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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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언니, 저 지금 옥상이에요.”

“너 꼼짝 말고 딱 기다려! 나 갈 때까지 거기 있어! 안 그럼 죽여 버릴 거야!”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엘리베이터는 20층에서 곧바로 내려 오질 않고 17층, 14층, 9층, 6층에서 한 번씩 멈춘다. 오늘이 분리수거하는 날이랬나. 왜 불길하게 4층에서도 멈추고 난리야! 4층 정도는 계단 이용하라고! 급해 죽겠는데, 아니 너어어무 급한데. 꼬장꼬장한 경비원 어르신한테 친구 집에 놀러 온 거라고 거짓말하고 아파트 출입문 열어달라고 사정하느라 시간을 날려서 마음이 급하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는 사람들을 밀치다시피 하고 달려 들어가 버튼을 부술 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저 똥 마려운 거 아닙니다. 오해 하지 마세요.

한숨 돌리려다가 숨을 참았다. 밀폐된 공간에 쓰레기 지린내가 꽉 찼다. 내부는 3면이 거울이다. 나와 통화한 애는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거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엘리베이터는 느려 터졌다. 라푼젤 머리 끄댕이를 잡고 올라가도 이거보단 빠르겠다. 초조해서 공연히 손에 잡히는 대로 ‘귀가 움직이는 토끼 모자’ 귀달이에 연결된 토끼 발 모양 공기펌프를 만지작거렸더니 거울 속의 토끼 귀가 쫑긋 올라간다. 왜 쓸데없이 귀엽냐. 지금 이 상황에 안 어울리게. 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도 못 감고, 현관에 하얀 비니 같아 보이는 게 있길래 주워 들고 나왔더니…우리 엄마 아들은 요새 야근하느라 힘든 직장인 여자 친구에게 애교를 보여주겠다며 왜 이딴 걸 샀는지 모르겠다. 그 얼굴엔 토끼 모자가 아니라 토끼 가면이 어울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15층에서 열렸다. 아저씨가 양손도 모자라 발로 거대한 봉지를 밀며 집에서 나왔다. 토막살인이라도 하셨나.

“잠깐만 열림 버튼 좀 눌러 주실래요? 제가 손이 부족해서요. 야! 엘리베이터 왔어! 얼른 그 스티로폼 박스 들고 나와!”

오늘 같은 날은 제발 종량제 봉투에 아무거나 다 섞어서 무단투기 좀 하면 지구가 급사하냐. 아저씨 발치의 봉지를 발로 차서 엘리베이터 문에 괴어 두고 뛰쳐 나가 계단을 뛰어 올랐다. 계단 하나를 올라갈 때마다 길게 늘어진 토끼 귀달이가 흔들리며 나를 후드려 팬다. 아파트 옥상 문을 열어 젖히자 흑염룡보다 무섭다는 중2가 아파트 화단을 내려다 보며 기다리고 있다.

“흐어…흐어…느허…무슨…생각…했어…? 헉씨…이상한…생각…한 거…아니…지…? 흡 하아…”

박력 있게 의뢰인을 돌려 세우며 탐정의 카리스마를 보여 주려고 했는데…숨 차고 무릎 아파서 실패다. 학교 다닐 땐 슬리퍼 신고 매점에서 교실까지 5개 층을 한달음에 클리어하고 복도까지 전속력으로 달려도 말짱했는데. 아니, 토끼 모자를 쓰고 나타난 순간 이미 망한 건가.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단발머리 여중생이 내 토끼 모자를 보고 눈물 맺힌 눈으로 깔깔대며 웃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감정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위태로워 보였다.

“걔가 죽었을 때…제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장례식장에서 오열한 거? 베프였다며. 전혀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으니까 많이 슬프고 충격 받아서 그럴 수도 있지.”

“너무 이상했던 것 같아요.”

“아니야. 슬퍼서 우는 게 뭐 어때서. 지금은 주변인들도 경황이 없어서 그렇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너를 이해할 거야. 누구나 너무 큰 일을 당하면 이성이 마비되어서 막 나갈 수도 있어.”

“제가 저를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 남이 어떻게 저를 이해해요?”

자소서에 뭐라도 한 줄 더 채워 넣는 심정으로 프로필에 ‘각종 무술 유단자’라고 적어 놨는데, 이 학생의 부모가 연락해서는 대뜸 자기 딸과 등하교를 같이 해 주고 학원도 데려다 주고 데려올 수 있냐고 했다. 경호원보다는 탐정이 저렴하긴 하지. 딸이 최근에 제일 친한 친구가 죽고 나서 충격을 받았는지 장례식에서 하루 종일 울고 오더니 밥도 잘 안 먹고 공부도 안 한다고 했다. 곧 시험기간인데.

“저는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 드리는 실종탐정인데요.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해요.”

“살아있는 우리 애 때문에 연락 드렸어요.”

“어, 음, 혹시 따님이 친구 죽음에…책임…이라기엔 그렇고…뭔가…얽혀 있는 게 있나요?”

자살이었다. 유서는 없었고 CCTV에서는 혼자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장면만 찍혀 있었다. 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부모님과의 사이도 무난했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별다른 취미 없이 학교-학원-집만 오갔다고 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죽은 아이의 부모는 돌연 학교 폭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따돌림이나 폭행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죽을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얼마나 애교 있고 사랑스럽고 착한 딸이었는데. 딸의 한을 풀어주겠다며 학폭위를 열고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아니, 자식 죽은 부모가 무서울 게 어딨냐며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죽은 아이의 스마트폰에 남은 SNS에는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의 흔한 대화 뿐 이었다. 다만, 죽기 한 달 쯤 전부터는 같은 반 애들과 모든 SNS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 모든 단체방에서도 사라졌다. 혹시 그 시점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합리적으로 의심해볼 만 한 정황이었다. 유가족은 의뢰인의 딸에게 집요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네가 제일 친했으니까 뭔가 남들이 모르는 걸 알고 있지 않냐며 그악스럽게 추궁했다. 뭔가 아는 게 있으니까 장례식에서 그렇게까지 실신할 듯이 통곡한 거 아니냐고. 집에도 찾아 오고 등하굣길에도 불쑥불쑥 나타났다.

“저도 자식 가진 부모라서 이해는 하지만, 저도 제 자식 지켜야 하잖아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애도 친구가 죽어서 충격 받았는데 그 엄마란 사람이 우리 애 잡아먹으려 들잖아요. 그렇잖아도 여리고 착하고 멘탈 약해서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는 애한테.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애가 공부도 다 놓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우리 애한테 무슨 짓 할 지 모르는 그 정신 나간 물귀신 같은 여자를 떼어놔야 되어서요.”

“따님보다는 그쪽 부모님한테 제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탐정이 중학생 등하교 도우미를 하는 건 재능낭비죠.”

“걔 죽음에 우리 애 책임이 절대 없다는 걸 밝혀 주세요. 그 집 부모가 꼼짝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 주세요. 누구든지 뭐든지 찾아 준다면서요. 다시는 그집 부모가 우리 애 앞에 못 나타나게 퇴치해 주세요.”

그렇게 의뢰인의 딸인 나은이와 함께 학교에 가기로 한 첫날 아침부터 아파트 옥상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되다니. 8시 30분까지 등교하면 된다고 하더니 왜 8시도 안 된 이 시간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와 있냐고! 이거 의뢰인한테 시간외 수당으로 추가 청구해야 겠다.

“걔네 엄마 떼어 놓으라고 우리 엄마아빠가 탐정 언니 부른 거예요? 안 그래도 되요. 전 그 아줌마 안 무서워요.”

“떼어 놓으라곤 안 하셨는데? 그냥 너랑 등하교 같이 해 주라고…그 친구랑 같이 다니다가 혼자 다니려면 외로울 테니까.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그냥 반말 해.”

“걔랑 전에는 같이 다녔는데 요즘엔 같이 안 다녔어요. 저 혼자서도 잘 다녀요. 엄마아빠가 괜히 돈낭비하는 거 같아요.”

말 놓으라는 말을 깔끔하게 무시 당했다.

“내가 이미 너네 법적 보호자한테 돈을 받아서 같이 다녀야만 돼. 나는 절대 환불은 안 해 드리거든. 네가 이렇게 아침일찍 옥상에 올라 오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 걱정되어서 나를 너한테 붙여 놓은 거야.”

“근데 진짜 탐정 맞아요? 탐정은 다 드라마에 나온 셜록 홈즈처럼 바바리 입고 헌팅캡 쓰고 다닐 줄 알았어요.”

“탐정은 의뢰인에게 이입하고 의뢰인을 이해해야 하니까 패션도 의뢰인처럼 하고 다니는 거야.”

급하게 나오느라 집에서 입고 있던 추리닝을 못 갈아 입고 김밥 같은 검정색 롱패딩으로 가리고 나왔다고 굳이 사실대로 말하진 않았다. 나은이도 교복 위에 전국 중고등학생들이 제 2의 교복처럼 입는 검정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전문가인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도 절 이해 못 한 거 같은데, 탐정이 어떻게 절 이해해요?”

“이렇게?”

토끼 모자에 연결된 앞발 모양 귀달이 안에 있는 공기펌프를 눌렀다. 빠르게 누를 때마다 양쪽 토끼귀가 번갈아 정신 없이 올라갔다. 그게 뭐가 재미있다고 또 미친 듯이 웃어댔다. 곧 시험 기간이면 공부 빼고 다 재미있을 때긴 하지. 그러다가 또 눈동자와 입가에 힘을 주고 웃음을 참고 진지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거울을 보지 못하게 계속 말을 붙였다.

“요새 시험기간이지? 의뢰인이 걱정하더라. 너 공부 안 한다고. 밥도 안 먹고.”

“살 빼야 해서 밥 안 먹은 지는 꽤 되었는데, 공부 안 하니까 이제서야 알아차린 거 같아요. 저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시험 성적만 걱정하는 거 같아요.”

“나도 공부 ‘안’ 해서 엄마아빠가 걱정했어.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고.”

“저는 우리 반에서 1등하는데요. 전교에선 5등 안에 들어요.”

“그 애는…라이벌이었어?”

“걔는 그냥 반에서 7등 정도 했어요. 저랑 상대도 안 되었던 거 같아요.”

2등이 1등을 죽이고 1등 자리를 차지했다는 학교괴담 같은 사연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친구 아니었어요.”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확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베프였다며? ‘베프’가 ‘베스트 프렌드’ 아냐?”

“처음엔 그랬는데, 죽기 전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왜?”

“걔가 먼저 시작했어요. 저 개무시하는 거. 이건 우리 엄마아빠한테 말하지 마세요. 집에선 몰라요.”

“내가 비밀보장은 확실하지. 근데 왜 집에다간 비밀로 했는데?”

“학폭위로 가기엔 증거도 없고. 엄마아빠가 해결도 못하면서 저만 더 힘들게 할 거 같았어요.”

의뢰인 말과는 달리 어쩐지 등굣길이 평화롭다 했더니, 학교 다닐 애가 없어서 뒷일 생각 안 해도 되는 어른이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습니다. 후사하겠습니다.’라는 교통사고 현장의 현수막처럼 ‘김은수 학교폭력의 가해자에 대해 제보해주세요.’라는 피켓을 든 아주머니가 여러 명의 교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 때 학부모였던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너희들이 내 딸 죽인 거야!”라는 절규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 얼른 눈동자만 굴려서 ‘전 베프 현 베프 아님’의 옆얼굴을 봤는데…웃어? 지금 이 처절한 광경을 보면서?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올라갔던 입꼬리가 급히 내려왔다.

“너…괜찮아?”

“저는 저 아줌마 심정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아줌마도 저 이해할 거 같고요.”

“너는 은수 친구, 아니 같은 반 학생이었고, 저 아줌마는 은수 엄마니까?”

“저 아줌마도 지금 편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거 같잖아요. 선생님들이나 애들이나 다 피하잖아요. 애들은 다른 애들 가만히 있는데 자기만 ‘배신자’ 되기 싫어서 절대 제보 안 할 거고요, 선생님들은 학교가 시끄럽지 않은 게 제일 중요해서 아무 말 안 할 거예요. 아줌마는 왜 그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을까요? 다 큰 어른인데. 멍청하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사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은수처럼 당했으면 우리 엄마아빠는 저렇게 난동 부리지 않고 학교 밖에 높은 사람 찾아 다니면서 해결하려고 할 거 같아요. 그게 학교에 들어 가면, 입 가벼운 선생들이 막 떠들어대고, 애들은 ‘쟤 나댄다’고 하고…엄마아빠가 학교 다니는 거 아니니까 뒷일 생각 안 하고 저지르고선 절 위해 할 건 다 했다고 뿌듯해 할 거예요.”

“넌 니네 엄마아빠가 탐정한테 의뢰할 거라고 예상했어?”

“경호 업체 알아보는 건 봤어요.”

역시 가성비를 따져보고 내게 연락한 거다.

“정장 입은 덩치 큰 아저씨들이랑 같이 다니면 너무 눈에 띄어서 유난 떤다고 자동 왕따 예약이니까 경호원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경호원은 딱 봐도 티가 날 텐데 언니는 탐정 같지 않아서 그나마 괜찮은 거 같아요.”

어쩌면 의뢰인은 ‘친구 같은 탐정’이 아니라 ‘친구 겸 탐정’으로 나를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은수라는 애는, 진짜로 학교 폭력을 당했어?”

“폭력까진 아니고 왕따요. 근데 걔는 아니었어요. 제가 당했어요.”

전교 5등 안에 든다더니 역시 똑똑하다. 나랑 게임을 하자는 건가. 단서를 하나 씩만 흘린다. 강아지한테 간식 주는 것도 아니고. 나 하는 것 봐서 내가 지 맘에 드는 말을 하면 자기도 하나씩만 알려 준다. 밀당이 아니라 조련이다.

“구경 났어? 빨리들 들어 가! 거기 너! 몇 반이야! 너네 다 벌점이야!”

교사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를 보고 잠깐 갸웃한 교사도 있었다. 나은이는 은수 엄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은이의 시선을 돌리려고 괜히 말을 걸었다.

“오늘 급식에 뭐 나와?”

“돈까스요.”

“그럼 나도 오늘 점심은 돈까스로 해야 겠다.”

“탐정 언니는 누구랑 점심 먹어요?”

“나는 맨날 혼밥인데? 학교 다닐 때부터 혼밥했는데? 애들은 쉬는 시간이랑 밥 먹는 시간에 본성이 나오니까 혼자 먹으면서 다른 애들 관찰했어.”

“친구들이 뭐라고 안 했어요?”

“난 친구 없었어.”

“탐정 언니는 왜 왕따 당했어요?”

“내가 전교생을 왕따 시켰는데?”

“그거 완전 정신승리 같잖아요.”

“’관점의 차이’야.”

교사 하나가 이쪽을 보며 은수 엄마의 목소리를 덮으려는 듯 소리 질렀다.

“거기, 토끼 모자! 너 뭐야!”

토끼 귀를 쫑긋거리며 나은이에게 속닥였다.

“너도 취직하면 알겠지만, 직장인들은 잡무, 초과근무, 책임을 싫어해. 돈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귀찮기만 하니까. 그러니까 간편하게 벌점만 매기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죽은 학생은 이제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고요. 산 학생은 내버려 둬도 내년만 지나면 졸업해서 우리 학교 학생 아니게 될 거라서요.”

교사가 ‘거기 토끼 모자’를 잡으러 뛰어 왔다. 영민하고 조숙한 10대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돌아섰다.

“오늘도 잘 버티고, 무사히 하교 시간에 만나자!”

“네. 졸업 때까지만 버티면, 전 저 따위 애들이 못 갈 고등학교에 갈 거니까요.”

도도한 얼굴로, 죽은 애의 엄마 쪽은 무시하고, 교문 안으로 보폭 큰 걸음으로 들어간다. 그 정도 자존심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건가?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아이의 엄마는 교사들에게 떠밀리면서도 부서진 피켓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나은이는 왕따를 당한 건 자기였고 죽은 애는 아니었다고 했지만, 분명히 ‘은수처럼 당했으면’이라고 했다. 교문 앞에서 학생 하나를 잡고 물었다.

“저 아줌마, 왜 저러셔?”

“몰라요.”

귀찮은 듯 뿌리치려는 애한테 성인용품점에서 산 수갑을 보여주며 목소리를 낮췄다.

“토끼 모자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지금 위장하고 수사 중이라서 이런 거야. 아는 거 다 말 해. 수갑 차기 싫으면. 거짓말 하면 수사 방해죄로 구속될 수도 있어.”

“진짜 몰라요. 저는 걔랑 안 친했어요. 걔랑 같은 반이었던 최나은한테 물어 보세요. 걔가 제일 친했어요.”

몇 명 더 잡고 물어 봐도 똑같이 자기는 안 친해서 모르니까 베프였던 나은이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한다. 모두가 부인하면 모두가 용의자다. 외부인만 아니면 학교 안으로 쳐들어가서 하나씩 잡고 대질심문이라도 할 텐데. 그건 죽은 아이의 엄마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나 보다. 마지막 지각생까지 등교하고 교문이 닫힐 때까지 부서진 피켓이 자기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껴안고 교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와 휴지와 테이프를 사 와서 엄마였던 사람 앞에 조용히 놓았다. 가다가 뒤돌아보니 생수와 휴지엔 손도 안 대고 테이프로 피켓부터 고치고 있었다.