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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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시다. 시간 끌지말고.”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원탁 위에 리볼버를 내려놨다.

둔탁한 쇳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텅 빈 시멘트 방 한가운데에는 검은 테이블보가 씌워진 원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탁자 위를 비추는 작은 할로겐 램프만 대롱대롱 매달려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의자를 드르륵 끄는 소리가 들리곤, 털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안에선 숨소리만 들린다.

“우리… 아니… 이거밖에 없는거에요?”

끼이익. 철제 의자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끌어 당기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의자 다리에 붙어있어야할 고무 캡이 빠졌는지, 기나긴 쇳소리가 들렸다.

“앉으세요 빨리.”

이미 의자에 앉은 검은 모자는 리볼버의 실린더를 뽑아냈다. 끼릭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실린더가 빠져나왔다.

그는 원탁 위에 총알 여섯발을 내려놨다.

“그럼 약속한대로 합시다. 둘중 하나는 살아야지.”

그는 가장 위쪽 약실에 38구경 탄환을 하나 밀어넣었다.

“안그래요? 둘중 하난 살아야지. 둘다 죽으면 안되잖아.”

냉정하게 한마디를 내뱉는 그의 눈빛은 서늘한 안광만을 내비추고 있다.

검은 모자는 총을 살짝 튕겨 실린더를 밀어넣고는 총 끝으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먼저 하실래요? 아님 내가 먼저 할까?”

그가 총을 머리에 두드릴때마다 둔탁한 쇳소리가 울려퍼진다.

툭. 툭. 툭.

그의 맞은편, 안경을 쓴 남자가 의자를 끌어당기며 앉는다.

애써 원탁 위로 손을 올려 깍지를 낀 남자의 검지 끝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 이래야 하는거에요?”

안경남은 살짝 안경을 고쳐쓰려 테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툭툭 거리는 쇳소리에 그의 손 끝은 미친듯이 떨려왔다.

“안그러면 15억 어떻게 갚을거에요? 자, 빨리 결정해요. 그쪽 아님 나. 누가 먼저?”

검은 모자는 원탁 위에 다시 리볼버를 내려놨다.

“우리 선택권이 있다고 했잖아요. 당신도 나도 선택해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닌거 같아서 그래요.”

안경남은 힘없이 손을 원탁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조용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래서요. 먼저 할거에요? 아님 내가 먼저 할까?”

검은 모자는 리볼버를 휙 낚아채곤 머리에 총구를 갖다댔다.

“있잖아요, 난 이거 아니면 길이 없어요. 내가 방아쇠 당기면 둘다 낙장불입인거 알죠?”

까드득. 검은 모자는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미래도 없는 선택을 왜 하려고 그래요… 우리 한번만 좀 같이 고민해봅시다. 네?”

안경남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또다시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손을 뻗어 검은 모자를 조금이나마 멈춰보려 했다.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지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우리… 여기서 끝나면 진짜 영영 기회는 없는거잖아요. 제대로 다른 방법 생각해보지도 않고 이러면 결국은 후회하는거잖아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직 완전히 당긴거 아니잖아요.”

방아쇠를 당기던 검은모자는 손가락을 잠시 멈췄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던 안경남은 방아쇠를 당기던 손이 멈추자 그조차 몸이 얼어붙었다.

검은모자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안경남을 쳐다보자, 서로 눈이 마주쳤다.

안경남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머뭇거리고 있는 그의 손은 테이블 한 가운데 멈춰있었다.

환하게 빛나던 할로겐 전구의 불빛이 그의 손톱에 반사되어 검은 모자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검은모자는 씁쓸한듯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 알아요.”

그는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틱!

방아쇠 앞은 비어 있었다. 고요한 방을 찢는 굉음 대신 들려오는 빈 쇳소리.

“아…”

안경남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포기라도 한것일까, 체념이라도 한 것일까, 그는 힘없이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은모자는 조용히 리볼버를 내려놓고는 안경남쪽으로 총을 밀어줬다.

“빨리 하시죠. 굴리시든, 굴리시지 않든, 그건 그쪽 선택이니까.”

검은모자는 원탁위로 손을 올려놓았다. 가지런히 모아놓은 그의 손은 이곳저곳 얼룩이 묻어있다.

안경남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리볼버를 집어들었다.

그는 손으로 살짝 실린더를 만져봤다.

발사된적 없는 총의 차가운 감촉이 그의 손 끝으로 느껴졌다.

“으…”

“빨리 하세요.”

똑. 똑. 검은 모자는 원탁위를 노크하듯 책상을 두드렸다.

안경남은 눈을 꽉 감고 실린더를 돌렸다.

차르륵 소리가 나며 실린더는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카지노의 룰렛이 돌아가듯, 실린더는 자신 속에 들어있는 총알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묵직한 쇠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너무나 뜨거웠다.

“으…”

“당기세요. 빨리 끝냅시다.”

검은 모자는 조용히 몸을 누이고는 팔짱을 꼈다. 자신이 넘은 산을 자신의 앞 사람도 넘기 직전, 그를 관망하듯 눈길을 보냈다.

“왜 그랬어요… 왜…”

안경남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눈물이 흐르려 하는지 그의 목소리는 손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왜그랬겠어요?”

검은모자는 바닥으로 침을 한번 뱉고는 다시 팔짱을 고쳐꼈다.

“왜 그랬냐. 알잖아요. 어짜피 바닥인생인거. 백날 공사장에 고깃집에 돌면서 갚으려고 해봐야 뭐해요. 거기서 거긴데. 어짜피 배린 몸, 이거로 끝내면 마음이나 편한거잖아요. 안그래요? 빨리 하세요. 어짜피 둘중 하나는 여기서 못나가는거 그냥 빨리 해버리고 치우자고.”

안경남은 머뭇머뭇대며 방아쇠를 머리에 가져다 댔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니 느껴지는 중압감. 그는 숨을 쉬기 힘든지 점퍼의 지퍼를 살짝 내렸다.

“무책임해요.”

“뭐라고요?”

“무책임하다고요.”

안경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돈 빌린건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진데 뭘. 방아쇠 당겨요.”

검은모자는 안경남의 눈에서 흘러내린 억울함을 보지 못한듯 하다.

똑똑. 그는 또다시 원탁을 두드렸다.

“으…”

안경남은 천천히 검지손가락에 힘을 넣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모자의 귓가에도 똑같은 소리가 울려퍼졌을 것인데도, 검은모자는 냉정하다.

조금 더 힘을 준듯, 검지손가락은 점점 더 깊이 방아쇠로 말려들어갔다.

까드득. 방아쇠가 내부 기계장치를 물었는지 점점 노리쇠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당겨요.”

검은모자는 이를 악물고 말을 내뱉었다.

까드득. 또다시 더, 조금 더 노리쇠가 뒤로 밀려났다.

“당겨.”

안경남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는 총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또다시 까드득. 노리쇠는 어느새 총몸에 닿을랑 말랑 재껴져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비어있는지 차있는지 모를 실린더를 향해 발사될 노리쇠는 안경남의 마지막 손짓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경남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이 굳어버릴것만 같은지,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당기라고!”

검은 모자는 책상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쾅! 또다시 고요한 방에 울려퍼지는 굉음.

안경남은 방아쇠를 마저 잡아당겼다.

-까드득…

-틱!

안경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리볼버를 원탁위로 던졌다.

원목으로 된 원탁위로 떨어진 리볼버는 움푹 패인 자국을 남기곤 검은모자를 향해 떨어졌다.

“허어… 허억…”

안경남은 미친듯이 떨려오는 손을 주체할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살짝 감싸쥐고는 눈을 감았다.

“어때요? 한번은 쉽죠?”

검은모자는 자신을 향한 리볼버를 집어들고는 또다시 실린더를 돌렸다.

“안그래? 이제 쉽잖아.”

그는 돌아가던 실린더를 손으로 잡아채고는 또다시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봐.”

그는 망설임 없이 총구를 머리로 가져다 댔다.

“난 살아남을거야. 개새끼야. 살아 남을거니까. 눈깔로 똑똑히 봐.”

까드득. 노리쇠가 뒤로 밀려났다.

안경남이 고개를 살짝 들자 총구가 살짝 미끄러졌다.

-틱!

“흐흐… 흐…”

검은 모자의 입에선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또다시 빈 실린더를 친 노리쇠. 검은 모자는 원탁위에 리볼버를 내려놓고는 안경남에게 총을 밀어줬다.

“다음번 하세요.”

안경남은 양손으로 총을 바투 잡았다.

손이 떨려 제대로 총을 잡을수 없는지, 그는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총구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으브..”

안경남은 자신의 입속에 들어와있는 차가운 한기를 느끼는지, 총신을 살짝 이빨로 깨물었다.

검은모자는 자신의 입속으로 총구를 밀어넣은 안경남을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 흐… 그래… 그렇게… 그렇게 하라고…”

안경남은 눈을 질끈 감고는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나는 노리쇠는, 망설임없이 총몸을 찍고는 실린더를 향해 질주했다.

-틱!

또다시 불발. 빈 공간만 허무하게 때린 노리쇠 소리가 들리자, 안경남은 총을 내려놓고는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제발… 제발 그만합시다… 제발…”

안경남은 원탁에 머리를 쳐박고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심장박동 소리가 귀에서 울려퍼지는지 그는 괴로운듯 지퍼를 내려 점퍼를 열었다.

“아직 돌릴수 있잖아요. 아직… 아직 기회는 남아있을거에요… 쿨럭… 쿨럭…”

검은모자는 다시 리볼버를 집어들었다.

“기회?”

그는 다시 리볼버 실린더를 굴렸다. 차르륵 소리가 나며 또다시 리볼버의 실린더가 굴러간다.

“없어 그런거.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게.”

다시 관자놀이를 향한 총구. 두번째로 댔던 곳보다 조금 더 내려간 턱뼈의 언저리에 걸쳐진 총구는 또다시 그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다.

“왜 없다고 생각해요. 왜…”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여길 왔었잖아.”

검은 모자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노리쇠가 또다시 뒤를 향해 나아간다.

“애초에 여길 오지 말았어야했어. 그렇지? 안그러면 이렇게 불어나고 불어날 일도 없었겠지.”

검은 모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방아쇠를 마저 잡아당겼다.

-틱!

빈 실린더를 치는 소리를 들은 안경남은 고개를 황급히 치켜들었다.

오지 않았어야할, 더 늦게 왔으면 했던 자신의 차례가 또다시 돌아왔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때, 그의 눈에는 파르르 떨리는 검은 모자의 입술이 보였다.

“끈질기네 더럽게. 끈질겨. 그렇지? 그렇잖아.”

검은 모자는 다시 리볼버를 내려놓고 안경남쪽으로 총을 밀었다.

“해, 빨리.”

원탁을 덮고있던 식탁보가 조금씩 흔들렸다. 나풀거리는 식탁보를 눈으로 따라가니, 잔잔한 파도의 시작은 검은 모자의 자리부터 흘러퍼졌다.

“하라고.”

안경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또다시 이를 악물고 리볼버를 집어들었다. 이미 두 사람의 땀에 달궈진듯 리볼버는 미지근했다.

땀방울이 묻어 살짝 흘러내리는 손잡이를 다시 잡고는 그의 머리를 다시 겨눴다.

눈알이 빠질것만 같았다. 안경남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또다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애초에… 애초에 이런거 보려고 저새끼들이 이딴거 시키는거잖아요. 우리 빌기라도 해봐요. 제발. 네?”

안경남은 또다시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었다.

노리쇠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를 한번만 더 들었다가는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이때까지 빌다가 빌다가 여기까지 온건데 뭘 빌어. 당겨.”

검은 모자는 원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기 시작했다.

“땅겨.”

“으….”

“당기라고.”

“제발…”

“당기라고!”

검은 모자는 주먹을 꽉 쥐곤 원탁을 세게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가 조용했던 방을 울려댔다. 메아리가 치듯 방을 돌아온 쾅 소리는 안경남의 귀에 박혀 멤돌았다.

안경남은 눈을 다시 꾹 감았다. 방아쇠를 당길 수 밖에 없었다. 당기길 원하든 원치 않든 그의 손을 이미 떠나간 일인듯 했다.

안경남은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왼쪽 손으로 오른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왼손에 힘을 주어 손목을 쥐어짜듯 누르니 그나마 검지가 움직이는 듯 했다.

그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또다시 까드득 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울려퍼졌다.

노리쇠가 점점 멀어지는게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 걸려있던 실린더에서 떠나 노리쇠가 멀어진다. 방아쇠에 힘을 주니 실린더가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게 느껴졌다.

만약 여기있는게 총알이라면. 만약 총알이라면.

그 다음 소리를 들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했다.

너무도 많은 길을 넘어왔기에,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힘을 줄 수 없었다.

아무리 손으로 움켜쥐려고 해도 그의 손은 고장난듯 움직이지 않았다.

실린더가 다음 칸으로 넘어간게 느껴졌다. 노리쇠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는 너무나 천천히, 그리고 음산하게 깔려 귓속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까드득. 조금 더 뒤로 밀려났다. 조금 더.

노리쇠가 실린더를 때린다면. 다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