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글라디에이터 Star Gladiator

  • 장르: SF
  • 평점×1명 | 분량: 9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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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타 글라디에이터 Star Glad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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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와 아버지는 많이 놀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미 수년전부터 신장염으로 병원을 오가던 양반이었고, ‘노환으로 별세라는’ 소식이 뒤따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보통의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실망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바라고 강요하다 좌절하는 것과는 달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는 면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좋게 말하면 개성이 넘치고 활기로 가득한 분이셨다. 솔직하게 말하면, 개망나니였다는 소리다.

 

할아버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동네의 20대 청년들을 두들겨 패고 다니는 분이었다. 단순히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에게 욕하는 나이 헛먹은 노인네의 지랄 수준이 아니었다. 동네 풀빵장사에게까지 자릿세를 털어내는 양아치들의 팔을 뽑아 놓거나 눈에다 오뎅꼬치를 박아 넣는 수준이면, 이건 단지 혈기왕성이 지나친 노인네의 주책으로 넘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행동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대검 중수부에서 근무하는 검사였다. 할아버지가 역 앞 번화가의 나이트클럽 사장을 패면 아버지는 사과나 합의 대신 나이트클럽에 경찰들을 몰고 들어가 마약단속을 벌이는 식으로 일처리를 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관심과 우려는 언제나 아들인 나보다 당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집안의 골칫거리 순위에서 늘 1위 자리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검사, 의사이고 그 자식들이 명문대 출신의 잘나가는 증권매니저이거나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다 온 첼로연주자인 집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느 집안에나 하나쯤은 있는 얼룩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막강한 골칫덩이가 버티다보니 나는 그저 ‘어디 가서 사람이나 죽이고 오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였다. 몰론 내가 평소에 막돼먹은 행동을 하는 부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라는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기대를 한 번도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나는 다른 형제나 사촌들보다 가장 빨리 첼로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콩쿠르에 나가 본적이 없었다. 집안에 음악가 한명은 있어야 품격이 산다는 어머니의 바람은 엉뚱하게도 작은아버지의 딸인 재희누나가 이루었다. 사촌들까지 모두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어딘가의 등록금만 내면 다 받아준다는 대학에 진학 한 것은 나뿐이었다. 이럴 때는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바람막이였던 할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게 되자 나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신장염과 몇 가지 합병증으로 수년전부터 통원치료 중이었다. 요양병원의 원장인 작은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자신의 병원으로 할아버지를 옮겼고 할아버지는 혼수상태로 사흘을 보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일단 한숨 놓았지만 병증으로 보건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작은아버지의 판단에 할아버지를 계속 입원시키기로 하였다. 할아버지는 예상대로 결코 얌전한 환자는 아니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원장인 작은 아버지 때문에 드러내놓고 불평하진 못했지만 따로 고용한 간병인은 일주일 사이에 세 명이 못 견디고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그 결과 할아버지를 간병하는 일에 낙점된 것은 바로 나였다. 표면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손자들 중에 유독 나를 귀여워했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직장도 없이 밥이나 축내는 손자는 나뿐이었다는 게 가장 적합한 이유일 것이다.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병실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안의 공기도 답답하고 딱히 나돌아 다닐 곳도 없던 나에게 할아버지의 병실은 도피처로 안성맞춤이었다.

 

 

 

할아버지의 병실은 이전의 탈주전력 때문에 병원의 맨 위층 구석의 독실로 이동되었다. 부원장인 작은아버지 덕분에 병실에서의 생활은 제법 호화스러웠다. 대형 평면TV까지 갖추고 있는 병실에서 할아버지가 잠들면 헤드폰을 끼고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거나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간병을 위해 왔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주로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드리거나 목욕을 도와드리는 일이 전부였다.

 

 

 

 

 

어머니가 방문하는 날은 할아버지나 내게도 달가운 날이 아니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검사들의 부인회 모임에 갔다 오는 길에 들렀다며 내 양복과 옷가지들, 반찬거리들을 잔뜩 싸 짊어지고 왔다. 내가 갈아입을 옷들을 벽장에 정리하는 동안 어머니는 반찬통을 모두 열어젖히고 이거는 누가 만들어서 보내주고, 저건 누가 해줬다며 할아버지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그 중에 어머니가 직접 만든 아무것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마뜩찮은 눈길로 반찬통을 바라보다가 양복을 옷장에 넣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복은 웬 거냐?”

 

나는 양복옷걸이 안쪽에 같이 걸린 검은색 넥타이가 잘 안보이도록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어머니는 당황을 감출 때 흔히 쓰는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아이구, 강 검사랑 같이 일하는 검사님들이 내일 아버님 뵈러 오겠다고 해서요. 지환이 옷이 다 찢어지고 구멍난거 밖에 없어요. 애들 옷 입는 꼬락서니 아시잖아요. 없는 집 자식도 아니면서 어디서 그런 것만 주워대 입는지, 참…….”

 

어머니는 할아버지나 집밖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지칭할 때 늘 ‘강 검사’라고 불렀다. 아버지를 ‘강 검사’라고 부를 때마다 할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려도 어머니는 그 점만큼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남편인 강영호 보다 대검중수부 ‘강 검사’의 부인이라는 위치를 더 사랑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반찬통을 어머니 앞으로 밀어내었다. 어머니가 반찬통을 냉장고에 정리 하는 동안 나는 일부러 천천히 옷장을 정리했다. 옷장 정리가 끝나면 병실 안에서 아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병실에 놔두고 밖에 나갔다 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사이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말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가 더 불안했다. 화살을 맞아도 차라리 내가 맞는 게 낫다.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닫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나는 옷장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잠시 병실 안을 둘러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시 옷장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

 

“성환이는 이번에 해외지점장으로 발령 났다. 최연소래. 식구들 전부 다음 달에 뉴욕으로 간 댄다.”

 

작은 아버지의 아들 소식을 왜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먼저 들어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한쪽의 소파에 몸을 묻었다. 책들을 뒤적이고 있는 내 옆에 어머니가 앉았다.

 

“그래서 성환이한테 가기 전에 네 자리 하나 봐달라고 부탁 해놨어. 성환이 명함 갖고 있는 것 있지? 이메일로 이력서 보내 달라더라, 졸업증명서랑 성적 증명서는 나중에 보내래. 명함 갖고 있어?”

 

“있을 거야. 찾아보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게 해!”

 

어머니는 가방을 열어 사촌 형의 명함을 내게 건네주었다.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이는 때는 많지 않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서인 경우가 많다. 나는 명함을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 삼아 끼워 놓았다.

 

“내일 아버지랑 검사님들 오시면 저 양복으로 갈아입어. 아예 아침에 일어나 미리 입어두고 있던가.”

 

“하루 종일 병실에서 양복 입고 있으란 말이야? 어차피 퇴근 하시고 오실 거 아냐?”

 

“그럼 다섯 시쯤에 갈아입던가. 검사님들 오시면 인사 잘 드려. 재희도 귀국했다니까 조만간 들를 거야. 머리도 좀 자르고! 손님들 오시면 책은 한쪽에 치워놔. 여긴 신문도 없니? 학교 같지도 않은 학교 다니면서 4년 내내 책만 보더니 아직도 읽을게 남아있어? 할아버지 병실이 네 방인 줄 알아?”

 

“아, 애 좀 그만 잡아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사내자식 기를 그렇게 죽여 놔서 어따 쓰겠냐?”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눈을 감았다. 잠을 잘 테니 그만 시끄럽게 하라는 신호였다.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작은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몇 마디 변명을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지갑을 꺼내어 신용카드 한 장을 내게 건네어 주었다.

 

“이걸로 밥 사먹고 이발해. 재희 내일모레 온댔어.”

 

어머니는 병실 문을 나서면서도 입모양만으로 ‘이발 꼭 해.’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해가 기울고 병실 안이 어둠과 적막으로 뒤섞이는 동안에도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잠이든 할아버지의 불규칙한 호흡소리만이 어둠과 적막이 혼합된 수면 위를 떠다녔다. 나는 휴대용 독서등의 작은 불빛에만 의지해 책장을 넘겼다.

 

“크왓크 타무르…….”

 

할아버지의 잠꼬대에 나는 병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시간전과 달라진 것 없이 할아버지는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시 고개를 책으로 돌리려 할 때 할아버지는 기묘한 발음의 문장을 내뱉었다.

 

“운다 헤이얏타 그룬-지-하룬.”

 

글로 표기 하자면 위와 같이 쓸 수 있지만 실제의 발음은 더 기묘한데가 있었다.

 

외국어 같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낯선 느낌의 그 문장은 할아버지의 입에서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다.

 

몇 분 뒤 할아버지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었다. 나는 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등을 적신 땀을 닦았다. 할아버지의 몸은 주름만큼이나 흉터가 많다. 흉터들은 대부분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났던 것이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침식하듯 흔적들만 남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없이 사라졌다가 며칠 뒤 집에 불쑥 나타나거나 하는 기벽이 있었다. 기간도 들쭉날쭉해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3년 가까이 사라진 적도 있다고 했다. 돌아온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지냈다는 말도 없었고, 얼굴은 상처가 가득했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안대는 분이었기에 알콜성 치매를 의심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적에 할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여기셨는지 흥신소 직원을 붙여 할아버지를 따라다니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별 소용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하루 이틀 또는 한 달 뒤에야 집에 돌아오는 할아버지는 그간 어디에 갔었는지, 어쩌다 다쳤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돌아올 때마다 몸에 늘어나는 상처 때문에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든 걱정거리와 한숨을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했다.

 

겨드랑이의 땀을 닦아 내기 위해 할아버지의 팔을 들어 올리려 하자 할아버지는 손을 저으며 내가 들고 있던 수건을 빼앗았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할아버지는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있었다. 그것은 프로테인과 헬스클럽에서 만들어낸 근육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의 노동과 햇빛 속에서 갈아내고 깎아내고 제련되어 나온 근육이었다.

 

몇 년 전부터의 병치레로 인해 할아버지는 야위어 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작아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병이 앗아간 살들과 혈색 좋은 피부의 밑에 감춰져있던 단단하고 예리한 원래 몸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에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늘 커져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늘 단단한 바위 같다. 세월이 그것에 상처를 주고 침식한다 하여도 바위는 바위다.

 

겨드랑이의 땀을 다 닦은 할아버지에게서 젖은 수건을 넘겨받아 욕실에서 더운물로 빨았다. 그것을 들고 병상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할아버지는 말없이 병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서서 말없이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달빛과 창밖의 네온사인 불빛이 서로 다투며 할아버지의 몸에 내려앉고 있었다. 빛들이 노인에게 달려들 때마다 노인은 점점 어둠속으로 몸을 숨기는 듯했다.

 

“그런데, ‘운다 헤이얏타 그룬-지-하룬’이 무슨 말이에요?”

 

나는 할아버지가 잠꼬대로 계속 되뇌었던 말을 최대한 비슷한 발음으로 물어보려했다. 단지 적막함이 싫어 그냥 해본 소리였지만 어둠속에서도 나는 할아버지의 몸이 굳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까 주무시면서 계속 말씀하시던데요. 발음이 되게 특이 하던데.”

 

침묵하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자유인으로 죽는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어느 나라 말이에요?”

 

나는 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목 뒤를 닦았다.

 

“나라가 아니다. 제3은하연방의 표준어지.”

 

“네?”

 

나는 되물었지만 그것은 할아버지의 대답을 제대로 못 들어서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간직했던 불안감이 비로소 현실로 드러나자 반사적으로 나온 되물음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제3은하연방의 4표준어다. 3기 문명에 속하는 지성체들 중 음성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이들을 위한 은하어語야.”

 

나는 할아버지에게 치매 증상이 보인다는 소식을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둘 중 누구에게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처음 납치 된 것은 낙동강 방어전이 한창이던 열네 살 때였다. 어봉리 일대를 둘러싼 국군과의 고지 쟁탈전은 불과 피로 얼룩진 핑퐁게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군 폭격기는 능선을 불바다로 만들며 인민군의 진지를 제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뚫고 내려오는 쪽이나 막아내려는 쪽 모두에게 다급한 싸움이었다. 미군의 폭격에 시달리던 인민군 중에는 하나둘 전선을 이탈하는 숫자가 생겨났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중대원들 전원의 발목에 쇠사슬로 연결된 족쇄가 채워지는 것을 보며 길지 않았던 당신의 삶이 끝났다 여겼다. 동이 트면 다시 미군의 폭격이 시작 될 것이었고 족쇄로 발목이 묶인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부산으로의 진격을 재촉하는 북한군 사령부에게 낙동강전선은 최전선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할아버지는 발목을 끊고 도망가면 한발로 어디까지 갈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산속의 진지에서 잠이 들었다. 꿈에서 할아버지는 서울에 남아 있을 당신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났고, 전쟁이 끝나 다시 학교에 가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할아버지의 발목에는 족쇄가 사라지고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국방군의 공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여겼다. 그곳에는 교회목사님이 이야기 하던 ‘나발을 든 천사들’도 없었고 아브라함과 모세도, 예수님도 없었다. 단지 자신의 몸을 묶고 귀에 이상한 벌레를 집어넣으려 하는 ‘온몸이 빛나는 사람들’만 있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죽은 몸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죽은 것 보다 더 나쁘겠는가 하는 마음에 별다른 반항 없이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귓속으로 기어들어온 벌레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고통을 느끼며 나름대로 유추 가능 한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빨갱이 군대에 들어가 싸웠다고 지옥에 왔구나.’

 

할아버지는 원해서 인민군에 들어온 것이 아니며 집에 있다 끌려나왔을 뿐이라고 하소연 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을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귓속에 들어간 벌레는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할아버지는 그 순간부터 ‘온몸이 빛나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들었다기보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가 맞다. 그들이 할아버지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것은 할레이름이라 부르는 광범위한 은하계 언어의 통역기였다. 두통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겨우 주변을 둘러볼 정신을 차리게 된 할아버지는 자신 말고도 열 두어 명의 인민군이 함께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레이름을 통해 전달받은 사항은 간단명료했지만 그 명료한 내용 뒤에는 할아버지의 인식으로는 상상 할 수 없었던 광대한 세계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끌려온 이들은 앞으로 ‘이칸투스’로서 싸워야 했다. 이칸투스가 무엇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할아버지는 잠시 망설였다.

 

“애매한 단어더라. 우리말로 비슷한 말을 찾을 수는 있는데 굳이 가까운 표현을 고르자면 영어로 하는 게 비슷하지.”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내 눈을 보며 할아버지는 말했다.

 

“스타 글라디에이터 Star Gladiator.”

 

새롭게 끌려온 이칸투스들은 몇 명씩 나뉘어 신체검사를 받았다. 또래 보다는 체구가 컸던 할아버지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갔다. 함께 끌려온 인민군들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불필요한 만용을 부리는 이들도 있어 ‘온몸이 빛나는 사람들’에게 저항 해 보았지만 참담한 대접만 받을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이른바 ‘흥행사’라 불리는 흘란도르를 처음만난 것도 그때였다.

 

“이건 못 쓰는 거야! 지구인들은 머리가 잘려나가면 못써!”

 

흘란도르가 ‘온몸이 빛나는 사람들’에게 화내는 소리를 할아버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음성으로는 전혀 다른 소리였지만 할아버지의 머릿속에는 모국어 만큼이나 빠르고 친근하게 이해되었다. 흘란도르는 머리가 반쯤 잘린 인민군의 시체를 내집어 던진 다음 할아버지 앞에 섰다. 할아버지는 눈앞에 서있는 3미터에 달하는 외계생명체에 압도당하지 않을수 없었다. 흘란도르의 눈은 빛나는 촉수와 같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눈앞까지 다가와 할아버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동안 당신은 오줌을 지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흘란도르의 만족에 가까운 감정을 할레이름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크란이 있어. 좋아, 당분간 지구인들은 필요 없어. 삭텔라움에 필요한 머릿수는 다 채웠다.”

 

삭텔라움은 이종異種의 생명체 셋이 한 조를 이루어 도전자가 되고 한명의 챔피언과 겨루는 방식의 경기였다. 한 조를 이루는 생명체는 각기 다른 은하계에서 온 이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낮과 밤을 구분 할 수 없는 곳에서 시간의 흐름도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한순간일지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일지도 몰랐다. 할레이름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외계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누구고 여기가 어디인지, 왜 할아버지가 이곳에 와야 했는지 질문할 이들도, 답할 이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첫 번째 삭텔라움을 치를 때 까지도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이들에게 끌려왔는지 이유를 정확히 몰랐다고 했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탁자위에 놓은 무기들 중 하나를 고르도록 명령 받았을 때도 다음에 펼쳐질 일들에 대해서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기들은 지구인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지구인들이 쓰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쓸어와 늘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삭텔라움의 전통에 따라 세 명의 도전자들은 한 개의 공격 무기와 방어 무기를 고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프라이팬과 쓰레기통 뚜껑을 선택했다. 그나마 그것이 누군가를 때려눕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물건들 중에는 뜨게실 뭉치와 대바늘도 있었다.) 무기를 고른 다음 흘란두르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훌륭한 이칸투스는 나갔다 살아 돌아오는 이칸투스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할아버지는 훌륭한 이칸투스가 되기는 진작 글렀다고 절망했다. 우선 도전자인 할아버지의 조에서 가장 체구가 큰 이칸투스가 할아버지였다. 나머지 둘은 봉제 곰 인형처럼 생긴 줄루워크인과 다섯 살 여자아이만한 테라이안이었다. 프라이팬보다 그나마 나아보이는 무기는 봉제 곰 인형이 들고 있는 포크 비슷한 물건 밖에 없었다.

 

잠시 후 경기장에 ‘챔피언’이 들어서자 객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할아버지의 귀에 들리는 소리보다는 할레이름을 통해 전달되는 관중이 내뿜는 정신적인 흥분이 더 강렬하고 혼란스러웠다. ‘챔피언’은 아무리 봐도 영덕대게를 크게 부풀려 놓은 모양이었다. 잠시 그 크기에 압도당한 할아버지는 그대로 멍하니 경기장 한가운데 서있었다. ‘챔피언’의 앞발이 머리에 꽂히기 전까지 그대로 서있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몸을 날려 쓰러뜨린 테라이안 덕분에 첫 출전에서 바로 사망하는 변은 당하지 않았다. ‘챔피언’의 앞발이 바닥에 꽂히면서 피어오른 흙먼지 때문에 콜록거리며 테라이안이 외쳤다.

 

“멍청아! 살고 싶으면 계속 움직여!”

 

할아버지의 몸을 깔아 누른 테라이안은 그를 다시 일으킨 다음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챔피언’의 주변을 돌며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프라이팬과 양철 쓰레기통 뚜껑만을 들고 있던 할아버지는 ‘챔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