴보려 보관함을 열었다.

두꺼운 주간 보안 매뉴얼 위쪽에 얇은 책자 하나가 보였다.

겉표지에 야간 보안 매뉴얼이라고 적힌걸 보니, 이게 아까 내 동료가 말하던 그건가 보다.

하지만 양이 너무나 차이났다.

심할정도로.

주간 보안 매뉴얼은 웬만한 백과사전 한권 분량은 되면서, 야간 매뉴얼은 종이 몇장만 달랑 묶어놓은 듯 너무나 얇았다.

난 첫장을 펼쳐봤다. 큰 내용조차도 없었다. 단지 기본 기조는 주간 보안 매뉴얼을 따른다는 내용이 우선적이었다.

뒤쪽 페이지를 살짝 열어보곤 난 화들짝 놀라 매뉴얼을 떨어트렸다.

이리저리 검은 색연필로 무차별적인 선긋기. 정신이 풀려버린 사람이 펜 하나를 꽉 쥐고는 이리저리 긋기만 한듯 불규칙적인 문양이 온 페이지에 가득차있었다.

그 어떤 글자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여기 저기로 뻗쳐나가는 수없는 가시들이 페이지에만 가득 차 있을뿐이었다.

머리 뒤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어 홱 고개를 돌려봤다.

휘잉.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지고, 블라인드가 이리저리 흔들리는게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뭔가 싶다.

매뉴얼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려 이리저리 살펴봐도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다.

난 책을 덮고는 보관함 안에 대충 던져두었다.

사람이 찾아오지도 않을 텐데 특별한 일이 생기기나 할까.

주간에 그러는 것처럼 두시간마다 한번씩 순찰 돌러 가면 되겠지.

우선 자리 깔고 농땡이나 치기 전에 아래쪽이나 한번 돌고 와야겠다.

어짜피 손전등이랑 열쇠꾸러미를 주머니에서 푼게 아니니 잠깐 다녀와도 상관은 없겠다.

난 모자를 챙기고는 손전등을 한번 켜봤다.

배터리 충전이 잘 됐는지 환한 불이 느껴진다.

경비실 문을 나서서 바깥을 비춰보니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야간 애들이 느꼈을 고요함과 고독함이 이런거였을까 하는 생각도 머리속에 스친다.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야간을 맡기지 않으려는 것인지.

평소에 야간 경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때면 소장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냥 돌아가’ 라는 말만 꺼냈었다.

오늘은 왜 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나를 불러낸걸까. 왜 하필 오늘같은 날 그렇게 화색을 하며 나를 불러냈던걸까.

애초에 지인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이상했다. 그 두놈이 한번에 빠지는거도 이상하고, 아무리 비번이라고 해도 항상 연락은 남은 한사람에게 먼저 했을건데…

마음같아선 전화를 해보고 싶긴 하다.

경호놈이든 관식이든… 전화라도 때려보고 싶다.

나오기 싫었던건 아니다. 나오기 싫었다기보단… 의아했다.

혹은 소장이 생각하고 있던 다른 무언가가 있나 싶었다.

생각 깊이 해서 뭐 좋을거 있을까.

이런 저런 마음이나 정리하는 시간이 될까 싶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면서 2층을 둘러보니 그냥저냥 괜찮다. 문이 열린 곳도 없고, 블라인드가 덜 내려진 곳도 없다.

혹시나 싶어 대강당을 살짝 둘러봤는데, 거기도 특별히 확인할 만한건 없다.

이제 1층만 한번 둘러보면 되겠지.

거부감부터 들긴 한다. 센터 구조상 1층의 반은 반지하처럼 되어 있는지라, 교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곰팡이 냄새가 지독시리 나는 곳도 있다.

1층 가장 안쪽 창고와 예체능 강의실쪽은 더 심하다.

터가 터여서 그런지, 북향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늘 갈때마다 싸늘한 공기가 불어온다.

아마 귀신같은걸 믿지 않는 사람도 거기에 서있으면 오금이 후달거릴것이다.

단순히 춥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아니다.

서늘하다. 등골을 누군가가 송곳으로 쑤시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1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서서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단의 첫머리부터 찬바람이 숭숭 불어온다.

난 손전등으로 계단 아래쪽을 살짝 비춰봤다.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듯 먼지가 한쪽방향으로 계속 불어오고 있다.

귀를 살짝 귀울여봤다. 무언가가 우는 듯한, 아니 좁은 틈으로 바람이 단숨에 불어오는 듯한 괴기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칠판을 손톱으로 죽 긁어내리는 듯 한 바람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온다.

야간 경비를 서는 두놈도 이 소리들을 들었을게 뻔하겠지. 이게 일상적인 무언가는 아니겠지.

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발을 떼며 아랫층을 향해 한걸음씩 걸어 내려갔다.

스텝 하나하나를 밟아 가는 느낌이 불쾌하다.

한걸음을 밟아 내려가니 냉기가 발목을 타고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걸음을 더 밟아 내려갔다. 서늘한 기운이 발목에서부터 천천히 더듬고 올라오며 내 하반신 전체를 감싸는 것 같다.

목 언저리가 쭈뼛하고 서는 기분이 들었다.

난 또다시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끼이이이익…

복도의 가장 안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아주 천천히 민 듯 한 철문 소리가 들려온다.

“미친…”

손전등을 들 수가 없다.

손전등을 들어 옆쪽을 비출때 누군가가 서있을 것만 같다.

누군가가 내 뒷목에 차가운 손을 올려놓은 느낌이 든다.

서서히, 또 아주 서서히 무엇인가가 내 뒷목을 만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