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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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다. 미세먼지와 김 서림 방지를 막아준다는 마스크를 했지만,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와 냅킨으로 안경을 닦아야 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며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크게 해 놓고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제 퇴근하면서 의자를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서 바닥을 후다닥 닦은 후 냉장고에서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꺼내 한 잔 마셨다. 의자를 내리며 홀을 정리하는데 어떤 어르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손님, 아직 오픈 시간 아닌데요. ]

 

[ 압니다. ]

 

그분은 태연하게 의자를 꺼내 앉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혹시 사장님 친척이신 건가.

 

[ 저, 미안한데 혹시 여기 왔던 이 여자 손님 얼굴 기억할 수 있겠나? ]

 

[ 글쎄요 일일이 다 기억하긴 힘들죠, 여긴 워낙 여자 손님들이 많은 편이라서요. ]

 

어르신이 내민 스마트폰 속 여자를 본 나는 떨떠름했다.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매일 근무하는 탓에 워낙 많은 사람을 접하는 터라 그렇기도 하고 특히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심지어 이틀 전에 온 손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사장님이 우스갯소리로 넌 되도록 영업 관련 일은 하지 말라 한 적도 있다.

 

어르신은 당황한 나를 보고 찬찬히 말했다.

 

[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 ]

 

[ 글쎄요 일주일 전쯤요? 아니 이 주 전인가? ] 가까스로 기억을 쥐어 짜낸 내가 말했다.

 

[ 뭐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나? ]

 

[ 평소랑 똑같이 식사했던 것 같은데요 스파게티 아니 돈가스를 드셨던가? ]

 

화면 속 외모만 보면 그녀는 평범한 편이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을 모두 만나려면 몇 시에 다시 와야 하는지… ]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눈썹이 진한 길버트는 월·수·금 오후 6시에서 밤 10시까지 일했고, 가방끈이 긴 길버트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나는 매일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있었고(한 달에 한번 쉬는 것을 제외하고), 혼혈 길버트는 주말에 10시부터 10시까지 일한다고 말해주었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내심 불안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나는 어르신에게 경찰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끄응 소리를 낸 것 같다.

 

나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고 무슨 일인가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되질 않아서. ]

 

[ 근데 왜 그 여자를 찾으시는 건가요? ]

 

[ 만나서 꼭 할 말이 있기도 하고 가족들의 부탁을 받기도 했네. 자식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니 부모들은 답답 할 테고. ]

 

[ 저, 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고요? ]

 

[ 그 사람들은 바쁠 텐데. 어린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 여성을 세심히 수사할 만한 여력이 없지. ]

 

[ 네. ]

 

어르신은 내가 알려준 내용을 적은 수첩을 검토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다시 한 번 더 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길버트 들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 우리 한번 모여야 할 것 같아.

 

사실 우리 넷은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 근무시간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각자의 일이 바쁜 탓이다. 눈썹 진한 길버트는 학교 다니랴, 알바 하랴, 주말엔 여자 친구와 연애하느라 바빴고, 가방끈이 긴 길버트는 논문 쓰랴, 교수님 뒤치다꺼리하랴,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혼혈 길버트는 평일에는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공부하고 주말엔 알바를 해서 고시원비를 내야 했다.

 

나 역시 주 칠일 근무를 하고 나면 집에서는 인터넷을 좀 하다가 잠들고 깨면 아침이어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색다른 취미를 갖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우리는 모두 일단 만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다음 주 목요일 밤 열 시 레스토랑에 집결하기로 했다. 나와 가방끈이 긴 길버트는 알바가 끝나면 그대로 있으면 될 테고, 나머지 두 명만 시간에 맞춰서 잘 오면 된다.

 

[ 그 여자 손님 기억나? ]

 

나는 어르신이 보여준 사진 속 여자를 길버트 들에게 말로 묘사했다. 제일 먼저 말문을 연 건 가방끈이 긴 길버트였다.

 

[ 혹시 그 여자인가? 그날 목폴라 티 입고 왔었거든. ]

 

[ 기억력 쩔어. 역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가? 기억력과 관찰력이 남다르네. ] 눈썹 진한 길버트가 중얼거렸다.

 

[ 근데 목폴라 티가 기억나는 건 그걸 입을 만큼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싶었거든. 그냥 추위를 많이 타는 손님인가 했지. ]

 

[ 맞다! 이 여자 손님 팁이 후한 거 기억난다. ] 혼혈 길버트가 말했다.

 

[ 넌 주말에만 일했잖아. 이 손님이 주말에도 왔었어? ] 놀란 내가 물었다.

 

[ 왜 언젠가 눈썹 진한 길버트가 여자 친구랑 금요일에 놀이공원 놀러 간다고 그날 나보고 나와 달라고 해서 내가 금요일에 근무한 적 있었잖아. ] 알바가 쉬는 주말에 여자친구와 놀러 가면 좋겠지만 당연히 주말엔 사람이 많으니 평일에 빠지고 싶어 해서 혼혈 길버트가 그날 나와 주었다.

 

[ 아, 맞다. 그날 그럼 너 팁 받았어? 얼마나 받았어? ] 눈썹진한 길버트가 묻는다.

 

[ 칠만 원인가? ]

 

[ 뭐, 진짜? ] 가방끈이 긴 길버트와 내가 놀라서 동시에 외쳤다.

 

[ 나도 놀랐어. 덕분에 잠깐 짬을 내서 그 돈으로 고향에 다녀왔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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