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꾼의 노래

밀수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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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muggller’s Song
 

 

 

 

 

고대의 사략선

 

 

그를 발견한 것은 바람의 행성-3에서였다. 

 

맞다, 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곳이다. ‘바람의 4형제’ 중에서 가장 악랄한 땅. 모진 바람이 몰아넣는 구름층의 풍광과 그 아래에서 모든 걸 쓸고 가는 돌폭풍을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 바람 사막으로 들어가 족적을 감추려는 은둔자와 도망자들이 숨어드는 행성 말이다. 그곳의 초기 개척민들이 터를 잡고 이제 막 도시의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 네오요크(Neoyork)의 어느 술집에서 그를 본 것이다.

 

나는 그가 도망자라는 걸 알아보았다. 용병이라는 사실도.

 

2미터가 넘는 키에 근육이 기괴하게 발달한 강화 신체에는 무기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흙빛 얼굴에는 턱 골격을 따라 턱수염 대신 참가한 전쟁과 전투의 아이콘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그의 표정을 따라 고유의 색을 발했다. 말로만 듣던, 군인과 용병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성스러운 부르바할’ 문신이었다.

 

두 자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는 위협적이었고, 평소의 나라면 그런 강화인에게 말을 거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바람의 악마’에 취해 있었다. 당신이라면 온몸이 살인 병기에 술에 취해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용병에게 말을 걸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앉아선 ‘바람의 악마의 손자와 절친한 악귀’로 목을 축인 다음 술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떠드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퍼붓는 저주들 가운데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단어를 들었다.

 

“별을 좀먹는 벌레 같으니, 발할루다(그 용병들의 수호신 말이다)! 당신께 맹세코, 내 그놈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어 당신의 아침 밥상 위에 올려놓으리다! 기다려, 모호.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어디서 겨울잠을 자건, 이 더티 할리가 너를 찾아낼 테니까!”

 

내 관심을 끈 것은 당연히 그 이름이었다. 모호.

 

나는 스스로를 더티 할리(Dirty Harley)라 부르는 용병을 한동안 관찰했고, 용기를 내어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에게 바람의 악마가 더 필요하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내가 사주는 술로 인해 그는 온순해졌고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이어 예상대로 자신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봐, 친구. 자네는 내가 왜 이런 바람의 땅에 처박혀 있는지 궁금하겠지? 물론 나는 이곳이 필요해, 저 바깥의 돌폭풍이 나를 숨겨주거든. 난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며 추격자들을 따돌려야 해, 망가진 무기들이 다시 자라날 때까지는 말이야.”

 

“그러고 보니 몸에 흔적만 있네요. 용병에게 무기가 없다니, 발톱을 잃은 사자군요.”

 

“인정하지, 바로 그 꼴이 되어버린 거야. 만티코라(Marthicoras) 부대의 이 더티 할리가 말이야. 하지만 나는 항복하지 않았어. 나는 그것들 없이도, 맨몸뚱이 하나로 붉은 바다를 빠져나왔다고.”

 

“아, 그 해적들의 행성 말이군요.”

 

“그렇지, 행성 군대와 발할루다 용병들도 가까이 가길 꺼리는 해적들의 본거지 말이야! 그곳에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목이 잘려 바닷속에 피를 쏟아부어야 하지. 그곳의 바다가 붉은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그건 용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농담일 뿐이다. 붉은 바다는 그곳의 지질과 대기 때문에 붉다.

 

“이봐 친구, 자네는 내가 어떻게 그곳을 탈출했는지 궁금하겠지? 내게 술 한 잔을 더 대접한다면 기꺼이 말해주지.”

 

나는 바람의 악마를 더 시켰지만, 그가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는 관심 없었다. 내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나는 모호하게 물었다. “아까 그, 누군가에게 복수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름이 뭐였더라?”

 

“모호!” 그가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쳤다. “전 우주의 악당, 살육자, 사기꾼 모호! 누구겠어, 바로 그 모호지!”

 

“아하, 그 천 년 동안이나 우주를 떠돌아다닌다는?”

 

“그렇지. 그자가 우주를 떠도는 건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야. 모호는 항성간을 떠도는 잿빛 유령이야, 사이렌처럼 선원들을 홀려 우주선을 빼앗지.” 

 

더티 할리가 문신에 붉은색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그는 행성역사 연구자들의 평가를 읽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당연하다, 그는 용병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온몸이 무기인 자들은 글을 읽지 않는다.

 

“행성간 선원들은 다르게 말하던데요?” 나는 그를 자극해 보았다. “그들은 모호가 은하 최고의 조종사라고 해요.”

 

“하! 어떤 얼간이가 그따위로 치켜 부르지?”

 

“게다가 그는 용감한 선장이라죠, 작은 함선 하나로 유령함대를 상대한 적도 있대요.”

 

“그렇게 떠드는 자들은 모호가 얼마나 잔인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놈은 자신의 선원들을 학살한 살인마라고.”

 

“모호가 사르바흐의 구원자라는 소문도 있어요.”

 

“하! 그거야 소문일 뿐이지. 누가 그걸 증언하지? 게다가 사르바흐는 3백 년 전에 쑥대밭이 됐어. 이제 거긴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심지어 사르바흐를 그렇게 만든 것이 모호라는 소문도 있기는 하다.  

 

“모호가 은하에서 가장 악랄한 악마에 악당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내가 보장해. 내가 바로 그자의 꾐에 빠져 붉은 바다에 떨어졌으니까!”

 

“와우, 모호와 사연이 있었나 보네요?”

 

“왜, 듣고 싶은가, 친구?”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는, 바람의 악마를 한 잔 더 주문하며 말했다.

 

“당연히 듣고 싶죠.”

 
*
 

그가 모호를 만난 것은 공간이었다. 

 

당시에 그가 속한 무시무시한 만티코라 함선은 칸투 행성계 외곽을 날고 있었고, 보다 더 무시무시한 적의 기습을 받았다. 

 

자신의 능력이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운이 좋았던 더티 할리는, 행성간미사일이 날아올 때 선외 활동 중이었다. 덕분에 함선이 폭발하자 파편들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밀려날 수 있었다. 충격파로 갈비뼈가 모두 부러졌지만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소리 없이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함선의 섬광을 보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해들을 보았고, 하나의 빛으로 사라지는 적의 함선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관성으로 계속 날아갔다. 

 

그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지만 가능성이 많지 않았다. 주변에 살아남은 동료가 없는 것은 분명했고 우주복의 통신기는 근거리용이었다. 떠나온 소행성대 기지에서 통신이 끊긴 걸 알고 수색대를 보내겠지만, 기지는 0.2광년 거리였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폭발 지점에서 계속 멀어지는 중이었고 속도를 늦출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는 걸 안 더티 할리는, 우주복의 위치발신기를 켜고 생명유지장치를 조절해 잠들기로 했다. 부러진 뼈들의 고통과 진공의 공간에 홀로 던져진 공포를 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200시간 안에 도착해 자신을 발견하기만 바라며 잠들었다.

 

122시간이 지났을 때, 우주복이 뭔가를 감지하고 그를 깨웠다. 

 

만티코라의 함선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우주선이었다. 더티 할리는 그것이 어느 종족의 어떤 종류의 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선원 교육을 받았을 때나 보았던, 그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고대의 함선이었다.

 

더티 할리는 다시 시작되는 고통을 참으며 위치발신기를 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구조되는 건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함선이 소리 없이 방향을 틀어 다가온 것이다. 그는 그 실체를 온전히 볼 수 있었다. 빛바랜 하얀 바탕에 잿빛 터치가 있었고, 앞쪽에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함선의 이름인 듯했지만 그는 읽을 수 없었다.

 

함선의 뒷부분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와 그에게 다가왔다. 에이드였다. 인간형이 아닌 추진체가 달린 타원형의 선외 활동용이었다. 그것은 더티 할리를 추월해 그의 관성 비행을 제지한 다음, 주위를 돌며 한동안 관찰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몸체에 붙은 팔을 뻗어 그의 몸을 움켜쥐었다.

 

함선에서  더티 할리를  맞은 것은 또 다른 에이드였다. 인간형이지만 더티 할리가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는 에이드가 함선만큼이나 오래된 녀석이라고 추측했다.

 

“안녕하세요, 인간. 휴가 중이셨나 봐요?” 에이드가 우주복을 분리하며 말했다. “타쿤 태양빛으로 일광욕을 즐기기엔 좀 외진 곳 아닌가요? 얼어 죽기 딱 좋은 곳인데.”

 

더티 할리는 에이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드가 그의 반응을 살피고는 말했다. “유머를 모르는 인간이군요.”

 

“너 뭐야, 이건 무슨 함선이지?”

 

에이드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당신을 수거한 선외활동 드로이드를 통해 몸 상태를 확인했어요. 온몸에 타박상이 있고 갈비뼈가 모두 부러졌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군요. 지금 우주복 데이터를 통해 당신의 대략적인 정보는 파악했어요.” 에이드는 웃음소리를 냈다. “반가워요, 더티 할리. 나는 당신 같은 고풍스러운 이름이 좋아요. 내 초기 시절을 떠올려 주거든요.”

 

“넌 뭐냐고 물었다, 에이드. 인간이 물으면 대꾸를 해야지.”

 

“더티 할리가 내 주인이라면 대꾸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가 없어요.” 에이드가 다시, 이번에는 더 큰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그런 걸로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겠죠? 나는 사략선 물수리(Seahawk)호예요.”

 

더티 할리는 에이드를 다시 살피며 말했다. “지금 너는, 함선인가?”

 

에이드는 자신을 가리켰다. “함선과 연결된 나를 부를 땐 마요르라고 부르면 돼요. 나도 이름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내 주인이 옛 관습에 얽매인 인간이라 말이죠.”

 

더티 할리는 함선을 파악하고 에이드의 역할을 간파했다. 그는 안심하며 말했다.

 

“네 주인은 어디 있지? 다른 선원들은? 혹시 이 함선에는 에이드만 있는 건가?”

 

무인 함선이라면 화물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괜찮은 상황이었다. 함선을 빼앗을 수도 있었고, 그러면 만티코라에 돌아갔을 때 면책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에이드가 말했다. “선장은 자고 있어요.”

 

“깨워, 조난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해.” 

 

“나는 당신을 치료하고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도울 거예요. 하지만 그전에 선장을 깨우진 않을 거예요. 항성 간 단잠을 깨웠다간 화를 낼 게 뻔하거든요.”

 

마요르는 더티 할리의 몸 상태를 정밀 진단했고, 부러지고 엇나간 뼈들을 맞춘 다음 골절 패치를 붙여주었다. 그런 후에 회복실로 옮겨 쉬도록 했다. 

 

며칠 후 서툴지만 걸을 수 있게 되자, 더티 할리는 혼자 물수리호 안을 돌아다녔다. 견고하고 실용적인 함선이었다. 그가 아는 어떤 우주선과도 구조와 시스템이 달랐고 유행을 따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주 고급스러웠다. 더티 할리는 이 사략선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배를 차지한다면 만티코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더는 용병 생활을 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그는 계획을 세웠다. 선장이나 선원들은 잠들어 있는 듯했고 함선과 에이드만 깨어 항성간 비행 중이었다. 먼저 승무원들이 어떤 자들인지 파악해야 했다. 혼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민간인이라면 당장이라도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더티 할리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먼저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함선이 주인을 깨웠다.

 

그때까지 더티 할리는 함선의 주인을 알지 못했기에, 선장의 등장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마요르와 함께 수면실에서 걸어 나오는 선장을 발견하곤 이렇게 표현했다.

 

“고대 함선의 주인답게 아주 오래된 여인이었어.” 그는 그것이 의외였던 듯하다. “외모조차 고전적이었어. 어떤 개조나 업그레이드도 없었다고, 인간이 은하 변방의 별을 벗어나지 못한 때처럼 말이야. 젠장할, 그 어떤 행성계 여자와도 달랐다고.”

 

그리고는 때를 놓친 것이 분한 듯 덧붙였다. “바로 그때였는데, 그때 그 여자의 목을 부러뜨렸어야만 했는데!”

 

짧은 반바지에 커다란 박스티를 걸친 여자는 아직 생체 리듬이 돌아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비틀거리며 곁에서 따라오는 마요르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런 데서 깨우다니, 허허벌판에서 깨우면 어쩌자는 거야.”

 

마요르가 딴 곳을 보며 말했다.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게 낫겠네요.”

 

“허.” 선장이 에이드를 보았다. “기껏 깨워놓고 말 안 한다고?”

 

“선장은 잠에서 깰 때마다 히스테리를 부리고, 그것이 가라앉을 때까진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아니까요.”

 

“깼어, 이유나 말해.”

 

“나는 언제든 보고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들을 기분이 되면 말해주세요. 그때까지 1,2광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요. 우주는 넓고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인간과 에이드는 실랑이를 벌이며 다가왔고, 그러다 더티 할리를 발견했다.

 

“이건 뭐야, 배에 인간을 들인 거야?” 

 

모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확실히 짜증이 배어 있었다.

 

마요르가 대답 대신 휘파람 소리를 냈다. 모호가 끄응, 하더니 말했다.

 

“알았어, 이제 잠 다 깼어. 설명해 봐.”

 

“아직 다 깬 것 같지 않은데요?”

 

“깼다니까.” 모호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화내지 말아요, 손님에게 첫인상을 그런 식으로 각인시키는 건 좋지 않아요.”

 

“설명이나 하지?”

 

모호가 흘겨보자, 마요르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함선이 정식으로 보고할 건 두 가지예요. 선장을 깨울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죠. 먼저 여기 있는 더티 할리예요. 물수리호는 우주 공간의 잔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그를 구했고 부상을 치료했어요. 이제 부상이 다 나았고, 조난자를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가 됐어요.”

 

모호가 잠을 깨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손을 뻗었다. 마요르가 허벅지에서 뭔가를 꺼냈다. 담배였다. 에이드는 손가락 끝으로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매번 하는 조언이지만, 항성간 잠에서 깨자마자 담배를 피우는 건 몸에 좋지 않아요.”

 

“식전 잔소리가 더 안 좋아.”

 

모호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른하니 더티 할리를 살폈다. 연기를 따라 이름 모를 꽃향내가 퍼졌다.

 

더티 할리는 모호가 피우는 것이 고가의 사치품이라는 걸 알았고,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 보는 이 여자는 엄청난 돈을 연기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용병이로군.” 이윽고 모호가 말했다. “어디 소속이지?”

 

더티 할리가 힘주어 말했다. “만티코라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그녀를 압도하려는 의도였지만, 반응이 의외였다.

 

“변두리 동네의 분쟁에 끼어들어 먹고사는 작은 부대로군.” 마치 비웃는 투였다. “왜 조난당했는지는 묻지 않겠어. 멍청한 용병들이 술에 취해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거겠지.”

 

더티 할리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당시에 술 파티가 벌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내 배에 함부로 인간을 태우지 않아.” 모호가 말을 이었다. “특별한 경우에만 선별해서 태우지.”

 

“선장?” 마요르가 끼어들었다. “조난자 발견이 바로 특별한 경우에 해당해요.”

 

모호가 마요르를 흘기고는 흐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렇다고 치지. 조난자를 구하는 건 선원의 의무니까. 대신, 내 배에 머무는 동안엔 얌전히 있어야 해. 몸뚱이에 덕지덕지 붙은 장난감들로 장난을 치려고 했다간 당장 배 밖으로 던져 버릴 테니까. 알겠나, 용병?”

 

더티 할리는 당장이라도 팔뚝에서 칼날을 빼 여자를 두 동강 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계획이 있었으니까.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신을 적당한 데 내려주지.” 모호가 마요르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지? 손님을 내려놓을 곳이 있나?”

 

“반경 7.1광년에 항성 하나와 소행성 기지 두 곳이 있어요. 하지만 그 문제는, 두 번째 보고를 듣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그렇지. 다른 건 뭐지?” 모호가 생각난 듯 말했다.

 

“말라바르 행성계의 타크 가문에서 긴급 연락을 받았어요.”

 

“존 타크! 안부 인사는 전했겠지?”

 

“물론이에요. 하지만 존은 아니에요, 그는 선장이 잠든 사이에 죽었죠. 메시지를 보내온 건 그의 손자 사라힘 타크예요.”

 

“흠, 그렇겠군. 내용은?”

 

“의뢰였어요. 타크 가문은 선장을 후원하고, 선장은 그들의 의뢰를 받아줄 의무가 있죠. 예전처럼 변덕을 부릴 생각이 아니라면요.”

 

“그럴 생각 없어, 존 타크는 고마운 분이었고 그 집안 손자가 할아버지만큼 괜찮은 인간이라면.”

 

“메시지를 받은 후 닫았던 통신망을 열고 세상 소식을 수집했어요. 말라바르 행성계에서 타크 가문은 여전히 신망이 높고 사라힘은 가문을 잘 유지하는 것 같더군요. 그쪽 행성들의 통신사들에 <타크는 타크다>라는 기사가 많았어요. 사라힘이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더 잘 잇고 있다는 긍정적인 기사들이었죠.”

 

“다행이군, 의뢰 내용은?”

 

“타크 가문 내 문제는 아니에요. 사라힘은 누군가를 도우려는 것 같고, 그걸 비공식적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선장이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는 선장이 말라바르 행성계의 CU-P23 정거장에서 누군가를 만나주길 바라더군요. 그를 만나서 일을 맡기로 한다면 비용과 대가는 타크 가가 지불할 거고요… 이것이 선장을 깨운 진짜 이유죠. 어떻게 답변을 보낼까요?”

 

“CU-P23이라, 오랜만이로군.” 

 

모호가 생각에 빠진 듯 말하자, 마요르가 덧붙였다.

 

“선장이 타크 가에 머물 때,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행성으로 불리던 곳이죠.”

 

모호가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일단 그를 만나보겠다고 답장을 보내. CU-P23으로 가지.”

 

“그러려면 항성간 비행 대신 관문을 이용해야 해요.”

 

“급한가 보지?”

 

“말라바르 행성력으로 14월 37일, 물수리호 시간으로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했어요.”

 

모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요르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함선의 엔진 변환을 시작합니다.”

 

모호는 더티 할리를 돌아보았고,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이 손님은 거기에 떨어뜨리면 되겠군. 괜찮겠지, 용병?”

 

 

 

정거장에서

 

관문을 나온 물수리호가 감속을 시작했다.

 

모호는 계속 선교에 있었다. 깨어나고 하루 동안은 영양식을 섭취하고 운동을 했지만 이후에는 선교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첫날 복도에서 한번 더티 할리를 마주치기는 했지만, 모호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용병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더티 할리는 마요르에게 선장이 뭘 하고 있는지 물었지만, 에이드 역시 조난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달라진 세상의 소식들을 들여다보고 있죠.”

 

무시무시하지만 영악하기도 한 더티 할리는, 자신의 계획을 수정했다. 그간 파악하기로 물수리호에 인간은 자신과 모호뿐이었다. 다른 선원은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함선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계획을 미루었다. 선장이 큰 대가가 걸린 거래를 앞둔 듯했기 때문이다.

 

더티 할리는 거기까지 욕심을 냈다. 그랬기에,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모호가 선교에서 나오자 제안을 했다. 

 

그의 제안에, 모호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용병이, 나를 경호하겠다고?”

 

“그렇소, 선장.”

 

모호가 그의 의도를 살피며 말했다. 

 

“왜지? 용병들 기지로 돌아갈 생각 아니었나?”

 

“여기로 오면서 생각을 해봤소. 나는 당연히 돌아가야 하지만, 이대로 돌아갔다간 한동안 진상조사에 시달릴 거요. 그다음엔 문책당할 거고.”

 

“그래서, 탈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 돌아갈 거요. 나는 용병으로 태어나고 길러졌거든. 하지만 그전에, 시간을 벌고 노잣돈도 벌고 싶소.” 그건 진심이었다. “선장이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위험한 일이라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고 나도 한몫 받고 싶다는 말이오.”

 

더티 할리는 분명 노잣돈을 거머쥘 생각이었다. 그것도 두둑하게. 고대의 함선을 포함해서.

 

“경호 같은 건 필요 없어.” 모호가 거절했다. “내가 가는 곳은 CU-P23에 딸린 정거장이야. 문명인이 만든 곳이지, 위험 따위는 없는 곳이라고.”

 
*
 

말라바르 행성계는 형제가 스물셋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CU-P23은 막내답게 가장 바깥에서 도는 가장 작은 행성이었지만 소중했다. 천 개의 산과 호수에서 나오는 자원은 행성계 전체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초기에는 힘 있는 거대 행성과 우월한 가문들이 눈독을 들였지만, CU-P23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었다. 

 

덕분에 궤도의 정거장이 붐볐다. 처음 교역을 위한 제한된 통관 구역이었던 버섯 형태의 정거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기 다른 행성과 가문이 관할하는, 버섯의 균모가 층층이 쌓이고 덧붙여지는 군집 형태가 되었다. 아래로 길게 뻗은 버섯의 균뿌리를 중심으로 호를 그리며 도는 정거장은 자체 중력을 가졌고 균모마다 서로 다른 배들이 몰려들었다.

 

물수리호는 비교적 초기에 건설된 타크 가문의 구역에 정박했다.

 

모호는 더티 할리와 함께 물수리호를 나갔다. 내부를 타크 형식으로 꾸민 정거장은 다양한 행성인들로 붐볐고, 정거장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함선이 선장을 약속 장소로 안내했다. 모호는 익숙한 듯 새로운 듯, 느긋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더터 할리는 눈치를 보다가, 그녀의 약속 장소에 함께 가도 되겠는지 물었다. 

 

모호가 의아하니 보았고, 그는 둘러댔다. 

 

“여기서는 할 일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말이오.”

 

모호는 으쓱하고는 말없이 걸어갔다. 여전히 용병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티 할리는 그녀를 쫓아갔고, 함께 CU-P23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들어갔다. 원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사라힘 타크가 통째로 예약해놓아 아무도 없었다. 강화유리 돔 밖에 붉은 보랏빛이 감도는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행성이 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작은 몸에 동그란 얼굴, 커다란 두 눈이 귀엽고 앙증맞은 인상을 주는 이였다. 머리에서 목덜미까지 짧고 부드럽게 자란 보랏빛 털로 보아 비교적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가 다가와 자신의 방식으로 예의를 표했다.

 

“도나타가 인사드립니다. 사라힘 어른이 말씀하신 선장님이신가요?”

 

“모호라고 해요,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땅의 여인이여.” 모호는 다른 때와 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는 걸로 아는데, 대지를 떠나 궤도에 와 있군요. 그래서 그런가 불안해 보여요.”

 

“맞아요, 우리는 함께 있기를 원하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 불안을 느끼죠.” 도나타가 말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고 언제까지 행성 안에만 머물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군요.” 모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타르 가문에 도움을 청한 이유는요?”

 

“우리 중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났어요. 강제로요. 우리는 그를 데려오고 싶어요.” 그녀는 기다리며 억눌렀던 감정을 조심스럽게 터뜨렸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와야 해요. 그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에요.”

 

“흠, 사연이 있군요. 그렇다면 자리를 옮길까요? 이렇게 서서 대화하는 걸 즐기는 게 아니라면.”

 

“아, 죄송해요. 모호 선장님.”

 

“모호라고 부르면 돼요, 선장은 거추장스러우니.”

 

도나타는 당황해 다시 사과하고는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전망대 위쪽의 커다란 소파가 있는 자리였다. 손을 뻗으면 행성이 잡힐 것만 같았다. 

 

도나타 곁에 느긋하니 앉은 모호가 거대한 행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름다운 행성이에요, 내가 가본 곳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이곳에는 자주 오나요?” 

 

“저는 이곳에 파견되어 있어요. 처음엔 오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와야만 했어요. 외부인들이 우리 땅을 밟지 않게 하려면요. 저는 고향과 가족을 떠난 뒤로 줄곧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이곳에 오면 안정이 되곤 해요. 내 사람들이 있는 곳이 눈앞에 있으니까요. 그들이 내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한다는 걸 아니까요.”

 

“당신들은 이타적인 사람들이라죠? 자신보단 서로를 먼저 생각하고 아낀다고 들었어요.”

 

도나타가 자긍심이 엿보이는 커다란 눈으로 끄덕였다.

 

“당신들에 대해 들었을 때,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채워질수록 서로를 위한 삶을 살게 되죠. 은하에서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모호는 미소를 지으며 도나타를 보았다. “그런 당신들이 타크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건, 한 개인의 문제 때문은 아닐 거예요. 사라힘 타크도 그런 정도였다면 나를 부르지 않았을 거고. 그건, 당신들 모두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거겠죠? 행성 전체의 커다란 문제 말이에요.”

 

“맞아요, 우리들 모두의 문제예요.”

 

“나는 들을 준비가 됐어요.”

 

“우리를 아신다면, 순수하고 하얀 꽃이 피어난 때에 대해서도 들으셨나요?”

 

모호가 무거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역사는 순수하고 하얀 꽃이 피어난 때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죠. 이후 우리는 새로운 시절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만 했어요. 이방인들로부터 우리를 지키면서,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죠.”

 

“과정이에요. 안타깝지만 모든 행성은, 행성인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죠.” 

 

“우리는 그들이 우리 땅을 밟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정거장에서 협조하고 있어요.” 도나타는 자신의 행성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이곳을 거치죠. 그를 위해 우리 중에서, 이방인들에 대해 배울 준비가 된 젊은이들이 파견된 거예요.”

 

“그럼 당신들에게 생긴 ‘문제’는 이곳에서 생긴 건가요? 이곳은 그나마 평화롭게 공존한다고 들었는데?”

 

“1년 전에, 우리 중 한 사람이 납치됐어요. 붉은 바다의 해적들에게요.”

 

“해적? 이곳에는 해적이 출몰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이 행성계가 아니에요. 우리 땅에서 나온 자원을 싣고 ZeD-P04로 가는 선단에서였죠. 선단이 그곳 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해적들이 습격한 거예요. 자원을 빼앗고 선원들을 죽이고 수십 명을 데려갔어요. 그중에 우리 중 하나가 있었고요.”

 

“당연히,” 모호가 말했다. “선단을 관리하는 행성 연합에는 도움을 청했겠죠?”

 

“물론이에요. 하지만 연합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일상적인 사고로 취급하고 행성 간 조약과 보험으로만 처리했죠. 저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는데… 그건, 제가 보기에는….”

 

“해적들을 상대하기 껄끄러운 거예요. 붉은 바다를 건드렸다간 앞으로 백 년은 귀찮아질 테니까… 그래서 사라힘 타크가 나를 깨웠군,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당신네 사람 하나를 밀수해 오라고.”

 

도나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호는 붉은 보랏빛 행성을 올려다보았다. 상황을 판단하고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 같았다. 도나타는 그런 그녀를 불안한 눈빛으로 기다렸다.

 

더티 할리 역시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어처구니없는 의뢰였다. 붉은 바다라니, 그곳에서 행성인 하나를 구해오라니. 가능성이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모호가 말했다.

 

“당신들이 그를 구하려는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붉은 바다에 끌려갔다면, 그이는 지금쯤 죽었을 거예요.”

 

“아니, 그는 살아 있어요. 우리는 알아요.”

 

도나타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호가 그런 그녀를 살피더니 말했다.

 

“안다고?”

 

“그래요,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어떻게? 당신들은 이 행성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어요.”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알고 있다고요.”

 

“말이 안 돼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설마.”

 

모호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 위에 뜬 행성을 보았고, 다시 도나타를 돌아보았다.

 

“그를 느끼는군요.”

 

“언제나처럼요.”

 

“붉은 바다는 관문을 통해야만 갈 수 있어요. 이곳에서 별 세 개를 건너야 한다고.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를 느낀다고?”

 

“그런 건 상관없어요, 아무리 멀어도 의미가 없어요.”

 

“별을 넘어서, 별 사이 공간을 가로질러 느낀다고… 당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도나타의 커다란 눈에 감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호는 이제 경이로운 듯 그녀를 보았다. 그러면서 그것의 의미를 찾으려는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윽고 모호가 말했다.

 

“당신들은 왜 그를 데려오려는 거죠?”

 

“선장님 말처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알아요, 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그가 아파한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 모두가 그걸 느낀다고요. 그는 너무 멀리 있고 아주 미약하지만, 그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워하고 우리를 그리워하는지 느껴요. 그러니 우리는 그를 찾아야 해요, 찾아서 데려와야만 해요.”

 

“아직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죽고 말 거예요. 그러면 당신들의 아픔도 끝나고 아물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그를 느끼며 함께 고통스러워했어요. 그의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상실감을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아세요? 저기에 뜬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땅은 이 행성계의 가장 바깥이에요. 우리의 1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해하느냐고요. 그가 죽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지에는 다시 순수하고 하얀 꽃이 피게 될 거예요.”

 

“아아.”

 

모호가 신음을 터뜨렸다. 사태를 피하고 외면하려는 듯이, 도나타에게서 등을 돌렸다. 붉은 보랏빛 행성 밑에 선 그녀는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다시 돌아섰을 때, 모호는 화가 난 것 같았다.

 

“당신들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나는 당신들이 멋지고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모호는 도나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예요. 행성 연합의 역사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당신들에게 내려진 저주. 그 저주 때문에 당신들은 행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거고, 앞으로도 당신들은 저 행성을 떠나지 못할 거예요, 저 작은 땅에만 머물고 다른 행성으로는 가지 못할 거예요. 다른 별을 보지 못할 거라고.”

 

“누가 그러고 싶다고 했나요?” 도나타가 반항하듯 말했다. “우리는 애초 그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당신들에게 발견되길 원하지 않았다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끌어낸 거라고요.”

 

온순한 커다란 눈이 붉어지며 노려보았다.

 

모호는 그 눈을 보았고, 스스로를 자제하며 말했다.

 

“지금 저 아래에 있는 당신들은, 당신을 느끼나? 당신이 지금 울려고 한다는 걸 느끼나요?”

 

“그래요. 그들은 알아요.” 도나타는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모욕하고 있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분한지 그들은 느껴요. 그리고 지금 그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해하는지 내가 느끼고요… 그래서 내가 슬픈 거예요.”

 

“제길.” 모호가 난감하니 말했다. “당신들을 모욕하려는 뜻은 아니었어요.”

 

모호는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주위를 서성이며 행성을 올려다보았고, 마침내 돌아와 도나타 앞에 섰다. 단호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당신들의 의뢰를 받는다면, 내가 그를 데려오기로 한다면. 당신들은 내게 뭘 줄 수 있지?”

 

“선장님이 원하는 건 뭐든지요. 천 개의 산과 호수 중 하나를 떼어줄 수도 있어요.”

 

“그런 걸로 나를 살 순 없어요, 나는 행성에 머물지 않으니까.”

 

“그럼 뭘 원하죠? 말해 주세요. 저 아래의 어른들과 논의해야 하지만….”

 

모호가 허리를 숙였다. 도나타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좋아, 당신들의 의뢰를 맡지.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데려온다면… 당신들은 내게, 가장 귀하고 비싼 걸 내놓아야 할 거예요.”

 

도나타는 머뭇거렸다. 모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해석하지 말고 느껴요,” 모호가 그녀를 직시했다. “그리고 당신의 원로들에게 전해요. 그들이라면 내가 원하는 걸 알 테니까.” 

 

그러더니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나는 그를 데리러 붉은 바다로 갈 거예요. 그러나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때는 당신들 땅에 다시 하얀 꽃이 피어도 어쩔 수 없어요. 나는 할 만큼 하고 실패한 거니까.”

 

“말씀하신 대로, 어른들에게 전할게요.”

 

모호는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다시 돌아섰다.

 

“그 사람은 당신과 함께 이곳에 파견된 거였죠?” 도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겠군, 그는 당신과 어떤 사이지?”

 

“그는, 저의 베안이에요.”

 

“하! 그럴 것 같더라니.” 모호가 몸을 돌려 내려가며 말했다. “늦었지만 약혼은 축하해요.” 

 

 

 

더티할리는 모호를 쫓아갔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걷는 모호에게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나 물수리호 앞에 도착했을 때, 모호가 뒤늦게 더티 할리를 발견한 듯 그를 향해 돌아섰다.

 

모호는 그를 다시 살피며 말했다.

 

“며칠 전에, 당신을 써 달라고 했었지?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렇소.” 더티 할리가 기대하며 말했다.

 

“당신은 붉은 바다에 뛰어들 만큼 용감한가?”

 

“당연하오. 대가만 충분하다면.”

 

모호가 그를 노려보더니, 뭔가 생각하더니,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고용하지. 아무래도 용병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붉은 바다로

 

물수리호는 관문을 향해 가속했다.

 

모호는 이번에는 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속하는 사흘 내내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렀다. 그러나 물수리호가 관문으로 들어가 공간을 뛰어넘으며 붉은 바다가 가까워지자 선실에서 나왔고, 선교에서 한동안 함선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밤 더티 할리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 모호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더티 할리는 함선이 내놓는 음식을 들고 모호 앞으로 가 앉았다. 모호가 그를 향해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더티 할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뭐 하나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왜 의뢰를 거절하지 않은 거요?”

 

모호가 으쓱하며 그를 보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건 무모한 임무요.”

 

“용병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그 변두리 행성인은 세상 물정을 모르지만 나는 알지, 붉은 바다의 해적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선장은, 당신은 절대 그 행성인을 구하지 못할 거요.”

 

“그럴 수도. 그래도 의뢰를 받은 이상 시도는 해봐야지.”

 

“나는 당신의 의도나 계획은 모르지만, 이건 거래요. 우선적으로 득실을 따져야지. 내가 보기에 이건 위험하고 성공 가능성도 없소. 그러니 거절했어야지.”

 

“이건 득실의 문제가 아니냐, 당위의 문제지.” 모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를 데려오는 건 그들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야.”

 

“고작 행성인 하나를 되찾아 오는 게 말이오?”

 

“그래,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행성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지.”

 

“나는 이해를 못 하겠소.”

 

“그건 당신이 그들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 여자의 동료를 구하는 것과 그 행성의 역사가 무슨 상관이오?”

 

모호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요르가 보이지 않자,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함선, 관문을 나가려면 얼마나 남았지?”

 

물수리호가 어딘가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남은 시간을 말했다. 마요르의 목소리였다.

 

“잠깐 시간은 되겠군.”

 

모호는 빈 그릇을 밀어놓고 담배를 피웠다. 이름 모를 꽃향내가 아름다운 형태를 그리는 연기와 함께 퍼졌다.

 

“그들의 행성은 오랫동안 행성 연합의 역사 바깥에 머물러 있었어. 천 년 이상을, 그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 인간이 은하 변방의 별을 떠난 후 서로 흩어져 생존을 모색한 다음 다시 만날 때까지의 공백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의 존재가 그토록 늦게 발견된 건 의외였어. 그들은 그 작은 행성에서 온전히 자신들만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지.

 

그들의 존재가 알려진 건, 말라바르 항성이 뒤늦게 발견되고 인간이 정착하고도 몇백 년이 흐른 뒤였어. 항성의 가장 바깥에서 도는 작은 행성을 찾아낸 그들은 그곳이 자원의 보고라는 사실도 알아버렸어. 그들은 천 개의 산과 호수가 있는 행성에 침입해 교역을 미끼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지. 행성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도나타의 종족도 처음에는 순순히 협조했어. 고립되어 서로 연결된 삶을 살던 그들은 외부인들도 자신들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지. 최초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