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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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꽤나 차다. 안내판 옆에 걸린 온도계는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다.

불어오는 서풍에 맞춰 갈대들은 춤을 추고 있는듯 하다. 사선으로 누운 갈대들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겠다는듯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냉정한듯 무심한듯, 바람은 조용한 호숫가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갈대 너머에선 퐁, 퐁, 하는 작은 물소리만 들려올 뿐, 인기척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호수다.

바람이 조금이나마 약해져 갈대들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강렬한 두줄기 빛이 풀줄기를 비춘다.

누군가가 차를 타고 호숫가로 다가오는지, 차바퀴가 자갈을 걷어차는 소리가 호숫가에 울려퍼진다.

바퀴에 튕겨나간 돌 하나가 풀밭 사이로 날아가선 풍덩하는 물소리를 더한다.

끼이익, 드르륵.

운전자는 표지판 앞에 차를 세우곤 사이드 브레이크를 건듯 하다.

이내 우렁차게 배기음을 쏟아내던 엔진이 멈추고, 또다시 호수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운전석이 열리고, 검은 구두가 밖으로 툭 떨어진다.

제대로 신을 생각조차 없었는지 혹은 제대로 신을 정신조차 없었던건지, 운전자는 검은 구두를 대충 구겨신는다.

드르륵 소리가 나고, 차키를 뽑아든 운전자는 반쯤 열린 문 너머로 차키를 던진다.

깡!

열쇠와 USB가 여럿 묶인 차키는 표지판에 부딪혀 땅에 툭 떨어진다.

“아이씨….”

운전자는 차에서 박차고 일어나서는, 짜증난듯 문을 닫는다.

쾅!

고요했던 호숫가에 울리는 또다른 소리 하나. 운전자는 꽤나 크게 문을 닫았다 싶었지만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검은 양복에 군청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는 방향을 모르고 헝클어져 있고, 그의 얼굴에선 수염조차 한가득이다.

오랫동안 깎지 않았는지, 혹은 신경쓰지조차 못한것인지 수염과 살갗의 대비가 선명하다.

어수선한 머리와는 다르게 옷만은 검은색 양복에 군청색 줄무늬 넥타이다.

그마저도 군데군데 헤어지고 실밥이 뜯어져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모를것이다.

남자는 멍한 눈으로 표지판을 쳐다본다.

-진환호-

남자의 눈길은 갈대밭에 멈추곤, 서서히 그쪽으로 걸어간다.

고요한 호수에 찾아온 낯선 손님에, 갈대들은 서로 뭉쳐 떠는듯 바스락 소리를 만들었다.

남자는 표지판을 지나쳐 갈대사이를 스치고 호숫가로 들어간다.

남자의 눈가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있고 그의 자켓 소매는 하얗고 희미한 막이 가득 끼여있다.

울음을 참으려는 것인지 남자의 턱은 힘이 가득 들어가있다. 이를 악 물고 앞만 보고 있는듯 하다.

성큼성큼 갈대들을 한가득 헤치고 나아간 남자의 눈 앞에는, 물안개가 가득 낀 고요한 호수가 있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물결조차 일지 않는 조용한 호수. 그 가장자리에 남자는 우두커니 서있다.

구두 끝자락에 물이 닿은걸 느낀 남자는, 조용히 자켓을 벗어 옆 풀숲에 던지곤 수평선을 바라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남자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한방울 흘러 내린다.

이내 남자는 눈을 감고는 바라보던 먼곳을 향해 한발짝씩 발걸음을 옮겼다.

찰박 소리가 나며 물은 남자의 구두 밑창을 감싸고, 조금씩 또 조금씩, 구두를 삼켜간다.

남자는 희미하게 웃고는 팔을 쭉 벌려 앞으로 나아간다.

“뒤질거면 다른데서 뒤져 썩을 놈아. 고기 다 도망가.”

퐁, 퐁. 남자는 갑작스런 말소리와 물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다.

선글라스를 낀 노인이 말없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다른데로 가. 오도카니 있지 말고.”

남자는 무심하게 뱉어낸 욕에 울화가 올라왔는지 눈을 뜨고는 노인을 흘겨본다.

“멈춘 김에 발길 돌려서 다른데로 가, 이 놈아. 오늘 공쳐서 죽을 맛이니까.”

“거 영감님은 뭔 입을 그렇게 털어대십니까?”

남자는 벌리고 있던 팔을 힘없이 내리곤 노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노인은 관심 없다는 듯, 가장 오른쪽 낚시대를 거두어 들였다.

“썩을 놈이 내 낚시까지 망쳐놓을려는줄 알았더니 이젠 시끄럽게까지 만드네. 썩 꺼져.”

“거 뭘 아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남자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노인을 향해 소리친다.

노인은 무심한듯 의자 밑을 더듬거렸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미끼를 찾는 듯 했다.

“몰러. 내가 그걸 알아야하는가?”

노인은 헛기침과 함께 갈라진 목소리를 정리하곤, 미끼 통에서 지렁이를 하나 잡아 올려 낚시 바늘에 꿰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를 악 물었는지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낚시하는 사람 있으니까 저 멀리 가서 해.”

“뭘 말입니까?”

“한풀이 말이여 한풀이.”

노인은 무심하게 앞만 보고는 낚시대를 다시 던져넣었다.

퐁. 물속으로 빨려들어간 지렁이는 어느새 깊은 어둠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거 뭘 아신다고 자꾸 말을…”

“그럼 썩을놈아, 뭐하는 놈인지 말을 해 보라니까. 알아야 내가 말을 할수 있는거면 알아야 할거 아녀?”

노인은 다시 낚시대를 받침대에 괴고는 앞만 멍하니 바라봤다.

남자의 입에선 헛웃음만 터져 나온다. 알지도 못하는 먼곳에서 만난 낯선 노인은 너무나도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 있다.

남자는 이내 다시 먼 호수를 바라본다.

“알 필요 없습니다. 곧 다 의미 없어지는데 뭔 상관입니까.”

남자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는다.

“사람이 자네 혼자만 아니고 나도 있는데 그러면 의미 있는거 아니겠나.”

노인은 다시 아래쪽의 미끼통을 달그락대며 말했다.

남자는 놀라 다시 눈을 뜨고 노인을 쳐다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자의 눈썹은 한껏 올라간 채 노인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자네같은 사람 한둘 겪은거 같은가.”

노인은 낚시대로 손을 뻗고는 하나하나 건드리며 말했다.

남자는 의아한듯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자네같은 사람 한둘 겪은거 같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이 없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같이 물속으로 사라지려던 놈들이 한둘이 아니란 말일세. 혼자인줄 알고 찾아와서는 내가 있는걸 안게 한둘이 아니었는데 꽤나 물속으로 첨벙대고 가더니 답이 없더구만. 단 한놈도 말이야.”

남자는 노인쪽으로 몸을 틀어서는 귀를 기울인다.

“몇사람이었습니까.”

“그건 왜 물어보는건가?”

“몇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영감님께 뭐 물어볼수 있는거 아닙니까?”

실핏줄이 가득 터져 벌개진 눈을 한 남자는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몰러.”

“네?”

“모른다고. 한 열댓놈까지는 셌는데 이제는 까먹었어.”

노인은 낚시대 하나를 잡아채고는 말했다. 텅 빈 낚시대라는 것이 느껴질정도로 힘없이 딸려온 낚시대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노인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음 짓는다.

“그렇습니까. 적어도 그럼 외롭지는 않겠네요. 영감님도 있고 그 열댓사람도 있고.”

남자는 허탈한 마음에 눈이 비어버린다. 어딜 보고있는지 알수 없는 텅 빈 눈은 호수의 먼곳만 보고 있을 뿐이다.

“뭐를 하려거든 여기서 하지말고 다른데서 하라니깐. 고기 다 도망간다고 했을텐데. 이거 안보이나, 낚시대 빈거.”

“신경끄십쇼.”

“거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거좀 보소. 이 어린놈이 가정 교육이고 예절 교육이고 독학으로 배운건가? 싸가지가 없구만 그려. 부모님이 남한테 피해나 주는걸 어떻게 보겠….”

“그딴식으로 말씀하지 마십쇼! 그러는 영감님은 부모님께 얼마나 잘 하셨고 얼마나 깨끗하시길래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는겁니까?”

노인은 묵묵하게 미끼를 주워 끼고는 다시 낚시대를 드리웠다. 무심하게 앞만 보는 노인은 나지막히 말을 뱉었다.

“그러는 자네는 부모님보다 먼저 눈감으려고 하지 않는가. 부모님과 가족을 등지고 말일세. ”

남자는 노인의 말을 듣고는 입술이 움찔거린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으려는지 얼굴에 힘을 주었지만,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수 없는듯 하다.

남자의 눈물 한방울이 호수에 떨어져서는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낸다.

“안그러면 제가 못견디겠습니다.”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참는다. 축 처진 어깨 위의 짐이 눈물에 섞여 흘러 내리듯 남자의 눈물이 만든 파동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전들. 전들 어떻겠습니까. 전들 마음 편한줄 아십니까?”

남자는 울분에 찬듯 노인을 향해 몸을 돌린다.

“최선 다하고 싶었어요. 언제나 최선을 다했구요. 이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노인은 분노에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듣는듯, 듣지 않는듯. 그는 앞만 바라본채로 앉아있었다.

“하라는 대로 다 했었고, 까라면 다 깠습니다. 죽는 시늉을 하라고 하면 배를 깔고 엎드려서 죽는 척이라도 했구요. 그러면 뭐합니까. 그 개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저에게 돌아오는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 몸만 축나고 병만 늘어가지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전. 전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노인은 남자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크게 한숨을 쉬었는지 가슴팍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어르신. 전 말입니다. 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전 뭡니까? 전 어디에 있는거에요? 저란 사람이 의미는 있는겁니까?”

참을대로 참았는지, 흔들리던 어깨가 멈춘다. 남자의 눈에선 눈물만이 하염없이 흐른다. 툭 툭. 턱 언저리에서 모인 눈물은 잔잔한 호수 위에 힘없이 떨어진다.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됐어요. 사람들은 모두 저보고 유능하다고 해요. 그 젊은 나이 먹고 여기까지 올라온게 얼마나 피똥싸는 노력을 했는지 알겠다 그래요. 다음 부장 승진자 목록에 제 이름이 있다고 그럽디다. 근데 그러면 뭐합니까. 그러면 뭐해요. 전 찬밥입니다 어르신. 영감님. 전 찬밥이에요.”

노인은 말없이 남자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노인이 있는 곳까지 울려퍼진다.

“이야기 해 보게. 이 성치않은 노인네가 귀만큼은 제일 성하니 이야기는 들어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